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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그때에 관세음보살이 범천왕에게 말씀하였다
이 진언을 5편 외우고 오색사를 가져 줄을 만들어라. 그리고 진언 24편을 외우고 24매듭을 맺고서 목에 걸도록 하라. 이 다라니는 과거 99억 항하사 제불께서 설하신 바이니 저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수행인으로 하여금 6바라밀이 만족하지 못한 자로 하여금 속히 만족하게 하고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못한 자에게는 속히 발심케 하며 성문승 사람으로서 아직 과위果位를 증득하지 못한 자는 속히 증득케 하며 삼천대천세계 내의 모든 신선으로 아직 무상보리심을 발하지 못한 자는 발심케 하며 또 모든 중생이 아직 대승의 신근信根을 얻지 못한 자는 이 다라니의 위신력으로 대승종자와 법의 싹을 증장케 하나니 이와같이 나의 대자비방편의 힘으로 저들의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되느니라.
또 삼천대천세계 내 암흑처와 삼악도 중생이 이 다라니를 들으면 모두 고를 여의게 되며 만약 모든 보살로서 아직 초주初住에 오르지 못한 자는 속히 오르게 되며 내지 십주十住에도 이르게 되고 또 불지佛地에까지 오르게 되므로 자연히 32상과 80가지 좋은 상호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만약 성문으로서 이 다라니를 한 번 들은 자이거나 이 다라니를 수행하고 서사하는 자로서 정직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하는 자는 사사문과四沙門果는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으리라. 이 다라니의 위신력은 능히 삼천대천세계의 산하山河와 석벽石壁과 4대해수를 솟아오르게 하고 수미산과 철위산도 능히 움직이게 하며 또는 티끌같이 가늘게 부술 수도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이 모두 무상보리심을 발하게 하느니라.
이 15분 중에서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내용이 무엇이었죠?
저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수행인으로 하여금 6바라밀이 만족하지 못한 자로 하여금 속히 만족하게 하고 ...
이 대목입니다. 육바라밀의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도 보시바라밀에 대해 아직까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보시바라밀을 가지고 평생을 공부한다 해도 더 공부해야 할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시바라밀이 중요한 바라밀입니다.
오늘은 보시바라밀 중에서 결심만하면 바로 할 수 있는 보시,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지갑 속에 보시할 정도의 돈이 없더라도 혹은 집안에 보시할 용품을 쌓아두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고 결심만 하면 바로바로 보시 할 수 있는 것을 ‘무재칠시無財七施’ 라고 합니다.
결심만 하면 어떤 상황 어느 때라도 바로바로 실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보시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고 싶다 하는데 주머니를 뒤져봐도 껌 하나도 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결심만 하면 바로 실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로
첫째는 안시眼視, 눈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옆에 계신 분과 눈을 마주쳐 보세요, 서로 보셨지요? 이것은 그냥 바라보는 것이고
이번에는 눈을 통해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겠다, 기쁨을 주겠다, 혹은 상대방에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소를 선물하겠다, 결심하고 한번 바라 보십시요.
이렇게 보시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에 보시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이 행복하고 기쁠 때는 보시하겠다고 결심하지 않고도 그냥 바라만 봐도 상대가 기쁩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우중충 하고 화를 벌컥 내는 상태에서는 마음먹고 보시를 하겠다고 억지로 해도 보시가 안 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히려 불쾌감만 주게 됩니다.
안시를 그때그때 잘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안시를 할 수 있는 기본이 됩니다. 나의 행복이 그래서 저절로 많은 분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는겁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는 억지로 한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힘만 듭니다.
그래서 보시는 절로절로 되어야 합니다. 저절로 되려면 연습을 해야 됩니다.
아침, 저녁으로 표정 연습을 좀 해야 합니다.
안시를 가장 잘 실천 하신 분 중에 제가 맨 처음 스승으로 모셨던 광덕스님이 계십니다.
광덕스님께 인사를 올리면 비구 스님이신데도 아주 아름답고 따뜻하고 빛이 나는, 눈에서 광채가 나는, 뵙기만 해도 기뻐지고 환~ 해지고.. 그 분하고 눈만 한번 마주치면 발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살수가 있나? 하고 발심을 하게 됩니다.
