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마가복음 제 5 강 메시지_아산 UBF
열둘을 세우셨으니
말씀 / 마가복음 3 : 7~35
요절 / 마가복음 3 : 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많은 저술을 남기고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정약용은 천주교 역사에는 지금까지 배교자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일부 학자들이 그가 배교 후에도 신앙생활 했다고 하지만 입증자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 때 배교하였고, 권철신, 조카사위 황사영을 신자라고 고발합니다. 그는 흠흠신서를 저술하며, 천주교 신자를 적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어린이나 노비를 중점적으로 심문, 고문하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노비를 통하여 천주교 신자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알아내는 방법임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서산 해미읍성의 서문 밖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1000명~2000명의 천주교 신자들 처형 장소입니다. 처형장소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가족단위로 처형된 것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가족들의 방해와 새로운 가족개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족의 배교와 가족의 고발은 믿는 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으로 찢어지는 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때에도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서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갈릴리에서 다니시는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고생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던 당시 유대지방은 전통산업인 농업이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소규모 자영농민들이 경쟁력을 잃고 가난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규모 토목 건축 공사로 인하여 각지의 기능공들이 유입되고 상업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무역업에 눈을 돌려서 지중해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로마가 매기는 관세가 높아 돈 벌이에 부담이었습니다. 전통산업이 기울고 새로운 부자들이 나타났으며 빈부격차는 커졌습니다. 가난하니까 자꾸 아픕니다. 가난하니까 원통한 일이 많고 사람 속에 귀신들이 들어갔습니다.
문제 많은 사람들, 상처받고 귀신들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주셨습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아픈 사람을 고쳐 주셨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9절에 작은 배를 준비시킨 것은 작은 배를 타고 물로 나가 물위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들을 앞에 두고 말씀을 먼저 전하신 것은 그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셨는지 알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렵고 힘든 시대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사람들은 빨리 병 고쳐주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좋아져야 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말하였습니다. 로마 지배가 끝나고 세금이 줄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시대의 양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절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 중심으로 로마 타도 세력을 모으고 예수님을 정치적 목적 달성 수단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3절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이 전환기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왜 산에 오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왜 산에 오르셔서 거기서 제자들을 부르셨을까요? 산은 예수님께서 방황하는 많은 무리들을 보는 곳입니다. 산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며 합당한 해법을 찾으시는 곳이며 산은 예수님께서 시대의 고통 받는 백성들을 두고 새로운 방향을 잡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백성들이 아프고 방황하며 고생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백성들을 섬길 목자가 없는 것이라 보셨습니다. 백성들을 섬기고 돌보며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영적인 지도자,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제자가 필요함을 보셨습니다. 당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관심 기울이며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섬겨야할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백성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의지가 없었습니다. 한 영혼, 한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한 영혼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권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해오던 대로 자기의 패턴과 자기의 루틴대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는 백성들을 보시며 사람의 인기에 들뜨신 것이 아니라 몰려오는 백성들이 왜 오는지 백성들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고 그에 대응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입니다. 시대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제자를 부르실 때,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예수님의 주권적 결정입니다. 제자로 부르시는 주권이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습니다. 내가 멋있게 인생을 살아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람 있는 일을 한 번 해보려는 의도가 부르심의 기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예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를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대하여 영접하고 나오는 자가 쓰임 받습니다. 내가 왜 목자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왜 목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유를 모르는 분이 있습니까? 목자로 사느라 꼭 이런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나? 목자의 생활이 꼭 이런 것인가?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풍조대로 살지 않고자 애씁니다. 우리는 나의 감정이나 마음의 원대로 살지 않고자 분별력을 가지고 각별히 주의 합니다. 나의 인생을 예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목자로 사느라 겪고 견디는 모든 것들이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부르심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따라 나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아침 이슬이 해 뜨자 사라지는 것처럼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조금 고생하는 일이 있고 조금 번거러운 생활이 있지만, 부르심을 따라 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부르심에 따르는 상을 얻고자 기꺼이 수고하고 인내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장 크고 놀라운 부르심의 상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어 부르심의 상이 있음도 보지 못하고 자기의 원대로 살 면, 뼈아프게 후회하고 돌이키지 못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때를 맞이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부르심에 따르는 삶에 있습니다.
