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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기드온
언약궤를 메면
수 3 : 1-6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 비스가 봉에서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었습니다(신34:1-5). 그래서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으로 인도한 후 백성들에게 명하기를,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면 백성들은 언약궤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뒤를 좇을 것이고 백성들은 스스로 성결하게 하여 하나님이 큰 기사를 행하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언약궤는 무엇인가?
언약궤는 조각목(가시나무)을 다듬어서 만든 것으로 길이가 114cm 정도되며 높이와 넓이가 69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상자였습니다. 이 상자는 금으로 안팎을 칠하였습니다. 이 상자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 판과 싹이 나고 열매가 달린 아론의 지팡이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간 먹었던 만나를 넣어 둔 이 금 항아리를 언약궤라고 하는데, 법궤, 증거궤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는데 '하나님의 궤'라고도 하였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 있는 돌비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이며 만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는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언약궤는 손으로 만져도 안되고 속화시켜도 안되며 가감하여도 안되고 거룩하게 지켜져야 했습니다.
이러한 언약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였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출25:21-22). 또 이 언약궤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였습니다(삿20:26-27).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이 언약궤를 어깨로 메어 운반하였으며 백성들은 이언약궤 중심으로 살면서 이 언약궤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언약궤를 경건하게 어깨로 메는 교회가 되야 합니다.
둘째. 언약궤의 뒤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면 백성들은 언약궤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언약궤의 뒤를 좇아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좇았지만 이제부터는 언약궤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은 언약궤의 뒤를 좇아서 요단강으로 들어갈 때에 요단강 물이 갈라진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그 뒤를 따라 요단강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신앙고백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진리운동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운동에 힘쓰고 진리운동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지만, 성결케 하면 요단강이 갈라져서 가난안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몸도 의복도 성결케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마음도 성결하게 하여야합니다.
하나님은 큰 일을 하실 때마다 성결케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구원받는 유월절 때는 양의 피를 발라 성결케 하였습니다(출12장).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도 옷을 빨아 성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출19:10). 광야에서 메추라기를 주실 때도 성결케 하라 하였고(민11:18). 지도자를 구별하여 세울 때도 성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요엘2:15-16). 요단강을 열어주실 때도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 야곱이 세겜성 앞에 장막을 치고 사는데 가정에 풍파가 일어났습니다. 또 세겜성 사람들이 야곱 가정을 해하여 원수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족을 불러 모아놓고 가정에 있는 이방의 신상과 세속화 된 향락과 사치품들을 모아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성결케 하고 벧엘로 올라가지, 하나님께서 세겜 사람들의 협박을 막아주셨으며 야곱이 가는 길을 형통케 하여 주셨습니다(창35장).
죄를 숨겨두면 하나님은 역사(役事)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성결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먼저 성결케 하여야 합니다.
결 론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택하시고 애급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며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운동은 법궤 운동입니다. 법궤 운동은 말씀 운동이며 신앙 운동이며 성결 운동입니다.
잠3:5-8 절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
교회생활을 말씀으로 충만케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며 믿음으로 성결에 힘써서 임마누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 - 멘.
심지가 견고한 사람
사 26 : 1-4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 말기에 선지자로 부름 받아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때까지 유다의 네 왕이 통치하는 기간 동안을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이사야서의 내용을 보면 1-39 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심판이 예언되어있고, 40-66 장까지는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26:1-4 절의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성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그 날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그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 날은 약속이 성취되는 날입니다. 그 날이 오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첫째.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같이 풀무 불 속에 들어갈지라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믿음은 은혜 받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끈이기 때문입니다.
#.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서 배를 타고 놀던 두 청년이 배가 뒤집어짐으로 물에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육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굵은 밧줄을 던지고 끈을 잡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은 떠내려가는 뗏목을 잡았으므로 뗏목과 함께 폭포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밧줄을 잡고 있어서 육지로 끌려나와 살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며 믿음으로 은혜도 받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사람의 마음은 만물 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이므로(렘17:9) 자기 마음을 믿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잠28:26). 그래서"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구약의 요셉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이삭의 믿음이고 야곱의 믿음입니다.
