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동새
김소월(金素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시어, 시구 풀이]
아우래비 : ‘아홉 + 오래비’의 활음조 현상 즉, 아홉 명의 남동생
의붓어미 : 아버지의 후실, 의모(義母)
불설워 : 몹시 서러워
오랩 동생 : 여자가 자기 남동생을 일컬을 때 하는 말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1연) : 접동새는 그 울음 소리가 구슬퍼서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문학의 소재로 등장한다.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 진두강 앞 마을에 / 와서 웁니다.(2연) : ‘누님’이 아니고 ‘누나’인데 이 시의 유연성(柔軟性)이 한결 곱다.
옛날, 우리 나라 -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3연) : 이미 오래 전에 우리 나라 먼 뒤쪽 국경 지대의 진두강 강가로 시집 가서 살던 누나, 그는 시집의 의붓어미 시샘에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죽었습니다. 누나의 비극성을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시새움에 몸이 죽은 -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 의붓어미의 시샘에 원통하게 죽은 누나의 한이 접동새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원한이 많은 넋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방황한다는 것은 우리의 민속 신앙이다. 여기서는 촉(蜀)나라의 망제(望帝)가 죽어 새가 되었다는 중국 고사에 연결, 누나의 넋이 접동새로 옮겨졌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 슬피 웁니다.(5연) : 친정의 아홉이나 되는 많은 남동생들을 죽어서도 못잊어 남들이 다 자는 깊은 밤이면 친정 마을의 산에 와서 웁니다.
[핵심 정리]
지은이 : 김소월(金素月, 1902-1934) 본명 정식(廷湜). 평북 구성(龜城) 출생. 오산 중학, 배재 고보에서 수학. 오산 학교 때의 스승 김억에게서 시의 지도를 받았다. <영대(靈臺)> 동인으로 작품 발표를 했고, 그의 대표작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지에 실렸으며, 127편이 실린 시집 <진달래꽃>은 1925년에 나왔다. 통설에 따르면 민요시만 쓰다가 1926년부터 절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에 짙은 저항성이 담긴 그의 말기 작품이 많이 발굴되었다. 대표작으로 ‘초혼’, ‘금잔디’, ‘가는 길’, ‘산유화’, ‘진달래꽃’, ‘접동새’,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3음보격의 변형)
성격 : 전통적. 민요적. 애상적. 항토적
표현 : 의성어를 통해 육친애(肉親愛)의 정을 표출. 구절의 반복을 통한 통사적 구조. 동음어나 유사음의 반복. 1연과 2연의 대칭적 구조
심상 : 접동 - 한(恨)
구성 :
1연 접동새의 울음 소리
2연 죽은 누나의 울음 소리의 재생
3연 의붓어미의 시샘에 죽은 누나
4연 죽은 누나와 접동새의 동일화
5연 애절한 혈육의 정한(情恨)
제재 : 접동새 설화(서북지방)
주제 : 현실의 비극적 삶을 초월하려는 애절한 혈육의 정
출전 : <배재>2호(1923)
▶ 작품 해설
1920년대의 시적 탐구의 한 흐름을 이루었던 민요시 운동은 그 직전의 외래 지향적 동인지 운동의 경향에 대한 반동이며 주체성 재발견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그 문학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서의 성과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김억, 김동환, 주요한 등의 민요시는 율조의 단조로움과 반복적 구성에 의지하여 향토적 소재의 시적 형상화를 시도하였으나 그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이 평가받지 못함이 사실이다. 소월의 시에는 율조의 전통성, 소재의 향토성, 어휘 선택 및 용법 그리고 민담적 소재의 구사 등의 측면에서 민요시적 요소가 발견된다. 그리고 소월의 시가 같은 시대의 다른 민요시에 비해 비교적 높은 문학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 시는 전통적인 시가에서 한(恨)을 표상하는 소재로 흔히 등장하는 접동새를 소재로 채택함으로써 우리 시의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접동새와 관련된 민중 설화를 배경과 접맥시킴으로써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음은 이 시의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설화의 내용이다.
“옛날 진두강 가에 10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계모를 들였다. 계모가 포악하여 전실의 자식들을 학대했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 박천의 어느 도령과 혼약을 맺었다. 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소녀에게 많은 예물을 보내 왔는데 이를 시기한 계모가 소녀를 농 속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그러자 재 속에서 한 마리 접동새가 날아올랐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계모가 무서워 남들이 다 자는 야삼경에만 아홉 동생이 자는 창가에 와 슬피 울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가장 흔하고 전형적인 한(恨)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 계모와 의붓딸의 갈등, 한을 남기고 죽은 혼의 되살아남, 혼이 되살아난 접동새의 울음 등 한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소재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계모와 의붓딸 사이, 그것은 이 땅에서 지속된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의 하나였다. 계모가 악녀가 아닐 때에라도 의붓딸은 피해 의식에 의해 쉽게 상처받는 존재가 된다. 계모가 실제로 악녀일 때 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이 뻔하다. 이렇게 해서 계모와 의붓딸 사이는 민담이나 조선조 소설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한의 온상 구실을 오랫동안 다해 온 것이다.
접동새의 울음소리를 의성화한 ‘접동 / 접동’과 ‘아홉 오래비’를 활음조(滑音調, euphony)시킨 ‘아우래비’를 조화시켜 리듬의 불협화음을 막은 데서 일상적 언어를 자기 것으로 육화(肉化)한 소월의 천부적 시 능력이 유감 없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서술적 형식인 압축과 비약의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감동을 극대화하고 있다.
‘오랍동생’ 중 하나인 시적 화자는 2․3연에서 접동새에 얽힌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다가, 4연에 이르러 주관적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즉, ‘누나’를 ‘우리 누나’라고 하여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독자를 시적 화자와 일체화,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찾아와 우는 누나의 슬픔과 어린 동생들의 그리움을 화자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를 자유와 비상(飛翔)의 표상이라고 하지만, 누나의 분신인 접동새는 동생들 때문에 자유롭게 날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있다. 이렇듯 자유와 구속의 모순된 이중성을 갖는 접동새가 ‘한(恨)’의 표상이라면, 이 작품은 바로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내재해 있는 한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 ‘접동새’의 시 정신
‘접동새’의 기본 구조는 ‘죽음 - 비련 - 비탄’의 골격으로 짜여져 있다. 여기서의 죽음은 ‘의붓어미 시샘’에서 비롯된 타의적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한(恨)을 품은 죽음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살아 남은 자의 한(恨)이 아니라 죽은 자의 원(怨)이며, 동시에 그것을 말하는 자의 한(恨)이다.
<참고> 소월 시의 한(恨)과 민요와의 관계
소월 시의 저변에 흐르는 한(恨)은 한민족의 심층에 깔린 정서이다. 이것은 고려속요나 시조에서 살펴볼 수 있거니와, 그 외에도 구전(口傳)하는 민요나 민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여러 민요를 살펴보면 소월이 그의 시에서 노래한 이별의 한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에 내포된 한의 정서는 특히 비기능요(非機能謠-노동요 같은 어떤 기능성을 띤 노래가 아닌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국 민요의 정서가 소월 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여러 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참고>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