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의 세계배낭여행기 59>
정열의 나라 스페인(Spain/España)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3>
◆ 콜럼버스의 관(棺)
콜럼버스의 관 / 산타페 협약(그라나다 까톨리카 광장의 동상:이사벨 여왕을 만나는 콜럼버스)
세비야성당 박물관에 들어서면 화려한 가지가지 장식품들과 성물(聖物)들로 눈이 어지러운데 그 가운데 특히 사람들 이목(耳目)을 끄는 것이 왕관을 쓴 네 명의 스페인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조형물이다.
이 콜럼버스의 관(棺)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어 조금 덧붙여 이야기해 본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배 세 척과 선원들, 그리고 식량을 지원 받은 콜럼버스는 금과 진주, 그리고 향료가 무진장이라는 인도(India)를 향하여 대 항해를 시작하는데 그가 탔던 배가 산타마리아(Santa Maria)호다.
당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동설이 처음으로 제기되고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이 나오자 모두들 반신반의(半信半疑)하던 시절이었다.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 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ㅎㅎ
◆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
동쪽으로 사막을 지나고 산맥을 넘어 무작정 갔더니... 인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밀림 속에 황금으로 된 도시가 있고 코가 긴 코끼리라는 짐승이 있고, 또 사막 근처 바위 밑에 샘물이 있어 목이 말라 마시려고 했더니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다. 낙타도 못 마셨는데 불을 붙이니 불이 붙었다(원유)....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코를 손처럼 사용하는 동물이라구? 샘물에 불이 붙다니 말 같지도 않은 말을... ㅎㅎ
이탈리아 출신의 뱃사람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니까 동쪽으로 가지 말고 서쪽 바다(대서양)로 배를 타고 가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돈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나에게 배를 대어 달라. 나는 서쪽 바다로 인도를 가겠다. 인도는 황금 도시도 있고 진주와 향료가 무진장이라고 하니 한 번만 다녀오면 그 몇 배로 갚아 주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콜럼버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고 모두들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 이사벨 여왕의 현명한 결단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을 찾아가서 배를 대어줄 것을 요청한다.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콜럼버스에게 배를 세척 대어주고 계약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Santa Fe Capitulations)이며, 이른바 벤처 투자였던 셈이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산타페 협약은 무슬림 국가인 그라나다를 함락시키고 몇 개월 후인 1492년 4월에 체결하는데 협약의 내용은
①콜럼버스에게 스페인 여왕이 작위를 부여하고,
②앞으로 발견되는 지역의 대 제독과 식민지 총독으로 인정하며,
③이러한 작위(爵位)들은 그의 자손들에게 영구히 상속되고,
④그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귀금속의 10분의 1을 콜럼버스가 소유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이 산타페 협약 체결 모습의 동상이 그라나다(Granada) 대 성당 앞 광장인 ‘이사벨 라 까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 가운데 우뚝 세워져 있다.
◆ 항해의 성공
항해를 떠나 70일 만에 미국 대륙 앞 바하마 제도의 작은 섬에 첫 발을 디딘 콜럼버스 일행은 그곳을 인도라고 확신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도 사람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라 불렀는데 영어로 하면 인디언(Indian)이다.
콜럼버스가 첫 발을 디딘 곳은 바하마 제도의 쿠바 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 구아나아니(Guanahani) 섬이었는데 이름을 ‘구세주’라는 뜻의 산살바도르(San Salvador)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의 남쪽, 카리브 해의 바하마 제도를 서쪽에 있는 인도라는 의미의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라 부르고, 미국 원주민을 인도 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언(Indian), 중남미 원주민을 같은 의미의 스페인어 인디오(Indio)로 부른다. 그리고 동양의 진짜 인도(印度/India)는 ‘동인도(東印度)’라고... ㅎ
콜럼버스의 항해
첫 항해를 성공하고 돌아오자 엄청난 환영을 받았지만 그 이후 항해에서 금과 향신료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콜럼버스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 후로도 세 차례 더 신대륙을 다녀왔지만 마지막 항해에서 총독 지위는 물론, 그동안 신세계에서 얻었던 모든 재산을 잃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자신을 가장 믿고 지지해 주었던 이사벨 여왕이 죽었고, 콜럼버스도 2년 뒤 바야돌리드에서 숨을 거둔다.
스페인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결국 자신이 발견한 쿠바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을 안겨 준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하여 콜럼버스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모셔오는데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세비야 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하고 스페인의 네 명의 왕이 관을 메고 있는 모습으로 설계하여 최고의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관의 앞쪽을 들고 있는, 머리를 치켜들고 웃는 모습의 왕은 콜럼버스의 모험을 지지했던 카스티야(Castilla) 국왕과 레온(Leon) 국왕이고 뒤쪽에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는 국왕은 컬럼버스의 행해지원을 반대했던 아라곤(Aragon) 국왕과 나바라(Navarrae) 국왕이라고 한다. 당시는 스페인이 작은 왕국으로 갈라져 있을 때이다.
콜럼버스 사후, 멕시코에서 아즈텍(Aztec) 제국을 무너뜨린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남미에서 잉카(Inca) 제국을 멸망시킨 피사로(Gonzalo Pizarro)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정복자, 탐험가들의 활약으로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이처럼 탐험가들이 발 벗고 모험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발단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엘도라도(El Dorado)는 콜롬비아의 산간 오지(奧地)거나 아마존 강 유역 밀림 속 어디가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설 속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되어있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았다. 또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벌거벗은 온 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제물로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황금이 지천으로 깔린 전설의 도시이고 꿈의 도시이며 이상향이었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細工技術)을 보면 정말 이곳 어디 쯤에 엘도라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측컨대 정복자들이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석(金銀寶石)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구했는지 묻자 차마 약탈했다는 말은 못하고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Aztec) 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즈(Cortes)는 아스텍의 마지막 왕이었던 쿠아우테목(Cuauhtemok)을 인질로 삼고 그의 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왕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스텍 사람들은 황금을 가지고 와서 방에 가득 채우고 석방할 것을 탄원하지만 결국 왕을 죽여 버리고 마는 만행을 저지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남미의 콜롬비아(Colombia)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을 지었다.
또, 콜럼버스(1451~1506)가 조금 서운할 일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을 첫 번째 탐험가였던 자신의 이름을 따지 않고 후배 탐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1454~1512)의 이름에서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하였으니 억울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