이 세상은 빈부(貧富)의 격차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하고 백성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므로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사회복지 법을 만들어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돕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국가에도 선진국에도 격차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미모(美貌)의 차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앞길이 잘 열리는 사람도 있고 얼굴이 아름답지 못해서 앞길이 막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병원을 찾는 젊은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도 찾아갑니다. 그러나 미모의 차이는 오십보 백보입니다. 지능(知能)의 차이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큐가 70 정도 되는 사람도 있고 아이큐가 150 넘는 사람들도 있어서 학교 성적에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학교 성적순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건강(健康)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약해도 80세를 사는 사람이 있고 황소 같이 건강해도 40 세에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제적 격차, 미모의 격차, 지능의 격차, 건강의 격차가 이 사회에 많은 격차를 만들어 내지만 믿음의 격차는 불행과 행복으로 갈라지게 하고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합니다.
#. 가나안땅을 탐지한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꾼을 보면 같은 시간에 같은 환경이지만 보고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는 정탐꾼은 두려워하며 나쁘게 보고 불평함으로 광야에서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는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말을 하므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없는 믿음과 말씀이 없는 선행은 이해관계에 따라 자주 변하지만 말씀이 있는 사람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平康으로 지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3절).
셋째.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4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영원한 반석이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 줄을 잘 타는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곡예사가 줄을 길게 매놓고 줄 위에서 걸어서 오고가고 또 어느 때는 막대기를 들고 가기도 하고, 부채를 들고 다닙니다. 그런데 마지막엔 자전거를 타고 건너갈 것인데 "여러분 내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많은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건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한 분만 이 자전거 뒤에 올라타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한 후 기다리는데 아무도 안 올라오더라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나이 어린 꼬마가 나와서 자전거 꽁무니에 타고 위험한 줄을 건너갔습니다. 이 아이는 곡예사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미국 동부지역 프리마우스라는 항구에는 유명한 기념탑이 세워져있습니다. 이 기념탑은 1620년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이 기념탑 위를 보면 네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세웠는데 이들은 각각 법과 교육과 자유와 도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네 사람 위에는 한 손에는 성경책을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르치고 있는 여자의 상이 있습니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법과 교육이 그리고 자유와 도덕이 잘 지켜져야 하는데 법과 교육과 자유와 도덕이 잘 지켜지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결 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는 平康으로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생명의 말씀 축복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심지가 견고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축복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 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 9:1-7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입니까 그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고 했습니다(요9:1-7).
오늘은 이 말씀 가운데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과"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하심이라"는 말씀을 소개하면서 같이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훌륭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지면 자녀들이 잘되어 성공하는 것을 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소경 된 이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소경걸인이었습니다.
맹인들에게는 몇 가지 위험이 있는데, 첫 번째는 보행하는데 위험이 있고, 두 번째는 식사를 할 때 위험이 있으며, 세 번째는 화장실을 찾는 것과 화장실에 가는데 위험이 있고, 네 번째는 책을 선택하는데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갑자기 뛰어나오는 맹견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경에게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옛날에는 한글을 모르면 눈뜬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컴퓨터를 잘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라고 합니다. 글 모르는 것도 소경이고 컴퓨터를 모르는 것도 소경입니다. 그래서 글을 모르는 소경도 불행하고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도 불행합니다. 그러나 더 불행한 사람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나 글을 모르는 소경이나 컴퓨터를 모르는 컴맹이 아니라,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해서 천국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며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며 마귀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는 영맹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계3:17-18 절에 보면, 영적 눈이 어두워서 자기의 부족을 모르고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둘째.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과 감람산이 있고 이 사이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으며 이 계곡에는 기혼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히스기야 왕 때 적군이 침략해 오더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기혼샘의 출구를 봉하고 S자형의 535M 정도의 수로를 만들어 기혼 샘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끌어들여 실로암 못에 모아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게 했습니다. 이렇게 수로를 통해서 보내진 물이라고 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실로암이라 명한 것입니다.
