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은 신분 품계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 다르다. 특히 비석에 새겨진 품계는 신분 질서의 계급적 표현이기 때문에 당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동자석이 새워진 비석의 주요 용어와 품계는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먼저 남자의 묘비에 새겨진 용어, 벼슬, 품계를 동자석이 세워진 무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 학생 품계가 새겨진 말각형 비석. |
▲유명 조선국(有明朝鮮國)
벼슬 앞에 ‘有明朝鮮國’이라고 적는 것은 숭정연간(崇禎年間) 이후에 조선의 사대부 집안에서 썼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벼슬한 관리들의 비석에 이를 새긴 것이다.
▲숭정기원(崇禎紀元)
숭정(崇禎)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연호(年號)이다. 숭정 17년(서기 1644) 이자성(李自成)이 북경을 함락시키자 숭정제(崇禎帝)는 자금성 북쪽에 있는 메이산에 올라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고 곧바로 청나라 군대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였다. 조선(朝鮮)은 일찍부터 중국을 숭배하는 사대주의 사상이 있었고,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공문서(公文書) 이외에 사문서(私文書), 묘갈(墓碣), 제사 지내는 축문(祝文)에까지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을 사용하여, 숭정기원(崇禎紀元) 몇 년이라고 썼다.숭정 3년 하면 숭정 연호 시작에서 3년이 되지만, 숭정기원3 하면 숭정 연호 시작부터 60갑자 곱하기 3해야 실제 연도가 나온다.
▲유향(留鄕)
유향 품관은 고려말기에 주, 부, 군, 현 등 고을의 향청에서 고을의 수령을 도와 정사에 참여하도록
한 지방의 토호나 퇴직한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이다.
유향소는 조선시대에 고을의 수령을 도와 고을 안의 온갖 일을 처리하며 나라의 지시를 민간에 전달하며 윗 관청 또는 나라와의 관계에서 고을 안의 백성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지방관청으로 향정 또는 좌수 한 명과 몇 명의 별감(別監)이 있다. 유향은 고을 수령이 없을 때 그 고을의 일을 맡아보는 좌수를 가리킨다.
▲처사(處士)
벼슬길에 오르지 못해 할 일 없이 지내는 선비를 가리킨다.
▲학생(學生)과 유학(幼學)의 칭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관직이 없으면 학생이라고 칭한다(無官者, 當書學生)’라고 했고,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는 ‘학생’과 ‘업유’는 ‘당시의 칭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學生業儒, 當從在時所稱)’라고 하였다. 유학(幼學)은 사족(士族:선비)으로 벼슬하지 못한 양반층을 이르는 말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지금 세속에 지위 없는 선비들을, 생전에는‘유학(幼學)’이라 하고 사후에는‘학생(學生)’이라 하는데 그것이 잘못이다. 선비는 다 학교에서 학업을 익히는데 생전에 누군들 학생이 아니겠는가? 또 늙어서 흰 머리가 되어도 벼슬을 하지 않으면 역시 그를 가리켜 유학이라 하니 옳지 못하다. 학생이란 배우는 사람으로서 제생(諸生) 가운데의 일원(一員)이니만큼 생원(生員)이라 일컫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학생은 공부하는 선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할 수 있는 선비를 뜻한다. 자격시험을 보아 성균관 등 교육기관에 드나드는 예비관리를 뜻한다. 지방에 학생이라고 쓸 경우 죽은 사람에게 한 등급 올려주는 예우이고 보면, 죽은 이의 신분을 격상시켜주는 뜻으로 쓴 것이다.
▲급제(及第)
관직에 있다가 삭직당한 관리들에게 붙이는 칭호이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어떤 사건에 연루돼 나라의 법에 따라 삭직(削職) 당한 사람이 비록 대신일지라도 급제(及第)라 칭했다.’ 예를 들어 상국(相國) 이덕형(李德馨)이 영의정에 있다가 삭직당해 ‘급제’라고 칭해졌다.