언제나 좋은 눈으로 부모님과 스승 사문·바라문을 대하고, 나쁜 눈으로 대하지 않는 것을 눈의 보시라 한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몸을 받아 청정한 눈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하늘눈[天眼]이나 부처눈[佛眼]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첫째 과보라 하느니라.
보시를 하면 보시공덕 과보가 있습니다.
주는 대로 받습니다. 뿌린 대로 거둡니다. 안시의 과보는 결국 부처님의 눈을 얻는 것이고
지혜의 눈을 얻는 것입니다
둘째는 환한 얼굴과 즐거운 낮 빛의 보시입니다. 이것은 화안和顔施입니다
부모·스승·사문·바라문에게 찌푸린 얼굴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단정한 얼굴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순금색의 몸이 된다. 이것을 둘째 과보라 하느니라.
온몸이 진리, 환 한 얼굴로 즐거운 낮 빛으로 보시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내가 해야 합니다. 즐거운 낮 빛, 환한 얼굴로 보시를 할수록 자기가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점점 더 행복해지고 화안시를 점점 더 잘하게 됩니다.
보시가 쌓일수록 스스로 기쁘기 때문에 더 밝아지고 순환이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찡그리고, 성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상대를 대하면 상당히 기분 나쁘지요? 그러면 그 사람도 나에게 거친 말을 하게 되고, 안 좋은 표정을 짓게 되고 그러면 내 기분이 더 나빠지고 내 얼굴도 더 찡그려집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더 찡그려진 얼굴로 대하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악순환입니다.
먼저 자기가 화안시를 할 때에, 웃어 줄 때에 상대도 웃어줍니다.
내가 웃으면 상대가 웃고 상대가 웃으면 다 같이 웃게 되고 그러면 세상이 다 웃게 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우주입니다. 그래서 내가 웃을 때 우주전체가 웃습니다.
내가 우울 할 때는 우주 전체가 우울합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찡그리면 상대방도 찡그립니다. 상대방이 찡그리는데도 웃을 수 있는 분들은 이미 마음의 힘이 자라있는 분입니다. 상대방이나 여건에 물들지 않고 상관없이 자비심을 유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런 분들이 세상의 보배입니다.
셋째는 말의 보시(言施:언시) 입니다.
부모·스승·사문·바라문에게 만나는 분들에게 부드러운 말을 쓰고
추악한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변재를 얻고,
그가 하는 말은 남이 믿고 받아 주며,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는 네 가지 변재를 얻는다.
이것을 셋째 과보라 하느니라.
특히 부모님 스승들에게는 실천을 해야 하는데 지난 시간에 팔복전 공부했었죠?
첫째 둘 째 부모님, 셋째 부처님, 넷째 제자, 다섯째 멀리서 온 사람, 여섯째 멀리 떠나는 사람, 일곱 째 병전, 여덟째 그를 간호 하는 사람. 이분들에게는 꼭 보시를 하라는 것 입니다.
부모와 스승들은 늘 함께 지내지 않습니까? 이분들에게 부드러운 말을 쓰고 추악한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거친 말을 하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 왜 그렇게 거친 말을 쓰느냐 질문을 했더니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유를 따져서 그럴 수도 있구나, 할 수도 있지만 이유와 상관없이 부드러운 말을 쓰고 추악한 말을 쓰지 않아야 됩니다.
넷째는 몸의 보시(身施:신시)입니다.
몸 보시는 바로 행으로 가는 실천입니다.
부모·스승·사문·바라문을 보면 일어나 맞이하여 예배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밖에서 들어오시면 일어나서 맞이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가장 중요한 신시 중의 하나입니다. 부모님이 밖에서 들어오시는데 누워서 TV 채널이나 돌리고 있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데 받아드릴 생각도 안하고, 또 옷을 받아 걸 생각도 안한다면 이것은 아무리 그 사람이 박사 혹은 무슨 ....사로 지위가 높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신시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중요성을 모르고 또 어떤 분들은 너무 친숙하기 때문에 가족들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감이 있는데, 이런 것들부터 실천하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그 사람의 향기 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고 행하지 않으면 관념놀이 입니다.
일어나 맞이하고 예배하라..
그런데 일어났다 해도 눈만 마주치고 고개만 까딱하는 이런 인사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아주 불쾌 합니다.
