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배낭 여행기 =
나의 세계 배낭여행은 ‘세계(世界) 속으로’가 아니고 ‘세상(世上) 속으로’이다.
즉, 세계 곳곳의 지형(地形)이나 장소 등을 소개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文化), 그 나라에 얽힌 아름다운 역사(歷史), 그 나라 인종(人種)들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여행으로, 이른바 그 지역의 인생만사(人生萬事)를 드려다 보는 낭만여행(浪漫旅行)이라고나 할까....
세계 여행을 위하여 외국어(英語, 日本語)를 익혀 회화가 가능했고, 여행 전 여행할 나라의 지리, 역사, 문화 등을 꼼꼼히 체크(Check) 한 후 실행(實行)한 여행이었다.
여행사가 운영하는 패키지여행(Package tour)은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홀로 배낭여행, 서너 번 친구 몇 명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이제 돌이켜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젊은 시절의 낭만여행(浪漫旅行)이라 할 수 있겠다.
- 여랑(旅浪) 백충기(白忠基) Augustino
Ⅰ. 카리브해(海)의 낙원 쿠바(Cuba)
쿠바 전도(全圖) / 쿠바 국기(國旗)
◆ 쿠바(Cuba)의 국기
♤ 3개의 파란 줄: 독립 당시 3군관 수 ♤ 흰 줄: 독립운동의 순수함
♤ 빨강 색: 독립을 위해 흘린 피 ♤ 삼각형: 자유, 평등, 박애 ♤ 별: 독립을 상징
◆ 쿠바 개관(槪觀)
미국 플로리다 주 남단(南端)에서 남쪽으로 145km 떨어진 대서양상의 섬인 쿠바는 동서길이 약 1,250km의 기다란 섬으로, 섬의 3/4은 넓은 평야와 저지대이며 연평균기온은 26℃로 열대기후에 속한다.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약 1천만.
수도는 아바나(Habana)이고 인종은 물라토(백인+흑인) 51%, 백인 37% 및 기타 12%이다.
언어는 스페인어,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85%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4,900달러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지만,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2015년 미국과 수교를 재개하며 자본주의 경제로 돌아서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 쿠바의 독립전쟁
쿠바는 스페인 식민통치 시기, 정치적 자치를 허용하지 않고 세금부담을 증대시키자 제1차 쿠바 독립전쟁(1868∼78/10년 전쟁)이 일어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이어 제2차 독립전쟁이 1895년에 발발한다. 전쟁 중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상선 메인호(號) 선상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는데(미국-스페인 전쟁)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통치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 쿠바의 영웅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쿠바의 건국 아버지로 추앙받는 독립투사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는 1853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태어났으나 스페인 총독에 의하여 추방당하여 미국 뉴욕에서 12년간 망명(亡命) 생활을 한다.
호세 마르티는 42세 되던 1895년, 쿠바 제2차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애석하게도 산티아고(Santiago -de-Cuba)의 관타나모(Guantanamo) 전투에서 전사한다.
그는 시와 소설, 평론 등 70여 편의 저서를 발간하여 라틴문학의 중요 인물로도 높이 평가받는데, 그의 시(詩) 관타나메라(Guantanamera/관타나모의 아가씨)는 쿠바의 민요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 혁명투사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02년 쿠바는 스페인 식민정치에서 벗어나 살디바르(Zaldívar) 민주정권이 들어서지만,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전락하고 만다. 질서가 회복되고 많은 학교와 도로, 교량 등이 건설되지만 사실상 식민통치가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바뀐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에 맞서 오랫동안 망명 생활과 대정부 게릴라전을 지속했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는 혁명 동지인 체 게바라(Che Guevara)와 힘을 합쳐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인 살디바르(Batista y Zaldívar)의 장기 독재를 타도하고 1958년 정권을 장악한다.
카스트로는 곧 소련과 수교하고 자본주의의 폐지, 외국인소유기업의 국유화, 소련식 농공업 개혁 등을 실행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곧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게 된다. 1961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反) 카스트로 전쟁인 피그스(Pigs)만 침공이 미국의 실패로 돌아가자 카스트로는 기고만장하여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세우도록 한다.
1962년, 격노한 미국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소련 화물선 격침 위협으로 세계 3차 대전 발발 일촉즉발의 순간을 맞기도 하나, 소련이 한발 물러서 화물선을 회항시키자 위기를 넘긴다.
쿠바는 그 이후 미국의 고립화 작전으로 경제적 큰 타격을 입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유일한 혁명 국가라는 자부심(自負心)이 있지만, 지금까지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