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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이 8 공주를 불러들였다. 선암계곡파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제일 먼저 입회하고, 다음으로 장회나루파의 구담봉, 옥순봉이 입회하고, 마지막으로 사인암, 도담삼봉, 석문이 입회했다. 잠시 의례적인 첫인사가 오간 후 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내가 음악분수를 하나 놓고 싶은데 누가 가져갈래?”
음악분수란 돈을 넣고 노래를 부르면 그에 맞춰 여러 모양의 물줄기가 색색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말한다. 단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암계곡파의 맏언니 상선암이 말했다.
“선암계곡파는 음악분수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주변이 국립공원에 속속 합격하는 걸 보고 국립공원을 준비 중인 선암계곡파였다. 국립공원이 되기 위한 고시생으로서 음악분수란 얼토당토 않은 얘기였다. 한국팔경, 아니 세계팔경이 꿈인 선암계곡파에게 음악분수라니……. 단양은 이렇듯 늘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선암계곡파가 눈에 거슬렸다. 조금 예쁘다고 국립을 들먹이며 단양과 맞먹으려는 선암계곡파였다. 그래서 단칼로 벤듯한 거절도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군.’
후회해도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단양은 장회나루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회의가 시작될 때부터 계속 귀엣말을 주고받고 있던 구담봉과 옥순봉이였다. 구담봉이 자신을 쳐다보는 단양의 시선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희들도 안 됩니다.”
단양은 의외의 대답에 놀랐다. 이웃하는 제천이 이미 영화음악축제 등 음악을 매개체로 한 대형 축제를 벌이고 있기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장회나루파가 적극적으로 가져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하지만 이런 단양의 생각과 달리 장회나루파의 꿍꿍이는 달랐다. 선암계곡파가 국립공원에 합격해 8 공주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그녀들의 명성이 계속 쭉 이어진다면 8 공주 안에서 자신들의 파가 계속 2 류로 남을 테고, 만약 그게 고착화된다면 그냥 제천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그 때 음악분수가 짐이 될 게 뻔했다. 이런 생각은 지난 번 여행블로거기자단(café.daum.net/tourbloger)을 초토화시켰을 때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음악분수는 가져오지 않는 게 여러 모로 나은 일이었다.
8 공주의 중심을 이루는 두 파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단양은 경청만 하고 있던 사인암과 도담삼봉과 석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것을. 사인암은 선암계곡파의 일원이, 도담삼봉은 장회나루파의 일원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공주들인데 이들이 뭐라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을 리 없었다. 게다가 석문은 늘 도담삼봉의 그늘에 가려진 공주라 8 공주 안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기로 유명했다. 아니, 존재감이 없어 전혀 안 유명했다. 이상하네…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안 유명한 걸로 유명했단 말이다. 단양은 이대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선암계곡파와 장회나루파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두 파가 나간 후 다시 회의를 시작했고, 사인암과 도담삼봉은 그제서야 자기가 가진 생각을 털어 놓았다. 단양과 이들 둘이 나누는 대화는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그럴수록 서로의 속마음이 깊이 드러났다. 넷만 있는 회의에서도 석문의 존재감은 없었다. 그저 도담삼봉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사실 석문은 도담삼봉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돌아앉은 처를 위해 봉우리 하나, 임신한 첩을 위해 봉우리 하나를 줘버린 도담삼봉이기에 더 이상 나눠 줄 봉우리가 없는 게 문제였다. 석문은 그래도 도담삼봉을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라 더욱 간절하고 애닯았다. 여자들끼리 하는 처, 첩, 짝사랑이라 현실과 동떨어진 순수함이 깊이 베어 있었다. 오랜 숙의 끝에 도담삼봉이 음악분수를 가져가기로 했다. 선암계곡파를 따라 국립공원을 준비 중인 사인암이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구나. 도담삼봉, 네가 가져가야겠다."
