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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그렇게 흔들릴까요?
56-0101
미국 인디애나 제퍼슨빌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아침 다윗의 집에 부정한 것을 씻어 주시고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샘이
있음에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아침 겸손히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보혈로 가득
찬 그 샘에 가서, 우리의 혼을 그 진홍색 물줄기 아래에 담그고 씻음을 받고 저편으로 나오며, 죄인으로
들어갔다가 구원을 받고 나오며, 병들어 들어갔다가 건강하게 되어 나오고, 눌리고 낙심하고 지치고 모든
작은 일에 흔들려서 들어가서, 저편으로는 굳건하게 나오게 하소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 큰 기회,
이 큰 특권에 대해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겸손히 머리를 숙여 모든 축복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여기서 저희를 만나주소서.
이제 우리는 찬송과 예배의 앞부분에서 우리와 만나 주신 것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와 만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모든 말씀을 신자와 죄인의 마음에 똑같이 바로 전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큰 도움의 추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즉 궁핍한 자를 위한 도움, 병든 자와 고통 받는 자를 위한
도움, 지치고 괴로워하는 자를 위한 도움, 길을 떠난 자를 위한 도움, 미지근한 신자를 위한 도움, 그리스도
안에서 쉬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를 위한 격려의 추수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버지, 주 예수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오니 허락하옵소서. 아멘.
오늘 아침 성막에 모이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있음을 믿습니다. 조금 전에 손을 들었을 때,
“내가 이렇게 놀랍게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정말 기뻤고, 제가 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모든 손이 100퍼센트 공중으로 올라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정말 놀랍게도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너무도 달콤하게 거하시네요.”
저는 오늘 그것으로 인해, 여러분으로 인해,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들것에 누워 있는 자매는 햇볕을 조금 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녀가, 그녀가 이송되길 원한다면 말이죠. 그게 그녀를 괴롭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의 손이 위로 올라간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죄에서 구원받았어요. 예수님이 너무 사랑스럽게 내 안에 계시네요.”
오, 놀랍지 않나요? 나사렛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가 되어야 할 존재로 만들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이요. 몇 년 전에 우리가 부르던 짧은 찬송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으로 만드네. 그분의 은혜가 나를 깨끗하게 하시고 자유케 하시네.”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주일학교를 시작하기 직전에 제가 오늘 아침 주일학교를 가르칠 차례입니다.
그리고 제가 뒷문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이 생일 헌금을 여기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성막이 처음 태동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이 성도들의 앞날을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주신 일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듣는 것도 예전처럼 좋았습니다.
이제, 저는 이 성막에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성막은 제가 이 발표를 하는 첫 번째 장소가
될 것입니다. 타이핑을 마치고 우편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새해라서, 아니 새해여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전환기이기 때문에 인용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그림자를 보며 살아가는 매우 놀랍고 영광스러운
기회의 날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을 맞이할 수도 있고,
역사상 가장 어두운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고 온 마음을 다해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오늘 이 자리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아침이 그날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배 중 어딘가에서 마음속으로
“예, 주님, 오늘은 제가 주님을 평생 섬기기로 결심하는 날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멋진 날입니다. 우리는 신자라 할지라도 우리 눈 위에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없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영적으로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은 주 예수님께
온전히 항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하고 이상한 삶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자, 몇 주 전에...저는 8년인가 10년 전, 1946년 성막을 떠날 때, 이 대집회가 큰 혼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그리고 많은 돈과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해서 이 대집회에서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겠다.
고 주님께 약속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책을 읽으면서, 주님의 축복을 조금이라도 받는 사람들을, 보통 목회자를 다시 덫에 빠지게
하는 세 가지 주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돈, 여자, 인기, 그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발락이 많은 돈을 제안했을 때, 돈 때문에, 자신의 은사를 팔아버린 선지자 발람이 바로 돈
때문에 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삼손에게는 드릴라 였습니다. 주님의 비밀을 그녀에게 알려줄 때까지 무릎을 꿇고 구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는 인기였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선지자들 가운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기를 통해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것에 의해 넘어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성경에서 본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세 가지 주요 원인 이었습니다.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런 것들, 특히 이 세 가지 주요한 것들을 항상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덮어두었습니다.
저는 집회에서 돈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이 헌금 접시를 돌린다면,
왜냐하면 큰 규모의 집회를 열려면 수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분이 집회에서 제 필요를 공급하지 않으시면, 저는 사역지를 떠나 집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기적적으로도 돈에 대하여 스트레스나 압박을 한 번도 주지 않으시고 공급해 주셨습니다.
