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주 고백과 고신의 역사
I. 로마 교회에서 예수 주 고백의 중요성
1. 퀴리오스는 노예의 주인이나 황제
2. 예수 주 고백=예수만이 참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가지는 참된 영광, 존귀, 나라를 가지는 유일한 분이시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어떤 한 분, 곧 이천년전에 팔레스타인에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 목수로 살았고 3년 동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분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분을 예수,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고백합니다. 이 분을 예수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분을 우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고백이 없으면 예수라고 이 분을 불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예수,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 분과 나의 분명한 관계, 이 분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없다면 이 분을 이렇게 부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고백한다”가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 분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라고 하는 이름은 퀴리오스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이름을 내 인생의 주인이시다 정도로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 사회는 노예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노예, 종은 미국의 흑인노예들과는 달리 재정, 교육, 관리를 담당하는 꽤 전문적인 일을 가정에서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의 소유였고 주인은 생사의 박탈권이나 사고 팔 수 있는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종들이 자신의 주인을 퀴리오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퀴리오스라는 명칭은 로마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에게 유일한 퀴리오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로마 황제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퀴리오스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막시밀리우스라는 로마 집정관의 아들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로마군인이 되는 출세길을 거절하다가 처음으로 순교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출세의 고속도로로 통했던 로마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한 이유는 로마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나의 유일한 퀴리오스는 로마 황제라고 맹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를 주, 퀴리오스라고 고백하는 것은 곧 순교를 의미했습니다. 당신에게 누가 퀴리오스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지 입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곧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유대인들에게도 예수는 주 고백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퀴리오스는 구약의 여호와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저주받을 자로 여겼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퀴리오스 곧,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나라를 가진 분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동일한 영광을 퀴리오스라고 불리는 예수님께도 돌려드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주 고백은 예수를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과 존귀, 권세를 가진 분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외에 그 어떤 창조주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0절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처럼 예수만을 퀴리오스로 고백하는 일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구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그 삶을 지킬 때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약의 하나님과 동등됨을 누리는 분으로 인정하고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로마인이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 모든 사람들은 주, 곧 퀴리오스를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 구원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II. 한국 교회에서 예수 주 고백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고신총회가 시작된 지 70주년입니다. 우리 관악교회는 한 지역교회, 개체교회입니다. 그런데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을 이루고 있는 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고신총회에 속한 교회로 개척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신총회를 이루는 여러 교회들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홈페이지는 관악교회는 신사참배 반대로 고난당하며 형성된 고신총회의 지체입니다.라고 시작합니다.
예수는 주, 퀴리오스라는 고백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고백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항상 살아있어야 하는 고백입니다. 한국교회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고백하지 않기 위해서 순교를 해야 했듯이 신사참배를 통해 일본제국이 섬기는 천조대신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거부해서 투옥생활과 순교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이런 결정은 놀랍게도 1938년 당시 하나의 장로교총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 관악교회는 역사적인 고신신앙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 고신교단을 통해서 주신 구체적인 예수 주 고백을 관악교회와 모든 고신교회가 잘 지켜가야 합니다.
3) 오직 그리스도의 권세만이: 한 사람이나 혹은 집단의 주장이 교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경계합니다. 교회안에서 때로 나의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나의 주장이 너무 강하거나 지속적이지 않은가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섬기는 것 외에 다른 목적(지위, 특권, 권세)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