공손하게 일어나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 이것을 잘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삼천 배, 오천 배 하지 않습니까. 물론 삼천 배, 오천 배 하며 발원을 하고, 절하는 나, 또 절 받는 부처님 다 비었고 오직 절하는 그 나, 참나 라는 소식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가 절을 합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절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평소에 부처님께 절 하듯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배공경 잘하면서 절하면서 살겠습니다, 하고 훈련하는 겁니다.
도량에서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도량에서 오체투지 하며 절하면서 집에서 부모님께 공경스럽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아직까지 불자로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스승을 백번 만나면 백번 공손하게 인사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임의로워서 그런지 잘 안되지요? 그래서 몸에 익도록 자꾸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시가 바로 인사, 일어나서 맞이하는 것
또 하나는 몸으로 수고를 해서 보시하는 것이 신시입니다.
설거지만 계속 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이게 신시입니다.
법회 때마다 복도 짓고 설거지 수행으로 평생 수행을 하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설거지 하면서 마음을 씻는 거예요. 또 어떤 분은 청소 수행을 해요. 청소를 하면서 복을 짓고 보시를 하면서 수행을 하는 겁니다.
한 가지 수행을 제대로 평생 동안 실천하는 것이 수승한 수행입니다.
요즘 윤문을 하고 있는 글 한편을 소개 하겠습니다.
부처님 생애를 공부할 때 우리가 다 배운 내용입니다만
사왓티 기원정사 향실에서 비구들에게 에워싸여 법을 설하고 계실때였다. 다듬지 않은 긴 머리카락에 하얀 수염을 까지 않은 채 부처님의 향실로 들어서는 한 수행자가 있었다. 낡고 해진 그의 누더기는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아 악취를 풍겼다. 일찍이 부처님께 귀의해 진리를 체득하고 라자가하 깊은 산속에 은거했던 그는 마하깟사빠였다.
이 마하는 부처님의 상수제자로 법맥을 이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좌 보처 중 첫 번째 이십니다. 이 마하가섭존자의 모습을 부처님 생애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훗날 부처님의 법맥을 이으신 분이 왜 이렇게 다듬지 않은 긴 머리카락 하얀 수염 세탁하지 않아 악취가 나는 분소의를 입고 있을까,
본래 마하깟사빠는 출신이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특히 용모가 아주 수려했다는 겁니다. 미남이고 학문까지 통달을 한 수재였습니다.
일찍이 출가에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결혼을 했다.
다행히 부인도 수행에 뜻이 있는 사람이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부인과 함께 수행자의 길을 떠났다. 라자가하 거리에서 부처님을 처음 뵙는 순간, 그는 한 눈에 성인임을 알아 보았고 부처님도 그를 그 자리에서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일주일을 식사와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오직 깟사빠를 위한 법을 설하셨다
그런데 이 마하깟사빠 한데 필요한 법문이 무엇이냐 하면 훌륭한 가문 태생이기 때문에 교만하기 쉽다는 겁니다. 부자이기도 하며, 잘 생겼지요 또 공부 많이 했지요, 그러니까 자칫하면 교만하기 쉽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 마하깟사빠에게 하심수행을 말씀 하십니다. 하심하라, 겸손하라.
아름다운 얼굴과 몸에 대한 자신감과 기쁨을 떨쳐버리기 위해 낱낱의 부위를 하나 하나 관찰해 그 실상을 파악하도록 일러주셨다.
이렇게 가르침을 받으시고는 평생을 하심수행을 하는 거예요. 평생을 낮은 자리에 앉습니다. 평생을 궂은 일을 하고, 가장 불편한 자리에서 수행을 하고 옷도 제일 누더기를 입고 좋은 것은 도반들에게 올립니다, 이것이 하심수행입니다
‘하심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평생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한 일년이나 삼년쯤 하고 어느 정도 하심했다 싶으면 하심수행 안 해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수행을 삼으신 겁니다.
또 한 분이 주리반특가 라는 사람입니다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분은 아난입니다.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한번 듣기만 하면 그대로 기억해 버립니다. 부처님 돌아가시고 나서 아난이‘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그래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서 경전이 결집이 됩니다. 참 머리 좋습니다. 이 아난처럼 머리 좋은 분이 금세의 고승 중에 다라니 수행하신 분 중에 누구셨다구요? 수월스님 이십니다.