도담삼봉에게 이 말을 건네는 단양의 표정에 약간의 어두움과 함께 이름 모를 야릇함이 들어 있었다. 다른 공주들을 대하는 것과 약간 다른 미세한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사실 도담삼봉도 음악분수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 심하게 반대했지만,
“그렇다면 너와 석문을 8 공주에서 빼고 온달산성과 북벽을 넣겠다!”
이렇게 소리치는 단양과 옆에서 도담삼봉의 절벽을 잡으며,
“삼봉님께서는 처와 첩과 저를 생각해 주시와요.”
하는 석문의 간청을 이길 순 없었다.
이윽고 도담삼봉에 음악분수가 설치됐다. 그런데 당초 우려와 달리 대박이 나버렸다. 한 곡당 1,000 원이었는데 그 한 곡을 부르기 위해 선 줄이 저 멀리 남한강 건너 금굴에까지 닿았다. 음악분수가 성공함에 따라 8 공주 내 도담삼봉의 입지 또한 높아졌다. 단양은 내심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거대한 두 파를 견제할 힘이 생기지 않았는가! 원래 세상은 삼분이 되어야 함을 삼국지가 몸소 보여주지 않았는가! 단양은 도담삼봉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곡당 가격을 2,000 원으로 올렸다. 이에 덩달아 처와 첩도 봉우리를 곧추세웠다. 도담삼봉 자신은 멋들어진 정자를 달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장회나루파의 전유물이었던 유람선도 띄웠다. 도담삼봉이 뜸에 따라 석문의 지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선암계곡파는 도담삼봉의 급부상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어차피 국립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선암계곡파이기에 급이 다르다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회나루파는 달랐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길을 가진 것도, 봉 자 돌림인 것도, 유람선이 뜨는 것도 모두 경쟁 분야였다. 제천으로 넘어가더라도 이렇게 볼성사납게 넘어가고 싶진 않았다. 아니, 이렇게 지위가 자꾸 추락하다가는 제천이 받아 주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8 공주에서 밀려 떨어져 나온 장회나루파를 흔쾌히 안아줄 제천이 아니었다. 구담봉이 유람선을 보내 도담삼봉을 불렀다. 도담삼봉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노래 한 곡 부르시면서…….”
구담봉의 부름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오히려 네가 오라는 답변이었다. 과거 같으면 당장 달려왔을 도담삼봉이고, 달려가서 도담삼봉을 남한강에 처박았을 구담봉이었지만 세상이 이미 바뀌어 있었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이빨을 부드득 갈며 도담삼봉을 찾아갔다.
“도담삼봉아, 너를 장회나루파에 넣어주마. 함께 하자.”
이 말에 도담삼봉은 속 시원히 한 번 웃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이 도담삼봉파에 들지 그러냐? 너희들은 합쳐봐야 이 봉이지만 난 삼 봉이야.”
대화는 결렬됐다.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장회나루로 돌아와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 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여행블로거기자단이었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조용히 여행블로거기자단의 단장 마패를 불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게 이 바닥의 생리는 아니지만 우리가 언제 적이었던가? 아니잖아? 우리는 무슨 사이다? 천연사이다. 우리는 무공해 천연사이다. 내 나라 내 땅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친 우리는 형제나 다름 없잖아? 반갑다, 친구야. 협상은 이렇게 청산유수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해서 주어진 임무가 바로 도담삼봉의 약점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이런 어두운 쪽의 일은 하지 않는 기자단이었지만 경제가 경제인만큼 다시 한 번 사진기의 먼지를 털고, 렌즈(Lenz)를 닦고, 기자단 내 최정예 팀(Team)이 꾸려졌다.
