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모순된 사역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딛 1:12)“
나는 위 말씀을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선생님에게로부터 ‘모순된 말’의 대표적인 예로서 처음 들었다.
당시에는 성경에 있는 말씀인지 몰랐고, 다만 속담이나 고대 철학자들 중 한명의 저서 등에
나오는 말 인줄 알았다.
자신도 그레데 사람인 한 선지자가 그레데인을 정죄하는 예언인데,
이 말이 모순인 것은 자신도 그레데인이기에 자신의 예언조차 거짓이 되어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위에서 바울이 디도에게 말한 그 그레데 선지자라는 인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지자가 아니라,
그레데 사람들에게 선지자로 추앙받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딛 1:13).
분명 바울이 그레데에서 디도와 함께 사역을 해보니 그들이 복음을 받기에는
너무나 악한 자들임을 느꼈을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 상황이 안 좋은 사고로 인하여 복잡하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의 이익과 입장을 격한 감정으로 가지고
앞 다투어 표현하고 있으며, 증거 없는 의심과 근거 없는 확신과 소신 없는 애도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위의 그레데 선지자라는 인물과 같아 보이는 사역을 했다.
자신도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인데, 자신의 동족의 죄악을 지적하며 회개를 선포해야 했다.
자신도 아직 하나님의 뜻을 다 깨닫지 못하는데, 백성들에게 그분의 뜻을 최대한 정확히 알려야 했다.
자신의 목숨과 안전도 위협받는데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고쳐주어야 했다.
이는 마치 똑같은 병에 걸린 의사와 환자이지만, 의사는 자신의 병보다 환자의 병을 먼저 고치려
애써야 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발언권을 쉽사리 얻을 수 없었던 숨어있던 소수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 중에는 정말로 숨겨져 있던 보물과 같은 고수들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자들은 지적인 교만함과 어두움과 원한의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거나,
인생을 장난으로 사는 자들의 쓸데없는 실시간 정보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한국인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이 높고, 머리 회전은 빠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잘 믿고,
한 번 오해한 것은 오래 가며, 귀는 얇고, 다른 사람 탓을 먼저 하고, 부정적인 쪽으로 만사를 대하고,
핵심은 놓치면서 주변적인 것에 목숨을 걸고, 말과 글은 격한데 마음은 여리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서도 과연 위의 그레데 선지자처럼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을 하고 있지 않나 두렵지만,
분명히 우리 나라 사람들의 오랜(그리고 부정적인) 민족성은 위의 열거한 것에 맞아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지자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자신도 연약함과 모순과 불완전 속에서 분투하며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사
하나님의 도구로서 사람들 앞에 드러내시려 하신다. 이 얼마나 무섭고 사람들에게 공격당할 일인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한 말은 기억하는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31)”
그들 눈에는 얼마나 예수의 모습이 위선적이며 모순적으로 보였을까?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귀신을 쫓아낸 자가 정작 자신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예수께서 그러셨듯이 남은 구원했지만 정작 온갖 고난과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진실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는 약점과 상처가 있는 자이다.
이단이나 사이비의 교주들처럼 스스로 약점이 없고 완전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 거짓 선지자이다.
예수께서도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고, 처참하게 죽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자는 담대해야 한다. 자신이 잘나고 완벽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는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다.
예수 믿는 우리는 죄를 이길 권세를 받은 것이지, 죄가 우릴 알아서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었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다른 사람보다 뭔가 더 나은 존재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 나귀 턱뼈가 대단한 것이 아니며, 삼손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그를 택하셔서 사용하신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레데 선지자가 자신도 포함된
그레데를 정죄하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말을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선지자 자신에게도 치명타가 올지라도 전해야 한다.
사람에게 모순인 것이 하나님께는 모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자인 동시에 어린양이 되는 존재란 모순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생명의 주가 육신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것이 모순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대홍수라는 충격적인 사건 후에도 포도주를 마시고 약점을 드러낸 노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이 모순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기 신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낳은 아들을 다윗의 후계자로 세움 받는 것이 모순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는 자들을 죽이던 자가 선교사로 사역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나처럼 음악을 독학으로 한 자가 음악사역자로 사는 것이 모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순이 없다. 그분은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린 불행이 닥칠 때 하나님을 함부로 원망해서는 안 된다.
불행을 행복의 재료로 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