서너 명의 매니저가 돈으로 인한 약간의 압박 때문에 직장을 잃었는데, 저는 그런 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걸 믿지 않습니다. 여기 도시 주변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 주님이 우리에게 저기 있는 작은 집을 주셨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 집이 생겼으니...누군가는 “네, 저 사람은 백만장자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것과 다르게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걸하지도 않고 그냥 사람들이 와서 “이걸 드릴게요, 브래넘 형제님”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거절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전 그것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더러운 거라고요.
제 상속유산은 저기,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날마다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23년 전 이곳에서 설교를 시작했던 어린 소년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이 땅의 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하더라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는 한 가지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저주받는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목사님들과 사람들이 여러 가지 가족 재난과 일들을 호소했습니다.
며칠 전 밤에 한 여성이 저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녀는 “제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남편은 현장에서 잘 알려진 치유복음전도사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길, “남편이 18세 소녀와 간음하며 사는 장면을 바로 붙잡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2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며 물었습니다.
저는 “부인, 모르겠습니다.” 저는 “형제를 위해, 그의 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적적으로 저를 만나주시고 마지막 몇 번의 집회까지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마지막 집회에서, 캘리포니아에서만 마지막 두 번의 집회에서 저는 1만 5천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그...
그들은 “도움을 간청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들은 돕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건 하나님과의 약속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제가 보증을 서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건 하나님과의 약속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료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내와 아들에게 전도 활동을 중단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하길, “돌아가서 며칠 쉬면서 주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하시는지 보고 다른 일이 없으면 내려가서,
네빌 형제가 성막을 목회하는 것을 돕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하길,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던 대로 전선을 따라 순찰을 돌거나 공공 서비스 회사에 일하러 갈겁니다. 그리고 네, 설교는
계속하고, 일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저녁은 그에게 맡기고 저는 다른 예배를 맡을 겁니다. 그가 수요일,
저는 화요일이나 그런 식으로요. 또는...” 저는 말하길, “우리는 바로 예배를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러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취직했습니다. 우드 형제님, 저기서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일하러 가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아내와 빌리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빌리가 말하길 “아빠, 분명 잘못하고 계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니, 난 잘하고 있어. 난 약속을 지키고 있는거야.” 아시겠죠? 저는 그분께 말했습니다.
“내 약속은, 그것이 어떤 약속이더라도, 어떤 사람이 자기의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올바르지 않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사람이 항상 반드시 해야 하는 한 가지는 정직입니다.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다시 돌아가서 백만 번을 말해야 한다해도 똑같을 수 있도록 말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냥 솔직해지십시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어떻게든 말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가만히 있거나, 아예 말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정직한 마음을 축복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 그분의 신성한
말씀과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 질병과 사람들의 문제들을 이겨내려면, 제가 서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마음이 정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당신이 그런지 아닌지 알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아무리 꾸민다 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직하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캘리포니아를 떠난 후 말하길, “애리조나에 도착하면 그들에게 말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뉴멕시코에 가면 말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결국 저는 인디애나에 내려와서야 그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자, 그들은 그것을 꽤 잘 이해해줬습니다. 빌리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빠, 아빠가 실수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밤 피곤하고 지치고 속상하고 울면서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가 잠든 후, 저는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아시겠죠? 제가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에 주님께서 제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전경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환상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자,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광신도가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저는 이런 말이 진실이 아니라며 말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아간브라이트 형제가 거기 서 있는 걸 보고 저는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빌리 형제님, 기도카드를 모두 나눠줬고 이제 집회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들어가고 나오는 길을 확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아간브라이트 형제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형제가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은 누구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세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은 누구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냥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청중을 해산하고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그러면 안 되죠. 제단 앞으로 부르는 일을 아직 안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료가 “헌금 걷는 일을 다 끝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 그리스도 앞에서 헌금이 혼들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때 주님의 천사가 저를 데리고 나가더니 정말 밝은 물가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가장 아름다운 파란 물이었고 큰 물고기들이 주위를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내가 너를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끼를 물속에 던져라. 처음 던질 때는 천천히 당기거라. 다음에는 너무 세게 하지 말고 살짝만
당겨라.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낚싯바늘에 고기가 걸리도록 하거라.”
제가 낚싯줄을 물속에 던지고 당기자 모두들 기뻐하며 “멋지네요. 멋져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흥분해서 다음 낚싯줄을 세게 당겼고, 물고기를 물 밖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게 뭐였냐면,
미끼만한 크기의 작은 물고기였습니다. 그래서 제 낚싯줄이 엉켜서 줄을 곧게 펴고 있었습니다.