수월스님은 글을 일단 모르십니다. 머슴 출신이시라 배운 적이 없어 글을 알지 못합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십니다. 그런데 출가를 하셔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듣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웠어요. 이 수월스님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처음엔 분명히 못 외우셨겠지요.
그러나 스승님께 가르침을 들은 이후로는 잠잘 때도 이 다라니가 굴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속 다라니를 속으로 굴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삼매를 증득했다고 하십니다.
삼매가 무엇이냐 하면 다라니를 하면 그만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시간을 잊어버립니다. 지루한 것도 없고 하기 싫은 마음도 없고 다라니 삼매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증득한 것이 불망념지를 증득하셨다는 겁니다. 불망념지란 한번 들으면 잊지를 않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학생들이 하루에 21편씩만 외워도 집중력이 고도로 향상됩니다.
저도(스님) 맨 처음 이것 많이 느꼈습니다. 어느 공부자리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보다도 전체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똑같이 공부한 사람들보다 좀 나았습니다.
옛날의 저보다 다라니 수행하면서 수행하기 전 보다 집중력이 훨씬 향상 되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라니 수행을 하면 참 좋습니다.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를 않습니다. 영어 단어도, 수학공식도 그렇고 암기를 잘하게 되지요. 역사연대 같은 것도 잘 외우게 되겠지요?
수월스님의 문제가 글을 못 읽고 글씨를 쓰지 못하시니 축원카드를 올려도 까막눈이시니 신도들 축원을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예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불망념지를 증득하고 나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수 백 명이 왔어도 한번 들은 이름을 기억하고는 축원 할 때 줄줄 다 외어서 하셨답니다.
이렇게 불방념지를 증득한 수월스님도 아난존자처럼 기억력이 좋은데 머리가 둔한사람으로 유명한 주리반특가 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둔 한가 하면 부처님이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은 경전 공부를 해서는 안 되겠단 말입니다. 아무리 외워도 안 되니까.
경전을 아무리 읽어주어도 뜻도 모르고 외울 수도 없고 다른 도반들에게도 맨 날 괄시당하고 하니 나는 재주가 없나보다 하고 그만 환속을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주리반특가의 형은 또 아주 머리가 뛰어 납니다. 형이 너는 아무래도 안 되니 집으로 돌아가서 장사나 하라 이렇게 이야기 했겠지요? 환속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처님이 아시고 새로운 수행법, 이 사람에게 맞는 수행법을 일러 주십니다
그 수행법이 무엇인가 하면 청소 입니다. 빗자루를 들고 매일 청소를 해라 하는 것 입니다.
절에서 울력시간에 매일 청소를 하지 않습니까? 마당을 쓸면서 자기 번뇌를 깨끗하게 쓸어 버리는 겁니다.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당을 쓸고 걸레를 들고 방의 때를 닦으면서
‘먼지를 털고 때를 닦자’ 이것이 이 사람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주리반특가는 먼지를, 하고 나면 그 다음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도반들이 같이 해주는 거예요, ‘먼지를’ 하면 ‘털고’ 그러면 그 다음을 또 잊어버리고.. 그래서 도반들이 지나다니며 계속 해줍니다. 이렇게 하면서 주리반특가는 계속 청소를 합니다.
계속 청소를 하면 뭐가 쌓일까요? 복이 쌓입니다. 청소수행으로 가장 빠르게 쌓이는 건 복입니다.
복이 쌓여있지 않은데 무언가 일을 추진하려 해봐요. 억지를 부려도 일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풀리지를 않아요. 복이 쌓이고 쌓인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일이 술술 풀립니다.
복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처음 다라니 수행을 시작할 때도 이 컵 만한 마음 그릇 복 그릇이 10만 독 수행을 하고
나서도 똑같은 정도라면 복을 안 키운 거예요. 복을 지을수록 복 그릇이 커집니다.
마음도 대범해야 하고 커져야 하는데 무슨 일만 있으면 안절부절하고, 또 어떤 사람의 어떤 모습만 보면 옛날에도 용납 못한 것을 10만 독 쯤 했으면 용납이 되고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꼴을 못 봐주고...
나보다 앞서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힘껏 밀어주고 박수쳐주고 정말 눈시울이 뜨겁게 축복해 주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릇이 커진 것이지, 나는 먼저 시작했는데도 십만 독 겨우 했는데 쟤는 이제 시작해서 벌써 20만 독 이라니 아이고 배 아퍼~ 배 아픈 사람은 마음 그릇이 크지 못 한 것이란 말입니다.
