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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6장
구속하신 은혜에 대해 일상에서 감사하며 복종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로
(찬송 240장, 구찬송가 231장)
2020-5-8, 금
맥락과 의미
신명기 1-11장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12-26장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해야 할 반응들을 구체적으로 명령합니다. 26장은 형태 면에서 12장과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26:17에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는 12:1에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와 표현이 거의 비슷합니다. 12장에서 시작한 내용이 26장에서 마무리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용적으로 26장은 그 모든 감사의 순종의 결론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의식을 제정합니다. 과거(아브라함의 선택, 출애굽, 시내산 언약)와 현재(신명기 언약)를 기억하면서 미래에 예배 의식을 행하도록 합니다. 그 예배 의식을 통해서 언약이 계속 새롭게 될 것입니다.
두 가지 예배 의식을 제정합니다. 첫째, 매년 첫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 그분의 은혜를 감사 찬양하는 예배입니다(1-11절). 둘째, 3년마다 십일조를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바치며 하나님께 순종한 것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예배입니다(12-15절).
이어서 “오늘날” 예배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16-18절). 예배를 드리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과 백성이 언약적 상호 헌신(“인정”)을 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언약적 헌신의 의식으로서 미래 가나안 땅에서 행할 것을 27장에, 현재에 모압 땅에서 하는 것을 28-33장에 소개할 것입니다.
1. 매년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예배하라 (1-11절)
첫 수확을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성전)으로 가지고 갑니다.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여호와를 즐거워합니다. 토지와 그 소산은 자연의 생산력이나 인간의 노동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주신 것입니다. 해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그 토지의 산물을 성전에서 드리며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합니다. 물질을 즐김보다 더 큰 즐거움을 하나님을 즐기는 일입니다.
먼저, 제사장에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왔습니다.”하고 신고식을 합니다. 이어서, 그 수확물 광주리를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습니다”(4,10절). “놓는다” 는 “안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주시는 안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단어입니다(수 1:13,15).
이어서, 그 수확한 헌물과 함께 여호와 앞에서 아룁니다. 언어로 언약적 헌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드립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다양한 행동들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언약 공동체 전체로서(5-9절), 또 개인들로서(10절) 그 언약적 축복에 대한 감사를 표현합니다.
이집트에서는 인구가 번성했고(5절), 가나안 땅에서는 물질의 풍요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들의 첫 수확의 헌상물은 단순히 물질만 바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질에 하나님의 축복과 성도의 믿음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도의 믿음으로 연결된 언약 관계의 영적인 실재는, 말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함께 임재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리스도의 언약의 표시인 성찬의 빵과 포도주와 함께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맛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의 표시인 헌금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바치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납니다. 우리도 구약 성도들과 같이 예배에서 하나님을 즐깁시다.
2. 매 3년마다 십일조를 레위인과 가난한 자 위해 바치며, 말씀에 순종한 것을 고백하며 감사하라 (12-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즐기는 수직적 관계를 맺습니다. 이 관계는 동시에 레위인(교역자)과 가난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감사와 예배에 함께 참여하게 하는 수평적 교제를 하게 합니다. 3년에 한 번 십일조를 내어서 레위인과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줍니다. 십일조의 헌물과 함께, 역시 여호와 앞에서 말로서 고백합니다. 첫 수확을 바칠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십일조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킨 것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명하신 “명령”대로 행했음을 고백하면서 명령을 범치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한 해의 수확물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것에 대한 상징적 표시였습니다.
일상의 곡식이지만 “성물”(거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13절). 오히려 성물을 “떼어둔다” 고 합니다(13,14절). 떼어둠은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또 부정한 몸으로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경건을 지켰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떼어둔다는 말은 13:6부터 반복적으로 사용된 악을 “제거한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일상의 재물을 이웃에게 떼어두면서 부정과 악 또한 멀리하여 제거하여 거룩하게 됩니다. 물질을 바침과 함께 말로써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에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감사만은 아닙니다. 그 고백을 통해, 앞으로도 나눔과 거룩이 있는 삶을 살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단순한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명령이 이웃을 돌보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으로 실현된 영적 실재입니다. 물질과 함께 자신의 영혼과 공동체를 하나님의 언약적 말씀과 언약적 관계 속에 다시 위치시키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헌물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건을 드러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자신을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다른 성도들 또한 축복에 동참하게 합니다. 이 축복이 예배 때마다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사람은 사료를 먹고 사육되는 동물이 아닙니다. 물질을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3. 미래에 더 완성될 언약적 예배를 바라보며 지금 언약에 헌신 (16-19절)
지금 모세가 장차 있을 예배 의식을 제정하는 이 순간은 단지 미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교를 듣는 바로 이 순간 헌신을 합니다. 마치 혼인식에서 “나는 배우자를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하겠습니다.” 하는 말이 신랑 신부의 마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말을 통해 그 자리에서 헌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관계에의 헌신은 “인정”은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한 의지적 헌신을 강조합니다. 17절에, 그 백성이 하나님을 “인정”하여 그 명령을 행하고 그분께 순종하겠다는 헌신을 합니다. 그러나 18절에 그보다 먼저, 언약 백성을 “인정”하시는 여호와께서 서 계십니다.