기혼샘물이 수로를 통해서 보내지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걸인을 보신 예수님은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맹인의눈에 발라주시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소경은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못으로 찾아가서 물로 눈을 씻었는데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사람들은 사단에게 결박되어 타락한 윤리 도덕으로 신령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가치관의 혼돈으로 진리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사욕으로 하늘 나라를 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단의 결박을 풀고 실로암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의 물로 날마다 씻어서 어두운 눈을 밝게하여 영적 세계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운명을 바꾸어주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은혜를 받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일곱 살 때 실명하여 장님이 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맹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구걸하며 이 집 저 집 다니며 추녀 밑에서 밤을 지내는 어느 날 전도를 받았습니다. "네 부모는 너를 버렸어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너를 귀히 여기신다"는 말에 교회에 찾아가 "하나님!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눈은 쓸모가 없지만 네 몸에는 쓸만한 귀가 있고 입이 있으며 손도 있고 발이 있으니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도 있으며 손으로 일 할 수도 있고 발로 다닐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여 글을 많이 쓰고 또 한국신학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는데 이 분이 주안에 있는 삼일장로교회 양정신목사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고통에 처하면 아버지의 죄 때문입니까 내 죄 때문입니까 라며 분노 섞인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말하기를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삶 전체를 저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요9:3절에도 보면, "이 사람이 소경 걸인이 된 것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결 론
예수님을 만난 소경 된 걸인은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고 눈이 밝아졌다고 했습니다.
계3:17-18 절에 보면 자기 부족을 모르고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 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눈이 열려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어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셨으니 말씀으로 씻어 어두운 눈을 밝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대하 1:1-12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 기도, 설교, 헌금, 축도는 예배에 있어야 할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아벨도 제물을 드리고 아브라함도 제물을 드렸으며 다윗도 제물을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말씀드리며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기브온에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램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읍인데 여호수아 21장에 의하면 레위지파가 분배받아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용하든 성막과 휘장과 놋제단이 기브온에 있었고 하나님의 언약궤(법궤)는 예루살렘에 있었으므로 예루살램과 기브온은 제사의 이대중심지가 되었습니다(대상16:39, 대하1:3). 그래서 솔로몬은 기브온을 예배의 장소로 정하고 놋제단에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놋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제사이며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회개의 제사이고 우리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를 지신 속죄의 제사입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을 제물 드릴 장소로 정하고 놋제단에 번제를 드릴 때 솔로몬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둘째.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인데 소나 양이나 비들기 중에서 경제사정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제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는 제주가 제물을 선택하고 제물의 머리에 안수한 후 잡아 각을 뜨고 물로 씻어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이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죄 사함 받는 진리를 계시해 주시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드리는 번제물 하나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제사(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일천 번의 번제(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대하1:6). 개역 성경에는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고 기록했고, 공동번역 성경에는 "번제물 천 마리를 살라 바쳤다"고 했으며 새 번역성경에는"번제물 천 마리를 바쳤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양 일천 마리를 한번(一回)에 다 드린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번제를 드렸는데 일 천번의 번제(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양 한 마리를 끌어다가 머리에 안수하고 죽여 각을 뜬 후, 물로 씻어서 놋제단 위에 올려놓아 불로 태우는 번제를 일천 번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다 드리지 못하고 빨리 드렸어도 7-8일은 걸렸을 것이라는 것입니다(호크마 주석 왕상3:4). 솔로몬의 이러한 열심과 정성과 믿음으로 드리는 일천 번제를 하나님이 보시고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의 정성과 열심과 믿음을 본 받는 제물을 드리며 예배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셋째. 솔로몬은 기도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는 솔로몬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7절).
"무엇을 줄꼬" 라는 말의 뜻은, 1)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2) 네가 드리는 번제(예배)를 받으셨다, 3) 네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실 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할 제목이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도 축복입니다.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9-10 절). 이러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지식도 주시고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尊榮)도 주셨습니다. 마6:33 절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약1:17 절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온다"고 하시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신다고 했습니다(약1:5).
결 론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은 여러모로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가정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은혜 받은 성도들은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20여 년을 목회를 하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짐을 정리하는데 보지 못한 이상한 상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어보니 상자 안에는 200만원이나 되는 돈이 있고 계란 3개가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사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때 사모님이 대답하기를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졸음이 오면 계란을 하나씩 사서 모았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20년 동안 사모가 조는 설교를 세 번밖에 안 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면 이 돈은 무슨 돈인가요" 라고 물었더니 사모님 대답이, "모여진 계란을 팔아서 모은 돈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예배하는 자를 만나주시며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열심과 정성과 믿음으로 시간시간 예배드리는 축복 성도 되어 우리에게 맡겨주신 지경을 넓혀가고 성전 지경도 넓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 멘.
