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무형문화유산 전통사기장 명장 이 용 강
세계적으로 공인된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따르면 랴오허(遼河)문명을 새로운 제5의문명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기원전8000년경 선양시 북부지역의 신러(新樂)문화유적부터 BC2000년경의 내몽골 즈펑시(赤峰市) 하가점유적 까지를 랴오허문명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신러문화유적은 신석기시대에 해당되는 유적 이지만 돌도끼를 들고 원시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현대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뒤집는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를 예로 들자면, 흥륭와 지역에서 발견된 두개골에서는 인공적인 치아수술 흔적이 발견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학자들은 깜짝 놀랐고, 그 두개골은 일본으로 옮겨져 4년간 정밀한 연구조사끝에 100% 인공적인 치아수술 흔적이라고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BC6000년 전이면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인데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2000년 전의 더 발달한 문명이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또한 인류의 역사는 그릇과 함께 발전 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랴오허문명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BC6000년경 사해(査海)유적에서 발견되는 빗살무늬 토기들은 멀리는 유럽지역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분포돼있는 빗살무늬토기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나 그쪽 지역의 토기들이 요하지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졌으리라고 유추되는 것은 나머지 4대문명이 랴오허문명보다 2000여년 늦은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흥륭와 유적 등에서도 빗살무늬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는데 항공대학교 우실하 교수는 이에 대해 “빗살무늬 토기와 세석기는 요하 일대 신석기 문화에서는 대부분 보이는 것이지만, 황하 일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북방 문화 계통이다. 흥륭와의 주도 세력들은 중원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기본적으로 빗살무늬 토기가 전파되는 길로 이동한 세력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기원전 6000년 당시부터 이미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 일대를 엮는 발해만 연안은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고조선과 후대의 예·맥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은 허베이성 장자커우에 위치한 사당으로 중국의 선조 3위인 황제(黃帝), 염제(炎帝),치우(蚩尤)를 대형 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이 모셔져 있는데 황제와 염제는 전통적으로 전설적인 중국의 인물을 완전한 역사적 인물로 바꾸어 중화의 시조로 존치했다 쳐도 치우천황을 그들의 조상으로 모신 것은 다분히 동북공정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치우는 배달국 14대 천황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져 1999년 3월 한국-브라질전이 열린 잠실주경기장에서 처음 선보였던 축구응원단 「붉은 악마」의 공식캐릭터로 선정 되었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민족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였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역사속에서 치우는 황제와 맞서싸운 인물로 성격이 포악하여 전쟁을 즐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였던 그들이 동이의 구여족 수장으로 여겨왔었는데 최근에 슬며시 치우를 끼워넣어 그들의 시조로 삼은것은 동북변방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 시키는 동북공정의 잘못된 도발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관을 제대로 설립하고 역량을 최대로 동원하여 다가올 우리민족의 위대한 세계적 웅비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