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솜봉사회' 무료급식소.
5월의 첫 토요일이다. 고색동에서 버스를 타고 송죽동 가는 길 어딘가 이팝나무 꽃이 소복하게 피어 올라있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저 '밥 꽃'을 찾아가는 길이다. 장안문사거리를 돌아서 몇 정류장을 더 가 중국음식점 길림성 앞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송죽프라자 건물, 전화를 하니 정운자 회장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오전 11시20분, 그 건물 1층 안으로 들어가자 통로에는 벌써부터 많은 노인들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한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다. 급식소 안은 20평 남짓한 자리에 식탁 몇 개가 놓여있고, 주방에서는 4~5명의 아주머니와 남자 한분이 밖에서 일을 돕고 있다.
정운자 회장은 말한다. 전에는 130여명의 대식구가 찾아와 이보다 더 넓은 공간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50여명밖에 안돼 공간을 많이 줄였다고, 그동안 돌아가신 분도 20여명이라고 한다. 또 주변의 건물들이 바뀌는 과정에서 다른 곳으로 많이 떠나신 것 같다고, 그러나 인원이 줄어들면 일도 수월해져 좋을 줄로 알았는데 그분들의 얼굴이 그리워지면서 속상하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교회에서도 노인들에게 무료급식과 현금까지 도와주고 있어 많이들 그쪽으로 간다고 한다. 또 어떤 날은 짜장면 식사대접을 하는 곳이 있어 많이 가기도 하고,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많이 생겨 분산되는 것 같다고 한다. 오늘도 어디선가 그런 곳이 있어 빠지는 분이 많은 것 같다고, 그런 날은 준비한 음식들이 남아 아깝다고 한다.
주방의 자원봉사 회원들
정운자 회장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남자노인 한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정운자 회장은 지금 들어오시면 안 된다며 달래어 내보낸다. 미리부터 들어와 소란을 피우면 주방에서 정신이 없다고 한다. 노인들은 걸핏하면 서로 다투고 싸우기 일쑤라고 한다. 다들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하여 급식소 입구 통로에는 유모차와 장애자용 전동차가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그중에는 파지가 실려 있는 것들도 한둘이 아니어서 이곳 노인들의 생활모습이 그려진다.
마침내 주방 안의 준비가 다 되자 정운자 회장이 노인들을 향해 들어오시라고 한다. 노인들이 들어와 식탁에 앉고, 봉사자들이 저마다 식판을 나른다. 쌀밥에 홍합국과 반찬은 김치, 도토리묵, 소고기볶음, 머위 잎 절임이 깔끔하다. 게다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인들에게 오늘은 기부 들어온 것이 있다며 음료와 과자 등 간식 한 봉지씩이 주어진다.
그렇게 노인들이 모두 돌아간 뒤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때, 제일 젊다는 봉사자 한사람과 얘기해봤다. 50세인 그는 봉사회원이 된지 3년차라고 한다. 정운자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며, 대학생인 두 자녀들을 고등학생 때부터 이곳에 데리고 와 봉사를 시켰다고 한다. 인계동에 산다는 그는 힘들지만 내 부모님을 생각하며 봉사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노인들의 자가용이 모여 있다.
이번에는 다시 정운자 회장에게 물었다. 76세인 그는 1남 3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이 공무원과 세무사, 과수원 농사를 하며 용돈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급식봉사를 처음 하게 된 것은 1989년 음식점을 운영할 때부터이며, 처음에는 노인들이 아닌 보따리장사꾼들이었는데 소문이 나고부터 주위의 노인들도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밥값을 안 받자 양말이며, 미역, 엿 등을 내놓기도 하고, 칼갈이 아저씨는 주방의 칼을 갈아주기도 하는 등 뭔가 나름대로 갚고 가려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원천유원지에서 수상음식점 ‘광나루’를 운영하며 다시 노인들을 위해 급식봉사를 하였다고. 그러나 유원지 영업을 그만두며 급식봉사도 함께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수원시 협의회 교통기동순찰대 후원회장을 하며 봉사활동을 했지만 문득 깨달음 같은 것이 왔다고 한다.
세상에는 ‘밥‘만큼 큰 봉사가 없다는 것. 게다가 노인들이 자신의 안부를 물으며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참사랑봉사회를 조직한 것이 지난 2000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이름의 봉사단체가 있어 수원시로부터 개명권유를 받아 ’참다솜봉사회‘가 된 것은 2004년부터라고 한다.
식사 후 돌아가는 노인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그는 방앗간집 딸로서 아버지가 남을 거둬 먹이고 재워 보내는 것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시골 방앗간은 참새들도 많았다며, 일꾼과 나그네들이 항상 드나들며 어머니는 밥해내어 먹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자신도 그런 내림의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봉사단체의 회원이 된 것만도 19개에 달하고 보니 한 달이면 200~300만 원의 경비가 나가더라고 한다. 무료급식소 운영경비는 자녀들이 준 용돈과 주로 사위가 많이 부담한다며, 참다솜봉사회원들의 봉사와 후원단체에서 월10만원을 도와준다고 한다.
세상에 '밥 꽃' 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어디 있겠는가. 함께 간 일행 몇 명과 말하기를, "점심 성찬을 대접받았으니 우리까지 무료급식을 받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밥값을 거두어 봉투하나를 내놓으니 정운자 회장은 펄쩍 뛴다. "아닙니다! 콩나물이나 한 시루 사라"며 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