성전 마당만 밟는 교회 생활 사 1:10 - 17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도와 제물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는 응답이 있어야하고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祈禱를 하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이고 祭物을 드리는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 외면당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祈禱가 중요하고 祭物이 중요한 것입니다.
祈禱에 대하여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지 않으면 살수 없다" 고 했고 바울은 쉬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마21:22에서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다 받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해야 귀신이 나간다고 했습니다.(막9:29)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손을 펼 때" 라는 말을 공동번역에서는"두 손을 모아 기도해 보라"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해도 하나님이 외면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기도해도 외면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많이 기도해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기도는
1)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이 듣지 않습니다.(시66:18)
2)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듣지 않습니다.(슥7:13)
드리는 제물에 대하여
우리들이 시간시간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께 열 납 되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제물을 하나님은 받으셨는데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제물을 안 받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드리는 제물은 안 받으셨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제물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안 받으셨나요?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소돔의 관원 같이 타락하고 고모라 백성들 같이 강팍해룶을 때 이들이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타락하고 강팍해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 드리는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12 절에 보면 이런 사람들의 기도도 안 들으시고 이런 사람들의 제물도 안 받으십니다.
그러면 성전 마당은 어떠한 곳입니까?
1) 제물 드리는 성전 밖입니다.
2) 제물을 드릴 수 없는 곳입니다.
3) 하나님이 버려두신 곳입니다. (계11:1-2)
이곳은 하나님이 측량하시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성도들의 성전 마당은 어떤 곳인가요?
1) 순종 없는 종교 의식이 성전 마당입니다.
2) 몸은 성전에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심령이 성전 마당입니다.
3)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5)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사람이 성전 마당이라 했습니다.(13절)
교회에서는 경건하게 예배를 잘 드리는데 밖에서는 믿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외식하고 가증하게 위선자로 사는 사람들이 성전 뜰만 밟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도 없고 징계도 없습니다.
성전 마당만 밟는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고 제물도 받지 않으십니다.
結 論
말세 성도들은 선행에 동참하고 공의를 구하며 형제 사랑에 힘써야 보호받습니다.
순교 신앙으로 드리는 祈禱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순교 신앙으로 드리는 祭物은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응답되는 기도에 힘쓰시고 열납되는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 멘.
성장하는 믿음
히 5 : 11 - 14
교회 안에는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장성한 어른 같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데도 둔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둔하고 행동하는 것도 둔합니다(고전3:1-2). 왜냐하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히5:13). 그래서 히5:12절에 보면,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지식도 성장합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기술도 성장합니다. 가르침을 받아야 믿음도 성장합니다. 성장하여 장부의 믿음이 되면 많은 열매도 맺게 됩니다.
첫째.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병에는 내적 병이 있고 외적 병이 있습니다.
1) 내적 병이 있습니다.
내적 병은 불신입니다. 불신은 무서운 병입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서로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않으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디엘 무디는 초등학교 2학년 다닌 것이 학교교육의 전부였기 때문에 열 마디 말을 하면 일곱 마디는 실수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100만 명 이상을 구원한 위대한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불신의 병에 걸리면 근심 걱정 염려 원망 불평 같은 것들에게 결박당하여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마귀의 종으로 살아야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2) 외적 병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대사관을 만들고 대사와 직원들을 파견하면 미국 땅에 있는 대사관 건물에는 태극기를 달고 대사는 미국 땅에 살지만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 건물과 같은 곳이고 성도들은 이 땅에 살아도 천국의 시민권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 직원들 같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분을 망각하고 이 세상 죄에 깊이 빠져서 타락하여 세상 사람 같이 살면 본국인 하나님 나라와의 교통이 막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4:4 절에 보면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짝하는 것은 신앙 성장에 방해되는 무서운 외적 병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
신앙 성장에 방해되는 불 신앙의 내적 병과 세속에 물든 외적 병을 주님의 이름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둘째.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들은 자녀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녀에게 유익하다면 학교 교육은 물론 학원도 여러 곳에 보내며 최선을 다하듯이 신앙 성장에도 최선을 다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신앙 성장에 유익한 요소들은 무엇인가요 ?
1)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램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을 때 120 문도는 예루살렘에 모였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10: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성령 충만하여야 합니다.
