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전 16:1-4)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휘해 모금하고 있는 연보에 대해서 서신을 통해 문의하였는데, 이는 곧 고린도 신자들의 신용에 대한 문의였습니다(갈2:10 참조). 바울은 그러한 그들의 질문에 담하고 나서 자신과 또 동료들의 전도 여행 계획을 알려 줌으로써 편지를 끝맺습니다.
제 3차 전도 여행 중 바울이 가장 중요시했던 일의 하나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특별 구제 헌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구제금을 모으는 일에서 몇 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헌금의 개념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의 허물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 드리는 것을 제물이라고 합니다. 그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로서 각양 양식과 제물에 대한 규례가 각기 달랐습니다. 이것이 곧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시에 드려지는 제물이었고 대신에 하나님은 그에 해당하는 인간의 허물을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레1:-5:)
이러한 제사는 신약에 와서 완전히 페지되었습니다 곧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히9:11)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요1:29,36) 스스로 제물이 되시어 자신을 드리심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히9:26, 10:12).
바울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 교회에 그렇게 가난한 자들이 있었을까? 오순절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직업을 갖지 못한 나그네들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보살펴 주어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 시절, 성도들은 자기의 소유물을 서로 기쁘게 통용(通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큰 기근이 닥쳤고(행11:27-30). 그로 인해 구제금은 곧 바닥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서약을 지키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의도도 있었지만, 바울이 구제금을 모으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를 결합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였고, 일부 유대인 신자들은 이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행17:21-25).
바울은 구제금을 통한 이방인들의 사랑으로 그 두 교회 간에 있었던 상처가 치료되고 그들 간에 가교가 세워지길 소망했습니다.(이 구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후8-9장에 다루고 있다) 이 헌금은 특별한 구제금이었습니다.
레25:35절“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잠22:9절“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행20:35절“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성도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몇 가지 근본적인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첫째, 연보는 예배의 일부입니다.
모든 성도는 주일(主日)의 모임에 참석하되 자신이 그 해당 주(週)에 바칠 몫을 준비해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매주의 첫 날에 모였었습니다(성령께서 강림하실 오순절은 주간의 첫 날이었습니다). 현대의 성도들이 연보를 하나의 의무로 인식하며 그것이 주님께 바치는 영적 예물이 되어야 함을 망각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빌4:18). 연보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 드리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2. 둘째, 연보는 체계적이어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의 대부분이 주일(週日) 첫 날에 연보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록 첫 날에 연보하지 않았더라도 각 신자들은 자신이 연보할 것을 미리 집에서 따로 마련해 두었다가 주일 첫 날의 모임에 가지고 왔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 도착한 후에야 많은 금액의 연보가 모아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연보가 모두 준비되어 있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성도들이 돈과 관계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헌금에 있어서도 그렇게 체계적이라면 주님을 위한 사역이 그처럼 자주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셋째, 연보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일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모든 성도는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똑같이 구제에 참여하길 원했습니다. 수입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가난한 자들과 함께 물질을 나누고 그들을 도와줄 의무가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받은 축복을 통용하길 원했습니다.
4. 넷째, 연보는 비례적이어야 합니다.
“이(利)를 얻은 대로”란 바울의 말은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구제해야 한다는 의미를 시사합니다. 유대인 신자들은 십일조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헌금의 어떤 특별한 비율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십일조는 청지기 직분을 이행하는 훌륭한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은 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시면 그만큼 우리도 구제를 더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문제는, 수입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많은 재정적 의무에 얽메여 주님께 더 많이 바칠 만한 돈이 없게 되는 신자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적당한 수준을 찾아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좀더 좋고 훌륭한 것을 추구하고, 따라서 그들의 수입은 건설적인 일에 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냥 낭비되었습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때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곧 몰락을 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5. 다섯째, 연보는 정직하게 바쳐져야 합니다.
구제금 모금에 참여한 여러 교회들은 바울이 모은 것을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일을 돕도록 사절단을 파송했습니다. 고후 8:16-24절. 사역자들이 자신에게 위탁된 재정을 잘못 관리함으로서 세상에 대한 증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역자들은 재정적인 일에 있어서는 철저히 사무적이어야 합니다. 고후8:20-21절, 바울은 모든 일에 철저히 주의해서, 대적자들로 하여금 바울이 돈을 훔쳤다고 고소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십니다. 기필코 그들을 멸시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 이 경고의 말씀은 헌금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자기의 힘이 닿는 대로 힘써 헌금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해야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소득도 온전히 하나님께로 왔으므로 할수만 있다면 십의 구조라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신앙이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실천으로 옮겨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른 기여, 규칙적인 헌금,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는 실천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내면을 성장시킵니다. 신앙과 실천의 조화로운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오포예원교회 / 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