토마스가 이끄는 기차팀,
지다가 이끄는 촬영팀,
역마살이 이끄는 소설팀,
릴리가 이끄는 음향팀,
날아보자가 이끄는 항공팀,
유담과 돌담이 이끄는 방어막팀,
예에쁜영어쌤과 산수유가 이끄는 미인계팀,
나나와 해피쭌과 에슬린이 이끄는 마스코트님,
밥대장이 이끄는 수중팀,
작전이 작전인 만큼 이번에는 야간침투를 감행했다. 밤 10 시, 여행블로거기자단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도담삼봉을 잠입해 들어갔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남한강 수로를 따라서였다. 밥대장이 이끄는 수중팀이 선두였다. 그런데 원래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야 할 그 시각에 단양이 음악분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도담삼봉도 훤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기자단 모두가 놀라 제자리에 멈췄다.
‘함정일까?’
마패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함정이 아닐까? 단양과 여행블로거기자단 간의 돈독한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게 아닐까? 장회나루파의 복수인가?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이빨이 맞는 게 없었다. 마패는 역마살을 불렀다.
“소설 한 번 써봐라.”
하지만 천하 역마살도 떠오르는 영감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마패는 작전을 수정했다. 모르게 진행하려던 야간침투계획을 접고 공식적인 방문으로 위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밥대장의 수중팀을 잠수시켜 돌려보내고, 토마스가 이끄는 기차팀을 응급실로 보냈다. 만약 공식적인 방문이 전투로 바뀌었을 때 결국 병원을 접수하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음을 마패는 알고 있었다.
마패는 여행블로거기자단을 이끌고 음악분수로 다가갔다. 음악분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현란하고 힘차게 물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불을 밝히고 있던 도담삼봉이 여행블로거기자단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단양이 마패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았다.
“안 그래도 그 날 이후로 참 보고 싶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단양의 특산물, 마늘을 받아라. 농협이 수매할 때 의성, 남해 마늘에 비해 가격을 높이 받는 알짜 마늘이다. 이마트(Emart)에서는 우리 마늘만 가져 간다. 자, 받아라.”
‘휴~’
마패는 우선 안심했다. 함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놀기 시작했다. 작전도 작전이지만 단양이 있는 상태에서 장회나루파가 의뢰한 작전을 계획대로 펼칠 순 없었다. 마패는 기자단 전원을 음악분수 무대로 부르는 척하며 눈짓으로 각 팀의 정예요원 몇 명을 뒤에 남겨서 도담삼봉에 관한 정보를 캐게 했다. 정예요원들은 서로 중복되지 않은 각도에서 도담삼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그저 좋게만 바라보던 도담삼봉이 예사롭지 않은 여행블로거들의 사진 공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예요원들이 투입됐던 만큼 얻은 정보는 많았다. 쉽게 볼 수 없던 도담삼봉의 야경을 마음껏 탐닉한 것이 그 중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 모두는 음악분수에서 단양의 혼을 쏙 빼놓은 마스코트팀의 열연 덕분이었다. 역시 여행블로거기자단의 마스코트팀은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문화 아이콘(Icon)임에 틀림없었다. 어떤 풍경을 배경으로 깔든, 어떤 노래를 갖다 대든 모두 예술이 돼버리는 특출한 존재였다. 이 날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 또한 많았다. 잃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여행블로거기자단이 어떤 이상한 목적을 가지고 투입됐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사실이었다. 이는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기자단은 다음날 낮에 도담삼봉을 다시 찾았다. 전날 밤에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삼봉 간의 치정 관계, 삼봉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의 역할, 석문의 불만 등을 캐내기 위해 모든 각도에서 모든 노출, 모든 셔터(Shutter) 속도로 공격을 감행했다. 지다가 이끄는 촬영팀은 많은 전력이 필요한 장시간 동영상 촬영작전까지 펼쳤다. 하지만 전날 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도담삼봉의 준비는 완벽했다. 단서가 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석문은 아예 문까지 굳게 닫혀 있었다. 기자단이 중점 공략 대상으로 삼은 석문이 그렇게 원천봉쇄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도담삼봉은 시간부족을 이유로 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양의 얼굴을 봐서 그런 것일 테고 결국 기자단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임에 틀림없었다.
