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전시사칼럼
국유장군사직지복(國有長君社稷之福)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6천 불의 당당한 선진국입니다. 게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K팝, K푸드를 비롯한 한국문화 콘텐츠는 이미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건축, 반도체, 전자, 토목, 조선, 자동차 등등 과학기술, 특히 방산(防産)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비록 난항을 거듭하고 있지만 의료수준 역시 세계가 부러워합니다. 실물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의 씀씀이를 보면 엄살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나라가 좀처럼 정치에서는 지독한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입니다. 온 나라가 벌써 몇 년째 이재명, 김건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진작에 퇴출되었어야 할 전과자, 범죄자가 버젓이 나라의 입법권을 거머쥐고 세상의 공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민생입법에 손을 놓은 국회는 연일 방탄, 탄핵, 특검으로 날밤을 지새웁니다. 거리에서 국회에서 국민들은 투표 한번 잘못한 죄로 눈이 시리도록 기막힌 난장판을 지켜봐야 합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욕하는 진풍경은 이제 증오를 넘어 살기(殺氣)로 가득합니다. 솔직히 광란의 팬텀 무리들도 제정신이 돌아온다면 그럴 것 같습니다. 그 범죄혐의가 열거하기조차 벅찰 정도인 이재명에 비하면 김건희의 명품백, 주가조작 혐의는 새 발의 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국민적 비난은 그런 의혹 때문이 아닙니다. 통화기록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그녀의 처참한 민낯, 대통령 부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천박한 처신과 품격이 대한민국의 국민적 자존심에 가한 폭력 때문입니다. 그런 아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그걸 사랑으로 착각하고 갈 길을 잃은 채 헤매는 대통령의 한심스러운 판단력 때문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한성진, 김동현이라는 두 사람의 50대 판사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1심 판결은 2심과 최종심의 결과를 사실상 예고하는 가이드 라인입니다. 물론 권순일 같은 탈선 케이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사법부는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철길을 깔아놓으면 종착역까지는 간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경험칙입니다. 게다가 2심에는 증인신문이 불필요하고 3심은 법률심입니다. 여기다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속 재판 의지까지 보태지면 2025년 상반기에는 결론이 나야 정상입니다. 어쩌면 이같은 일련의 과정과 내용에 따라 이 나라의 존망(存亡)이 결정될지도 모릅니다. 제발이지 하나님의 보우하심으로 이 나라 정치가 이성을 회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랄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같은 반열의 지도자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 적어도 수신제가(修身齋家)의 수준이 국민의 평균적 상식에 적합한 지도자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기만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역사학자 박현모가 쓴 『태종평전』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다 아는바 역사는 조선의 태종 이방원을 일컬어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이룩하고 세종의 15세기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명군으로 평가합니다. 그가 주도한 여말선초의 권력투쟁, 즉 그에 의한 가혹한 피 흘림의 역사는 그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가려져 버렸습니다. 그럼 오늘의 지도자들이 태종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강거목장(綱擧目張/ 벼리를 들어 올리면 그물눈이 저절로 펼쳐진다.)입니다. 즉 그물코에 꿰인 벼리를 잡아당기면 그물 전체가 일제히 펼쳐지고 접힌다는 뜻입니다. 그가 꿈꾸는 소강(小康)의 나라, 즉 가족 같이 화합하고 잘사는 나라, 민생이 평안하고(四境按堵) 물산이 풍부한 나라(倉庫充溢)는 다 태종의 탁월한 리더십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는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지시하지도 않았고 함부로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벼리마다 유능한 인재를 배치해 조직이 스스로 왕권에 통속되도록 했을 뿐입니다.
태종은 첫째 말의 질서를 바로잡았습니다. 말이 어지러운 데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태종은 나라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언(亂言)과 요언(妖言), 거짓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말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태종은 말을 전하는 부서, 승정원을 정하고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태종은 말의 길을 바로잡은 후 일의 순서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인사(人事)였습니다. 그는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운 인재란 없다고 보고 장점만을 취해 최대한 활용하는 이른바 ‘장점 경영’이라는 인사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일의 순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태종이 추진한 또 다른 일은 부처 간의 질서를 잡아주는 것입니다. 결국 태종대의 인재들은 신명나게 일했고 조선왕조는 마침내 국운 융성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태종평전이 전하는 메시지의 백미(白眉)는 『태종실록』 18년 6월 3일조의 기록입니다. 이른바 국유장군사직지복(國有長君社稷之福)입니다. 즉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온 나라가 복을 받는다.’입니다. 왕조국가에서 왕위계승은 요즈음의 대선만큼 중차대한 국가적 대사였습니다. 태종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보수(우파), 진보(좌파)가 양립한 것처럼 당시도 장자 우선의 택장론(擇長論)과 현자 우선의 택현론(擇賢論)이 대립했습니다. 마침내 태종은 장자 양령을 폐하고 3자 충령으로 세자를 삼았습니다. 태종이 꼽은 세종 충령의 장점은 다섯 가지였습니다. 첫째,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지적인 리더십, 둘째, 큰일이 닥쳤을 때 탁월한 의견을 제시하는 문제해결 능력, 셋째 주량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절제력과 글로벌 매너에 익숙해 외교를 잘할 수 있는 능력, 넷째, 안정적 왕위계승자가 존재함으로 정책의 계승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현대국가에서는 왕위계승자를 결정하는 태종의 역할을 유권자인 국민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다를 뿐입니다.
요컨대 태종 이방원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거대한 시대전환을 인식하고 선발제지(先發制之), 즉 먼저 일으켜 사태를 제압한 기민함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읽어내는 안목과 감각은 부단한 자기 연마의 결과였습니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머리털이 희끗해질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도자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는 순간 국가라는 배는 헤매기 마련입니다. 특히 독자들이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하는 바는 바로 ‘태종 어록 7선’입니다. 즉 (1) 책내재여(責乃在予),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2) 여치란승(如治亂繩), 법과 제도를 만듬에는 신중해야 한다. (3) 당수인사(當修人事), 제사보다 중한 것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 (4) 이위후규(以爲後規),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전통을 만들라. (5) 여즉실구(予則實懼), 지도자는 늘 두려운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6) 국유장군(國有長君), 나라의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7) 역이족의(亦已足矣), 적당한 곳에서 멈추는 자기 절제력입니다.
어느덧 만추의 냉기가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어느 자리에서 ‘이제 이 나라가 어찌 될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 역시 유구무언(有口無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다시 한번 이 나라 대한민국에 태종-세종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아 ‘국유장군사직지복(國有長君社稷之福)/ 나라에 훌륭한 대통령이 있어 온 나라가 복을 받는다.’라는 국민적 감동이 넘치는 그날이 속히 돌아오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지금 필자의 눈에는 나라와 아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선 대통령,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거대 야당 대표가 보입니다. 머지않아 둘 중 한 사람은 골목길과 담장 위를 벗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용산의 주인은 대통령으로서의 시간이 여의도의 주인은 차기 대통령 1번으로서의 시간이 지금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20241021/ 글; 최익제장로(敎博)
첫댓글 귀가있으나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나같은 무지랭이가 투표를 잘못한 탓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