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15장
모세의 노래와 백성의 불평에 은혜 베푸신 하나님
(찬송 32장)
2024-4-17, 수
맥락과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을 뿐 아니라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전멸시키셨습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출 5:2) 하고 말하던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서 수장시키심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14:4, 18).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면서 이집트를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이집트에 대한 염려 없이 약속의 땅으로 행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임을 높이 찬양하였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내다보고 찬양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여호와의 성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신 이유는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찬양이 15장 1절에서 21절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22절부터는 찬양하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깨끗하게 하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들에게 율법의 말씀을 주어서 율법을 잘 지킬 때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치료하는 여호와가 되시겠다고 합니다.
1. 모세와 백성의 노래(1-21절)
2. 마라에서의 원망과 은혜, 엘림의 쉼(22-27절)
1. 모세와 백성의 노래(1-21절)
이야기 사이에 있는 찬양: 그때 일어난 일은 14장 27-29절에서 15장 19절로 이어집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파라오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14:27-29)
15장 19절에 반복됩니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그 사이에 찬양이 있습니다.
그 전에 살펴볼 것이 14장 3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렇게 믿은 결과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찬양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먼저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우리가 보고 믿습니다. 믿은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찬양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2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큰 죄와 비참으로부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내용이 나오죠? 그리고 3부에서는 “이런 큰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다른 은혜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 이것을 찬양합시다.
1) 용사이신 여호와 (1-5절)
모세와 백성이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합니다. 1절에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합니다. 찬송은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찬양합니까? 여호와가 행하신 구원을 생각하면서 여호와 그분의 속성을 찬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절) 여호와께서 파라오의 말과 마차와 마병을 홍해에 수장시키신 구체적 사실을 시로서 노래합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 “노래”,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십니다(2절). 전쟁의 “용사”(3절)입니다. 종족 멸절의 위기에 놓인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3절). 그분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언약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홍해에서 나타났다고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구체적인 은혜들을 계속 체험하게 되면 결국에는 여호와의 속성을 찬양하는 데까지 갑니다.
여호와의 속성을 찬양함: 하나님은 좋으신 분, 하나님은 용사, 하나님은 나의 힘,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영원하다”, “능력이 많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자꾸 체험하다 보면 여호와는 이런 분이라고 그분의 속성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구체적인 일들을 경험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이 경험과 감사가 쌓이면 결국은 여호와 그분 자체를 높이게 됩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것을 주실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2) 파라오의 군대를 멸하신 여호와 (6-10절)
6절에는 “여호와여” 하고 부르는 것이 두 번 나옵니다. “주의 오른손”이라는 표현도 두 번 나옵니다. 용사이신 여호와께서 오른손으로 원수를 짓부수는 목적은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자 대적은 검불처럼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의 바람을 보내시니까 대적들은 순식간에 멸망했습니다. 가만 놔두어도 물이 무섭게 이집트 사람을 덮을 것인데, 바람이 물을 빨리 흐르게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대적은 돌보다 더 무거운 납처럼 잠겼습니다.
14장에서는 “동풍”을 사용하셔서 바다를 갈라지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14:21). 15장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콧김”(8절)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콧김 한 번으로 홍해를 가르시는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원수들이 한 말을 풍자적으로 9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하여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여기 “나누리라”, “채우리라”, “멸하리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을 주실 때 쓴 말입니다.
“나눈다”는 하나님이 기업을 나누어 주시는 데 쓴 말이고, “멸한다”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기업을 얻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채운다”는 그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고 충만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집트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고 그 기업을 차지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3) 신들의 신이신 여호와 (11-12절)
누가 주님과 같겠습니까? 여호와와 비교할 자가 없습니다.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신이 없습니다. 이집트인들과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헛된 것들이고 아무 힘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의 군대를 치시면서 그들의 헛된 우상 숭배를 치셨습니다. 바다가 이집트 사람들을 삼킨 것을 “땅이 그들을 삼켰다”(12절)고 합니다. 그 신들이 무덤(스올)에 묻힌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분이 누구입니까? 위엄이 있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홍해에서 구원받은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훨씬 더 일반화하여 찬양합니다.
이런 감사의 흐름을 잘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건강 주신 것, 교회를 주신 것, 구원해 주신 것, 이 하나하나를 살펴볼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감사 찬양하게 됩니다.
4) 그 백성을 주님의 성소로 인도하신 여호와 (13-18절)
그리고 이 감사 찬양은 미래에 대한 감사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셔서 이 홍해를 벗어나게 하신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출애굽의 구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데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속”(13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기업 무르는 자”입니다. 종으로 팔린 사람을 식구나 친척이 구하듯이 여호와께서 종의 신분에 있던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고 구원해 주셨습니다(21:1-11; 신 15:12-18).
