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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성경본문 : 에스더 6: 12 - 7: 10
6:12-14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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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0
1)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가니라
2)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4)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더라면 내가 잠잠하였으리이다 그래도 대적이 왕의 손해를 보충하지 못하였으리이다 하니 에3:9
5)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6)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7)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8)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왕이 이르되 저가 궁중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에1:6
9)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에5:14
10)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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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6장 [개역한글] 황제가 모르드개를 존귀케 함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 것도 베풀지 아니 하였나이다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 오게 하라 하니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것이라 하게 하소서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둘째 날 잔치에 …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왕이여 …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뇨
에스더가 가로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화를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1. 심판과 승리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니라.”(잠24:1)
하만은 악인의 비극적인 말로(末路)를 보여줍니다.
마침내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는 심판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만의 몰락은 그 시작을 알리는 전조등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에스더서는 이러한 심판 모형을 소개해 주면서, 영적 전쟁에 대한 승리의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에스더나 모르드개나 유다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하만 스스로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자멸한 셈입니다.
2. 자중지란(自中之亂, 6:12-14)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막5:7)
하만의 몰락이 얼마나 신속하고 급작스러운가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하만만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이 일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다면 그는 6장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유다인 말살정책(3:7-15)을 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7장 이전에 항복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죄가 죄인 줄 모르고, 마지막 결론이 실패와 죽음과 저주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찌 하만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실패를 위해 은 일만 달란트를 투자할 수 있었고(3:9), 죽음을 위해 25M나 되는 나무를 세울 수 있었고(5:14), 저주를 선고받기 위해 아내와 친구들을 다시 부릅니다(6:13).
참으로 ”빨리”(6:14b) 진행됩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기고만장(氣高萬丈) 해 하던 하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그는 외면당합니다.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6:13b) 이처럼 악인이 악인의 결말을 압니다.
사실입니다.사탄(마귀, 귀신)은 자기가 패배한 줄 안 것입니다. 좀 더 성경 적으로 말하면 사탄은 이미 태초의 에덴에서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창조 → 타락이면 죽음(심판)이었습니다(창2:17). 사탄은 이 경고를 현실이 되게 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함으로써 시작된 인류를 곧바로 이렇게 끝나버리도록 의도적으로 부추겼습니다(창3:1- ).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 → 타락 → 구속으로 섭리하셨습니다(창3:15).
바로 이러한 의도적인 악한 전략이 하만에게도 발견됨으로써 그가 사탄의 하수인(下手人)임이 명백해졌습니다. 하만은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3:1,10, 8:3)입니다. 아각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싸운 적이 있는 아말렉(사울 당시 아각이 그들의 왕이었습니다) 족속입니다(삼상15:1-3,7-9). 이 아말렉 족속은 출애굽한 거룩한 공동체인 이스라엘(고전10:1-4)을 처음으로 도전한 악한 세력입니다(출17:8,13-16). 이들은 반드시 멸해야 할 세력인데(신25:17-19), 오히려 에스더서에 와서 이 구조가 역전되어 있습니다(3장 묵상 참조). 사탄은 이방 수산에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학적인 안목에서 좀 더 포괄(거시)적으로 볼 때 하만의 몰락은 하나님의 심판, 그러니까 죄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심판의 모형론적 예표(typology)인 셈입니다. 죄와 악, 그 원흉인 사탄에게 승리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만에게서처럼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결국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1-4, 롬1:17)는 하나님의 약속만이 십자가의 구속과 은총 안에서 유효합니다.
3. 인과응보(因果應報, 7:1-10)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7:9b-10)
왕후가 된 에스더(2:1-23) → 하만의 음모(3:1-15) → 금식과 기도(4:1-17) → 첫번째 잔치(5:1-8) → 심판 예고편(5:9-6:14)에 이어서 마침내 두번째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4장은 사방으로부터 포위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희망의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 이후의 섭리행전은 흔들림 없이 진행되었습니다(5:1a- ). 아하수에로와 하만의 화려한 잔치에 비하면 에스더의 잔치는 하나의 초라한 희망사항을 소원하는 것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잔치가 진짜 승리이며,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그리고 누구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온 유다인은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에스더와 온 유다인에게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이며, 일그러진 모든 것을 바른 질서로 되돌리게 하는 힘입니다. 에스더는 결코 조그마한 승리(6:10-14)에 취해서 흥분하지 않고 예정대로 잔치를 배설합니다(7:1). 또 도도하게 흐르는 섭리를 역행하지 않고, 생명을 건 영적 승부수를 던집니다(7:3-6a).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만든 나무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습니다. 하만의 서른 잔치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모르드개를 대항하면서 등장하였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싸움을 시도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이미 실패’한’ 싸움을 시도하다가 스스로 자멸한 어리석은 인생의 대명사가 되었을 뿐입니다.
4. 부스러기 묵상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심판 당한 하만을 보면서 즐거워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지만 이 심판을 에스더가 면하게 된 것은 그녀의 의로움이라는, 그러니까 내가 착하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심판이 면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미 기억하듯이 에스더는 그녀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함으로써 율법을 어겼습니다. 또한 이혼한 남자가 아닙니까? 더더욱 결혼 이전에 성관계를 한 간음녀입니다(2:16-17). 율법을 어긴 것은 이뿐이 아닙니다. 에스더의 잔치는 -이것은 믿을 만 한 하나의 유추다- 율법이 정한 음식법을 따라 준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잔칫상에는 부정한 음식들이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잘 나고, 똑똑하고,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기에 나는 심판을 면하고, 하만과 그 졸개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구원이 나의 행위나 의(義)로 말미암지 않듯이 심판 또한 그렇습니다. 하만의 심판 받음을 보면서 나도 이처럼 죄악의 편에 서면 하만처럼 취급된다는 경고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거역하고서도 형통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하만의 침몰을 통쾌하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아침입니다. 나도 하만처럼 취급되었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곧 죄사함으로, 성령님의 지켜주심으로 말미암아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것 아닙니가? 심판을 보며 나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그 은혜가 너무 위대하기에 조용한 감동과 감격 앞에 하나님을 더 생각하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