사촌이 땅을 샀는데 배가 아픈가, 정말 기쁜 마음이 뭉클 뭉클 일어나는가, 이것을 점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촌이 땅 사면 기분 좋지요. 정말로 기분 좋잖아요.
시기심이 일어나고 질투심이 일어나면 아직까지 덜 된 것이니 더 키워야 합니다.
시기심이 일어나고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은 아직까지 자기가 복이 덜 쌓여서 마음으로부터 ‘나는 모자란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리반특가는 깨닫기를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아하~ 먼지란 때란 결국 우리의 탐진치 삼독심과 온갖 번뇌로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구가 비구니 처소에 가서 법문을 하는 일이 있는데, ‘먼지를 털고 때를 닦자,’의 이치를 깨달은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리반특가를 그 처소에 가서 법문을 하게 하십니다.
바보가 법문을 하러 온다고 술렁거렸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가 깨달은 것을 빠짐없이 법문 했습니다. 비구니들은 처음엔 웅성웅성 합니다
저 바보 법문을 우리가 들어? 저 바보의 법문을 듣는 것 보다 경전 한 구절을 읽는 게 났겠다, 이런 분위기이겠지요?
부처님의 대행자로서 부처님의 경전을 설할 때는 부처님을 대하듯 마음을 다 비우고 법문을 들어야 됩니다. 저 바보가 법문을 해?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만심이 똘똘 뭉쳐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법문이 들리지를 않습니다.
아만심이 있는 한 24시간 산천초목이 춘하추동 사계절 부처님의 법문이 쏟아져도 아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법문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열려면 하심을 하여 다 비우고 마음을 활짝 열어야 법문이 들립니다. 이럴 때는 모든 소리가 법문입니다. 모든 일이 부처님이 주시는 명약입니다. 마음을 다 열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마음이 열리고 하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나를 키우시려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로 이 사람을 보내서 나에게 이런 일을 갖다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만심이 똘똘 뭉쳐져 있을 때는 그런 마음내기가 어렵습니다.
주리반특가가 비구니 처소에 가서 청소수행에 대해서 설법을 잘 하셔서 비구니 스님들이 청산유수처럼 하시는 어느 비구 스님의 설법보다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 입니다.
청소수행도 신시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바와 같이 설거지 수행, 절 수행 이런 것들도 다 신시입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서비스 하는 것이 신시입니다. 또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도 신시이고, 이삿짐을 옮길 때 도와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섯째는 심시로 마음의 보시(心施:심시)이니,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일로써 공양하더라도
마음이 화하고 착하지 못하면 보시라고 할 수 없다.
착하고 화한 마음으로 정성껏 공양하는 것이 마음의 보시이다.
그는 몸을 버리더라도 다시 몸을 받아 밝고 분명한 마음을 얻어
어리석지 않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 일체를 낱낱이 아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여섯째는 상좌시 입니다. (床座施:상좌시)
만일 부모·스승·사문·바라문을 보면 자리를 펴 앉게 하고,
정진하기 좋은 자리를 사문한테 베풀어 드리는 것도 상좌시 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자리를 양보 하는 것도 상좌시 입니다.
그리고 상좌시의 더 깊은 뜻은 스승과 부모님의 자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이 상좌시입니다. 그 사람의 자리 그 사람의 직분, 그 사람이 역할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좌시입니다.
아내가 똑똑하고 돈도 더 잘 벌고 이렇게 아내가 똑똑 하잖아요. 그러면 은연중에 남편을 무시하게 됩니다.
‘나는 봉급이 당신보다는 두 배나 많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학교도 내가 더 많이 나왔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자리, 남편자리가 흔들려 버립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에 흠이 나 버립니다. 아버지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이런 것들도 상좌시 입니다.
요즘 제사이야기 많이 합니다. 큰형이 제사를 안 지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사를 모시는 걸로 효도를 실천하고 조상님들께도 효를 실천 하기위해서 제사를 차남인 내가 모신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도 좋은 일이지만 더 좋은 일은 장남이 장남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조절 하는 겁니다.
만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이면 제사비용을 자존심 안 상하도록 도와드리는 겁니다.
가서 정성껏 일을 도와드린다거나 이렇게 장남이 장남 역할을 잘 해서 빛이 날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 상좌시입니다.
