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을 나와 시청 광장을 지나 "산토 토메"(Santo Tomas)성당(聖堂)을 가기 위해 뒷길로 들어선다.
굵은 돌로 포장된 길은 넓지가 않아 보통 일방통행(一方通行)으로 차들이 운행된다고 한다.
가는 길에 특이한 기념품 가게를 잠깐 들러본다.
옛날 단발 권총이다.
총렬의 정교한 무늬가 눈에 띈다.
원래 "톨레도"는 좋은 철(鐵)의 생산지(生産地)라고 한다.
그런 결과로 철(鐵)의 세공(細工)이 뛰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방에서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가 옛부터 많이 생산되었다고,,,,,
가게 한귀퉁이에서 나이 지긋한 분이 일을 하신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 가까이 와서 보라고 손짓을 하신다.
간단한 작업같지만 "루페"까지 있는것으로 봐서 무척 정교한 작업을 하는듯햇다.
"펜단트"에 새김을 넣고 있다.
작은 끌을 대고 망치로 조심스럽게 두드려 무늬를 만들고 있다.
내게 사진을 찍도록 배려도 해 주신다.
이런 작업을 "상감 세공"(象嵌 細工 : 다마스키나도 톨레다노 : Damazquinado Toledano)라고 한단다.
"톨레도"의 전통 공예 중 하나인 "상감 세공"은 본래의 표면과 대조적인 색상이나 재료로 화려한 무늬를 입히는 기술을 말한다.
톨레도의 "상감 세공"은 검은색 바탕에 금이나 은을 입혀서 만든다고 한다.
이곳 "시미안"(Simian)상점에서만 "상감 세공"을 하는 제작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단다.
"상감 세공"을 하여 만든 작품들.
기념품 가게를 나와 "산토 토메" 聖堂으로 향한다.
원래 이곳 "톨레도"를 보려면 최소한 이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으로 모두를 본다는 것은 무리다.
아쉬운대로 볼 수 있는 것만 보기로 한다.
"산토 토메"(Santo Tomas)성당(聖堂)에 도착했다.
"산토 토메"는 "聖 토마스"라는 뜻인가 보다.
이곳에 온 것은 단 한가지. 한 폭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이다.
화가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l Conte De Orgaz)이라는 그림이다.
"오르가스 백작"(Conte De Orgaz)은 원래 작위(爵位)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원래의 이름은 "곤잘로 루이즈 데 톨레도"(Gonzalo Ruiz De Toledo)라고 한다.
14世紀경 이 근처의 "오르가스"의 영주(領主)로 신앙심(信仰心)이 깊고 착한 사람이였다.
많은 재산을 헌금하여 "산토 토메"성당(聖堂)을 보수도 하였고,
인근의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고 살다가 1323년에 죽어 이 성당(聖堂)에 뭍힌 사람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하늘에서 두 분의 성인(聖人)이 내려와 시신(屍身)을 매장(埋葬)하는 것을 도왔다는 전설이 있었단다.
그후 많은 세월이 지나
새로 부임한 "안드레스 루네스 마드리드"(Andres Nunez Madrid)神父가 성당(聖堂)의 옛문서를 확인하던 중
이 돌아가신 분이 사후(死後)에 거금(巨金)을 성당에 봉헌하기로 했는데 후손(後孫)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것을 알았다.
"안드레스" 神父와 그 후손(後孫)들과 로마 교황청(敎皇廳)의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고 그 후손(後孫)들은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이 그림을 그려 무덤 위에 걸기로 했다고 한다.
바로 이 그림이 "오르가스 백작(伯爵)의 매장(埋葬) 이라는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천지 창조"(天地 創造), "최후의 만찬"(最後의 晩餐),과 함께 "世界 3大 성화"(聖畵)로 손꼽히는 그림이란다.
3.6m X 4.8m
성당(聖堂)에 들어서면 안쪽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다.
하도 사람이 많아서 그 아래쪽은 확인을 못했지만 저 그림 아래에 백작(伯爵)의 관(棺)이 있다고 한다.
