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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받지 못한 유품이 있습니다. 위치 추적 결과 참사 당일 현장 부근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던 딸 아이의 휴대전화를 아버지는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보고 싶을 때면 예전에 딸이 쓰던 휴대전화를 충전해 열어 보곤 합니다. 깨진 휴대전화 액정 너머 송은지씨는 언제나 웃는 얼굴입니다.
고 송은지. 1998년생. 10월29일 이태원 골목에서 숨진 158명 중 한 명입니다.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유가족을 찾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찾는 일도, 다른 유가족과 연결되는 일도 모두 유가족 당사자가 발벗고 나서야만 했습니다. 참사 발생 42일만인 지난 12월10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송씨의 아버지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모든 게 처음 겪는 일” 앞에 서있습니다.
■ 방송 : 시사IN 유튜브 〈정치왜그래?〉(매주 화요일 저녁 7시 / https://youtube.com/sisaineditor)
■ 진행 : 최한솔 PD
■ 대담 : 고 송은지씨 아버지
12월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이 열렸다.ⓒ시사IN 신선영
☏ 진행자 / 유가족 협의회 활동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아버지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0여 일이 지났습니다. 처음 저희 유가족이 만났을 때 열 다섯가족, 25명이 처음 만났는데요. 그 이후 정부 여당에서는 현재까지 유가족이 서로 만나서 소통하고 또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이나 연락처조차 아직까지도 알려주지 않고 있어요. 행안부, 지자체, 구청 여러 루트로 요청했는데데 ‘명단이 없다’면서 거짓말로 발뺌하면서 유가족에게 상처를 많이 줬죠. 그래서 저희 유가족이 개인적으로 알음알음 연락을 취해서 현재 거의 한 100여 가족, 그리고 유가족은 거의 180명이 지금 모여서 같이 소통하고 서로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알음알음 연락처 취합하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 아버지 / 그렇습니다. 민변에서 저희 유가족들을 도와주었고 민변의 도움이 컸습니다.
☏ 진행자 / 참사 이후 지금 40여 일 지났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 아버지 / 처음에는 참담하고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유가족이 같이 힘을 합쳐서 소통하면서 같이 위로하고, 거의 매일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서로 많이 의지가 되실 것 같습니다.
☏ 아버지 / 많이 위로가 됐습니다. 제 딸로 인한 저의 아픔도 있지만 다른 유가족 역시 그런 아픔이 있다는 걸 이런 소통 공간을 통해서 알았고요. 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사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 진행자 / 떠올리시기 힘드시겠지만, 10월29일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아버지 / 10월29일 밤 당일에는 이태원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난 줄 몰랐습니다. 제가 좀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인이 이태원에서 엄청난 사고가 났는데 제 아이들이 27살, 25살이고 하니까 ‘혹시 이태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염려하면서 전화를 했어요. 저희가 깜짝 놀라서 이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까 이태원에 그런 엄청난 사고가 생겼더라고요. 큰 딸은 바로 통화가 됐는데, 작은 딸은 통화가 안 됐어요. 설마했죠. 아침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어요. 제가 112에 신고하고 또 다산콜센터에도 신고를 하고 또 한남동 주민센터에도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10월30일 오전에요. 경찰 쪽에서는 ‘기다려봐라’ 그랬는데 제 딸이 친한 친구가 있어요. 여기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라 같이 갔을 수도 있어서 친구를 찾아봤어요. 근데 그 친구가 병원에 있다는 거예요. 제 딸은 그때 생사도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고요. 제 딸 신원이 늦게 밝혀졌어요. 신원이 그러니까 거의 한 오후 4시쯤 밝혀져가지고. 18시간 정도 딸 아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저희가 동분서주, 엄청 많이 알아보고 했는데 결국에는 주검으로 이렇게 돌아와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 진행자 / 신원 파악이 왜 그렇게 늦어졌다고 보시나요.
☏ 아버지 / 그것도 저희가 경찰 쪽에 문의했어요. 나중에 이제 다목적 용산 유실물센터에서 제 딸아이의 소지품을 찾았습니다. 핸드백하고 저희 이제 신분증하고 있었는데 그 현장에 그런 소지품이 다 있고 제 딸아이 이렇게 지문을 채취를 하면 바로 있고 신원이 나왔을 건데 왜… 그리고 지역이 서울 서대문인데 지역이 네 사는 데가 그런데 왜 평택, 평택 장례식까지 갔는지 너무너무 믿을 수가 처음에는 없었고 화가 많이 나기도 하고 너무너무 많이 아프고 그랬었습니다.
☏ 진행자 / 은지씨 휴대전화는 아직 찾지 못하셨다고요.
☏ 아버지 / 아직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경찰 쪽에도 오늘도 전화를 해보고, 저쪽 강남에 유실물 휴대전화만 취급을 하는 센터에도 해봤는데 아직까지도 분실된 휴대폰을 자기들이 수거하지 못했다는 그런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0월30일 오전 6시에 제가 아이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해달라고 하니까, 그때까지 참사 현장에 제 딸 휴대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최종 위치가. 오전 6시면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된 시간이었거든요. 경찰이 배치되어 일반인은 참사 현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차단됐었는데. 거기에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틀림없이 수거가 됐을 텐데 왜 아직까지 그걸 찾지 못하고 있는지 그게 지금도 의문입니다.
