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혈해로 변한 소실봉의 교전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정도연합맹은 비록 많은 인명손실을 입었지만 승리를 거두었다. 무면인들이 저항하는 방도들을 모두 없애고 투항하는 방도들의 단전을 파괴하여 다시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제왕여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를 찾기 위해 떠났고, 그의 처첩과 신투동부의 인물들도 정도연합맹도들의 싸늘한 눈초리에 자리를 떴다. 정도연합맹도들은 승리를 자축하지 못하고 제왕여래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지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서장일미와 보타일미는 물론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남몰래 여옥린을 흠모하던 당문의 사갈나찰은 수뇌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투동부의 인물들을 따라갔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개방의 불취신개는 제왕여래가 극천마황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결코 군림천하를 꿈꾸지 않을 것이라 역설했다. 수뇌부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불취신개는 정도연합맹에서 탈퇴하겠다는 선언을 한 후 개방의 방도들을 이끌고 악양으로 돌아갔다 천료신승을 정도연합맹을 해체하지 못했고, 앞으로 제왕여래를 좀더 살펴본 후 무림에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 될 때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 * * 하북성 변방에서 몽고군과 대접전을 벌이던 대명군은 뜻밖에 적들의 전력이 예상과는 달리 막강하여 호각지세(互角之勢)를 보이자 전투가 길어질 것을 예상했다. 천자의 진두지휘아래 대명군은 약간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무림인들 사이의 치열했던 전쟁이 정도인들의 승리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은 대원제국의 후예들에게도 전해졌고, 숙의(熟議)를 거친 그들은 천자에게 항복했다. 대륙의 일개 방파인 풍운방에도 머리를 숙여야 했는데 자신들이 대명군을 상대로 힘겹게 승리한다하더라도 풍운방을 물리친 무인들이 나서면 모든 계획이 기포(氣泡)처럼 사라지게 될 처지였기에 목숨을 건지기 위한 조치였다. 천자는 항복을 선언한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몽고국을 아예 대명국에 귀속시켰고, 앞으로 대명국의 신하를 파견하여 몽고를 다스린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단기간에 큰 피해 없이 소득을 얻은 천자는 팔십만 금위군과 자금성으로 만조백관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환하였다. 자운공주의 짝이 될 제왕여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천자는 황궁보고를 열어 구파일방의 재건을 돕는 조건으로 정도인들이 나서서 그를 찾아오라는 황명을 내렸다. 모습을 감춘 제왕여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인물들이 동원되었지만 그를 보았다는 인물들은 아무도 없었다.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은 잡을 수 없었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 * * 동정호(洞庭湖)의 갈대가 무성한 호젓한 곳에 머리를 산발한 사내가 죽간(竹竿)을 드리우고 있었다. 수면엔 뗏장수초가 가득했고 군데군데 수초가 적게 자란 구멍 하나에 수수깡 찌가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늘을 맴돌던 고추잠자리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흔들거리던 찌에 내려앉았다. 언뜻 봐서도 명당자리에 죽간을 드리운 사내는 낚시엔 별 관심이 없는지 팔베개를 한 채 풀밭에 누워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는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가(史家)들은 나를 역사이래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해친 흉악한 인물로 기록하겠지?… 다시는 무림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 나의 여인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너무 보고싶구나!' 수심(愁心)을 드리운 채 방황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그가 찌가 솟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사각사각―! 죽간을 잡아채려 할 때 근방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려오자 사내는 귀를 기울이며 촉각을 세웠다. 많은 인원이 후방에서 조심스레 접근하는 것을 알아챈 그는 죽립(竹笠)으로 얼굴을 가렸다. 일촌각(一寸刻)에 수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를 올렸다. "소주(小主)!… 여기에 계신지 몰라 이제야 찾아왔나이다."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그들의 목소리에 사내는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은 사람을 잘 못 보신 것 같소. 일개 야인(野人)인 내가 어떻게 생면부지의 그대들의 소주가 될 수 있겠소?" 지면에 엎드린 인물들 중 하나가 답했다. "소주!… 저희들은 부친을 모시던 궁도들입니다. 극천마궁의 분열을 초래한 구마존과 칠제이후가 모두 죽었으니 이제 소주께 궁주님을 잘 모시지 못한 불충(不忠)의 죄가를 치르기 위해 찾아왔나이다. 저희들을 벌하여 주소서!…" 극천마궁의 마인들이 신분을 밝히자 사내는 얼굴을 가렸던 죽립을 치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얼굴에 남은 수많은 자상(刺傷)과 코와 입술이 베어져 끔찍한 형상을 한 그들은 그가 노여워하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벌을 달게 받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을 쓰려던 여옥린은 그들의 모습에 손을 내려야했다. "두 번 다시 마주치기 싫으니 떠나시오." 그들 중 하나가 품에서 봉서(封書)를 꺼냈다. "약왕전(藥王殿)을 맡고있던 진천야호(震天野狐)라 하옵니다. 조부께서 돌아가시며 소주께서 장성하시면 전해드리라는 유언을 남겼나이다." 조부라면 극천마궁을 창건한 제천마존(帝天魔尊) 여무황(呂武皇)이었기에 여옥린은 봉서를 빼앗듯이 잡아채더니 봉투를 뜯고 서찰을 펼쳤다. < 사랑하는 손자 여옥린에게 못난 할아비가 남긴다. 상고시대의 혼돈시절 무림엔 마(魔)를 추종하는 무리가 모인 마계(魔界)가 열렸고, 그들을 제지하려는 선계(仙界)가 자연적으로 파생되었다. 