앞으로도 ‘자비하심’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3절). “주의 거룩한 처소”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사 33:20). 17절에서 말한 “주의 기업의 산”, “주의 손으로 지으신 성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곳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주의 거룩한 처소”는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종살이에서 벗어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에서 땅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3:8,17; 6:8; 12:25; 13:5,11). 그 땅은 “기업 무르는 자”(고엘)가 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곳입니다. 백성의 예배를 받으시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눌 장소로 준비하였습니다.
블레셋, 에돔, 모압, 가나안 거민이 두려워하고 낙담하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다음에 다윗 왕조가 세워지기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힐 나라들입니다. 홍해의 승리를 노래하면서 약속의 땅에서의 승리를 믿음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군대가 “돌처럼”(5절) 가라앉았듯이 앞으로 열방이 “돌 같이”(16절) 고요하게 될 것을 소망 가운데 찬양합니다.
5) 미리암의 노래 (19-21절)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21절) “화답하다”는 노래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21절은 앞서 1절의 노래 가운데 첫 줄만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모세의 노래 전체를 여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미리암에게서 노래를 배운 여인들은 집에서 자기 자녀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미리암도 선지자였습니다 (20절).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목사를 통해서 그 백성에게 예수께서 하신 큰 일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찬양한 것은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시내 산까지의 여행 (15:22-18:27)>
15:22-18:27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시내 산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앞으로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겪을 여러 가지 일들을 미리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준비시킨 후에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몇 번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마라의 쓴 물(15:22-27), 양식의 부족(16:1-36), 르비딤에서의 물 부족(17:1-7), 아멜렉인의 침략(17:8-16) 등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은 이스라엘 백성의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시험하셨습니다(15:25; 16:4). 그 시험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르게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17:2, 7).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는지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모세를 향해 불평했지만 동시에 그 불평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 마라에서의 원망과 은혜, 엘림의 쉼(22-27절)
1) 마라의 원망과 여호와의 시험(22-26절)
홍해에서 구원을 얻고 여호와를 찬송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흘이 못 되어 원망했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길을 사흘 동안이나 걸었지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사흘 만에 물을 발견하고 달려가 보니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사막의 물에는 소금기가 있어서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집니다. 그곳 이름을 ‘마라’(쓰다)라고 붙였습니다. 마음에 씁쓸한 쓴 뿌리가 있는 불신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제 앞에서 능력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헌신적으로 섬길 때 원망을 듣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세는 그들과 대항해 싸우지 않았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 가정의 부모, 직장의 상사는 불평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 보다 여호와께 기도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까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들이 마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적인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이 쓴 물(독물)이 달게 된 것은 하나님이 치료하신다는 뜻입니다. 26절 끝 부분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시고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하십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에 대해서는 질병을 내려 심판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죄악된 이집트를 그렇게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은 다르게 취급하십니다.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종들을 통해 부르짖게 하십니다. 배반하는 백성에게 물을 치료하여 먹게 했습니다. 이 은혜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전체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바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복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한 나무를 “가리켰다”(25절)는 율법을 “가르친다”와 단어는 다르지만 소리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 “법도와 율례를 정하”(26절)셨다고 합니다. 법도와 율례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키는 여러 명칭 중 하나입니다. “계명”(26절)도 같습니다.
26절에서는 율법을 통해 시험하시는 것을 네 가지로 표현합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② 의를 행하며 ③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④ 모든 법도(25절의 율례와 같은 단어)를 지키면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 말씀, 의, 계명, 법도는 율법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한 나무가지가 물의 쓴 것을 없애 주는 것을 통해 율법의 용도를 비유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백성을 계속 시험하십니다. 그들의 죄악을 드러냅니다. 또 거룩한 백성으로 연단해 가십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치유해 주십니다. 마라의 쓴 물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쓴 물이 있고 쓴 뿌리가 있는데 나무를 던지면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가리키신” 나무와 같이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율법으로 우리를 연단하고 시험해 가십니다. 율법에 순종하면 우리가 받을 심판에서도 벗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치유하시는 것은 죄의 용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이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건강의 증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함과 약함에서 벗어나 “강하고 담대하고 생육하고 번성함”의 상태로 가게 하십니다.
2) 엘림의 평화 (27절)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에서 엘림으로 옮겨 갔습니다. 엘림에는 샘이 열두 개가 있고 나무가 일흔 그루가 있었습니다. 12와 70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나무가 자랄 정도로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열두 샘에서 물을 풍족하게 마셨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푸르고 물이 흐르는 곳은 에덴동산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곳에는 물이 흐르고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뭇잎은 이방을 치료할 것입니다. 생명수가 흐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홍해를 통과시켜 구원하셨을 때 그들은 감격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왔습니다. 건강과 가족을 주시고 지금까지 재산이 이 정도 있었던 것을 감사합시다. 무엇보다도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시니 감사 찬양합시다. 입술의 찬양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입니다(히 13:15).
