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착각
과거를 쉽게 설명하다 보니, 미래는 예축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날마다 조금씩 흔들린다.
나심 탈레브가 《블랙 스완》에서 지적했듯이,
과거의 서사를 일관되게 지어내고 믿는 성향 탓에 우리는 예측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모든 일은 지나고 보면 이해가 된다.
금융 전무가는 저녁마다 그날 일어난 일들으 ㄹ그럴듯하게 설명한다.
우리도 다 지난 오늘에서야 이해한 것을
어제 이미 예견할 수 있었다고 느끼는 강한 직관을 억누르지 못한다.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과신하게 만든다.
'역사의 행군'이라는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는 질서와 방향을 암시한다.
행군은 한가로이 걷는 행위와 달리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규모 사회운동과 문화적, 기술적 발전에 초점을 맞추거나
위대한 소수의 의도와 능력에 초점을 맞춰 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운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은 비록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도 충격 그 자체다.
대규모 사회운동을 포함한 20세기 역사를 생각할 때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난자가 수정되기 직전에,
나중에 히틀러가 되는 배아가 여성이 될수도 있는 확률이 50퍼센트인 순간이 있었다.
이를 앞의 세 인물에 모두 대입하면,
20세기에 세 인물 중 누구도 태어나지 않았을 확률은 8분의 1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 개의 난자가 그런식으로 수정되어 중대한 결과가 생겼고,
따라서 장기적 상황 전개가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은 실없는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타당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착각은
금융계뿐 아니라 사업계와 정치계에서도 예측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방송사와 신문사는 가까운 과거를 논평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직업인 전문가들을 패널로 초청한다.
시청자나 독자는 어느 정도 권위 있는, 아니면 적어도 대단히 통찰력 있는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문가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그런 정보를 제공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게 분명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은 20년간의 획기적 연구 결과를 정리해
2005년에 《전문가의 정치 판단 : 얼마나 유용하고, 그 유용성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Expert Political Judgment : Howf Good Is It? How Can We Know?)》라는 책을 내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예측을 설명했다.
테틀록은 이 주제와 관련한 이후 토론의 조건을 정한 셈이다.
테틀록은 "정치적 경제적 추세를 두고 논평이나 조언을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 284명을 인터뷰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전문 분야와 이들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어떤 사건이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일어날 확률을 추정해보라고 했다.
고르바초프가 쿠테타로 축줄되겠는가?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특정 국가가 다음에 대규모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겠는가?
테틀록은 이런 예측을 8만 건 넘게 모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결론이 틀리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의 입장과 상된 증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함께 물었다.
응답자들은 각 질문마다 다음의 세 가지 결과를 놓고 대략의 확률을 추정해야 했다
현상 유지냐, 정치적 자유 또는 경제성장 등을 더 이루겠느냐, 그런 것에서 더 멀어지겠느냐,
결과는 참담했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결과에 똑같은 확률을 부여하는 것 보다도 나쁜 결과를 내놓았다.
특정 주제를 연구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원숭이가 다트를 던져 결국은 활률이 고르게 분포되는 것보다도 못한 예측을 내놓은 꼴이다.
전문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영역에서조차 비전문가보다 크게 나을 게 없었다.
어떤 분야를 조금 더 아는 사람은 그보다 덜 아는 사람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예측을 내놓는다.
그런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착각해 비현실적으로 자신만만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의 한계 예상 수확 체감 지점에 순식간에 도달한다." 테틀록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지식이 고도로 전문화한 시대에는 새롭게 불거진 상황를 '읽는 능력'에서
주요 신분사의 기고자들(저명한 정치학자, 지역연구 전문가. 경제학자 등)이
〈유욕 타임스〉의 수준 높은 독자나 기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유명한 사람의 예측일수록 예측은 더 화려했다.
"잘 나가는 전문가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는 동료보다 과신 정도가 심하다."
테틀록의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는 좀처럼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는다
마지못해 오류를 인정해야 할 때면,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으 뿐이라는 둥,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끼어들었다는 둥,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둥, 온갖 변명을 갖다 붙인다.
전문가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고 텔틀록은 말한다.
테틀록은 아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톨스토이에 관한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 The Hedgehog and the Fox〉에서 썼던 말을 인용한다.
고슴도치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알고" 세상을 보는 이론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사건을 논리적으로 일관된 틀로 설명하고,
자기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자들을 도저히 참지 못하며 자기 예상을 확신한다.
특히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고슴도치들에게 빗나간 예측이란 거의 항상 "타이밍의 문제"거나 "거의 맞을 뻔한" 예측일 뿐이다.
이들은 생각이 분명하고, 의견을 굽히는 법이 없는데,
프로듀서가 방송에서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른 두 고슴도치가
서로 상대의 어리석은 생각을공격한다면,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제격이다.
반면에 여우들은 복잡한 사상가다.
이들은 중요한 것 하나가 역사의 행군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들은 로널드 레이건이 소련에 당당히 맞서 냉전을 손쉽게 종결하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여우들은 현실에서는 운을 포함한 여러 동력과 행위자가 무수히 상호작용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큰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한다.
테틀록의 연구에서, 실적은 여전히 보잘것 없지만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은 바로 이 여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슴도치들보다 텔비전 토론에 초대될 가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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