엡5:18 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말씀이 필요할 때 생각나게 하시고 기도를 도와주시고 전도의 능력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물질 많으면 좋습니다. 지식이 많아도 좋습니다. 조직을 잘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3)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딤후4:7-8 절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 천국에 대한 꿈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는 소망은 믿음을 성장하게 합니다.
4)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의의 말씀"이란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지금 내게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히4:12). 이러한 말씀을 경험하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말씀을 경험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읽고 듣는 단계가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단계가 있습니다. 깨달은 말씀을 순종하는 단계가 있으며 순종한 결과 축복을 경험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은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간증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 찬송235 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결 론
벧전2:2 절에 보면"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 하였고 벧후3:18 절에는"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의 모습 같은 믿음에서 성장하여 장성한 어른 같은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내적 병도 외적 병도 다 버리고 모이기를 힘쓰며 성령의 충만을 받아 소망을 확실히 하며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축복을 체험한 장부의 믿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 - 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 : 18 - 21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말하기를 "이 땅의 군대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멸한 것보다 술이 멸한 것이 더 많다"고 했고 무디는 "이 세상에서 지옥을 보려면 술 취한 자의 가정에 들어가 보라"고 했습니다. 술은 전쟁에서 죽은 사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으며, 사람을 야수로 만들어 수천만의 가정을 파괴시켰고 젊은 청년들을 타락시켜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는 술에 대하여, 마음을 둔하게 하고(눅21:34), 세월을 탕진하고 방탕하게 하여(엡5:16-1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므로(고전6:10) 술 취한 자를 멀리하라(고전5:11)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엡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요20:22).롬8: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고(요14:16),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고전3:16).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계실지라도 반복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내 속에 오시는 것은 단 회 적이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신 후 반복해서 하나님의 신이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삿14:6절에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했고, 삿15:14절에는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삼상10:10절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 사울 왕에게 크게 임하셨다"고 했는데 삼상11:6절에는 "사울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16:13절에도 "다윗 왕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고 한 것을 보면,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고 또 반복해서 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성령이 임하신 후 또 반복해서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행2:4절에 열 한 사도를 포함한 일백 이십 명의 문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는데, 행4:31절에 보면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행9:17 절에 "바울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는데
행13:9 절에 보면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면 내 속에 남아있는 욕심과 정욕과 아집과 허영심과 타락한 취미를 물리칠 수가 없어서 마귀의 소리를 듣게되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살기 때문에 부끄러운 신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 충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해져 가는 것도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엡5:18절에 보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는데 성령 충만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이 마음을 주장하고 말을 주장하고 행실도 주장하기 때문에 교 양도 소용없고 지식도 소용없으며 체면도 소용이 없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술에 취하면 술이 사람을 지배하듯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이 지배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게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엡5:19-21절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사람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
1) 주님의 뜻을 알게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장의 뜻을 모르면 직장생활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믿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뜻은 a)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요6:40). b) 성도들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살전4:3). c)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살전5:16-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됩니다.
2) 하나님께 찬송하는 사람이 됩니다.
19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부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는 사람이 됩니다.
20 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했습니다(빌1:3). 욥은 죄를 회개할 때도 감사하며 회개했습니다(욥1:21-22). 성령 충만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마20:28). 은혜 받은 성도는 이웃을 섬기는 도를 배워서 기쁨으로 섬기는 겸손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결 론
결론적으로 성령 충만하게 되는 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 받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전제(前提)가 있을 뿐입니다. 전제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행1:4-5). 제자들과 120 문도는 이 약속을 기다리는데 열흘째 되는 날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2)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행2:38).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 죄 사함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3)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행10:44).
말씀을 열심히 들으면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쁨으로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섬기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 멘.
성도의 진정한 행복
롬 4 : 6 - 8
동양의 성현들은 "오복인,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을 인생의 참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백과사전에는 "몸과 마음이 희망으로 넘치고 기쁨에 젖어있는 정신 상태를 행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쾌락주의 자들은 "쾌감이나 쾌락이 행복이라"했고,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상태가 행복이라"했으며, 쇼팬하우어는 "불쾌와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플라톤 같은 이상주의자들은 "인격의 완성을 행복이라"했으며 유물론적 사회주의자들은 "물질 생활의 안정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으며,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 때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롬4:6-8에서 말하는 진정한 행복을 소유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첫째, 불법을 사함 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그 불법을 사함 받고----"라고 했는데, 여기서 "불법"은 율법을 어긴 행위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3:4 절에서 "죄를 짖는 자 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불법을 저지른 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한 말씀대로 모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명예 아니면 많은 재물, 아니면 아름다움이나 지식이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 있다면 오직 한가지가 있는데 이 한가지는 죄를 사해주고 특사로 풀어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불행하게 되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불법에서 사하심을 받게 된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얻은 것입니다.