제 뒤에서 말하던 남자가, 팔레스타인 옷을 입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채 제 앞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분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 그게 다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라고 대답했죠. 저는 “당기면 안 될 때 끌어당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럴 때 줄을 엉키게 하지 말거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 저는 최대한 똑바로 하려고 하고 있어요. 아주 조심할게요.”
그리고 그분은 말하길, “자, 내가 너와 처음 이야기했을 때 너는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당겼을 때, 너는 마음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나는 너를 백성들 앞에서 선견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넌 항상 설명하려고만 했지.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너는 그것을 공개 쇼로 만들었어.”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셨고 저는 아주 커다란 천막을 보았습니다. 그런 텐트는 처음 봤습니다.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로 걸어 나가서, 저는 사람들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제단 앞으로 불러내는 일을 했습니다. 수백,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주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영접한 후 울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일어나서
“기도 줄에 서세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제가 강단을 내려다보던 곳부터 이쪽,
왼쪽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 줄을 위해 길 위아래로 줄을 섰습니다.
제가 강단에 있었다면 제 오른쪽에 있었을, 왼쪽에 작은 목조 건물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기서 저 빛이 보였습니다...아시겠지만 저기 있는 사진입니다. 그 빛은 항상 집회에 있었습니다.
그 빛(불기둥)이 저를 떠나 저 건물로 가서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날 것이다. 그게 세 번째 당김이 될 것이다.”
저는 “왜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자, 그것은 다른 것처럼 공개적인 쇼는 아닐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새해가 시작되면서 아시겠죠? 제가 처음 시작했던 성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앞으로 약 8년 또는 10년의 또 다른 전도 대집회를 맞이하기 직전에, 글쎄요,
10년 정도 아니, 9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강당예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정확
하게 말했고, 로손 형제가 정확히 3년을 살다가 데려갈 것이고, 워드 형제가 이 위치에 성막을 지을 것이고,
여기 이 방향에 성막을 지을 것이고, 모든 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께서 가라사대”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주 예수를 위해 개최했던 역대 가장 위대한 집회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 앞에 서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이 마이크를 통해 성막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제 며칠 안에 '치유의 소리', '재림의 전령' 같은 신문에, 종교 신문에 실릴 것입니다.
이미 타이핑이 끝났고 준비됐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는 영광스러운 날, 우리는 그분의 보좌 주변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그리고 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도 작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저는 작은 성막이 널리 펼쳐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실 일은 정말 놀라울 것입니다.
주님을 축복합니다! 이제 바로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주 예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자동차, 비행기, 제트기, 로켓, 그리고 모든 종류의 과학, 전화, 텔레비전, 현대의
원자무기 등...이 현대 시대에 주님께...오늘 우리는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을 넓히신 최고 권위를 가지시고, 전능하시고 절대적 능력을 가지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끝이 없는 이유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태양의 일식이 언제 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기계는 정확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정확한 기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오! 하지만 우주에서 이 지구를 붙드시고 계신 위대하신 여호와여, 이 지구는 완벽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행하심은 정의롭고 옳습니다.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는 오늘 아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 주님, 우리 모두를 성령으로 채워
주시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날이 흔들리고 어둡지만 샛별이 길을 인도하고
있으니, 당신의 영원한 팔이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그분이 저를 인도하시는 곳이면 저는 어디든 따르겠습니다. 만약 그것이, “어떤 이는 물로, 어떤 이는 홍수로,
어떤 이는 깊은 시련으로, 그러나 모두 보혈로” 입니다. 오 하나님, 마침내 승리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의 영원한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죄와 질병과 슬픔이 종식될 것이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날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 오늘 당신의 말씀으로 오소서. 그 안에 들어가십시오.
말하는 입술과 듣는 마음에 할례를 베푸소서. 그리고 그 씨가 성령께서 뿌려주시는 마음속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우리가 말씀의 가르침을 위해 자리를 잡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주일학교 수업으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 바로 뒤에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치유 예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네빌 형제와 이야기하다 잊어버렸는데, 콕스 형제는
제가 믿기로, 우리가 찰스타운에 있는 작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러 갔을 때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희망이 없었으며, 암이 그녀를 먹어치웠는데, 하나님께서 놀랍고 기적적으로 그 작은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목사인 주니어 캐시인데, 그는 오늘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위해기도 하고 있습니다.
