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전두태가 움직인다.
신성한 매실 758
「권 필봉 팀장님께.
폭설이 내리는 기온 속에서도 범인 검거를 위해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 팀장님을 보니 존경심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와 이 서신을 보냅니다.
이 세상에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군민, 나아가 우리 국민이 정녕 원하고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자를 처단하는 것은 우리 군민, 우리 국민이 명령한 것입니다.
결코 사사로운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권 팀장님, 경고합니다!
인제 그만 이 사건에서 손을 떼던지, 아니면 멈춰 주십시오.
만약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당신들 또한 같은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모쪼록 바른 판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천년왕국, 666」
‘전두태가 움직인다!’
최림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권 팀장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확신에 찬 범인 검거에 실패한 상황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편지가 왔으니 얼마나 분노가 치밀까, 생각이 들자 그가 외려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최림은 범인들의 검거 보다 그들의 배후를 캐는 게 이 사건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최림은 편지를 읽자마자 우체국 소인을 확인하였다.
편지는 어제 보냈고 발신 우체국은 이곳이 아니라, 인근 H 읍이었다.
권 팀장이 뒤로 돌아앉은 채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젠 이런 ×같은 놈이 날 갖고 노네. 뭐? 수사를 중지하라고? 이런!”
권 팀장은 의자를 획 돌려 최림에게 물었다.
“누가 보낸 것 같아? 666? 이게 사람 이름은 아니잖아.”
“어제 말씀드린 전두태가 틀림없습니다.”
“전두태? 악령의 우두머리인지 완전체인지 그놈이?”
“네.”
최림은 오히려 이 상황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권 팀장이 자기 말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놈은 악령의 우두머리 그리고 민채원의 연인이자 교주입니다. 원지 둔치의 범인들은 바로 놈과 민채원의 꼭두각시이자, 하수인일 뿐입니다.”
이번엔 어제와 달리 권 팀장의 눈에 빛이 났다.
“그래서 그놈은 어디에 있는데?”
“그건 확실하지는 않지만, 민채원을 만나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최림의 말에 권 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최림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앞으로 네 방식대로 수사해봐.”
그제야 최림은 이번 사건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전두태!’
결국, 권 팀장은 최림의 의견을 전격 수용하였다.
다음 날, 최림은 편지 봉투에 찍힌 곳을 찾았다.
H 읍은 자신이 근무하는 산음 군에 비교하여 꽤 크고 넓은 곳이었다.
최림은 전두태가 보낸 편지의 소인이 찍힌 우체국을 찾았다.
읍 소재지의 우체국은 면 단위의 그곳보다 훨씬 컸다.
주변엔 상가와 식당들이 즐비하여 웬만한 도시 못지않은 풍경이었다.
최림은 우체국 여직원을 설득하여 마침내 해당 일자 CCTV를 돌려보았다.
“이 아이예요.”
여직원은 CCTV 속 어린 여자아이를 지목하였다.
“네?”
“제가 정확히 기억해요. 머리를 쌍갈래로 땋아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가요?”
“네, 이 아이가 편지를 보낸 게 확실해요.”
최림은 순간 머리가 어질했다.
설마 전두태가 아이를 이용하여 편지를 보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 한 까닭이었다.
“이 꼬마 아이를 아세요?”
“네, 그리고선 이 아이를 잊고 있었는데 어제, 건너편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니 이 꼬마가 있었어요. 그 집 딸이었어요.”
최림은 우체국 창문을 통해 여직원이 말하던 식당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분식집이었다.
최림은 여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바로 식당으로 향하였다.
과연 그곳엔 젊은 부부와 아까 CCTV에서 본 꼬마 여자아이가 있었다.
대략 5, 6세 된 아이였다.
최림은 젊은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꼬마 아이와 마주 앉았다.
아주 귀엽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어떤 여자가 편지를 주며 심부름을 시켰단 말이지?”