"사함을 받고"라는 말은 깨끗하게 지워 버렸다는 뜻이며 깨끗하게 없애버렸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흘리신 피는 우리들의 모든 죄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깨끗이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시32:1 절에 보면"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 죄를 가리우심을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7절에 보면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표물을 향하여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목표물에 미치지 못했거나 목표물을 비켜나간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있고 이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짐승이 길에다가 실례를 했다고 해서 책임을 묻는 법은 없어도 사람이 길에다가 실례를 했다면 책임을 묻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야 할 책임과 이웃을 사랑해야 할 책임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할 때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경우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가리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가리움을 받는다"는 말은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에 우리들의 죄가 보여지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 주십니다.
#. 슥3장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 건축에 동참한 대제사장이(학1:1)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섰는데 사탄이 와서 여호수아의 약점과 허물과 죄악을 들쳐 내며 천국가지 못하도록 정죄하였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서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허물이 가리워진 여호수아 앞에 있던 사탄은 물러갔습니다. 믿는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서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롬13:14).
시85:2 절에 보면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가리움을 받는 것은 진정한 행복인 것입니다(시32:1).
셋째, 죄를 인정받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사망의 법과 죄의 법으로 묶어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 사망의 법에 결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8 절에 보면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할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정치 않는다" 는 말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사는 동안 마음으로 지은 죄 말과 행실로 지은 죄를 계산한다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대학 노트에 하나 하나 적어 본다면 노트가 모자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먹 보다 검고 피 보다 붉은 죄들을 다 사해 주시고 하나도 계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시32:2 절에"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 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 론
물질이 많은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잘못된 마음 때문에 지옥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한스 지피하임 6세는 1961년 5월 어느 날 17층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지식이 많은 것도 복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많으면 근심을 더하게 되고 교만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향락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향락은 심령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전1:2절에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어떤 기관에서 "가장행복한 사람은 누군가?" 라는 제목으로 여론 조사를 하고 발표했는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생한 종교적 체험을 가진 사람이고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밤낮으로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불법을 사함 받고 죄를 가리움 받으며 죄를 인정받지 않는 성도의 진정한 행복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 멘
성도의 값진 단장
베전 3: 3 - 5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벧전3:3-5 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이 말씀은 은혜 받은 여 성도들의 단장에 대한 말씀이지만 예수님 앞에서 모든 성도들은 다 신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남녀 구분 없이 우리 모두가 받아 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좀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외모의 단장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자들은 외모를 단장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급 화장품을 사용하며 피부 관리를 합니다. 얼굴을 예쁘게 하고 몸매를 아름답게 하려고 정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외모를 꾸미느라 다이어트 하다가 병든 사람도 있고 헬스클럽에 다니며 몸매를 가꾸다가 바람나서 가정을 파괴시킨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에도 사3:17-26 에 보면 예루살렘에 사는 여자들이 지나친 단장을 하다가 사치하고 향락에 빠져서 타락한 생활을 하여 하나님께 노여움을 산적도 있습니다.
벧전3:3에 보니까 사람들은 머리를 꾸미고 금으로 치장하고 값비싼 옷으로 단장합니다.
그러나 외모만 단장하는 것은 헛된 일이므로(렘4:30) 값진 것으로 단장하지 말라고 하셨으며(딤전2:9)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행10:34)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삼상16:7)
사람은 하나인데 겉은 점잖은 사람이고 숨어 있는 속 사람은 타락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들의 겉 사람과 숨어 있는 속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첫째, 속 사람을 단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1) 겉모양을 단장하는 것은 육에 속한 일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2) 세속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약4:4)
3) 겉모양을 단장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23:26 에 보면"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해진다"고 했습니다.
