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변증법은 맑스로 발전되었고, 일찌기 변증법이 중국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그러나, 중국이 개방된 이후로 미학 역시 그러한 변증법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
도 합니다.
변증법은 대단히 어려운 개념입니다. 노자가 일찌기 도는 언어로써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했는 데,변증법도 道와 아주 유사합니다.도는 진리라는 말로 바꿀 수있고 변증법은 바로 진리의 다른 이름입니다.사람들이 흔히 어원을 가지고 개념을 파악하려고 하지만,도라는 말이 길,길바닥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였더라도 철학에선 전혀 다른 의미로 발전했듯,변증법이 변론술과 논증술로 시작했다하더라도 지금 그 철학적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변증법은 쉽게 정의해서 <철학적 진리이자 그 방법론>입니다. 道라는 말이 진리라는 뜻과 진리에 이르는 방도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말이죠.그런데 진리라는 말은 잘 모르면서 변증법에 대해서는 뭔가 안다는 착각을 하기 쉬운 데,이는 바로 헤겔의 변증법때문입니다.
변증법이라고 하면 헤겔의 정반합부터 배웠고 이것이 전부인 줄 알죠.하지만,헤겔은 변증법을 철학으로 끌어올린 대가이긴해도 변증법이론을 완성한 것이 아니고 변증법의 대명사가 될수도 없읍니다.철학에서의 진리가 헤겔의 전유물이다 하면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될 수밖에 없듯이 변증법은 헤겔로 다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철학에서의 진리,즉 변증법은 모순을 기본으로 하고 있읍니다.사물과 언어의 모순이 일치하기도 하고 모순이 대립하기도 하며 모순이 역전하기도 하고 모순이 발전적으로 융합하기도 합니다.이런 것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있겠읍니까.
헤겔의 변증법을 정반합으로 단순 규정했을때,여기서 합合이라는 것이 아주 복잡하다는 것을 새겨놓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한마디로 이 合은 정의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물론 헤겔은 진보로써의 합을 말했을 수도 있지만,철학적 입장에 따라선 진보가 아닐 소지도 많은 것이니까요.
헤겔이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에서,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실상의 노예였던 주인이 결국 노예로 전락하고 노예가 실질적인 주인이 된다는 이 역설은 그대로 진보이론으로 승인을 받았지만,이를 자연현상에 대입하면 생사의 모순속에서 무엇이 참된 진보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등장하는 이론이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입니다.유물변증법은 헤겔의 관념변증법을 계승하되 근원적으로 비판하면서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정립됩니다. 변증법의 핵심인 모순을 선모순(비적대적모순)과 악모순(적대모순)으로 분리해서 사물현상을 명쾌하게 규명합니다.
자연현상의 낮과 밤,남과 녀처럼,음과 양은 선모순으로 양립하면서 융합합니다. 하지만 인간 현상은 자연과 달리 언제나 선모순만 있는 것이 아니고,악모순이 혼재합니다.노동자와 자본가는 현상적으로 늘 양립 공존하는 듯 하지만 본질적으론 대립적입니다.
어느 사회나 자본주적 약육강식의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서는 자본자와 노동자가 적대적으로 충돌하면서 단련되고 도태되거나 발전할 수밖에 없읍니다.평화적인 대립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죠.갈등하면서 동반 성장을 하든가 퇴락하든가 하겠죠.유물변증법은 이중 특히 발전적으로 승화되는 측면을 강조하는 변증법입니다. 사회적 제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고,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철학입니다.헤겔이 노예가 주인이 된다고 했듯이,마르크스도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농민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확신을 강력하게 전개했던 것입니다.또한 헤겔은 역사진보를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 했지만 유물변증법은 신이 아닌 노동자 농민의 힘을 신뢰하고 추동했다는 점에서 차원을 크게 달리하지요.
변증법은 이를 대표하는 헤겔과 마르크스를 비교,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참고로 동양철학에서도 변증법은 존재했었읍니다.음양이론의 주역,노자의 무위자연론,불가의 공,연기사상등은 다 변증법적으로 세계와 진리를 규명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