헨리빌까지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네빌 형제가 주니어 형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해줬습니다.
그것에 대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죠? “네 빵을 물 위에 던져라. 언젠가는 네게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올바른 씨를 뿌리면 올바른 수확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씨를 뿌리면 잘못된 것을 거둘 것입니다.
동쪽과 서쪽을 동시에 갈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잘못 가고 있을 때, 여러분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동시에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면 여러분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왼쪽으로 향해 나아가면, 왼쪽으로 가게 되고, 왼쪽으로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른쪽으로 향해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나오게 되고, 오른쪽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은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침반을 따르십시오. 나침반은 성령입니다. 북쪽의 자극은 나침반을 정확히 북쪽으로 잡아줍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것이 바로 공기의 전자장치입니다.
몇 년 전 여기 북극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어두운 한밤중에 노랗고 초록색으로 번쩍이는 북쪽의 빛들이
수놓은 것을 보면서, 이 방 안처럼 밝아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앙아메리카 저 아래 어디
있든지 저 나침반이 저 자극을 바로 가리킬 것이고, 그것은 항상 북쪽을 가리킬거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우리가 영광 안에서 자성(시스템)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이 된 모든 사람은 오늘 우리가 교회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것입니다.
지금 그분의 놀라운 말씀, 히브리서10장 19절입니다. 우리가 읽는 동안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얼마나 놀랍습니까?!)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20.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22.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제 주 예수님께서 이 말씀에 대한 응답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마음에 드십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느니라.”
자, 이제 앞으로 30~40분 동안 가르침 예배를 위해 바로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자, 우리의 믿음은 허구 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견고한 안식처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아시죠? 그리고 그리스도인, 참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그의 믿음이나 그녀의 믿음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는 움직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신학과 교리,
그리고 일부 교회 소속의 흔들리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갈 때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며칠 전 어딘가, 아마도 이곳에서 너무나 설교를 하고 싶어 밤12시까지 침대에서 아내에게 예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한 본문이 제 마음에 들어왔고, 그 본문이 저를 계속 불태웠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보, 내가 잠깐 당신에게 설교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일어나서 은혜롭게도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안식을 견고하게 기반으로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란을
피우거나, 폭발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식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신자에게는 갈보리에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맞습니다. 오, 질병이 올 수도 있고 실망이 올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리 심각하게 보여도, 질병도, 슬픔도, 죽음도, 굶주림도,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식하고 있습니다. 닻이 붙잡고 있습니다. 낡은 배는 마음대로 뒹굴게 놔두십시오.
언젠가 항구에 들렀다가 그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있었는데...
낮게 내려오니 크고 낡은 배가 있었습니다. 돛이 내려간 상태였죠. 아시겠죠? 그리고 오, 바다에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세상에, 배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낡은 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게 보였습니다.
파도가 밀려들어오기도 하고 파도가 밀려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왜 저럴까요?”라고 물었죠.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닻이 달려 있어서 배가 가라앉지는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파도를 헤쳐 나갈 수는 있지만 가라앉을 수는 없습니다.” “닻이 달려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닻을 내렸습니다.
어떤 파도는 넘어갈 수 있고 어떤 파도는 가라앉을 수 있지만, 어쨌든 닻이 고정되어 있다면!
배를 유지하는 것은 배가 아니라 닻이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지금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입니다.
제 믿음은 (앞으로)다가올 집회에 닻을 내리지 않습니다. 제 믿음은 제가 가진 능력이나 제가 어떤 교회에
가입해야(교인으로 소속되어야)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교제해야 하는지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저의 믿음은 이미 받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위에 닻을 내리고 전적으로 안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한 것은 당연합니다.
살아 계실 때, 그분은 나를 사랑하셨고, 죽으실 때, 그분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묻히셨으니 내 죄를 멀리 옮기셨고;
부활하셔서, 영원히 자유롭게 의롭다 하셨네;
언젠가 그분이 오시네, 오, 영광스러운 날!
그리스도인은 그런 소망 안에 안식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는 물론 폭풍이 몰아치고 온갖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는 닻을 내렸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복이 심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다른 교회에서는 이런 말씀을 전하지 않고, 여기 성막에서 제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왜 그렇게 흔들리는가?'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매우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깊은 소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매일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정착하거나 닻을 내릴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정착지에도 결코 오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저는 경험상 이런 사람들이 바로 지적인(지성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 말하자면 기독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 유형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두 가지 유형, 두 단계가 아니라 두 가지 성향이 더 나은 단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이지만 두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식의 방법으로,
지적 또는 정신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주시는 실험적인 경험입니다.