스승이 사회적으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모셔드리는 것, 제자가 아무리 잘나도 자기가 스승을 제치고 내가 더 잘났소, 하는 것은 상좌시가 아니고 어린 상좌입니다. 덜 자란 상좌입니다. 스승을 빛내는 것이 제자의 상좌시입니다.
스승은 또 제자가 빛이 나도록 하는 것이 스승의 제자를 향하여 하는 상좌시입니다.
부모님이 집안에 계실 때는 부모님 자리에 있게 하는 것, 부모님이 부모님 역할을 잘 못한다고 해서 부모님의 자리를 자식이 차지한다면 이것은 부모님 자리를 뺏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대행 스님 열반 하시고 나서 추모집이 발간 된 것을 보게 되었는데
대행스님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아주 불편한 상태에 계시는데도, 장엄 등 행사를 하는데 제자들과 불자들이 다 준비를 하고는 어린 불자들을 예쁘게 한복을 입혀 준비하는데 노스님은 휠체어에 이렇게 등을 기대고 앉아 계시는데, 이 이쁜 옷을 입고 아이들이 그 행사에 갑니다, 하고 일일이 다 보고를 하고 진행한다는 거예요.
물론 관여는 안하시겠지요. 그렇지만 법주의 자리를 그만큼 빛낼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을 말씀드리고, 상의 할 일이 있으면 말씀드려서 부모님 마음이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 이것이 상좌시입니다.
방석 깔아드리는 것만 상좌시가 아닙니다. 자리를 가장 중심 되는 자리 가장 편안하고 높은 자리에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 계실 때 꼭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법회에서의 상좌시는 소임을 자기가 맡아 주는 것이 상좌시입니다.
소임이 필요할 때 내가 힘써 이 소임을 맡아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상좌시 중에 상승 상좌시란 말입니다.
특히 이 불교계에서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단체에서는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요, 주차요원 주차봉사 한명 선발하는데도 몇 십대 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가 대비주 십만 독 성취자가 62명이나 탄생 됐는데도 어찌해서
소임을 맡아 힘써 몸을 던져 봉사할 생각을 안 해요. 상좌시 이야기를 지금까지 열 번 이상 했을 겁니다. 그리고 또 마찬가지로 누군가 소임을 맡아서 일을 해나갈 때, 거꾸로 마음그릇이 커진 사람들은 팍팍 밀어주는 거예요. 이게 상좌시예요.
어떤 사람이 소임을 맡아가지고 힘겨운 일을 해 나갈 때, 예를 들자면 리어카를 끌고 오르막을 오를 때, 힘들 때 뒤에서 살짝만 밀어줘도 이 사람은 큰 용기 힘을 얻습니다.
시골에서 지게 짐 져 보셨지요? 한번이라도 덜 지고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질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짐을 올려서 짐을 나릅니다. 10미터 20미터 쯤 가다보면 무겁습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볼 일 보고 오던 사람이 ‘수고 많이 하네,’ 하면서 지게위에 달려있는 도시락 하나만을 들어주어도 그만 무거워 과부하가 걸릴 참인데 날아갈 것 같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앞장서서 일하는 분들을 힘껏 밀어주고 격려하는 것이 상좌시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힘껏 밀어야 해요. 이런 일로 어떤 공덕이 쌓이는가, 이 상좌시의 공덕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앞으로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 사자법좌(師子法座)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여러분들이 앞으로 복력이 커지고 마음의 힘이 커질수록 일을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24시간 혹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결정하게 되고 또 중요한 일을 추진할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분명히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 상좌시 한 공덕으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게 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이 상좌시의 공덕으로 인해 여러분들의 딸이, 아들이, 손자, 외손자들이 50년 100년 후에 저 멀리 미국 가서 중국에 가서 일본 가서 혹은 우리나라에서 중책을 맡아가지고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대성 할 때도 사람들이 표를 찍어 주어야지요. 이럴 때 그냥 저절로 도움 주는 귀인들이 나타날까요?
