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역사에 정의는 없다.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구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발명품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물려받은 것에 의해 생겨난 틈을 메웠다.
하지만 이런 협력망들의 출현은 많은 사람에게 의심스럽고 불안한 축복이었다.
그 그물을 지탱하는 상상의 질서는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그 망은 사람들을 서열로 구분된 가상의 집단으로 나눴다.
상류층이 특권과 군력을 향유하는 동안,
하류층은 차별과 압제로 고통을 받았다.
가령 함무라비 법전은 귀족, 평민, 노예 사이의 서열을 확립했다.
귀족은 종은 것을 모두 가졌고, 평민을 그리고 남은 것을 가졌으며 노예들은 불평을 하면 채찍질을 당했다.
1776년 미국인들이 수립한 가상의 질서는 모든 사라이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이 선언서는 위계질서로 혜택을 받는 남자와 위계질서에 힘을 빼앗긴 여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또 자유를 향유하는 백인과 평등한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흑인 및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후자는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노예 소유주였다
이들은 서명과 동시에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는 깜둥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미국의 질서는 또한 부자와 가난뱅이는 계층이 다르다고 선언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은 부자 부모가 돈과 사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데 따른 불평등에 대해서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이 보기에 평등이란 단순히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동일한 법이 적용되는 것을 의미했다.
평등은 실업수당이나 통합교육, 건강보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자유란 단어 역시 오늘 날과는 그 함의가 크게 달랐다.
1776년에 이 단어는
권력을 박탈당한 사람들(흑인이나 원주민은 해당되지 않았으며 여성은 더더욱 아니었다.)이
권력을 얻고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단지 국가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서민의 사유재산을 압수하거나
그 재산으로 어떤 일을 하라고 시민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질서는 부의 위계질서를 옹호했다.
일부는 이 위계질서를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부는 불변의 자연법이 구현된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은 인간의 장점을 부로써 보상하고 나태함을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차별 ㅡ 자유민과 노예, 백인과 흑인,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별은
허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질서는 나중에 논의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가 허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자유인과 노예 사이의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고 올바르다고 보았는데,
이들은 노예제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함무라비는 그것을 신이 정해놓은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게는 '맹종하는 본성'이 있고 자유민에게는 '자유로운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단순히 이들의 본성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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