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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7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 / 김정호 목사
한 젊은이가 길을 걷고 있을 때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으세요. 내일 놀라운 소식 한 가지가 당신을 기쁘게도 하고 후회하게도 만들 겁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젊은이는 그 말을 따라 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는 어제 들었던 말이 떠올라 눈을 뜨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돌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돌은 온 데 간 데 없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보석만 주머니에 가득한 것이 아닌가! 그제야 젊은이는 “기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기쁜 것은 돌이 보석으로 변해서고 후회스러운 것은 더 많은 돌을 줍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영국 제임스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전쟁입니다. 연극에서는 가짜로 싸우지만 생활전선의 싸움은 우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친 싸움이고 진짜 싸움입니다.”
로마의 쎄네카는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군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잘 싸우면 상이 있습니다. 일없는 상없고 상없는 일없습니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개 무덤이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무덤에 비석까지 있습니다. 제목은 <충견비>입니다.
무덤의 주인이 개를 길렀습니다.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주인이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개도 무덤까지 따라 왔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개만은 그대로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끌어와도 도로 무덤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이 개에게 무덤까지 먹을 것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 개는 14년 동안 무덤을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죽기까지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죽은 개 이야기입니다.
일하는 이에게 상이 있습니다.
날치라는 고기가 있습니다.
날치는 수면 위로 뛰어올라 가슴과 배의 지느러미를 펴서 공중을 활주하는 물고기입니다. 놀랄 이야기입니다. 한번 나르는 데 4㎞내지 5㎞를 날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일까요? 두 경우에 그렇게 멀리 나른답니다. 하나는 다른 큰 물고기가 잡아먹으려고 따라 올 때 그런 능력이 나옵니다. 또 한 경우가 있습니다. 즐거울 때 떼를 지어 자유롭게 공중을 비행하며 그렇게 멀리 나른다고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과가 있고 큰 상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서 죽을 뻔 하였다가 기도하여 살아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의 기쁨, 충성, 능력, 감격을 잃어버리고 있고 때로는 기도를 무시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면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때에 히스기야처럼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죽음의 선고
본문 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왕의 자문자로서 왕이 죽게 될 경우 왕가에 일어날 혼란과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될 때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엄청난 말씀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옵니다.
설마 했던 죽음이 문득 내 앞에 서게 됩니다.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그 충격은 본인 이외에는 모를 것입니다. 예고 없이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죽음의 선고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며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강력한 왕이었던 히스기야 마저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1937년에 Harvard 대학 2학년이었던 268명에 대한 인생추적 연구보고서가 있습니다. Grant백화점의 재정지원을 받아 연구하였기에 ‘Grant 연구 보고서’라 합니다. 1967년부터 268명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심층 연구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그들 중의 ⅓이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나옵니다. 아무리 명문 대학을 나오고 천재일지라도 정신질환에 걸리는 삶이라면 차라리 노동자나 농민일지라도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나이 들어가면서 행복하게 사는 7가지 요소를 적었습니다.
①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② 안정된 결혼
③ 금주(禁酒)
④ 금연(禁煙)
⑤ 운동
⑥ 적절한 체중
⑦ 계속하는 교육과 연구생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268명 중에서 80세 이상을 살면서 Happy Well을 누린 사람들은 위에 7가지 요소들 중에서 5가지 이상의 요소를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3가지 이하의 요소를 갖춘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거나 50세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대하노라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명문대학 가는 것도 아니고 높은 지능을 지니는 것도 아니요, 보통사람으로 살더라도 건전한 가치관을 지니고 건강하게 행복을 누리고 나누며 사는 삶이 중요함을 실감케 됩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인생을 마감했다는 고백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대단히 중요하고 엄청난 역사적인 일도 못한 채 그냥 먹고 살다가 세월이 다 지나갑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묘비명입니다.
우리의 묘비에는 어떤 글을 남기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히스기야 왕에게 죽음의 선고가 내려졌던 것같이 분명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죽음의 선고와 순간은 반드시 오게 됩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죽지 않을 사람도 없고 두 번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 공평하게 임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생로병사는 빠르게 다가옵니다.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며 충성하여 천국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통곡의 기도
본문 2-3절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은 히스기야 왕은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만 매달렸습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로만 향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얼굴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든다’고 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냅니다.
‘얼굴을 돌렸다’는 경멸이나 무관심을 가리킵니다.
기도를 위한 히스기야의 행동은 자기의 평상 업무와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물리친 후 오직 여호와에만 전심전력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단을 보여 줍니다.
또한 심히 통곡했습니다.