“네, 맞아요.”
“남자가 아니라 여자 맞아?”
“네. 확실해요. 언니였어요.”
최림은 편지 심부름을 시킨 이가 여자란 말에 또다시 머리가 어질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전두태는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언니라……. 그래, 어떻게 생겼지?”
“키는 작았지만 예뻤어요.”
그 말에 최림은 불현듯 민채원을 떠올렸다.
그는 급하게 그녀의 사진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이 언니니?”
“네, 맞아요. 예쁜 언니.”
그제야 퍼즐이 완성되었다.
‘전두태는 분명히 민채원과 함께 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아이는 사진 속의 여자를 민채원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지리산에 눈이 점점 그치고 있는 만큼 내일이라도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최림은 권 팀장에게만 보고하고 아침 일찍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일단 하루 휴가를 낸 상태였다.
어떻든 민채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한 전두태의 사악함을 증명하고 그를 체포하는 데 협조를 바랐다.
또 자신이 서울집에 찾아가서 그녀의 언니를 만난 것도 말하고 싶었다.
언니가 몹시 그녀를 찾고 있다는 것도 포함하여 말이다.
최림은 천왕봉이 가장 가까운 도평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눈이 그치자 주차장 인근 식당과 가게에는 등산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최림은 간편한 차림으로 그때 권 팀장 일러 준 길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과연 두어 시간쯤 올라가니 요한 공동체 마을의 팻말이 보였다.
좌측으론 천왕봉 우측으로 그 마을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마을은 아주 평화로웠다.
마을 뒤편엔 닭을 비롯한 염소,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민들은 눈을 치우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가 정문으로 걸어 들어간 최림은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똑똑.’
한참을 두드렸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구시죠?”
선글라스를 착용한, 한눈에도 예쁜 티가 물씬 풍기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민서라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여자는 최림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제가 민서라랍니다. 무슨 일이시죠?”
여자는 그제야 선글라스를 벗었다.
‘앗! 이 여잔?’
최림은 기억이 났다.
그녀가 틀림없었다.
“예전에 절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신음경찰서 최림입니다.”
최림은 공손하게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여자는 명함을 유심히 보더니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전 초면인데요? 어쨌든, 손님이니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
최림은 예전에 권 팀장과 김유리가 이곳에서 그녀를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사실을 김유리에게 들을 터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는 차를 내어왔다.
“예전에 산음 경찰서에서 우연히 뵌 적이 있습니다. 서장님을 면담하려다 복도에서 저와 부딪쳤죠. 그때 책 한 권이 떨어졌는데 아마 그 책 제목이 ‘666의 비밀’이었던가요?”
최림은 그녀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미리 선수를 쳤다.
순간 여자는 미간이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평정을 찾았다.
“아! 이제 기억나네요. 하필이면 그때 경찰서 안에서 제일 멋진 경찰 아저씨와 부딪쳤었죠. 여전히 훈남이시네요. 그래서요?”
최림은 여자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수사목적으로 온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휴가거든요.”
“호홋! 이 아저씨 좀 봐? 이마에 ‘수사’라고 적혀있건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솔직히 왜 왔는지 말이나 해봐요.”
“…….”
최림은 그녀의 말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전두태와는 어떤 사이시죠? 아니,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오늘요? 알겠습니다. 준비 잘하세요. 손님이 와서.”
여자는 전화를 끊고 담뱃갑을 탁자 위에 던졌다.
“담배 태우신다면 하나 피우세요.”
그녀는 먼저 자신이 하나 빼서 불을 붙였다
후우 ~ .
“전두태가 여기에 있습니까?”
“…….”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문했다.
“전두태라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최림은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모습에 자꾸 헷갈릴 지경이었다.
“당신은 분명히 전두태와 특별한 관계입니다. 저도 알 만큼 알고 왔어요. 그러니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만 말을 해주세요.”
최림의 집요한 행동에 민서라가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