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년 가을, 억새축제기간에 맞춰 명성산에 올랐다. 억새 구경도 하고, 그만큼 많은 사람 구경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엽서 보내기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엽서 보내기 행사란 어떤 것이냐 하면 명성산 억새밭에 커다란 우체통을 마련해 두고, 거기다 주최측이 나눠주는 엽서에 사연을 적어서 넣으면 1 년 후에 집으로 보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재미 삼아 미래의 우리에게 엽서를 썼고, 그 엽서는 2008 년 가을 억새축제기간에 맞춰 집으로 배달됐다. 괜히 기분 좋고 신기해하며 1 년 전에 우리가 우리에게 보낸 엽서를 몇 번이고 읽었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의 선물이 엽서와 함께 배달돼 왔는데 바로 포천에 있는 뷰(View)식물원 입장권이었다. 이미 늦가을이라 봄까지 미루다가 2009 년 5 월, 드디어 짐을 쌌다. 여기서 짐이란 절대 외식을 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도시락과 물과 주전부리들이다. 포천지도를 살펴보니 뷰식물원의 위치는 산사원 바로 옆이었다.
“은영아, 뷰식물원이 산사원 바로 옆에 있네. 우리가 갔던 그 술박물관 기억나제? 그까지 가니까 산사원에도 들르자. 가서 살균 안 한 술이나 한 병 사오자.”
“은영아, 뷰식물원에서 양귀비축제를 한단다. 니, 양귀비 봤나? 그거 함부로 키우면 안 되는 건데 막 키워도 되나 모르겠다. 다른 품종인가? 우리 양귀비 보러 가자.”
“역시 꽃은 요즘이야, 그지? 나, 꽃밭에서 너 못 찾으면 어쩌냐?”
집을 나서기 5 분 전, 나는 이렇게 뷰식물원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서랍장에 고이 챙겨뒀던 입장권을 꺼내 지갑에 넣고 있었다. 그러다 언뜻 스치며 본 입장권에 적힌 글씨! 이상하게 ‘뷰’ 자가 ‘유’ 자로 보였다.
‘에이~ 설마…….’
하며 넣으려던 입장권을 살펴 보니 헉! 진짜 ‘뷰’가 아니라 ‘유’였다. 그러니까 뷰식물원이 아니라 유식물원이었던 것이다.
삐뽀삐뽀~ 삐뽀삐뽀~ 이렇게 또 역마살 사전에 오점을 남기는구나… 나는 모든 걸 접고 부랴부랴 포천지도를 펼쳤다. 산사원 옆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뷰식물원이었다. 그렇다면 유식물원은? 시선이 떨려서 그런지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장권과 함께 있던 안내서를 찾아 대충 위치를 파악한 후 포천지도에서 가늠해 보니 뷰식물원과 거의 정반대인 허브아일랜드(Herb Island) 옆이었다. 이렇게 되면 산사원이고 뭐고, 양귀비고 뭐고, 첫 출발부터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할 판이었다. 이름이 뭐 이래, 뷰와 유.
식물원 개원에도 무슨 유행이 있나? 요즘 식물원이 왜 이렇게 많이 생기는 거야? 옛날에는 아침고요수목원과 광릉수목원밖에 없는 것 같더니 지금은 포천에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산에 식물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던지 아니면 수입금지 품목에서 식물이 대거 해제됐던지 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렇게 많은 식물원이 동시다발로 생길 수 있냐고……. 유식물원만 해도 그렇다. 바로 옆에는 포천의 명물로 이미 탄탄하게 자리 잡은, 그래서 입구에 돈 받는 청년이 둘씩이나 서서 수금하는 허브아일랜드가 있고, 그 위로는 평강식물원인지 평강수목원인지 하는 게 있고, 좀 떨어져서는 같은 포천에 있으면서 이름으로 괴롭히는 뷰식물원이 있지 않은가? 이것 말고도 더 있는데 너무 구차해 보일까 봐 다 밝히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게 많이 있어서 뭐 기분 나쁘다는 게 아니라 뭔가 큰 흐름이 뒤에 있는 것 같아 그게 궁금할 뿐이다.
급히 변경된 동선이지만 한 치 오차 없이 유식물원으로 향했다. 유식물원으로 가는 길에 마침 허브아일랜드를 지나게 되어 있어 슬쩍 입구까지 들어가봤다. 역시 건장한 청년들은 밀려드는 차를 세워서 수금하기 바빴다. 주말에다 느지막한 오전이다 보니 두 명의 청년으로도 손이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지만 입장료 3,000 원에 차를 돌렸다. 이에 반해 유식물원? 중년 아저씨 한 분이 그늘에서 쉬시다가 차가 들어오면 슬쩍 나타나,
“3,000 원입니다.”
