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때의 진한처럼, 그 이전의 진한도 여인국의 통치를 받았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경상남북도 지역이 여인국의 영향력하에 있었고, 고구려 주몽이 내려왔을 때, 비단 비산에서만 전투가 벌어진 것이 아니다.
비산에서 최후의 결전이 있었다는 것이지, 진한의 다른 여인국 거점지역에서도 주몽이 이끄는 여인국을 타도하려는 연합군세력과 경상도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안동시에 있는 초기 여인국의 도읍지(안동시 서후면 광평2리)에서도 결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곳이다. 요동에 있던 주몽의 고구려군이 동원될만큼 여인국의 존재는 주변국에 위협이 되었고, 타도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여인국은 자그마한 소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威風振於靑丘 즉 청구에 위풍을 떨쳤다고까지 기술한 것이다.
한반도내 삼한자체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워 고구려까지 동원된 셈인 것이다.
*********************************************************************************
역사기록과 여인왕국에 대한 영적체험을 사이트에서 본 경험을 토대로한 저의 생각입니다.
즉 여인왕국에 관한 전생을 기억하는 분들과 초기 도읍지에서 그 당시 죽은 많은 영혼들에 대한 경험담 -인터넷사이트 참조....
등을 토대로 한 글입니다.
자동서기류의 심령부분은 문제가 있고 믿기가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전생을 기억하는 분들이 한두분들이 아닌걸로 보면 여인국이 있었다고 보며, 역사기록까지 남아 있으니 심령도서인 '여인왕국'에서 비록 지나치게 기록된 면이 있지만 부분적으로 참조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존재들과의 채널링과 자동서기를 신뢰하기가 어렵지만, 역사유적에서 경험하는 영적체험은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