귀인들이 모여오고 도움 주는 사람들이 오는 것은 과보인 복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언제 복을 지을 것인가,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시던 잘 도와드리고, 학급회장이 일을 추진할 때 요구하지 않아도 잘 살펴가지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해합니다. 이런 상좌시의 복덕이 쌓이고 쌓여 여러분들이나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나중에 큰일을 할 때, 많은 도움이 필요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유는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 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모여온단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는 방과 집의 보시입니다 (房舍施:방사시)
부모·스승·사문·바라문으로 하여금 집안에서
다니고 서며 앉고 눕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방이나 집의 보시라 한다.
그리하면 몸을 받아 저절로 궁전이나 집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도 온갖 선실(禪室)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일곱째 과보라 하느니라.
여기 나옵니다. 저절로 궁전에 집을 짓고, 저절로 돼야 행복한 것이지 대원을 세워 억지로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렇지요?
자기가 상좌시를 안 해서 다른 사람이 안 도와주는 것을 모르고 내가 이 큰일을 하는데 왜 우리 부모는 안 도와주나, 우리 형제는 왜 안 도와주나... 자식들은 저 밖에 모르고 왜 안보태주나, 친구나 이웃들은 이 사회에서 내가 좋은 일하고 있는데 왜 안 도와주나....하고 원망하고 탓하고 잔뜩 바라고 기대하고 그러다가 실망하고 원망만 합니다.
자기 복이 없어서 그런 줄 모르고.
그래서 이런 복을 자꾸 짓고 지어서
저절로 궁전의 집을 얻고 미래에 부처가 되어서도 온갖 선실(禪室)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일곱째 과보라 하느니라.
이렇게 마음만 먹고 실천만하면 보시할 수 있는 것이 일곱 가지나 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내 마음이 분노, 화, 스트레스로 가득 쌓여 있을 때는 먹을 마음도 낼 수가 없고, 마음을 먹지도 않지요?
마음을 먹고 억지로 표정을 웃어주려고 해도 또 눈으로 보시를 하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압니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눈빛이 흔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재칠시의 전재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편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편안 하십니까? 행복하셔야 합니다.
행복은 우리들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대비 주主 입니다. 이것을 알면 당연히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요, 아까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밖에 못하던데 어떻게 행복하겠는가... 여러분 어떻게 말씀 하시겠습니까? 그게 행복입니다. 행복...
이렇게 해주기를 바라서 원 하는 대로 해주면 좋고 행복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안 해주고 저렇게 해주면 안 행복하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고 쳐 버려요. 왜? 이렇게 안 해 주고 저렇게 해주는 것으로 인해서 내가 체험을 하고 교훈을 얻고 거기에서 깨달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역경을 약으로 삼으라,’ 이 말입니다. 역경을 바라지 않더라도 다가왔을 때는 이것을 활용해 힘을 키우는 계기로 삼고, 혹은 과거의 묵은 업장이 사라질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 따지지 말고 무조건 행복하다고 선언해버려요.
나는 순간순간 행복하다 이렇게 선언하십시요.
한 대목을 더 공부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국왕인데 폭군입니다.
돈 많은 사람을 불러서 돈을 다 뺏어 버립니다. 물론 목적이 있겠지요.
폭군이 한 장사꾼을 불러 너의 재산을 다 가져야겠다, 그러니 재산목록을 다 가져 오너라, 이렇게 이야기 하니 장사꾼은 집에 가서 재산목록을 작성합니다.
재산목록 내용이 이렇습니다.
과거부터 남에게 보시한 사실들을 기억해 내 하나하나 떠 올립니다.
거지에게 한 끼의 밥을 준 것부터 짐승들에게 먹이로 준 곡식 등 낱낱이 기록하여 그 책자를 왕에게 보여주었다.
“여러분들 보시 많이 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은 가장 큰 보시가 무엇이었을 까요?”
보시, 금방 생각나는 것 있습니까?
그런데 이보시의 목록을 왕에게 제출을 했더니 왕은 이런 것을 무엇하러 써 왔는가고 묻자
그 장사꾼은 ‘대왕께서 명령하시기를 모든 재산의 목록을 적으라 하시 않으셨습니까. 제가 가진 재산은 이 책자에 가진 것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읊어서 말합니다.
‘가족들이 가진 재산이야 집안에 다 있을 것이나 이제 이 책자에 쓰인 것만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설사 국왕과 도적과 물, 불이라도 그것은 빼앗을 수 없고, 일 겁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와서 산과 바다와 모든 것을 녹이더라도 보시한 물건만은 사루지 못하리라.
