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림픽 도전은 하계보다 동계가 먼저였다. 1948년 1월 30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막한 제5회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이지만 'KOREA'라고 적힌 단복을 맞춰 입은 5명의 초미니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워 개막식에 참가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미국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월터 정(한국명 정월택)이 본부임원을 맡았고 최용진 감독과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3명(이효창·이종국·문동성)이 출전했다. 1944년 전일본선수권대회 종합우승, 1946년 춘천에서 열린 제1회 한국빙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효창이 한국의 간판이었다. 물론 당시의 한국은 참가에 의미를 둔 나라였고, 대회 성적도 노메달이었다. 그러나 미니 선수단은 세계에 코리아를 알리며 나라를 되찾은 기쁨을 만끽했다. 하계 올림픽 참가는 같은 해 7월의 런던올림픽이 처음이었다.
- ▲ 제5회 동계올림픽
한국은 6·25전쟁 와중에 열린 1952년 오슬로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대회부터는 빠지지 않고 동계올림픽에 나섰다. 그때까지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뿐이었지만 1960년 대회(미국 스퀘밸리)부터는 알파인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도 출전했다. 이후 출전 종목도 다양해졌고, 출전 선수의 수도 늘었다. 그러나 한국은 동계올림픽의 '들러리'였고 '노메달 행진'도 계속 이어졌다.
첫 메달 소식은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에서 나왔다. 김기훈은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인 1호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동계올림픽 데뷔 44년 만의 쾌거였다. 당시 한국은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보탰고, 스피드스케이팅의 김윤만(은메달), 쇼트트랙 이준호(동메달)가 메달을 따내면서 종합 10위(금2·은1·동1)에 올랐다.
이후 한국의 동계올림픽 순위는 쇼트트랙 성적에 좌지우지됐다. 쇼트트랙은 말 그대로 한국의 '메달밭'이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1994년 릴레함메르부터 2006년 토리노까지 금메달만 15개(은7·동4)를 따냈다. 안현수와 진선유는 토리노올림픽 남녀 쇼트트랙에서 3관왕에 오르며 한국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쇼트트랙에만 편중된 '메달 편식'은 한국 동계 스포츠의 숙제로 남아 있다. 내년 2월 개막하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아닌 종목에서 첫 금메달리스트가 나올 수 있을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의 이규혁과 이강석이 유력한 후보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