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뱃놀이
최 화 웅
우리 동네는 목요일 아침이면 갖가지 푸성귀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야채행상 트럭이다. 아파트 건너편 길가에 차를 세우고 야채를 부리는 동안 운전석 위에 달린 장난감 같은 확성기에서는 정구지, 시금치, 상치, 당근, 고구마, 감자, 풋고추, 양배추, 대파, 다마내기, 브로콜리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야채품목을 주워 삼킨다. 이 외침을 처음 들을 때는 시끄럽고 성가셨다. 그러나 일 년이 넘도록 들어온 지금은 오히려 기다려진다. 야채행상 아저씨의 외침이 들리면 나는 “ 오늘이 목요일 아침이구나”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곤 하는 것이다.
그 야채행상 아저씨는 당근은 닌징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유독 양파만은 일본말로 다마내기라고 외친다. 이곳은 일본인의 집단거주지역도 아니고 양파를 다마내기라고 불러야할 이유도 없을 것 같은 데 말이다. 처음에는 귀에 거슬리고 계속 반복할 때는 짜증스러웠다. 그럴 때면 바로 뛰어내려가서 말을 할까 하다가도 그냥 참고 넘겨왔다. 언제쯤 양파라고 말하려나 하고 기다리며 스스로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동안 시간은 쉼 없이 지나갔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지나 어느 틈에 일 년을 넘긴 지금은 그 목소리가 귀에 익고 정이 들어 다마내기를 들먹이지 않으면 서운하다. 내가 가족들에게 ‘다마내기 아저씨 왔구나’ 하면 통할 만큼 정겨운 목소리다.
야채행상 아저씨의 다마내기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피난 오면서 전개된 인생의 전환기를 되돌려 보여준다. 당시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등에 메거나 허리에 차고 뛰어다니던 시골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빨간 란도셀가방을 메고 나타난 나를 보고 신기한 듯 쫓아다니며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놀려대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마음이 느껴야 하는 소외감과 따돌림이 너무나 싫었다. 그 때문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서울말투를 씻은듯이 잃어버렸다.
내가 어릴 때 형들을 따라 매미채를 들고 남산 숲속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맴돈다. 명동성당 뒤편에 있던 계성유치원과 계성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때였다. 한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한강 뱃놀이를 하던 일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돛단배 뱃전에 나란히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에 두다리를 무릎까지 담그고 그 싱그러운 강바람에 맞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면 아버지가 새삼 그립다. 아버지께서는 자상하셨다. 큰형과 함께 신촌으로 실험용 개구리를 잡으러 가던 휴일이면 빈 병목에 손잡이를 달아 주시기도 했었다. 그 때는 충무로에서 신촌까지 전차를 타는 것이 무엇보다 신나는 일이었다. 가족들이 수도극장에서 활동사진을 보던 날은 내가 꼭 가운데 앉으려고 설쳤다. 그런가하면 유치원에 갈 때도 기어이 세발자전거를 타겠다는 억지투정은 철없던 내 막내기질을 들어낸 것이었다.
일본사람들은 명치유신 개화기 때 포르투갈로부터 총을 이부할 무렵 네델란드로부터는 ‘Ransel'를 받아들이면서 '란도세루(ランドセル)'라고 쓰고 부르기 시작했다. ’란도세루‘는 일본초등학생들이 메는 통가죽 가방이다. 네모난 ’란도세루‘는 물에 빠졌을 때 튜브의 역할을 하고 넘어지거나 받혔을 때 완충기능으로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생각에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차량을 기다리는 꼬마들의 행렬을 보거나 란드셀을 멘 초등학교 신입생들을 만날 때면 나의 어린 추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오는 목요일 아침에는 이 모든 것을 되새기게 해준 고마운 ’다마내기 아저씨‘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라도 한 잔 드리고 싶다. 그리고는 다마내기를 양파로 바꿔 말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슬쩍 건네 볼 작정이다.
첫댓글 다마내기..^^ 저도 예전에 엄마께서 양파를 그렇게 부르시곤했던 생각이 나요.
복잡하지 않고 여유와 정감이 느껴졌었던 서울의 분위기도 떠오르네요..
빨간 란도세루 가방을 메고 깡총걸음으로 유치원에 가고있는 그리움님의 모습이 그려져요..^^*
오드리님! 그때 간식으로 수녀님께서 빵을 주셨는데 하루는 빵에서 벌레가 나아서 울어버렸답니다.
그랬더니 수녀님께서 빵을 하나 더 주시더라구요. 유치원에 갈 때는 꼭 충무로에서 성당까지 세발자전거를 타려고
했던 일은 기억이 나구요. 성당 마당에 있는연못가에 성모상이 있어서 성호경을 바치고 들어가는 일이
그렇게 귀찮았던지 모르겠군요. 그때 책상은 서랍이 없고 판을 그대로 올리고 수납을 하는 것이었어요.
초여름이면 전차를 타고 신촌에 개구리를 잡으러 성을 따라 다녔고 남산에서 뻐찌를 따먹었던 일이 그립습니다.
수도극장에서 활동사진을 보던 추억도 새롭구요. 아! 추억은 아름다워라!!
오드리님! 빨간 란도세루는 계성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메기 시작했어요.
나이를 더 먹으면 어린시절의 추억창고 열쇠를 찾아야겠어요.
요즘 부산, 특히 동래는 최고기온이 연일 34도를 넘어서고 있답니다.