하고는 다시 그늘로 들어가셨다. 입장권과 함께 온 안내서에는 [입장료 5,000 원]이라는 문구가 틀림없이 있었는데 그 새 3,000 원으로 내렸나 보다. 아마 허브아일랜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추측이다. 그래, 기왕 추측하는 김에 좀 더 발전시켜 보면 어느 분야 무엇이든 간에 유식물원이 허브아일랜드보다 비쌀 수는 없지 않을까?
국도에서 유식물원 표지판을 보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끝이 어디야? 차 2 대가 겨우 교차할 수 있는 많이 좁은 농로와 차 2 대가 절대 교차할 수 없는 아주 좁은 농로를 따라 겁나게 깊이 들어갔다. 자칫하면 논으로 꼬라박히는 구간도 엄청나게 많았다. 몇 번이고 내가 지금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나 곱씹어야 했다. 다행히 요소요소마다에 임시화살표가 붙어 있어 길을 잃지 않고 한 번 만에 찾아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나올 때는 이 임시화살표들을 백미러(Back Mirror)로 일일이 다 찾아서 꺼꾸로 계산하지 못한 바람에 결국 다른 곳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긴 2000 년대 초 아침고요수목원에 갔을 때도 진입로가 장난이 아니긴 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몇 Km 나 달렸을까? 확! 차를 돌리고 싶은 충동이 목젖에 다다랐을 때쯤 겨우 유식물원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있다는 말에 받은 입장권 2 장을 내미니 무사통과였다.
세상 모든 것은 첫인상이 중요한 법, 주차장에서 바라본 첫인상은 글쎄…
‘10 년쯤 더 있다 올 걸 그랬나?’
노랑, 파랑, 연두, 보라 등이 고루고루 잘 조합된 동화 속 집들이 주위 풍경과 잘 어울리며 앙증맞게 서 있고, 식물원 내에 자라고 있는 꽃과 나무들 또한 면면이 범상치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이었다. 심겨져 있는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의 크기만 봐도 그렇다. 나는 이렇게 어린 메나세쿼이아를 본 적이 없다. 유식물원은 얼마 전에 갔던 아산 피나클랜드(Pinnacle Land)보다 더 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이었다. 피나클랜드가 언급된 김에 좀 더 비교하자면, 피나클랜드는 많은 전문가가 자기 전공에 맞게 구석구석 정비해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 반면 이 곳 유식물원은 뜻 있는 몇몇 분이 구석구석 정성 들여 가꾸고 있긴 하지만 힘에 벅찬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마치 365 일, 24 시간 돌보고 있지만 한 바퀴 도는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부는 늘 내팽개쳐둘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런 느낌은 산 윗부분에서 더욱 강하게 들었다.
제일 먼저 화장실 옆에 있는 핑크벨식당(Restaurant Pink Belle)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2 층에서 하고 있는 오일램프(Oil Lamp) 전시를 보기 위함이었다. 과연 2 층에는 평소에 잘 보기 힘든 여러 문명의 오일램프가 전시돼 있었다. 보아하니 저건 중국 옛날 거고, 저건 아랍(Arab) 옛날 거고, 저런 유럽(Europe) 옛날 건데 쭉 진열만 돼 있을 뿐 설명이 없었다. 아니, 설명은커녕 이름이나 연대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하나하나 오래되고 진기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여 더욱 안타까웠다. 한 진열장 안에는 파리 두 마리가 죽어서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 굶어 죽었을 것 같다.
핑크벨식당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선물의 집에서 허브차(Herb Tea) 한 잔 얻어먹고, 아열대온실에 들어가 선인장, 야자나무 등을 구경한 후 산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밑에 있는 건물 몇 채와 그 주위의 정원이 유식물원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안내도를 보니 그 뒤로 쭉 길이 이어져 있어 당연히 모두 돌아보기 위해 나선 걸음이었다.
[ 전망대 1 Km ]
유모차로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정비되지 않은 길이 이어졌다. 이건 절대 식물원에 있는 산책로가 아니라 좀 넓게 닦인 등산로였다. 이런 길이 1 Km 나 이어졌다. 웬일인지 은영이가 고분고분 따랐다. 기분이 하늘 똥구멍을 찌를 듯했다. 중간에 유식물원의 큰 자랑거리인 암석원을 구경했다. 암석원이란 조경을 위해 다른 데서 일부러 돌을 실어온 게 아니라 산에 박혀 있는 바위를 도드라지게 만들고, 그 아래에 물을 가둬 조성한 정원이었다. 거대한 바위와 그 주변에 뿌리박은 소나무와 그 아래 조성된 호수정원이 한 데 어우러져 대단한 자연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연미가 유식물원의 자랑거리이긴 하다.