확인은 커녕 그림마져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 그림에 대한 일화는 많이 있지만 우선 그림의 내용을 보면,
그림은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여 윗 부분(天上世界)과 아래 부분(人間世界)으로 나뉜다.
그림의 윗부분이다.
이 윗 부분도 중간부분과 좌,우의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봐야 한다.
중간 부분.
맨 아래 날개달린 천사(天使)가 흰색의 분명하지 않은 형체를 안아 올리고 있다.
"오르가스 백작"(伯爵)의 영혼(靈魂)을 천사(天使)가 하늘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 위 왼쪽에 붉은 옷을 입은 "聖母님"께서 올라오는 영혼(靈魂)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맞은쪽에는 "세례자(洗禮者) 요한"이 있다.
"洗禮者 요한"은 주님께 간절한 표정으로 백작(伯爵)을 천국(天國)으로 보낼 것을 청원하는 중이란다.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가르키는 쪽을 보면,
황색(黃色)의 옷을 입은 "베드로 사도"(使徒)가 천국(天國)의 열쇠를 들어 보이고 있다.
주님께서 이미 허락을 했노라 라는 뜻이리라.
"천상 세계"(天上 世界)의 오른쪽을 보면,
주님을 바라보며 세례자 요한과 함께 간절히 청하는 분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세례자 요한" 뒷쪽에 붉은 천을 두른 사람은 "사도 바오로"라고 한다.
"사도 바오로" 뒤로 네 번 째, 검은 머리를 한 사람.
이 사람은 그 당시의 王인 "펠리페 II 世" 라고 한다.
생존(生存)해 있는 사람을 미리 "천상 세계"(天上 世界)에 그려 넣은 것이다.
"펠리페 II 世" 뒤에 역시 머리가 검고 "ㄱ"자 막대를 들고 있는 사람. "聖 토마스"다.
이 외에도 모두 이름있는 분들이지만 알아내지를 못했다.
왼쪽 끝에 있는 사람들은,,,
맨 왼쪽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다윗 王" 이다.
그다음 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사람은 "모세"이고,앞에 방주의 모양을 놓고 있는 사람은 "노아"라고 한다.
이제 지상계(地上界)를 보자.
뒤에 일렬로 서서 장례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의 유명(有名)한 실존 인물(實存 人物)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後孫)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우선 "오르가스 백작(伯爵)(Conte De Orgaz)"부터 살펴보자.
왼편에 화려한 금빛 예복(禮服)을 입은 젊은 분은 부제(副祭)로 西紀 35년에
"예루살렘"의 사자성문(獅子城門) 밖에서 최초로 순교한 "스테파노 聖人"(St. Esteban)이라고 한다.
맨 아래 예복(禮服) 자락에는 돌로 처형(處刑)되는 순교(殉敎) 당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중앙에 검은 옷을 입은 "오르가스伯爵"(Del Conte De Orgaz)이 누워있다.
그 오른쪽에 "오르가스 伯爵"의 상체를 잡고 있는 분이 "聖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란다.
성인의 옷자락 맨 아래에는 "聖女 카타리나" (St. Catherine)가,
그 위에는 "大 야고보"(St. James The Greater)가,
그리고 맨 위에는 "聖 바오로"(St. Paul)가 그려져 있다.
맨 왼쪽에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오르가스伯爵"을 왼손으로 가리키는 아이가 있다.
"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Jorge Manuel)이다.
이 아이가 커서 "톨레도 聖堂"의 오른쪽 탑의 지붕을 만든 사람이다.
"호르헤 마누엘"(Jorge Manuel)의 주머니에서 삐죽이 나온 손수건에 글자가 적혀있다.
그리스어 서명과 1578, 아이의 출생연도라고 한다.
좌측의 흰색 두건달린 옷을 입은 사람은 "프란치스코 수사" (修士 : Franciscan friar)다.
그 오른쪽 검은 두건을 쓰고 "프란치스코 修士"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우구스티노 修士"(Agustinian friar)다.
거기에서 두사람 건너에 유일하게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엘 그레코"다.
