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중에 ‘같기도’라는 것이 있다.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여...”라는 유행어를 중심으로 애매한 행동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때론 우리 부부의 모습이 이런 것 같다.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실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실력이 없다고 말하기엔 예상외로 갖춰진 실력을 가지고 있다.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사역의 양이 적고, 사역을 안 한다고 하기에는 매일 우리 나름의
사역을 하고 있다(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해온 사역은 아마도 ‘대기 사역’일 것이다.
계속 사역 준비만 하고 기다리는...).
교역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니다. 목사나 전도사나 선교사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역할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냥 평신도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인생길을 이미 오래 살아왔다.
우린 교역자와 평신도 사이에 끼어 있다.
예배 사역자도 아니고 음반이나 공연 아티스트도 아니다.
비록 현재 예배 사역자 모임에 나가고, 다른 사역자들 앞에서는 ‘예배 사역자 모임에 소속’된 것으로
소개되지만, 우린 우리가 예배 사역자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 경우엔 교회 안에서 음악 사역을 할 생각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찬양팀의 리더가 되거나 인도를 할 생각은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예배곡을 쓰려고 애쓴 적이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경적인 곡을 쓰려고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수나 아티스트는 아니다.
음반을 몇 번 내보고, 공연도 약간 해 보았으며, 심지어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도 해봤지만,
현재 음반이나 공연 활동이 전혀 없으니...
우리 부부는 각각 솔로 사역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부 팀도 아니다.
작년에 어떤 교회에 찬양을 인도하러 갔을 때, 우리를 ‘동키 보컬 그룹’으로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하긴 아내는 솔로 사역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솔로 앨범도 냈었으니까...
그러나, 아내의 모든 사역에 늘 내가 따라가서 뭔가를 했기에 팀사역이라고 할 수도...
우린 연주자도 아니고 인도자도 아니고 싱어도 아니다.
몇몇 악기를 연주는 하지만 메인으로 전면에 연주를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다른 연주자들 뒤에서 받쳐주는 정도가 우리 수준에 가장 잘 맞을 것이다.
현재 교회에서 인도를 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예배 인도자라고 말하기엔 우리 모습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그냥 찬양팀의 싱어도 아니다. 단지 싱어만 하기에는 말이다.
특히, 나는 싱어로의 자질이 약간 떨어진다. 백 보컬로서는 어울리지만....
우린 장년도 청년도 아니다. 나이로는 당연히 장년이지만, 우리의 음악과 생각은 청년에 가깝다.
그렇다고 요즘 청년들처럼 계속 뛰면서 찬양을 하거나 악기나 노래를 과격하게 하는 것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
우린 알려진 사역자도 아니고, 숨겨진 사역자도 아니다.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미하며, 안 알려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노출 되어 있다.
예배에 대해 개방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다.
요즘의 젊은이들의 예배를 좀 말렸으면 하면서도, 형식적이고 구습에 젖은 선입관 가득한 예배는 반대한다.
게다가 나는 미국 영주권자이지만, 아내가 미국에 갈 수 있을 때까지 한국에 나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느낌이다.
이런 애매함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성경이 경고하고 있는 ‘미지근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 역시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애매하신 분으로 보인다.
무서우신 것도 인자하신 것도 아닌 것 같다.
예수님도 그렇다. 그분은 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인가 로마 사람인가?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가, 아닌가?
순교당한 스데반은 승리자인가 패배자인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은 했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구원을 받은 것인가, 아직 안 받은 것인가?
그러나, 이런 애매함들과 상반된 것 같은 모순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께서는 애매한 위치와 처지에 있는 자들을 사용하실 수 있다.
사실, 주님은 애매한 자들을 기꺼이 주님의 도구로 쓰신다.
애매한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 바울이 말했듯이 “어떤 형편에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될 수 있다.
“주님, 주님만을 의지할 수 있도록, 저희를 애매한 상황에 두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당시 댓글)
정선원 : 사실 중간에 낀 것 같은 느낌이 부정적으로 생각될 때가 많았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주님께서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과 체험을 주심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과 정확하신 주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믿음을 두려 합니다~
2007-08-31 21:5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