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이자 싸다고 해 대출 받았는데…
은행들 "시장선점 하자" 앞다퉈 금리인하 경쟁… 신규대출 93% 차지
금리 오르면 맨먼저 뛰어 가계에 부메랑으로 작용
지난 2월 출범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를 적용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빠르게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당초 코픽스 금리는 변동 폭이 크고 안정성이 떨어져 주택담보대출 기준 금리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코픽스(신규 취급액) 역시 금리 변동 폭이 큰 데다 대출에 수요가 지나치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칫 금리 상승 기조로 돌아설 경우 대출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코픽스로 쏠리는 대출
코픽스는 정기예금 수신을 비롯해 은행들이 대출자금을 마련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을 토대로 산출하는 금리다. 최근 한달간 은행들이 조달한 자금비용을 평균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와 지난 한달간 은행들이 보유한 모든 자금의 금리를 평균한 '잔액 기준' 코픽스 금리 등 두 종류의 상품이 팔리고 있다. 코픽스 금리는 은행연합회에서 한달에 한번씩 공시한다.
코픽스 도입 당시만 해도 전문가들은 코픽스가 CD 금리를 대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시중 금리 하락세를 빠르게 반영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가 CD 금리보다 급하게 떨어지면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이 크게 증가하는 쏠림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2월 출범 당시 연 3.88%였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현재 연 2.86%로 1%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같은 기간 CD 금리는 0.4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와 맞물려 은행권의 코픽스 대출 비중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3월 847억 원에 불과했던 코픽스 대출이 4월에 7159억원, 5월엔 1조7282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국민은행에서 5월에 새로 주택담보대출로 나간 금액의 98% 정도가 코픽스 기준 대출이었다. 특히 14일 현재 은행연합회에 고시된 주택담보대출 상품 중 금리가 싼 상위 10개(최고 금리 기준) 중 7개가 코픽스 기준 대출상품이다.
◆은행의 과열 경쟁이 '코픽스 쏠림' 키워
최근 코픽스 기준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은 신규 취급액 기준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3월 전체 코픽스 대출의 87% 수준이었던 신규 취급액 기준 대출 비중이 지난달 말 98%까지 올라갔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기준으로 신규 취급액 코픽스 대출이 잔액 기준보다 6배 가까이 많아졌다.
신규 취급액 중심으로 대출이 몰리는 것은 일단 금리가 싸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후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가 1%포인트 이상 하락하는 동안 잔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0.08%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가장 최근의 금리 동향만을 반영하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와 달리 전체 조달비용을 대상으로 하는 잔액 기준 코픽스는 변동 폭이 작기 때문이다. 잔액 기준 코픽스는 대신 금리가 상승할 때는 그만큼 덜 오르는 이점이 있다.
최근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상품으로 대출이 쏠리는 다른 주요 원인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은행들의 과열 경쟁이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픽스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싼 신규 취급액 코픽스 금리 상품을 홍보하며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상품 금리를 정할 때 코픽스 기준 금리나 CD 기준 금리에 은행의 마진에 해당하는 가산 금리를 더한다. 7개 시중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상품과 CD연동형 상품의 금리를 비교해본 결과 최고 금리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씨티은행을 제외하면 모두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상품의 금리가 CD 기준 금리에 비해 약 0.2~1%포인트 낮았다. 최저 금리를 기준으로 하면 모든 시중은행의 신규 취급액 코픽스 상품이 CD연동형보다 0.2~0.7%포인트 정도 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동일한 사람이 대출을 받더라도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종류에 따라 가산 금리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들이 코픽스 대출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코픽스 대출에 붙이는 가산 금리를 무리하게 낮췄다는 얘기다.
◆금리 상승기에 부메랑 될 위험
이처럼 코픽스 금리가 신규 취급액 기준에 집중되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의 특성상 금리가 내려갈 때는 금리 하락을 빠르게 반영하지만 반대로 금리가 오를 때도 가장 먼저 금리 변화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신규 취급액 기준 대출이 대출자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 금리 인상을 시사한 데 이어 1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기준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을 독려했던 은행들 가운데 일부도 스스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동안 경쟁적으로 가산 금리를 낮게 적용한 탓에 손실 규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지난 7일 신규 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는 대신 잔액 기준 코픽스 대출금리를 0.4%포인트 인하했다. 앞서 지난 4일 한국씨티은행은 잔액 기준 금리는 놔둔 채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금리를 0.5~0.6%포인트 올렸다. 하나·신한·농협 등도 최근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대출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코픽스 대출금리를 인상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신규 취급액 코픽스 대출상품을 너무 싸게 판매한 것이 사실"이라며 "역(逆)마진 우려 때문에 최근 금리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기간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기를 원하는 고객의 경우 그리고 금리가 상승세를 타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금리 변화가 더딘 잔액 기준 코픽스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 COFIX(코픽스)
CD금리와 연동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시중 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내 은행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반영해 새로 만든 대출 기준 금리. 자금조달비용지수(Cost of Funds Index)의 영문 약자다. 은행들은 코픽스 금리에 은행별 가산금리를 더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결정한다. 종류는 잔액기준과 신규취급액기준 등 두 가지다. 은행연합회가 매달 15일 발표한다.
☞ CD(양도성예금증서)
다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는 무기명 정기예금증서. 보통 만기가 90~180일의 단기여서 그동안 CD 금리가 금리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