이 큰 은혜를 경험하고 찬양하다가도 어려움이 있으면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맙시다. 우리 마음에 원망하는 생각이 날 때에 유일한 치료제는 기도와 말씀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본성적인 죄인인 우리들, 죄 때문에 병들고 그 때문에 육체의 질병도 있고 마음의 질병도 있는 우리들을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양할 때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신다는 이 약속을 믿고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치유는 문제가 없는 상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사막과 같이 황야 같이 메말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성도의 공동체에 풍요를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샘이 흐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종려나무가 자라게 해주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예배 가운데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영원히 누릴 생명의 물이 흐르고 좌우에 나무가 풍성하고 나무의 잎이 만국을 치료하는 것을 미리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불평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화내며 말하지 말고 모세처럼 침묵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읍시다. 여호와의 은혜를 이 땅에, 우리 가정과 교회에, 우리의 직장과 지역사회에 흘려보내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주께 구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찬양의 은혜
우리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 안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일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현재를 너머 과거와 미래로 나아갑니다. 과거의 에덴과 새로운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할 때 여호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참고> 9절, 나누리라, 채우리라, 멸하리라.
“나누리라”, “채우리라”, “멸하리라” 하는 것은 기업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말들입니다.
“나눈다”(‘할라크’, 헬라어는 ‘메리조’)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멸한다”(‘야라샤’)는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 “기업으로 차지한다”와 같은 말입니다.
“채운다”(‘말라아’)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충만하게 한다”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고 거기서 번성할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은 마치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정복할 것처럼 말했습니다.
<참고> 13절, 구속
구속(‘고엘’)은 기업 무르는 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을 무르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속자(고엘)이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사54:5)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참고> 13절, 인자하심
“인자하심”(‘헤세드’)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실 때 세가지 복을 약속했습니다. ①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② 땅을 주겠다. ③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고엘’)로서 가나안 땅을 주고 그 백성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실 것을 모세는 확신하며 찬양합니다.
<참고> 25, 16절, 가리키다(율법), 법도(규례), 율례, 계명, 말씀, 의
하나님께서 나무를 ‘가리켰다’(야라)는 율법을 ‘가르친다’(야라)와 원래 뜻은 다르지만 소리가 비슷합니다.
가르친다의 명사가 “율법”(‘토라’)입니다. “법도”(규례, ‘호크’)는 하나님이 정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율례”(‘미셔파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따라 재판을 하시는 것과 그 결과로 생긴 판례를 말합니다. “계명”(‘미츠보트’)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의 내용인 “의”(야샤르)란 율법에 따라 사는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여러 단어는 뜻은 약간씩 다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가리킵니다.
<참고> 25-26절, 이름 (샴), 거기에(샴), 둔다(숨)
25-27절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5 그들에게 규정(후크)와 규례(미셔파트)를 거기서(샴) 두셨는데(심) 거기서 그들을 시험하셨다. 26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눈에 옳은 것을 행하고, 그분의 계명(미쯔보트)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규정(후크)을 지키면, 내가 이집트에 두었던 모든 질병을 너희 위에 두지(심)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호와, 너를 치료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27 그들이 엘림으로 들어왔고, 거기에(샴) 열두 개의 샘물들, 70개의 종려나무들 거기서 천막쳤다.”
“이름”(쉠, 23절)“거기에”(샴, 25,27절) “둔다”(심25, 26절). 이 세 단어는 나중에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 쓴 말입니다. 신명기 12:5는 성전에 대해 “거기(샴) 자기 이름을(쉠) 두시려고(심)”라고 합니다. 25절에 “듣는다”(샤마아)도 소리가 비슷합니다.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하나님의 성전의 복입니다. 성전, 곧 하나님의 집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계시면서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부족을 채우며 회복하는 복을 내리십니다.
<참고> 27절, 12개의 샘물과 70개의 종려나무: 성전, 에덴 동산,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징
12개의 샘물과 70개의 종려나무는 에덴 동산에 흐르는 샘물 곁에 있던 생명나무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 계시록 22장에 새하늘과 새 땅의 강물과 생명나무, 그 치료하는 잎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그 에덴의 기쁨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말씀과 성전을 통해 회복합니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은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며 풍성한 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 2:16-17)
명한다는 것이 계명과 연결된 단어입니다. 그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이 땅에 죽음이 왔습니다. 생명나무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한 백성을 택했습니다. 다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처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에 순종하면 그 말씀이 생명 나무가 되어 거룩함과 축복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백성과 신약의 교회를 말씀의 공동체로 세웠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에덴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가는 축복 가운데 있습니다.
말씀과 축복의 생명나무는 갈보리 십자가의 나무를 통해 더 완성되었습니다. 로마서 10:5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완전하고 좋지만 우리는 죄인이라서 다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좋지만 율법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갈보리 십자가 나무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통해 의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심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찬양할 때 이 현재를 넘어서 영원한 에덴동산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감사 찬양하는 것, 이것이 기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