도담삼봉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 한 여행블로거기자단은 도담삼봉의 더 먼 과거를 캐기 위해 근처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으로 향했다. 마패는 선사유물전시관으로 가는 동안 이게 과연 제대로 짚은 것인지 반신반의했지만 지나가는 도로가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하고 안심했다. 특히 두 개 연속해서 통과하는 굴다리에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마패는 버스(bus)를 세웠다. 기자단은 마패의 지시에 따라 굴다리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 굴다리 사이에서 이쪽저쪽을 공격하다 갑자기 기차팀을 이끄는 토마스가 소리쳤다.
“이건 옛날 중앙선이 지나던 철길이다!”
그러고 보니 굴다리는 기차 한 대가 드나들기 적당한 크기였다. 이건 큰 단서였다. 도담삼봉 옆으로 중앙선이 버젓이 놓여 있는데 옛날에는 이쪽으로 놓여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은폐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굳이 기찻길을 다시 놓으면서까지 감추려고 한 게 무엇일까? 이건 정말 큰 수확이었다. 기자단은 고무된 채 좀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급한 마음에 마음이 먼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 가 있었다. 달리는 도로를 따라 남한강이 흐르고, 남한강 너머로 새로 놓인 중앙선이 달리고 있었다. 단양역이 중앙선 위에 걸터앉아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으로 향하는 여행블로거기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기자단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거대한 사실에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여행블로거기자단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 도착하자 문화해설사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자단을 맞았다. 생각지 못한 공격 아닌 공격에 기자단이 움찔했다. 유담과 돌담이 이끄는 방어막팀이 보호막을 펼칠 태세를 갖췄다. 별다른 공격은 없었지만 좋지 않은 느낌이 기자단을 짓눌렀다. 소설팀을 이끄는 역마살이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가며 계속해서 소설을 수정하고 있었다. 소설이 가설이 되고, 가설에 몇 가지 사실만 더해지면 그대로 진리가 되는 법이다. 다른 여행블로거들이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의 구석구석을 공격하는 동안 역마살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가설에 사실 하나를 보태기 위한 질문을 문화해설사에게 했다.
“1 층에 있는 맘모스와 코뿔소 화석이 진짜인가요?”
“예, 진짜입니다.”
역마살이 세운 가설이 진리에 한 단계 가까워졌다.
‘선사 유적과 전혀 상관 없는 맘모스와 코뿔소 화석을 실물로 갖다 놓을 정도로 감춰야 할 중요한 게 있는 곳.’
역마살은 계속해서 소설을 써나갔다. 릴리가 이끄는 음향팀이 팝송(Pop Song)으로써 역마살을 도왔다. 이미 진리가 된 가설은 이것이었다.
[ 도담삼봉의 뿌리는 단양의 깊은 역사에 닿아 있다. ]
잠시 후 문화해설사는 기자단을 시청각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영화 한 편을 틀어줬다. 동영상의 내용은 선사시대에 관한 것이었다. 재미도 없고 말도 안 되는 화면을 보면서 다들 이런 영화를 왜 보여 주냐며 불평했지만 역마살이 이끄는 소설팀과 릴리가 이끄는 음향팀만은 영화에서 조그만 단서라도 하나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고 있었다. 5 만년 전의 수양개인이 나오고, 충주호가 나오고, 도담삼봉이 나오고, 가죽신을 뒤집어 신고 있는 옥의 티도 나오고, 고대 ‘나잡아봐라’도 나오고, 진짜 토끼 껍데기를 벗기는 장면도 나왔다.
‘앗! 그렇구나! 이건 경고다!’
도담삼봉에 대해 ‘나잡아봐라’ 식으로 뒤를 캐다가는 수장되거나 껍질이 확 벗겨져 가죽신이 된다는 경고였다. 그렇다면 첫 화면의 ‘5 만년 전’은 무슨 의미일까? 깊은 뿌리? 어쨌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영화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역마살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문화해설사는,
‘너희들이 저걸 해석해 낼 수 잇겠어? 바보들…….’