어린아이 때는 자주 울지만 어른이 되면 마음과 가슴으로 웁니다. 마음이 강퍅해 졌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울지 않습니다. 눈물이 메마르기도 했고 너무 어렵기 때문에 눈물을 너무 흘려서 나올 눈물이 바닥이 났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통곡한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경건성과 간절성과 순수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하나님께 매달리는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삶과 죽음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통곡할 때 감동과 능력과 뜨거움이 임하게 됩니다. 죄가 씻기고 심령이 가난해 지며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한 장로님이 이렇게 신앙 간증을 했습니다. “젊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고 울며불며 고백했더
니 하나님께서는 먼저 어떤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문제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시라.’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것 외에는 어떤 일이든 다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평생토록 더욱 집요하게 간섭하셨습니다. 저는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막혔던 일들이 봇물처럼 터져서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이제 말 일이 시작된 것 같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 빨리 ‘순종’하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고 싶으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16:2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내 뜻, 내 마음, 내 성향이나 기질, 내 성질, 내 계획과 꿈,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나는 원래 그래..... 하는 생각, 내 자존심, 내 소유 등등을 무조건 포기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명령)것을 무조건 행동 한다는 뜻입니다.
가끔 별로 잘나지도 않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경우를 보는데 그 비결을 바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나의 작은 것을 포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정기적인 기도시간 확보‘ 같은 것입니다. 기도만 하려고 하면 무슨 할 일들이 생각나는지.... 그런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무조건 무릎 끓고 기도하는 것 같은 훈련입니다.
우리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가정, 자녀, 사명....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죽음의 선고 앞에서 히스기야 왕이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의 기도를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통곡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는 것입니다.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여름에 땀만 흘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통곡의 눈물의 기도를 드림으로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15년 생명의 연장
본문 5-6절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벽을 향하여 통곡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의 기도를 뿌리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시어 십오 년의 생명 연장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에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통곡의 기도의 능력은 즉시 나타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인 응답을 허락 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십니다.
불가능이 가능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인생 문제를, 남이 알지 못하는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께 내어 놓고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히스기야가 되어 응답과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황영조를 키워준 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정봉수감독입니다.
황영조를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그 사람이 대학관계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관계자가 입학을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때 정봉수감독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말 황영조를 입학 못시키겠다면 바꿉시다.”
대학 담당자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바꾸다니 뭘 바꾸지요?”
그때 정봉수감독이 증명서를 하나 내밀었습니다.
“이건 내 딸의 이 대학 합격증입니다. 내 딸의 합격을 취소해도 좋으니 황영조를 특기생으로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황영조를 키웠고 황영조는 한국마라톤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매스컴에는 황영조는 있었지만 정봉수감독은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일하고 열심히 일하는 이런 정봉수감독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조금 아쉽고 섭섭할 수 있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길거리를 다니면 수많은 CCTV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70번씩 저와 여러분들은 CCTV에 모습이 찍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저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와 봉사를 다 알고 계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시고 최고의 상으로 보답하십니다.
성공하는 사람들과 실패하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멀리 보면서 가까운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멀리만 보면서 가까운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이르지 못합니다.
희랍에 탈레스란 이름의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늘 하늘의 천문지리를 연구하느라 하늘만 쳐다보며 걷다가 수채 구덩이에 빠진 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일에만 몰두하여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들 역시 성공에 이르지 못합니다.
멀리 보면 볼수록 가까운 하나하나에서부터 차근차근 처리하여 나가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넓게 보면서 작은 일부터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들은 성공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실패합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남다른 넓은 안목을 지닌 탁월한 사람이나 작은 일에 불성실하여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넓은 안목을 지닌 탁월한 사람이나 작은 일에 불성실하여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넓은 안목과 식견을 펼쳐 나갈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일 하나하나에 꼼꼼히 챙기나 넓게 보지를 못하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넓게 보면 볼수록 작은 일에서부터 철저하게 챙길 줄 아는 사람, 마치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집을 짓듯이 작은 일을 성실히 챙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깊이 생각하면서 사소하게 하여야 할 일들을 미루지 않는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결혼을 하여야 할지 하지 않아야 할지 깊이깊이 오래도록 생각하였습니다.
47세에 이르러 결혼을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미 나이 들어 시집오겠다는 여자가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깊은 생각과 과감한 실천력을 함께 지닌 사람들에게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먼 훗날, 다음이 아닌 오늘, 그리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기도하여 히스기야처럼 크고도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기도의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죽음의 선고 앞에서 통곡의 기도를 드림으로 15년의 생명 연장의 응답을 받은 히스기야 왕처럼 기도하여 응답 받는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