"속 사람을 온유함으로 단장하라 했습니다"
"온유"라는 말은 야생마가 잘 길들여진 상태와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유해야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 있습니다.(시25:9)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마5:5)
"안정한 심령으로 하라"는 말은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고 침착하게 주위에 평화를 퍼뜨리는 마음을 안정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선행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 어떤 사람이 외국에 갈 때 자기의 재산을 믿음직한 사람 세 명에게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맡겼습니다.
몇 년 뒤에 주인이 돌아와 세 명을 불러 결산을 하는데 재산을 늘린 사람에게는"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달란트를 늘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악한 종" 이라고 책망을 하며 있는 것도 빼앗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죄 짓지 않고 산 것은 귀하지만 선한 일에 부하지 못하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 선한 일이 무엇인가요?
여러 분야에 선한 일이 많이 있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1) 하나님을 잘 믿는 일입니다
2) 전도하는 일입니다
3) 소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셋째, 순종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주"라고 부르며 순복했다고 했습니다.
結 論
진열장에 세워진 인형은 아름답지만 겉모양뿐이지 속 사람이 없습니다.
속 사람을 단장하지 않으면 겉 사람이 아름다워도 속 사람과 함께 겉 사람도 약해지고 무너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속 사람을 단장하고 선행으로 단장하며 순종으로 단장하여 속 사람이 나를 다스리게 하여 사랑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 살전 5 : 16 - 18
예수님이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온 것을 보고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50).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18절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알려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16절)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소문만복내 (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사람이 기쁘게 사는데 필요한 것이 50년 전에는 50가지였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약 십 배나 늘어 496가지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많은 필요를 다 채울 수도 없지만 또 채워지지도 않아서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의 기쁨은 영적인 기쁨이며 하늘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충만합니다(합3:18).
1) 구원받은 기쁨입니다.
칠십 문도가 두 명씩 짝지어 전도하는데 귀신이 항복하고 병자가 고침 받는 것을 경험하고 기뻐할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눅10:20). 벧전1: 8-9절에 보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구원받은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2) 성령 충만한 기쁨입니다.
롬14:17 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기쁨도 충만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잠15:13 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했고, 잠17:22 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 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4:4절에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 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는 말은 기도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면 1) 응답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가 물러갑니다 3) 마귀가 물러가고 치료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4) 성령을 받게 됩니다 5) 교회가 부흥됩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하다가 소돔성의 멸망을 계시 받았습니다. 모세는 기도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이 멈추었고, 한나는 기도로 사무엘을 얻었으며, 다니엘의 기도는 사자의 입을 막았고, 바울의 기도는 빌립보 감옥 문을 열게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기도의 양이 차지 않으면 은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필수과목이 있고 선택과목이 있습니다.
필수 과목은 반듯이 등록하고 학점을 따야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고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싫어도 선택하고 노력하며 힘써야 합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8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모든 일 안에서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에도 감사하고, 슬픔에도 감사하며, 고통이 있어도 감사하고, 실패에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롬8:28).
감사에 대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범사에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실패하면 불평합니다. 그런데 노랍게도 성공해도 불평을 합니다. 가난해도 불평하더니 부자가 되도 불평합니다. 여름이 되면 더워 못살겠다며 불평하더니 겨울이 되니까 추워서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집이 작을 때는 숨도 못 쉬겠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집이 넓으면 청소하느라 등뼈 빠진다고 불평을 합니다. 아들이 서울대학에 붙었으면 감사해야지 일등 못한다고 불평입니다.
2) 감사할 일과 불평할 일을 심사하며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보고 감사할만한 일이면 감사하고 감사할 것이 못되면 불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아들은 대학을 붙어서 감사 할 일인데 둘째 아들은 병들어 입원하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죽을 병에 걸려 살길이 없는데, 좋은 의사를 만나 치료받고 살았으니 감사한데, 치료비가 너무 많으니 어떻게 합니까? 좋아하는 장미꽃에 가시가 있으니 감사해야 합니까, 불평해야 합니까?
3)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빌4:11-12"--------", 엡5:20 "---------"
감사를 외면한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 능력대로 되는 줄로 알고 착각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롬1:20). 외식하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눅18:11). 감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나의 나 됨이 전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습니다.
범사에 불평하는 것은 불행하게되는 연습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행복하게 되는 연습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사로 채우시고 감사가 넘쳐흐르게 해야 합니다.
결 론
사랑하시는 여러분 !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충만으로 기쁨이 넘치고 기도로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감사로 축복의 잔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