말로 헌신을 다짐하는 그 핵심은,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17절),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19절) 되게 하는(존재하게 하는) 그 상호 헌신입니다. 헌신의 의무는 두 측면으로 이루어집니다. 백성 쪽에서는 언약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그 명령을 지키도록 하시고” “너에게 칭찬, 명예, 영광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십니다(19절). 뛰어나게 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백성으로 존재하게)” 하십니다.
언약적 헌신에서 하나님의 헌신과 백성의 헌신은 동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헌신은 먼저,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게 만드십니다. 그 다음에 그들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백성들이 앞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도, 그들이 영광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결정과 행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섭리는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시는 과거의 큰 행동에서 나타났습니다. 또한 장차 약속된 땅에서 각 가정이 농사를 짓고, 가정생활을 하는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고 복을 받고 예배하는 작은 일에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백성들이 가질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뛰어나게 하시는” 것은 단순히 “준다”(나탄)는 뜻입니다. 백성의 영광은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보관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도,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거룩하게 붙드시기 때문에 그들이 거룩하게 됩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 40년 전 시내산의 언약을 다시 강하게 해 줍니다. 그 때 주신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 내 소유가 되겠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 19:5,6)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그의 보배로운 백(소유)성이 되게 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신명기 26:18,19절). 시내산의 언약은 모압평지에서 선포한 신명기 언약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구약 성도들이 첫 수확과 십일조에서, 하나님이 먼저 주신 은혜와 축복을 물질과 말의 고백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히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 모든 복잡한 의식으로 표현된 은혜와 축복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들의 예배와 헌물이 우리의 단순한 예배에서 더 풍성히 나타납니다.
이 풍성한 은혜의 시대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땀흘리는 수고에서도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쁨과 감사 없이 불만 가운데서만 일하고 공부한다면, 성령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는 개인으로써 하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과 공동체로서 합니다. 우리의 헌금은 다른 형제 자매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 주어서 함께 즐거워 하게 합니다. 서로 돕고 사랑함이 없는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에서도 일상에서도 여전히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계속 그분의 나라에 받아들여 주십니다. 죄책감에 좌절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일어나 다시 유쾌하게 말씀 읽고 기도회를 하고, 경쾌하게 일터로 학교로 나갑시다. 이 복을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즐기기에, 가족과 성도들끼리 관계를 즐기고, 또 작은 물질이라도 즐길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9절, 구약성도의 언약 배반과 하나님의 심판(예레미야 13:11), 그리스도의 완성
구약 성도의 불순종과 심판
예레미야 13:11에서 오늘 19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언약을 배반한 백성들을 통탄합니다.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유지하시는 이 언약 백성의 영광스런 관계와, 그와 동시에 주시는 구체적 물질적 축복과 예배들이 우리에게 과분할 정도로 큰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선악과를 탐한 아담의 후손들로서 우상과 그들이 주는 거짓 축복의 약속에 현혹되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여 바벨론 포로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심판에 나타난 신실성은 하나님께서 낮아지시면서 다시 그 백성을 회복하시는 언약적 신실성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들의 마음에 언약의 법을 주시고”(렘 31:33) “내 신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로 내 규례를 행하게 하리라”(겔 36:26). 배반한 백성과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 완성
마침내 언약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사람이 되어 낮아지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빌 2장). 구약의 언약의 법을 더 풍성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언약의 책임과 저주와 축복을 다 이루시고, 성령님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제 교회는 삼위 일체 하나님 안에서 “그 이름의 찬송/영광이 되게 하시는” 목적(엡 1:6,12,14)을 이루어 갑니다. 구약 교회에 언약의 축복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헌신으로, 미래의 영광으로 계속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신약 교회에는 이 축복이 더 풍성히 살아 움직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언약은 세례와 성찬과 헌금과 모든 예배에서 계속 오늘 현재로서 기억되고 있으며, 미래에 더 풍성히 자라갈 것입니다. 이미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시가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그 영광을 더 분명히 나타내실 것입니다.
<참고> 2절,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장소
첫 수확을 “여호와께서 거기(샴) 그 이름(셈)을 두시려고(숨) 택하신 장소(마콤)로 가지고 가서”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여호와를 즐거워합니다. 12:5,11,21에서 쓰인 말입니다. 성전을 나타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참고> 4 , 10절, 놓는다
“놓는다”(나바흐)는 “안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참고> 13, 14절 명령을 “범함(아바르)” (13절), “떼어 둠(바아르)”(14절)
“성물”(거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될 성물을 “범하는 것”은 ‘아바르’라 합니다(13절). 가난한 자를 위해 “떼어둔다”는 ‘바아르’라 합니다(14절). 두 단어는 같은 글자에 순서만 다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 않으려면 가난한 성도를 위해 십일조를 떼어 놓아야 합니다.
“떼어둔다”는 말은 13:6부터 반복적으로 사용된 악을 “제거한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성도들이 보통 사는 것으로부터 악을 제거하는 백성은, 보통 쓰는 재산에서 다른 성도와 나눌 것을 떼어 두어야 합니다.
<참고> 17절 인정하다
“인정” 은 보통 “말하다” (아마르)는 동사의 히피형이라 합니다. 말을 말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의지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 19절,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한다”는 “위에 있도록 해 준다(나탄)”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