이런 의미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역마살이 자신을 지켜 보고 있음을 발견하고 얼른 표정을 고쳤다. 이건 틀림없이 암시이자 경고였다. 역마살은 소설팀을 소집했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 소설팀 내부 회의를 열었다. 의견교환이 거듭되면 될수록 이것이 경고임이 더욱 명백해졌다. 역마살은 마패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마패는 멀리서 기자단을 향해 일장연설을 하고 있었다.
“뭔가 큰 흐름 속에 우리가 들어 있다. 다들 느끼지? 그래서 우리는 좀더 깊숙이 들어가려 한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빠질 여행블로거는 빠져도 좋다. 우리가 갈 곳은 바로 다리 안 계곡(Valley in the middle of two legs)이다.”
마패의 이 말이 끝날 때쯤 역마살이 도착했다. 그리고 역마살이 마패를 향해 소리쳤다.
“안 됩니다, 단장님. 이 공격은 이쯤에서 접어야 합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도담삼봉이 아니라 단양 전체가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패는 역마살의 말을 거부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다리 안 계곡에서 우리는 도담삼봉의 근원을 찾을 것이다. 가자!”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들을 지켜 보고 있던 단양역이 빨간색 피존(Pigeon)을 날렸다. 그리고 산 중턱에서 총소리가 들려 왔다. 피존을 박살낸 산탄이 기자단의 머리 위를 날아가 반대편 산에 박혔다. 경고사격이었다. 그리고 다시 피존 2 개가 날아올랐다. 산 중턱에서 다시 총소리가 들려오고 산탄이 기자단 머리 위를 날아가 아까 그 반대편 산에 박혔다. 두 번째 경고사격이었다. 방어막을 펼칠 겨를도 없는 기습 공격이었다. 세 번째 피존이 날아오를 때는 모두 유담과 돌담이 펼친 방어막 돌담 뒤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여행블로거는 모두 불안함을 느꼈지만 마패는 뜻을 굽히지 않고 다리 안 계곡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단양역과 선사박물관 사이의 남한강에서 물고기들이 뛰어 올라 가시 공격을 시작했다. 가시는 돌담의 돌 틈을 요리조리 통과해서 여행블로거 개개인의 식도에 꽂혔다. 여기저기서 켁켁 하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쏘가리가 쏘는 큰 가시는 돌 틈을 통과하지 못 하고 돌담에 박혔다. 밥대장의 수중팀이 남한강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피해를 주지 않는 쏘가리 등 큰 고기를 제외한 잡어들을 모조리 잡아 민물매운탕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도 우리나라의 산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행블로거기자단의 기품이 드러난다. 절대로 싹쓸이를 안 한다. 직접 피해를 주는 놈만 골라 잡아서 매운탕을 끓인 것이다. 가시 공격이 멈춘 후 여행블로거들은 일제히 남한강을 쳐다 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밥대장이 이끄는 수중팀이 저마다 매운탕을 한 냄비씩 들고 물 위로 나왔다. 매운탕 안에 쏘가리는 없었다. 이를 확인한 여행블로거기자단은 서로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사랑 받아 마땅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함에 마땅했다. 그리고 이 두 번의 공격에 놀란 기자단은 얼른 버스에 올라 다리 안 계곡으로 향했다.
버스가 막 도담삼봉을 지나려 할 때 여행블로거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도담삼봉을 쳐다보았다. 도담삼봉 또한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여행블로거기자단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담삼봉을 촬영하던 지다가 조용히 마패에게 다가가 얘기했다.
"도담삼봉 뒤를 보십시오. 석문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랬다. 석문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촬영팀이 석문의 신호를 촬영해서 조합했다.
"금굴에서 좀 보자고 하는데요."