마계의 마인(魔人)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마공을 익혀 세상을 도탄에 빠트렸지만, 선계의 선인(仙人)들은 그들을 상대할 뛰어난 무공을 익히기 위해 언제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계의 만행에 선계는 희생을 감수하며 그들과 양패구사했는데 마인들은 많이 살아남았으나 선계엔 소수의 선인들만 남게 되었다. 그간 무림의 혈사(血史) 뒤엔 선인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선계의 마지막 후예인 할아비는 마인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보다는 뛰어난 마공을 익힌 아홉 명의 심성이 흉악한 마인들을 수하로 삼고 정도(正道)와 마도(魔道)가 함께 공존하기를 바랬다. 강력한 힘으로 마인들을 제어하기 위해 극천마궁을 세웠고, 무림엔 평화가 흘렀으나 죽을 때가 되서야 오판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계도(啓導)하여 일부마인들의 흉심은 사라졌지만 천성적으로 마인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마음을 돌려놓기는 역부족이었다. 네 아비는 심성이 너무 밝아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이기에 너에게 무거운 짐을 남긴다. 전향한 약왕전주에게 이 글을 맡겼으니 그를 따르는 궁도들과 힘을 합해 부디 천하의 마인들과 정도인들이 화합할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거라!… ― 극천마황 여무황 ― > 조부께서 임종(臨終) 직전에 쓰신 탓인지 읽기 힘든 악필(惡筆)이었지만 여옥린은 가슴 벅찬 희열을 만끽했다. 마인의 후예라는 굴레를 벗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부의 유언이 적힌 서찰을 약왕전주라고 밝힌 인물에게 돌려주었다. "읽어보고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바라오." 약왕전주는 유언장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도 이미 짐작한 듯 담담한 표정을 지은 반면 나머지 인물들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동요하지는 않았다. "소주!… 정도인들이 우릴 얕보지만 않는다면 되찾은 평화를 깨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소주를 주군으로 모실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여옥린은 그들이 흩어져 흉성(兇性)을 되찾으면 또다시 무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었기에 허락했다. "좋소!… 그대들이 남들의 재산을 강탈하지 않고 극천마궁이 있던 자리에 무림의 평화를 지킬 제왕성(帝王城)을 세운다면 그대들을 받아들이겠소!" 지면에 엎드린 인물들이 어깨를 떠는 것으로 보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여옥린이 신형을 띄웠다. "하하하!… 나중에 제왕성에서 봅시다." 천공을 유성(流星)처럼 날아가던 여옥린은 신투동부를 찾았고, 목 빠지게 그를 기다렸던 여인들은 여러 종류의 화사한 꽃들이 만개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그는 그녀들의 복부가 불룩한 것을 보더니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함박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선계(仙界)를 이을 후손들이 곧 태어나겠구려…" 여인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크게 뜬눈을 깜빡거릴 때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받고 사부 공공신투와 신투동부의 인물들이 몰려나오자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으며 외쳤다. "죄송하지만 모두 비키세요. 가가께선 저희들과 할 일이 있단 말이에요." 그녀들이 여옥린의 양쪽 팔을 끼고 신투동부로 들어가자 공공신투가 투덜댔다. "쳇!… 녀석과 회포를 푸는 것도 일이냐?" 공공신투는 동부 안의 모든 인원은 밖으로 나와 맑을 공기를 쐬라는 명을 내렸고, 동부가 텅텅 비자 여인들은 뻔뻔스럽게 여옥린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요구했다. 그간 성욕을 굶주린 그가 마다할 리 없었고 신투동부엔 뜨거운 열풍이 몰아닥쳤다. 여인들 중 서장일미와 보타일미, 사갈나찰은 처녀의 몸이었기에 순결을 바치며 동부가 진동할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고, 파과의 극심한 고통을 인내한 그녀들은 마침내 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일 년 후 천자의 지원을 받은 제왕성이 완공되었고, 신투동부를 나선 여옥린은 양쪽 팔에 옥동자 둘을 안고 아리따운 그의 여인들에게 둘러 쌓인 채 활짝 열린 정문을 통해 입성(入城)했다. 자운공주를 비롯한 그의 여인들은 모두 회임하여 거동이 불편했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해가 풀린 구파일방의 장문인은 물론 마도의 인물들도 그를 반겼다. 대명천자인 천자는 집무를 제쳐놓고 직접 방문하였다가 그를 마중했다. "무심한 사람 같으니 자운을 맡겼으면 가끔 자금성을 방문해 장인 어른과 짐에게 문안인사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여옥린은 천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하하하!… 천자형님! 죄송합니다. 제 처들이 한시도 저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자운공주가 천자에게 고했다. "오라버니!… 가가의 말을 믿지 마세요. 저희 모두를 회임(懷妊)시키고도 밤마다 못살게 굴거든요?… 마치 짐승 같아요." 그녀의 말에 그의 처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천자는 여옥린에게 몰래 눈짓을 하더니 자운공주에게 말했다. "허허!… 그것참 문제로구나!… 그럼 짐이 매제(妹弟)에게 아름다운 여인들을 선사하여 고충을 덜어주겠노라!" 입이 벌어진 여옥린은 천자의 농담에 응했다. "천자형님!… 이왕이면 아직 상대해 보지 못한 색목인(色目人) 여인들과 피부가 검은 여인들을 주십시오. 서장일미가 색목인이긴 하나 완전한 혈통은 아니거든요!" 그들의 대화에 그의 처들이 모두 나섰다. "말도 안 돼! 폐하, 저희들은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인들을 하사하신다는 말씀을 거두어 주옵소서!…" 천자와 여옥린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떠나갈 듯한 대소를 터트렸다. "허허허!…" "하하하하하!…" 유난히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이었다.
- 대미(大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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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기다리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즐독
감사...
감사히 즐독하였습니다. 늘 강건하시기를...
즐,,,,,
감사~~고생하시였내요 다음작품기대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