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5월 17일 밤, <로마>의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된 1막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획기적인 성공이 무명의 작곡가인 <피에트로 마스카니>를 문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명사로 만든 것은 역사상의 사실이다. 그러나 <마스카니>의 성공은 이 작품에서 시작하여 이 작품에서 끝났다고도 할 수 있다.
<마스카니>는 1863년 12월 7일, <이탈리아>의 <리보르노>에서 태어났다.빵가게를 차리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을 공부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마스카니>는 오로지 음악을 가까이 하고 작곡가가 되기를 바랐다. <마스카니>는 아버지 몰래 <캘비노> 음악원에 다니고 있다가 들켜 의절(義絶)당했다. 그러나 백부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재학중에 <교향곡c단조>라든가 <키리에>, <칸타타> 등과 오페라 <인 필란다>(In Filanda)를 작곡하여 학교에서 연주하였다. 이어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작곡, 이것이 <라르데렐> 백작에게 인정받아 <밀라노>에 유학하게 되었다.
<밀라노> 음악원에서는 오페라 <지오콘다>의 작곡자(作曲者)로서 유명한 <퐁키엘리>(Ponchielli, Amilcare;1834~1886)의 가르침을 받았다. 가난한 학생으로서 당시 아직 이름 없던 <풋치니>와 한 방에 하숙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백작으로부터의 원조는 충분한 것이 못되어 궁색한 생활을 싫어한 <마스카니>는 그만 퇴학하고는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에 참가하고, 다시 가극단에 들어가 각지를 순회하는 동안 오페라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이 무렵 <마스카니>는 당시 <베르가>의 희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대단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대본이 씌어지고, 마침 그 때 개최된 <손쪼뇨> 악보출판사의 <1막물 신작 오페라 현상 모집>에 응모, 1등으로 당선했다. <시칠리아섬>의 어느 마을을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사랑의 비극을 다룬 이 오페라는 1890년 5월 17일에 <로마>의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되어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사적으로 본다면 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성공이야말로 후에 <베리스모> 오페라라 이름지어진 일련의 걸작의 탄생을 고하는 첫울음이기도 한 셈이다. <베리스모 오페라>의 <베리스모>라는 말이 <이탈리아어>의 <진실한>이라든가 <실제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말 <베로>를 어원으로 하고 것으로도 분명하듯이, 이것은 서민의 생활이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며, 그러한 사고방식이 오페라 하면 걸핏 귀족이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양식적(樣式的)인 구성에 마음을 쓰던 시대에 얼마나 신선한 것으로 비치었는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의도를 처음으로 구현하였다는 데서 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가지는 음악사상의 의미는 크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 각지에서 상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상연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작곡가 <마스카니>의 이름을 세계적인 것으로 하였다. 그 후 <마스카니>는 <나의 벗 프리츠>, <이리스>, <이자보>, <로드레타> 등의 오페라를 14곡쯤 작곡했지만, 모두 <카발레리아>가 거둔 압도적인 인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으며, 오늘날 <마스카니>의 이름은 출세작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대표된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베리스모 오페라> 작가의 경우에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예컨대 <팔리앗치>의 <레온카발로> 같은 이도 그 예의 하나이다. 그 작자의 기술적 내지는 정신적 성장을 허용하지 않았던 점에 <베리스모 오페라>라는 음악극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마스카니>는 작곡자로서뿐만 아니라, 후에는 지휘자로서도 활약하여, 1902년에는 가극단을 조직하고 <미국>에 건너가 자작을 지휘하였다. 다시 1929년에는 <토스카니니>의 후계자로서 <라 스칼라 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하였다. 그 후 그곳의 음악총감독이 되기도 하였다. 즉 <마스카니>는 당시 <이탈리아>의 명사의 한 사람이었지만, 제2차대전(大戰) 후는 대전(大戰) 중의 화려한 활약이 문제가 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쓸쓸히 81년의 생애를 마쳤다.
오늘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외의 <마스카니>의 오페라가 상연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해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엿볼 수 있는 격정적인 음악이 가지는 강렬한 박력은 역시 <마스카니>의 천재를 믿게 하는 것이며, 이 작품 하나로도 <마스카니>가 오페라 사상에 남긴 이름은 불멸의 것이다.
~줄거리~
1880년경 여름 부활절,
남시칠리아 섬의 어느 작은 마을 의 교회가 있는 광장에서 부활절 하루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 마을에 사는 제대한 젊은 군인 뚜리두에게는 약혼녀 산뚜자가 있었다.
뚜리두는 군대에 가기 전에 사랑했고 약혼했던 아름다운 여인 롤라가 있었다.
그러나, 롤라는 뚜리두가 군대에 간 사이 마부 알피오와 결혼을 했다.
이렇게 이미 남의 아내가 된 롤라지만 뚜리두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계속 사랑하고 있었다.
산뚜자도 이미 그런 사실을 안다.
그녀는 뚜리두가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지만 뚜리두는 그녀를 뿌리치고 롤라에게로 달려간다.
그때 알피오가 등장하자 산뚜자는 순간 알피오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한다.
뚜리두와 롤라의 부적절한 관계와 아내 롤라의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알게된 알피오는
마침내 격분하여 반드시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산뚜자는 순간 참지 못한 이유 때문에 벌어지게 될 비극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마을 광장의 뚜리두의 술집 앞에 모여 축배를 든다.
이때 알피오가 등장하자 뚜리두는 알피오에게 술을 권한다.
알피오가 그 술을 거절하자 뚜리두는 술을 땅에 부어 버린다.
그리고 뚜리두는 알피오의 귀를 물어뜯어 결투를 신청한다.
그 결투는 받아들여졌고 알피오는 마을 뒤 공터로 향하고
뚜리두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물론 어머니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아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는다.
그렇게 뛰어나간 아들을 바라본 얼마 후 마을 아낙네의 비명이 들린다.
뚜리두가 살해당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