14,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이 열둘을 세우신 목적은 먼저 예수님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섬김을 배우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배우게 하십니다. 다음으로 이들을 부르신 목적은 이들을 전도하게 하시고 시대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 겪는 양들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제자의 길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면서 예수님을 배우는 길이며, 주님의 양들을 돕고 살리고 섬기는 길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의 뜰을 밟고 다닌다고 해서 안심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을 든든함의 근거로 삼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나의 말을 들어주고 교회가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것에 존재감, 자존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어릴 때는 그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충분히 자라지 못했을 때는 그런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제자의 길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항상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항상 나는 예수님을 배우고 있는가? 모든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소망하고 있는가? 나의 고난의 이유, 나의 인내의 이유를 점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다 보면 인정받는 일도 있고 칭찬 받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찬사와 인정에도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외부의 시험과 유혹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약간의 헌신, 약간의 희생을 한 후 인정과 칭찬에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외적 시험과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여야 합니다. 내부의 인정과 칭찬과 찬사가 있어도 예수님 배우고자 하는 목표에 계속 집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로 가야 생명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매우 굳어져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저히 변화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율법으로 돌아가자’ 열심히 절제하고 열심히 금욕하였을 때, 쏟아진 사람들의 인정, 사람들의 칭찬 때문이었습니다. Best의 적은 Bett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가는 길에서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사람들이 나를 중요하다고 해주고, 사람들이 나를 귀하다, 대단하다 인정해 줄 때 그 때가 정신 차려야 하는 때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길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를 귀하다 해주고 사람들이 자기들을 계속 주목해주기를 바라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실패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합니다.
농업이 쇠퇴하고 땅을 잃은 사람들이 일이 없어서 방황하던 시대, 큰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들과 큰 부자들이 나타나던 시대,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던 시대,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16~19절을 보십시오. 열 두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 다대오, 시몬, 유다 입니다. 이 사람들 중에 랍비 교육받은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스펙으로 볼 때, 인재가 될 만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배우고 부르심을 주셨을 때, 순종하여 나오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비전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모습은 모래알 같지만 반석이 될 것이다! 비전을 주셨습니다. 매일 ‘반석아!’ ‘반석!’ 불러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스케일이 작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의 행로는 비교하고 시기하고 자기 더 챙겨 달라 들이대고 내편 아니면 밀쳐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온 세상에 큰 울림을 전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우레의 아들”이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전과 소망대로 이 사람들은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세상을 변화 시켰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전한 말씀은 전 세계를 흔드는 거대한 우레와 같았습니다.
20~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많은 양들을 섬기느라 식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시대의 방황하는 양들을 잘 섬길 때, 인간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 반응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볼 때,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챙겨야 하는데, 남을 위하여 살고 아낌없이 퍼주고 살면 나의 가족 나의 친척, 나의 친구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 ‘미쳤다’ 합니다.
양들을 잘 섬기면 종교지도자들이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일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역사를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이루어지는 역사라고 비난합니다. 이 사람들의 죄가 심각한 것은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요,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임을 아는데,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생명역사를 부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사람들은 사함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31~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방문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유전적 친연성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친척이라도 되었다면, 예수님과 같은 고향에서 미리 친해 두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께 받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가혹한 핍박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가족들의 배교, 가족들의 고발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가족들이 처음에는 ‘미쳤다’ ‘정신 나갔다’ 하며 예수님 역사의 방해자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믿고 있는 가족의 배교나, 믿고 있는 가족들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여 자기는 살고자 하는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만, 예수님도 그런 아픔을 겪으셨던 것을 기억하여야 하며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우리 학생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부모님들의 눈치를 봅니다. 부모님들이 ‘너무 시간 뺏기지 말아라’ 하십니다. ‘믿더라도 적당히 믿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 헌신하고 희생하는 내용을 아는 부모님들은 신앙생활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나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잘 견뎌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29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믿음의 가족을 더하여 주시고, 핍박하던 가족들도 다시 복음의 동역자가 되게 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시대는 소득격차가 컸습니다.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아 백성들은 방황하며 고통 받던 시대였습니다. 더 크고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멸망하여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실의 변화와 임박한 변혁을 알고 계셨습니다.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양들을 감당하고 섬길 제자를 양성하신 것이 예수님께서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는 것이 제자들 개인으로는 큰 은혜와 영광입니다. 그들은 모두 이전에는 자기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살았고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사함 받고 예수님을 배우며 양들을 먹이는 삶은 자신을 구원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상급을 보장받는 큰 은혜였습니다.
복음역사 계승에서 볼 때, 열둘을 부르시고 세우신 것은 유다와 온 세상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목자, 사도들이 세움 받을 때, 이 땅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제자를 키우고 그들이 세상에 복음 들고 나갈 때, 온 세상도 하나님께 나아와 구원과 은혜를 누립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열둘을 새로운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세우십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만민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진정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택하신 나라, 왕 같은 제사장,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세우셔서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 회복 역사를 누리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큰일을 하고자 할 때, 누구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병만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관심은 나만! 내 문제만! 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시고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제자 양성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는 것을 더 분명히 믿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우리 육신의 생명이 지속되는 날은 반드시 그 끝을 맞이 합니다. 시간을 아껴야 하는 것은 나에게 주신 시간은 곧 내 인생에게 주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을 기회, 영생을 얻을 기회입니다. 이 기회는 우리가 숨 쉬고 활동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 시간 속에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에 힘쓰셨는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힘쓰신 일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능히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에 쓰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아산 UB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