< 암석원 >
< 섬머왈츠 >
암석원에서 좀 더 올라가니 섬머왈츠(Summer Waltz)가 있었다. 음…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냥 꽃밭이다. 그 위에는 하늘정원이 있었다. 음… 이것도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아직 미완성이었다. 완성이라고? 음… 진짜로 그냥 넘어가자. 이것들 위에 아이리스원(Iris Rainbow Garden)이 있었다. 유식물원이 스스로 내세우는 자랑 문구가 [아이리스 전문식물원]이다. 그러니 이 아이리스원이 유식물원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자 최고의 경치인 셈이다. 우리는 계절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만발한 아이리스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때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이리스원이라고 해서 아이리스만 남겨두고 죄다 뽑아버리는 그런 만행은 없었다. 사실 인력이 모자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이리스는 산이 내는 굴곡을 따라 다른 풀들과 함께 그렇게 살고 있었다. 유식물원은 참으로 거대한 식물원이었다. 그 너른 품만큼이나 모두를 포용하면서 넉넉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 아이리스원 >
아이리스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유식물원의 끝, 전망대였다. 나는 전망대라고 해서 유식물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보는 그런 곳인 줄 알았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 반대 방향인 철원이려나? 연천이려나? 여하튼 그 쪽 방향을 보도록 되어 있었다. 비록 기대하던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장쾌한 풍경을 보며 시원하게 땀을 식힐 수 있었다.
< 은영이가 나를 목욕한(?) 공연장 >
내려오는 길에 아이리스원에서 그네의자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나는 은영이가 왜 그렇게 그네의자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정말 요상하다… 산딸나무숲과 자연림과 공연장을 거쳐 내려왔다. 그 길은 진실로 정비되지 않은 등산로였다. 그냥 중장비를 위해 길만 내놓았기에 큰 비라도 오면 바로 깎여 내릴 것 같았다. 원래 어떤 모습의 숲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넓은 길이 나 있으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공연장은 안내도를 보고서야 공연장인 줄 알았지 처음에는 그저 커다란… 내가 이 얘기를 했다가 은영이한테, “잠시 진지하게 들은 내 귀가 따갑다. 진짜 귀를 닫고 싶다. 너란 인간과는 진짜 대화하기 싫다.” 와 같은 모욕을 받았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진짜 그 정도인지.
“저기는 말이야 좁고 긴 널빤지를 이리저리 서로 엮이도록 얹어서 말이야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도전하는 거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똥을 누는 푸세식 변소.”
내 눈에는 딱 그렇게 보였는데……. 마지막으로 길게 이어진 토끼장을 구경하고 유식물원을 떠났다. 또 갈 날이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10 년 안에는 안 갈 것 같다. 같은 값이면 허브아일랜드에 가고 만다.
|
첫댓글 심심할 때 열어보란 말에 자극 받아서 열어봤어요~~
이걸 올리다 한 생각인데요... 읽기 힘들고 적기 힘든 이런 걸 올리는 것도 공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지런하세욧..ㅋㅋ 네이버에 올린글을 다음으로.. 오옷.. ^^
힘들어요... 진짜 힘들고 귀찮아요... 하지만 해야 해요... 다는 못 해도...
사진으로 보기엔 좋은데요? ^^ 유식물원..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
근처에 사신다면... 한 번...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역마살님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도 10년후에... 지팡이 짚고ㅎ...( 꽃이 몇송이만 더 피었어도 꽃밭에서 은영님을 못 찾았슬텐데...)
지팡이... 짚고... ^^ 전 사흘 전에 삔 허리 때문에 요즘 죽을 맛입니다....
이곳에갔었는데.. 사진도 찍었는데... 사진이 모두 날려버리고..ㅡㅡ 쩝 역마살님이 올리신걸로 만족합니다.
말씀하시면 원본을 보내 드릴게요... 좋지는 않지만... 사진기가 거시기해서...
첨엔 뷰식물원 잘못 표기...라 생각했는데~ㅎㅎ 사진과 글 잘 봤어요... 내가 보기엔 입장료가 아까웠던 모양~ 맞죠?ㅎ
예... 맞습니다... 그런데 단양도 그렇고 진도도 그렇고 릴리님 이름이 안 보이던데... ㅠㅠ 제가 잘못 봤나? 다시 한 번 살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