의외였다. 석문이 보자고 하다니. 그것도 금굴에서. 금굴이라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다. 마패는 각 팀의 장을 이끌고 금굴로 들어갔다. 석문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들은 석문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이었다. 단양과 도담삼봉은 그 옛날 구석기시대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석문은 금굴 안의 땅을 들춰 보여줬다. 그 안에는 무려 7 개의 문화층을 관통하며 단양과 도담삼봉 간의 사랑의 징표가 새겨진 슴베찌르개, 밀개, 주먹도끼, 좀돌, 창날, 화살촉,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청동기 등이 들어 있었다. 무려 7 개의 문화층을 관통하면서 말이다.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에서 본 영화에서 나온 그 ‘5 만년 전’에 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석문은 이런 얘기까지 해줬다. 도담삼봉의 첫사랑은 영월이었는데 단양이 힘으로써 홍수를 일으켜 도담삼봉을 뺏어왔다고.
마패와 각 팀장들은 먹먹한 가슴을 안고 금굴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석문이 막 뒤따라 금굴을 나오려 할 때 금굴 안에서 폭탄이 터졌다. 나중에 단양이 무장공비의 소굴을 없애느라 그랬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던 그 폭발이었다. 덕분에 석문의 문짝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지금처럼 그저 돌 보만 남게 된 것이다.
버스로 돌아와 마패가 여행블로거들을 모두 모아놓고 공격 중지를 선언하려 할 때, 갑자기 양백산 인공폭포가 제 몸을 늘여 올가미로 변신하더니 다짜고짜 기자단을 향해 날아왔다. 3 개의 폭포였다. 다들 엎드렸지만 촬영 욕심에 서 있던 지다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줄사랑과 여기에 덩달아 니하오가 올가미에 걸려 양백산 정상으로 끌려 갔다. 날아보자의 항공팀이 얼른 따라서 날아올랐지만 역부족이었다. 항공팀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넋을 놓고 양백산을 바라보던 기자단의 등 뒤에서 구슬프게 울먹이는 도담삼봉의 절규가 들려왔다.
"단양님, 안 됩니다."
어디에도 단양이 보이지 않았지만 도담삼봉은 그렇게 단양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단양님!"
기자단은 도담삼봉과 양백산 사이에서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보고 있었다.
“아악!”
도담삼봉의 절규와 거의 동시에 아까 잡혀간 지다와 줄사랑과 니하오가 양백산 정상에서 절벽 아래로 던져졌다. 여행블로거들은 일제히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사진기의 초점용 광선으로 셋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명이면 모를까 셋으로 분산된 목표물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광선만 쏘고 있을 때 날아보자가 항공팀을 이끌고 방어막팀을 태워 날아 올랐다. 그리고 떨어지는 지다와 줄사랑과 니하오에게 각각 방어막을 하나씩 던졌다. 지다와 줄사랑과 니하오는 이 방어막을 펼쳐서 낙하산 삼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날아보자의 기지가 이들 셋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여행블로거기자단은 단양을 떠났다. 더 이상 단양에서 뭘 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 모두를 알게 된 선암계곡파는 질투에 휩싸여 목숨을 걸고 국립공원고시를 준비했고, 이에 합격해 국립공원에 당당히 뽑혔다. 첫 근무는 월악산국립공원에서였다. 비록 단양을 벗어나진 못 했지만 그래도 단양보다 높은 위치에서 단양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인암도 선암계곡파를 따라 국립공원고시에 합격하긴 했지만 정도전과 우탁선생이라는 듣도 보도 못 한 이상한 관계에 휩싸여 국립공원 바로 밖에 걸리고 말았다. 장회나루파는 도담삼봉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남한강 물길을 넓혔다. 물이 많을 때는 서로 작은 배도 오가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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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저히 회사에서는 못읽겠네.... 이러니 깁스를 하죠... ㅋ 집에서 다시 읽어 볼건데... 하나는 확실하네요... 아르고 없드라... 삐졌어~~~~
새벽 두시까지 이 말도 안 되는 거 쓰고 있다가 저한테 혼났습니다... 말도 안되는 전설이야기 제발 그만 썼으면 좋겠습니다.. 잘려고 누워서도 전설이야기를 저한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