☏ 진행자 / 참사 이후에 은지씨 구조 과정이나 경기 평택의 장례식장에 이송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 아버지 / 다른 유족도 비슷한 상황인데,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만, 제 딸 아이만 평택 장례식장에 있고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유가족도 주소와 상관없는 거리가 먼 지역에 애들을 안치했더라고요.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겠지만 이건 충분히 우리 유가족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의구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 진행자 / 사후 조치 과정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못했다고 느끼시는 거죠?
☏ 아버지 / 당연합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컨트롤타워가 있었으면 이런 압사 사고가 없었겠죠. 이게 재난이잖아요. 인재라고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콘트롤타워가 부재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8년 전 세월호 그때도 전례가 있었잖아요. 시간이 이만큼 지났는데… 시스템은 물론 있었겠습니다만, 그걸 실행을 안 해서 이런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나, 저희 유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하셨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어떤 대응이 있었나요?
☏ 아버지 / 저희가 수차례 정부나 여당 쪽에 몇 가지 요구를 했어요. 그런데도 지금 행안부나 여당 쪽에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고요. 무관심 무대응, 그런 방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하고 있어서 저희 유가족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야가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까지 해놓고 또 정치적인 이유로 지금 또 국정조사가 표류하고 있잖아요. 45일간 하는 걸로 날짜가 지금 정해졌는데. 이미 절반 가량 지났습니다. 국정조사가 무슨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안타깝고 궁금합니다.
서울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는 추모객의 포스트잇으로 빼곡하다.ⓒ시사IN 신선영
☏ 진행자 / 특수본 수사도, 국정조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 아버지 / 당연합니다. 지금 저희가 1차적으로 요구하는 게 책임자 처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책임, 진실 규명 없이,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그분이 지금 행안부입니다. 경찰하고 소방까지 다 관여하고 있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죠. 그분이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무슨 수사가, 얼마나 수사가 성역없이 진행될지 저희 유가족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파면하고 용산경찰서장이라든가 용산구청장도 다 파면시키고, 그런 다음에 국정조사도 하고 그래야 그 유가족의 한을 어느 정도 위로해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영정도 없고 위패도 없는 그런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어요. 며칠 동안 그런 조문을 했다는 걸 기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저희 유가족은 믿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저희 유가족 앞에서 깨끗하게 사과를 하시고 앞으로 이런 사고가, 이런 이런 참사가 발생되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런 말씀 해 주시면 저희 유가족은 한이 어느 정도 풀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유가족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 아버지 / 예,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한 사과는 글쎄요. 그건 종교단체, 종교 집회에서 사과이고 저희 유가족 앞에서는 그런 사과가 없었습니다. 그건 진정한 사고가 아니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이상민 장관 파면 관련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참사 책임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한 참사 원인 규명이 제대로 안 될 것이라고 보시는 거죠?
☏ 아버지 / 현재 특수본에서 수사를 하고 있는데 특수본을 관할하는 부처가 행안부입니다. 거기 장이 이상민 장관이고요. 특수본에서 어떻게 수사를 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그런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상민 장관을 장관의 자리에서 파면시키고 수사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참사 이후 유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게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들인 것 같습니다.
☏ 아버지 / 저도 언론을 통해서 알았는데요. 권성동 의원 말(“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은 저희 유가족 마음을 다시 한 번 마음을 후벼파는 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와 함께 하는 시민단체는 참사에 대해서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런 참사를, 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저희가 지금 처음 당한 일이라 어떻게 할지를 모릅니다. 시민단체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세월호 유족들까지 같이 언급했다는 게 저희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막을 수 있었던 참사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좀 더 중점적으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 아버지 /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건 충분히 예견된 참사잖아요. 참사가 일어나기 며칠 전에 10만이 넘는 사람이 몰릴 거라고 예상하고 대책을 세운 보고서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보고서를 묵살하고 또 회유하고 삭제하고 그런 행동을 했던 관계된 분들이 일부는 구속됐다지만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지금 있다라는 게 저희 유가족들을 마음을 너무너무 아프게 하고요.
고 송은지씨. 송씨가 예전에 사용했던 휴대전화 사진을 아버지가 찍어 보내주었다.
☏ 진행자 / 따님 많이 보고 싶으실 것 같아요. 은지씨는 어떤 딸이었나요.
☏ 아버지 / 1998년생, 만으로 스물 넷이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거의 투정도 안 부리고, 용돈도 자기 스스로 해결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기가 그렇게 생활을 했고요. 나중에 제가 딸아이 다니던 회사도 가봤어요. 회사가 여의도에 있었습니다. 여행사였는데. 회사 생활을, 그런 얘기를 엄마 아빠한테도 잘 안 합니다. 내색을 잘 안하죠. 제가 회사 가서 동료 직원들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그 회사에서 막내로 입사를 했는데 일도 빨리 배우고 성실하게 일도 해서 회사 관계자분들한테 인정도 많이 받고 아주 착한 아이였다는 그런 얘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회사생활 이라든가 또는 속마음 같은 걸 더 많이 나누고 조언하고 이야기도 할 걸, 그런 후회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은지한테도 너무 미안합니다.
☏ 진행자 / 협의회 활동과 생업을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아버지 / 네. 제가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책임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이제 저희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서 사과할 건 사과하고, 진실 규명도 해주고, 책임자도 책임지우는 그런 일로 해주면 저희 유가족은 바랄 게 없습니다. 저희가 빨리 일상생활에 돌아갈 수 있도록,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런 도와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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