풍경이 있는 주막 = 빈대떡 = 막걸리.
등식이 성립됩니다.
중3.
동기생중에 지금도 TV에서 연기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삼일당(당시 유일한 대강당=진명여고)에서 열린 전국 중,고교 연극대회에서 연기상을 탄 그 친구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날,
친구의 아버님이 사내놈들은 술을 할줄 알아야 한다면서 막걸리 가득한 양동이를 가져오셔서 양재기 그득히 막걸리를 따라 주셨습니다.
아! 그 걸직한 달콤함이란-.
고등학교 시절.
아주 키가 크셔서 키다리라는 별명을 가지신 선생님(후에 명문 K대 총장)과 아주 키가 작으셔서 똥자루라는 별명을 가지신 국어선생님 두분이 계셨습니다.
두분은 아주 오래전부터 친구이셨습니다.
똥자루 선생님은 문예반 지도선생님이셨고 문예반은 숙직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매달 타브로이트판 8면(학교기념일 16면)의 학교신문과 교지발행을 하고 있어 거의 매일을 학교에서 늦은 시간까지 보내야 했습니다..
총각이신 두분 선생님은 어느 한분이 숙직이시면 어김없이 다른 한분과 숙직실에서 술타령을 하셨습니다
학급용 주전자에 가득한 막걸리와 과자부스러기.
가끔 기분이 좋으시면 숙직실 고무신에 술을 따라 그 출렁거림 속에서 술흘리지 않기 내기를 하셨습니다.
고무신 닦기와 술심부름은 거의 내 몫이었습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고등학교에 진학한, 고등학교 3년을 가장 가까히 함께한 막걸리같이 생긴 촌놈(?)이 있었습니다.
둘은 거의 매일을 붙어다녔습니다.
겉멋이 든 둘은 그때 문학이론의 실체에 대한 언쟁도 했고 교복을 입은체로 종로의 음악실"르네상스"에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항상 광화문 국제극장옆 포장마차에서의 막걸리 한잔이였습니다.
그 친구는 후에 K대를 나와 신문사 논설실장을 나는 켬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거의 연령대가 비슷한 일만칠천명이나되는 회원중에 이 글을 읽으면 나를 알고 찾아 줄 잊혀진 친구를 만남입니다.
첫댓글 친구를 만나는 기쁜 시간 주막방에서 이루지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꼭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좋은만남 이루시기를 ~ ~
진명 여중나왔어요 반가워라 삼일당 그리워라 삼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