원래 "엘 그레코"는 이름이 아니란다. "그리스에서 온 사람"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플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라고 한다.
"엘 그레코" 오른쪽에 붉은 십자가 문장(十字架 紋章)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 보인다.
"몬테마요르 후작"(侯爵) (Marques De Montemayor)이라고 한다.
붉은 십자가는 "산티아고"의 문장(紋章)으로 "몬테마요르 侯爵"은 "산티아고 기사단(騎士團)의 일원(一員)이라고 한다.
"엘 그레코"도 나중에 "산티아고 기사단"(騎士團)에 들어간다.
나중에 "엘 그레코"는 "몬테마요르 侯爵"을 모델로 "가슴에 손을 얹은 騎士像"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오른쪽을 보면 흰색의 옷을 입은 신부(神父)와 그 옆에 성경을 들고 미사를 집전하는 神父님이 있다.
오른쪽이 이곳의 神父님이신 "안드레스 루네스 마드리드"(Andres Nunez Madrid)라고 한다.
옷 윗부분(성경의 끝부분) 둥근 원(圓)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聖 토마스"라고 한다.
참고로 이 그림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직책을 써 놓은 설명판이 있다.
"산토도메" 聖堂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본 후 부지런히 골목길을 지나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또 다른 큰 성당이 있다.
좌측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서 계단을 내려가면 성당 정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문 입구에 들어가 안을 잠깐 살핀 후 다시 길을 재촉한다.
내려가는 좁은 계단옆으로 창문이 있다. 성당 안쪽의 창문일까?
"Iglesia De San Juan De Los Reyes" 聖堂.(수도원:修道院)
이 聖堂은 1478년경 "이사벨라 女王"(Isabella I)과 "페르난도 王(Fernando II)"에 의하여
수도원(修道院)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도원(修道院)으로 만들고 두 王의 묘(墓)도 이곳에 안장하려 했지만 그리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수도원(修道院) 정문.
수도원 성당 앞 광장 오른쪽에 위치한 대리석 상인데 아무리 봐도 성모님은 아닌듯하다.
성당앞 광장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聖마르틴" 다리가 나온다.
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들은 모두 저 건너에 대기 하고 있다.
Puente De San Martin(聖마르틴 다리)
다리에서 보는 "Iglesia De San Juan De Los Reyes" 聖堂.
" Bano De La Cava"
다리를 건느면서 뒤돌아보면 왼쪽 강가에 "까바(La Cava)의 목욕탕"이라고 불리우는 건물이 있다.
"까바"라는 여인의 실제이름은 "프로린다"(Florinda La Cava)라고 하며
지금의 "지브롤터"부근의 영주(領主)인 "홀리안"(Julian)백작(伯爵)의 딸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이곳의 王이였던 "로드리고"(Rodrigo)가 이곳에서 그녀의 목욕하는 장면을 엿봤다고 한다.
이를 안 "홀리안" 백작(伯爵)은 "로드리고"에게 복수를 할 목적으로
이슬람사람들에게 스페인을 침략할 수 있도록 "지브롤터"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아랍인들이 스페인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설일듯하다.
실제로는 그곳이 "산마르틴" 다리가 있던 자리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이 다리에도 전설(傳說)이 있단다.
서기 1203년에 대홍수(大洪水)로 인하여 원래 있던 다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후에 지금의 다리가 있는 자리에 새로운 다리를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이 다리를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간 교각의 자리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
즉 "톨레도"에 聖堂을 지어야 했는데 커다란 石材를 이 다리 위로 운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목교(木橋)로서는 커다란 석재(石材)의 하중(荷重)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리의 건축 책임자는 이 문제 때문에 죽을 마음까지 먹었다고 한다.
남편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축가의 부인이 그 연유를 알았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아무 염려 말라고 안심을 시킨다.
여자는 다급할 때 무궁한 꾀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며칠 후
한 밤중에 다리에 원인모를 화재가 나서 다리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건축가 부인의 소행이였겠지만 아무도 모른채 다리는 다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후 다리는 지금과 같은 튼튼한 돌다리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를 향하야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