더위 잘 이기십시오.^^*
서울도 거대한 찜통같아요.. 어젠 너무 더워서 영화관으로 피신을 했어요.
'나에게서 온 편지' 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답니다. 오늘 사비노와 저녁에 함께 가려고 '마지막 4중주' 예매를 해 왔구요.. 전에 글에 써주셨던 네편의 영화중 아직 못 본 영화거든요..^^
아무리 더워도 저기서 부지런히 오고 있을 가을을 떠올리며 더위 잘 견디시고 부디 건강 유의하세요..^^*
사비노씨와 좋은 시간되십시오. 사비노씨는 의료봉사 때도 가셔서 도움을 주셨다지요?
요즘같은 더위에는 영화관을 찾는 것도 좋은 피서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마지막 4중주'를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안부 전해주십시오. 부디 행복한 시간 보내시구요,^^*
선생님! 어릴적 추억으로의 여행을 하고 계시네요.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자녀들과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감사드려요. ^*^
청초이님! 여름 잘 지내시죠?
여름이면 어린 날 수박, 참외, 토마토, 당근 서리를 하던 추억이 바람타고 전해옵니다.
한여름에 멱감고 서리하는 순간은 가슴을 뛰게 했었죠.
부디 행복한 나날 보내십시오.^^*
지나간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에 젖게 해 주심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모든 분위기가 그 시절의 여유로움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 때가 그립습니다. 아련한 추억으로 되돌려주심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글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차사랑님! 한여름 땀을 닦으며 읽는 책이 가을을 재촉합니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인생의 권유'를 읽고 있습니다.
용재 오닐의 비올라연주를 들으면서 말이죠.
여름에 흘리는 땀의 양만큼 가을이 풍성할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데이비드 린이 감독한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를 다시 볼꺼에요.
부디 건강하십시오.^^*
며칠전 오래간만에 명동에세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헤어질무렵 시계를 보니 6시
저녁미사 시간이 되어 부지런히 언덕을 올라 미사를 마치고 성해실들려 잠시 기도하고 오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서울에 살아도 특별한 일 없으면 명동에 갈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가끔 명동성당에 가고 싶을때
옛날을 추억하며 다녀오면 며칠동안 새로운 기분으로 지내곤 하죠. 항상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시는
그리움님 고맙습니다.^^
하늘인연님! 잘 하셨군요. 때로는 추억이 우리의 삶에 위안과 풍성함을 주는 고마움을 지니기도 하죠?
저에게 있어서 남산과 신촌 들녁, 그리고 명동성당은 어린시절의 추억과 꿈이 깃든 곳으로
기억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 좋은 계절에 부디 건강하십시오.
국장님 삼복더위가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데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옛날 세공 기술을 배울때 선배들이 공구 이름을 일본말로 말하기에 처음에는 귀에 거슬렸는데 세월이 지나니 저도 쓰게 되었습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베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명금당님! 그래서 말은 뜻 못지 않게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 남아 무심코 쓰이는 일제잔재를 우리 시대에 뿌리뽑아야할 것입니다.
그런 애씀이 민족정기를 이어받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요?
머리와 몸에 벤 일제의 흔적을 우리 다 함께 씻어내기로 합시다. 고맙습니다.^^*
다마내기~참 오랜만에 들어봅니다.그리움님!찜통 더위를 어떻게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한여름에 가족들과 뱃놀이를 하고 명동성당을 오가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참 새롭게 와 닿습니다. 요즘 너무 더워 토요일 밤이면 한강에 바람 쐬러 나가곤 한답니다. 또 평일에 명동성당을 가는 것이 저에게는 확실한 힐링이 되기도 하구요.그리움님의 글을 읽노라니 그리움이 바람처럼 일어 납니다.멋쟁이 사모님도 뵙고싶어요.
강엘리님! 삼복더위는 잘 이겨내고 계시죠? 올여름 더위의 기승이 유별납니다.
찬물로 샤워를 해도 시원하지 않구요. 에어컨을 안고 지냅니다.
이번 주일에는 베드로 내외와 우리 부부가 교중미사 뒤에 만나서 점심을 하기로 했습니다.
점심 뒤에는 우리가 가는 '커피가 사랑한 남자'에서 얘기도 나누려고 합니다.
베드로씨는 항상 의욕적이고 긍정적인 성품이어서 만날 때마다 힘이 쏫는 답니다.
기도 때 저희들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그리움님 글을 읽으며 동화 한 편을 구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마내기 아저씨 - 글이 완성되면 보여드릴게요.
참나리님! 감사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다마내기 아저씨'는 이 찜통더위를 희고 깨끗한 땀으로 이겨낼꺼 같아요.
참나리님! 화이팅!!
그리움님 전 촌놈이라 서울 사람들의 유년은 건조하리라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걸음보다 헤엄을 먼저 배운 저는 요즘같은 폭염이면 절로 바다가 생각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다마내기가 양파로 바뀌면 다시한번 올려주십시요!
미르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께요.
미르님! 8월의 마지막 목요일. 오늘 아침에 직접 탄 냉커피를 들고 '다마내기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육십대의 노부부였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저에게 "그런 줄 몰랐습니다. 당장 고치겠습니다."하고는 생방송으로
양파를 외쳤습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여름사과 한 봉지와 오이를 사들고 왔습니다. 이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했나 봅니다.
미르님! 오늘 하루도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잘 지내십시오. God wih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