▲업무(業武)
중인 신분으로 조방장이나 초관(哨官·군영에 소속된 종9품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대인(大人)
조선 시대에는 문과출신과 문음출신들이 진출하는 관직이 달랐다. 중요 관직에는 문과출신들만 진출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버렸다. 문과 출신 급제자들은 예문관, 성균관, 교서관, 승문원) 등 4관을 비롯해 홍문관, 승정원 등의 중앙 핵심부서가 그것이다. 문과출신은 문주회(文酒會)라는 것을 만들어 모임을 갖는데, 이때 문과 출신 선배들의 호칭은 선생이다. 고관에서 낮은 관직까지 그렇게 부른다. 4관에 근무하는 자가 홍지(문과합격증)를 받지 못했으면 지위(地位)와 귀인(貴人) 상관없이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대인(大人)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고려 이래의 풍습이다. 고대에는 마을 단위의 군장(君長), 부족장(部族長)을 대인이라고 불렀다.
▲향공진사(鄕貢進士)
심재(心齋) 김석익(金錫翼)에 의하면, 공사(貢士)란 제주지방에서 초시(初試), 복시(覆試)에 급제하고 대과(大科)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높여 쓰는 칭호로 향공진사(鄕貢進士)의 약칭이라고 한다. 제주목 명월리 사람 양수영(梁秀瀛)은 숙종 무인년(1698) 때 사람으로 향시 초시, 복시에 모두 합격하고 한양으로 올라갔는데 예원(禮園)에 미처 들르지 못하고 죽었다. 임금이 이를 듣고 특별히 명을 내려 명정(銘旌)에 향공진사(鄕貢進士)라고 쓰게 한 것은 특별한 은택이었다. 이때부터 제주 사람들은 일찍이 향시에 합격한 사람이 죽게 되면 으레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향공진사라고 썼다.
▲진무(鎭撫)
진무리(鎭撫吏)의 줄임말로 조선 시대에 병영(兵營), 수영(水營), 진영(鎭營) 등에 딸린 서리(書吏)이다.
▲ 가선대부와 정부인 품계의 비석. |
▲사헌부 장령(通訓大夫 司憲府 掌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며, 장령은 조선 시대 사헌부의 정4품 벼슬의 이름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조선시대 무관 벼슬로서 정3품 당상관의 첫째 품계를 말한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문관, 무관에게 주는 종2품의 품계 중 둘째 등급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문관 벼슬의 정3품 당상관의 첫째 품계를 말하는데 제주도 비석에는 이 품계가 가장 많다.
▲공조참의(通政大夫工曹參議)
예조 정3품의 벼슬이다.
▲선무랑(宣武郞)
문관 벼슬아치의 종 6품을 말하는 품계이다.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
군자감에 소속된 종6품의 벼슬이다.
▲호장(戶長)
각 고을에 소속되어 있는 아전들의 우두머리이다. 호장(戶長), 이방(吏房),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고 부른다. 고려 태조 때 신라 시대 유풍을 빌어 향직을 부여한 데서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 중앙집권의 강화로 인해 수령 밑의 아전으로 격하되었다.
▲별감(留鄕別監)
향청(鄕廳)의 한 벼슬아치. 좌수(座首)의 다음 위치이다.
▲좌수(留鄕座首)
각 고을에 있는 향청의 우두머리. 지방 토호세력의 우두머리로서 고을 수령의 지방 통치를 도왔으며, 뒤에 주사로 칭했다.
▲훈장(訓長)
글을 가르치는 선비를 말한다.
▲사과(司果)
오위(五衛)의 종6품 벼슬이다.
▲경희궁 위장(慶熙宮 衛將)
경희궁을 지키는 무관 벼슬이다.
▲ 유향별감 품계의 비석. |
▲공생(貢生)
향교에서 공부하던 선비를 말한다.
▲훈련원 판관(訓練院 判官)
조선 시대 무과시험을 조직하며 군사훈련과 병서(병서)에 대한 연구 등을 맡아보는 훈련원의 종5품 벼슬로서 1467년(세조12년)에 설치되었다.
▲무과 천총(武科千摠), 훈련원 봉사(訓練院 奉事)
천총(千摠)은 훈련도감, 어영청 등의 정3품 벼슬이며, 봉사(奉事)는 조선시대 무과시험을 조직하며 군사훈련과 병서(兵書)에 대한 연구 등을 맡아보는 훈련원의 종5품 벼슬이었다.
출처 :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7825
** 옮긴이 : 국민장례협동조합 이사장 효학박사(孝學博士) 박종윤 010-4445-4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