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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길은 1983년 곽효균 씨를 주축으로 개척된 길이다. 최근 <요세미티 엘캐피탄 동남벽 아메리칸월 ‘세 마리 해마 트리 시 호스 코스 개척등반보고회>라는 다소 긴 이름의 보고회를 연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일찍이 ‘대자연으로 출가’한 타고난 바위꾼이다.
1967년 숭실고등학교 산악반을 창설하면서 본격적인 암벽등반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에코길 개척 초등반을 비롯해서 남측슬랩 A, B, 알핀로제스, 뱀길, 빌라길 상단, 거룡길, 궁형길 등의 코스를 초등반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77년부터는 설악산 울산암, 남벽, 번개길 개척 초등반을 시작으로 적벽 A, B, C코스 또한 초등반 했다.
1960년대부터 히말라야 빅월등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패시(PASI/Professonal Assosiation Sports Instructors)를 운영하면서 비로소 인수봉 남벽에 패시길과 나그네길 개척등반을 한 것이다.
그는 1984년도에 한국알파인가이드협회에서 꾸린 네팔 샤르체(7,459m) 원정대에 참가해 등정을 마치면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 일부를 절단했다. 이후 1985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해왔다. 한편 곽효균 씨는 올 여름시즌 요세미티 대암벽 빅월등반 안내가이드를 준비하며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지난 4월19일 오전 10시경에 곽효균 씨와 전화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패시길 개척 당시의 동기가 있다면?
1981년도에 PASI라는 스포츠, 레저 스쿨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암벽등반, 빙벽등반, 윈드서핑, 스키 등을 가르쳤죠. 패시길은 제가 리딩을 하고 당시 '오이지'로 유명했던 전준수(사망), 박병원(뉴욕 거주), 하관용 등과 함께 개척한 길입니다. 1970년대에는 오버행을 넘을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이미 캠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개척 당시 사용했습니다.
개척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패시길은 원래 크랙이 전혀 없던 길입니다. 나무와 풀, 흙 밖에 없었어요. 이것들을 피켈과 호미로 다 파냈습니다. 그런데 장마가 오고 비가 계속 오다보니 비로소 바윗길이 된 거죠.
개척 당시에는 암장운동이란 것도 없었고 자신이 그렇게 특출한 클라이머라는 생각도 하지않았다는 곽효균 씨는 이제와서야 당시의 일들이 대단했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제가 미국에 갔을 때도 프로산악인으로 갔고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닌 앨캐피탄 요세미테에 트리 시 호스 길을 냈습니다. 요세미테가 생각보다 등반이 힘든 곳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쟁쟁하다는 분들도 완등을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이분들을 무상으로 도와드렸지만 이제는 보다 많은 한국의 산악인들이 이 길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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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균 씨는 미국에서 '사가르마타'라는 브랜드의 등산복 제조업을 하고 있다.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전문가를 위한 제품이라고 한다. 또 내일은 곧 인수봉에 올라서 나그네길을 포함해서 정리되지 않은 길들은 마무리 하겠다고 했다.
곽효균 씨는 “개척자가 낸 길이 바뀌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또 원래의 길이 다른 길과 이어져서 사용되는 풍토는 바윗길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므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미국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현상”이라고 일침했다.
인수와 적벽에 숱한 길을 낸 베테랑 산악인인 곽효균 씨와 당시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앨케피탄을 오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곽효균 씨 연락처 : 010-5717-2888, 미국 0011-213-258-5026)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불가능할 것도 같지만 굳세게 오르는 바윗꾼에게는 이내 오름짓을 허락해 주는 길. 무언가 끓어오르는 도전정신이 바위에 그대로 표현된 것과도 같은 바윗길. 이미 30년 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저 멀리 미국 앨캐피탄에 형제와도 같은 바윗길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바윗길. 1980년대초, 빅월등반을 꿈꾸며 인수에 새긴 패시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바위꾼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바윗길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