부모 자매 형제에게나 그 밖의 모든 치안국들에게 금전과 재물을 맡겨 두어도 마침내 모두 잃어버리게 되지만 오직 스스로가 보시한 것은 끝내 잃어버리지 않나니 그러므로 보시로 남겨둔 보배만이 대대로 항상 사람을 따르게 되고, 보시로 남겨둔 치안국 만이 누구에게도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 가난과 괴로움의 바다가 아무리 크고 넓어서 두려움이 있어도 보시는 튼튼한 배이므로 보시한 자는 저 언덕을 건너는지라 (저 언덕은 열반의 세계이지요)
이러한 보시의 과보가 있음을 일찍이 제 스스로 알았었기에 이 책자에 쓰인 재산만은 감히 제 것이라 말씀드리오며 집안에 있는 모든 재물은 공동 소유이므로 책자에 적어 넣지도 않았으며 감히 제 것이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하니 폭군이 뺏을 수 있었겠습니까?
폭군이 뺏어도 뺏길 수 없는 것은 남에게 준 것, 우리들이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내가 다 움켜쥐고 쌓아 놓고 숨겨놓고 한 것들은 못 가져가는데 100프로 가져가는 것은 준 것을 가져갑니다. 세상에 준 것,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을 가져간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먹질을 많이 했으면 주먹질을 가져갈 것이고, 사랑을 많이 베풀었으면 사랑을 가져가게 되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배불리 먹도록 베풀었으면 먹을 복을 가져갑니다. 다른 사람이 명예를 갖게 드높여 박수를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해주면 자기가 나중에 그것을 가져갑니다.
아까 상좌시 이야기 잘 들으셨지요?
장사꾼의 그 말에 왕은 탄복하며 그의 말을 인정하고 보시하지 않는 자는 재보가 많아도 실제로 빈곤하고 보시하는 자는 비록 재보가 빈궁해도 진정한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보시바라밀에 대한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복습을 하자면 보시의 대상 은 팔복전으로 기억을 해두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첫째는 부모님 전으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해야 합니다.
광덕스님의 일화를 잠간 말씀드리자면 효도를 하는 것은 미루지 말고 오늘 하라고 하십니다. 수행도 오늘 해야 합니다. 효도도 ‘오늘’ 입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또는 출세해서가 아니라 오늘 해야 합니다.
나중에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 찾아 갔더니 부모님이 이미 안계시더란 말입니다.
오늘 하십시오. 수행도 힘을 적당이 길러서 내일 성불하겠다 하지만 아닙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 49독 할 ,때 오늘이 마지막 기회다 하고 남김없이 하셔야 합니다.
두 번째, 삼보가 대상입니다. 부처님이 제일 흐뭇해하시는 공양이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의 삶이 스스로 행복한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 흐뭇해하시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이 행복하면 맨 날 다 라고만 하지 않고 부처님께도 항상 감사기도를 할 것 아닙니까. 더 나아가서 여러분들이 부처님을 만나서 삶의 새출발을 한 분이라면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방생입니다.
방생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집니까? 전법입니다.
부처님 불법 인연을 맺게 하는 것이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다섯 번, 여섯 번째는 멀리서 오는 사람, 멀리 떠나는 사람
오늘 이 법회에 멀리서 오신 분, 대전보다 더 멀리서 오신 창원에서 오신 보살님께는 보시 하셔야 합니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는 병자와 그를 간호하는 사람.
이 여덟 종류의 대상에게는 보시하라.
다음에 기회 있을 때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 마지막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나중이라 하지만 나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루지 말고 오늘 베풀고, 오늘 수행 하자는 말씀을 드리며 보시바라밀에 대한 공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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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우선 긴 법문 내려주신 스님, 감사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지킬 수 있는, 지켜야 하는 법문이어서 긴 법문인데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7일7야 첫날, 정진하는 중에 불현듯 생활속에 무재칠시를 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하루에 한가지씩
가족들과 손님들께 실천하는 7일7야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행을 이어가야겠다고 내심 작정한 가운데 이 법문을
만나니 더없이 무언중에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_()_
이 긴 법문을 소상히 정리해주신 지심행 보살님... 감사합니다.
어떤 여건속에서도 할 일을 해 나가시니 오늘따라 그야말로 '지심 행'이라는 법명이,
더욱 삧!(오타아님...^^)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