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경제시대, 문화가 경제이다
홍익대학교 광고홍보대학원 성열홍 교수 (전 경기콘텐츠진흥원 원장, sung190@hanmail.net)
우리의 한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제 3기에 진입하였다. 아이돌 가수가 중심이 되어 불을 지핀 한류 3기는 드라마, 영화, 음악, 만화, 게임, 캐릭터, 한식, 한글 등 K-Culture가 형성되어 아시아, 유럽, 미국, 중남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로 전파되고 있다. 감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 콘텐츠 산업은 취업유발계수와 부가가치가 제조업의 2배에 달하고, 한류콘텐츠에 의한 상품 수출 유발효과가 매우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미국의 주류 음악계를 파고든 원동력으로 유머와 풍자 등 미국의 대중적 기호를 간파한 독창성을 들고 있으며, 가디언과 타임지 등은 ‘뜨는 나라 한국’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아침방송에는 강남스타일 가사 소개를 위해 한국어 발음강사까지 등장시키는 등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니엘 핑크는 그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하이컨셉·하이터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핑크는 이 시대에 필요한 6가지 조건으로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를 꼽고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은 그가 제시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성장산업이자 녹색산업이다. 박근혜 대선후보는 지난 대선기간 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약으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를 제시하였다. 박 후보는‘근혜노믹스’의 근간이라는 창조경제에 대해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 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꽃을 피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의 진화는 ‘모바일, 영상, 스마트, 소셜 ’중심의 융·복합 콘텐츠로 발전하고 있다. IT와 문화 콘텐츠 산업의 칸막이가 없어지고 있으며, 디지털 배포기술의 발달로 콘텐트의 세계화가 용이해졌다. 10만 여명 가까운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 게임 산업에서 보듯이 융·복합 콘텐츠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핵심개념은 ‘예술적 창의성’이다. 그 중심에는 상상력, 스토리, 감동이 있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룰프 얀센은 그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문화와 창조, 그리고 상상력이 주축이 되고 있는 제4의 물결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영국의 창조산업이 국내 총생산(GDP)의 8%를 넘어 서고 있으며, 해리포터로 지난 10년간 파생된 부가가치가 수백 조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 20년 넘게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 4조원이 넘는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룰프 얀센이 생각하는 제4의 물결의 키워드는‘문화경제와 디자인’이다.
이제 IT 기술의 발전 속도는 사람들의 인지능력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술이나 디바이스를 익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수많은 기계치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디바이스가 인간을 학습하여 인간을 위한 편리한 체험과 감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의 새로운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패러다임이 아닐까 생각한다.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창조경제사회에는 두 가지의 큰 과제가 대두될 것이다. 그것은 웰페어노믹스(Welfarenomics)와 컬처노믹스(Culturenomics)이다. 복지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경제발생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빈곤과 실업 문제를 사회복지를 통해 풀어야 하는 숙제를 우리는 앉고 있다. 그간의 ICT는 업무 효율성 제고와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인간이 하는 일을 대체해 왔다. 창조경제시대의 ICT는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로 시장을 창출하여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컬처노믹스라는 문화경제 분야이다.
양을 키우는 인구 4백만 여명의 축산국가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아바타 등의 영화촬영을 계기로 첨단 컴퓨터 그래픽 산업 등을 집중 육성하여 약 2만 명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따서 ‘프로도 경제’라고 명명하고 있다.
뉴질랜드에 ‘프로도 경제’가 있다면 영국에는 ‘포터 경제(해리포터)’가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1997년 집권하면서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는 낡은 가치를 버리고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멋진 영국)’라는 신개념의 정책을 펼쳤다. 음악, 영화, 뮤지컬, 미술, 패션 등 ‘창조산업’을 육성하여 늙은 영국의 이미지를 버리고, 젊은 이미지를 구축하여 경제 부흥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영국에는 17조원이나 되는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해리포터 브랜드 등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흔히 창조도시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3T를 들고 있다.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이 바로 그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글래저 교수는 ‘창의적인 생각은 비슷한 사람들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에 의해 만들어 진다 ’라고 하였다. 대표적인 창의도시로 꼽히고 있는 도시가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는 이질적인 지적 전통이 충돌하기도 하고, 융합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혁신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는 도시이다. 부를 찾아 서부로 내달리던 황금광 시대에는 미국 노동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며, 아직도 히피문화가 남아있고, 다양한 예술가가 넘쳐 나고 있다. 이런 도시에 테크롤로지로 무장한 예비창업자들이 몰려들어 차고혁신(garage innovation)의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 날 빌게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경쟁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빌 게이츠가 ‘오라클이나 선 마이크로 시스템, IBM, 애플’중 하나를 지목하여 말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답변을 하였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경쟁자는 지금 어느 창고에 처박혀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누군가입니다”. 2011년 대한민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업계에 큰 경사가 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애니메이션이 최초로 22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박을 터트렸고, 세계 60여개 국가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여기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기도에서 신화창조라는 이름으로 지원한 역할도 컸지만, 허름한 사무실에서 4년여 동안 집념을 불사른 오성윤 감독과 몇 명의 창의적인 블리콜라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들이 다시 미국시장을 대상으로 도전한다고 한다. 그 자유분방하고 혁신적인 사고라면 또 한번 대형사고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경제사회에 절호의 성장기회를 맞고 있는 디지털 한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공공기관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일이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것을 흔히 개천에서 용을 만드는 일에 비유한다. 혁신과 창의는 익숙하고 고정적인 관념의 틀에서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어느 분이 쓴 글이 생각난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 라고 묻자 당연히 모든 학생들은 물이 된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한 학생이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옵니다’ 라고 말하였다. 물론 그 학생의 답변은 오답이다. 이처럼 정답만을 가르키는 것이 우리의 교육 풍토이며, 이 방식으로는 창의성 함양 교육에 분명 한계가 있다.
이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트렌드는 컨버전스, 즉 융합이다. 각 분야 학문이나 산업의 영역의 경계에서 창의적인 변형과 혁신이 나온다. 찰스 다윈은 ‘살아 남는 종은 강한 종도 아니고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라고 말하였다.디지털 한류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창조경제를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 우리는 문화콘텐츠 정책에 대한 유연성, 혁신과 제도의 균형 그리고 협업을 통한 디지털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