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성실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고 또한 출가시키면 부모로서 어느 정도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게 작금의 사회적 통념이라고 한다네요.
그런데 김막동 친구는 딸을 공무원으로 성장시키고 또한 공무원 사위를 본 성공적인 부모라고 할 수 있는데, 더군다나 딸과 사위가 9박7일 동유럽 5개국 효도 여행을 선사하였다고 하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여 딸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인천공항-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항로를 시작으로 다음과 같이 동유럽 5객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사위는 장시간 비행기 탑승이 어려운 관계로 여행에 동반하지 못했다고 함)
새삼 '딸을 낳은 기쁨'을 표현한 '농와지경(弄瓦之慶)'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김막동 친구!!! 화이링~~~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관통하여 흐르는 도나우(영어로 다뉴브)강의 모습과 부다페스트 야경 그리고 김막동 친구의 모습이 묘한 앙쌍블(ensemable)을 이루고 있네요.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의 진주'라는 별칭이 있는데, 그만큼 다뉴브강의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네요, 역시 김막동 친구는 운치를 아나 봅니다.
*세계 3대 야경 명소 : 다뉴브강에서 바라본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야경, 파리 세느강에서 바라본 에펠탑 야경과 야간 조명, 체코 프라하 까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야경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왕궁, 관청, 귀족 등 지배층이 살았던 '부다'와 '도자기 굽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서민들이 살았던 '페스트'라는 두 도시가 합쳐져서 현재의 지명으로 네이밍되었다고 합니다.
* 김막동 친구의 동유럽 여행 5개국 :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크로아티아, 체코 |
다음은 그 옛날 중고등 음악 교과서에 실렸던 '다뉴브강의 잔물결' 가사입니다. 루마니아 왕국 초대 군악대 총감독을 지낸 이바노비치가 군악대를 위한 왈츠곡으로 작곡된 거랍니다.
어스름 달빛에 안개는 끼고
고이 잠드는 깊은 밤하늘에
물결 잔잔한 다뉴브 강물은
달을 띠우고 흘러만 가네.
물결치는 작은 배 위에 등불만 흔들리고
새들은 잠깨어 날아가네.
갈대 잎 끝마다 반짝이는 저 잔잔한 물결
굽이 흐르는 다뉴브 강 물결은
달을 띄우고 흘러만 간다
도나우(영어로는 다뉴브) 강은 알프스 북부에서 발원하여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 불가리아 등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든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관통하여 흐르는
도나우강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곡의 도입부만 가지고 만든 '사의 찬미'가 생각이 나네요.
'사의 찬미'의 멜로디는 얼핏 굉장히 처량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곡으로 생각 할수도 있겠습니다. '사의 찬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대중가요 음반(1926년)의 취입곡랍니다.
이 곡은 당시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때때로 연극무대에 서기도 했던 배우 출신 소프라노 윤심덕(당시 30세, 尹心悳)이 직접 가사를 쓰고 동생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 레코드판으로 제작되었답니다.
더구나 가수였던 윤심덕이 이 곡을 취입한 뒤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인이었던 극작가 김우진(당시 30세, 金祐鎭)과 현해탄에서 동반자살을 하는 바람에 이 곡은 무척이나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
또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면 떠오르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꽃'으로 유명세를 치른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다음과 같이 떠오르네요.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東歐의 첫겨울 /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습으로 너를 쓰려뜨렸다. /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으로 튀었다. /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하략 |
그것은 자유화, 민주화 과정의 어둡고 암울했던 사회상을 잘 표현한 시구라서 내 뇌리에 각인되어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지금은 동구권 공산 이데오르기가 무너지고 냉전의 시대를 완전히 탈피하여 김막동 친구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김춘수(金春洙)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製)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憤)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기야서 감방에 불령 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콩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담담한 꽃을 피운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 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 [사상계](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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