한 사람은 지적(지식적)으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뻐하고 있지만, 그의 기쁨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항상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견고한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시련도, 폭풍우도 전혀 그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고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종종 “주님,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 같은 이 사람들이 가진 것이
무엇일까요?”라고 궁금해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큰 질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이라도 그분께 나아온 사람들 중에 본 적이 없는데, 그 후에 그들이 ... 이외에는.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떠난다면, 그 후에는 더 이상 삶이 옳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제 한 유색인종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말하길, 한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돌아와서 설교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이제 그만하겠어.”라고 말했고, 그 다음 주 일요일에는 맥주 한 상자를 사서 그
자리에 앉아서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침대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성경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주고 싶지만,
그건 본문에서 벗어난 또 다른 주제이고, 사탄이 어떻게 들어와서 그 사람을 데려갔는지,
하나님도 그분의 자녀를 본향으로 데려가셔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굶주림, 사람들이 추구하는 갈망을 봅니다. 하지만 그 갈망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교사와 학교는 많은 신학을 가져와서는 사람들에게 말하길, “자 너희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방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런 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야.”라고 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대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들이 비록 소리를 지르거나 방언을 하거나 다른 감정을 표현한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들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은 종종 그런 마음 상태에서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주 간단한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제 생각의 지적인 부분과 마음속에 있는 혼을 본 후에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진정으로 두 가지 다른 정신 능력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머릿속에 있고 여러분의
뇌에 의해 작동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혼이라고 불리는 당신의 마음에서 작동합니다.
여러분의 영과 여러분의 혼은 지금, 많은 경우 매우 많이 불일치합니다. 머리가 무언가를 말하면 혼은
그것이 옳지 않은지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혼으로 들어오면 머리는 한 발 물러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날 줄 알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여러분은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때 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 집회의 광활한 현장에서 열린 큰 모임에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지적으로는 그들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믿음이 있었다면 그들은 믿음의 도움을 받기
위해, 믿음의 도움을 받기 위해 강단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서 오늘 아침에 이 그림을 여러분에게 아이들처럼 보여줄 모형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열심히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모형을 예로 들면, 특히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설명하기 쉽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는 아이잖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저 청소년일 뿐이죠?
“나는 하나님 안에서 다 자란 어른이예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자손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벗어나서 홍해에서 물 침례를 받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행군해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로 매일 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가서 만나를 매일 주워서 그 만나를 가져다가 빵이나 케이크 등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 만나로 만든 빵을 먹으며 여정에서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땅에 조금만 오래 놔두면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땅에 이슬이 내리는 것처럼, 그것은... 그것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9시전에 배가 고픕니다.
진영(캠핑장)이 많이 있고, 진영에 많은 유명 인사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기뻐하고,
소리치며, 주님을 찬양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고, 모든 정죄가 그들의 마음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부흥이 일어나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자마자 그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지만 만나를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옵니다...
오순절 교회에서는 오순절 사람들에게 이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각 교회마다 교리가 있고 매일 목사님과 전도자가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 글쎄요. 알겠어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들은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신 이 위대한 믿음, 곧 근본 진리를 저는 자주 말했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내 말을 듣는 자는.” 오,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5:24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원한 영생을 얻었고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것이 그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믿으십시오! 들으십시오!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말씀에서 오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고, 믿고, 적용하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말씀이 그렇게 말합니다. 들으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그렇게 말합니다. 믿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전 존재가 그 안에서 안식합니다. 끝났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느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원하고, 끝이 없고, 항상 존재하는
생명을 가졌느니라.” 놀랍지 않나요?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 결코 멸망하지 않고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분리에서 영원한 현존으로 넘어갔습니다.” 아멘.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타국인이었을 때 당신은 타국인이기를 그만두고 이제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낮으로, 필멸자에서 불멸자로, 부패에서 썩지 않는 것으로, 피곤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주께서 가라사대” 위에 전적으로 안식합니다.
느낌들, 정신적 감정, 이론, 누군가 당신에게 말한 어떤 알 수 없는 것, 근거 없는 어떤 것에, 누군가
“자, 보세요. 우리 교회에 오면 다 해결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인간의 혼은 견고하게 인식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자,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빠르게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땅에 나가 만나를 먹다가 밤이 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팠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집회에 가서 라디오를 켜고 좋은 설교를
듣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좋은 설교를 듣고 집에 가서 기뻐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들어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은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진실로, 만약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있고 여러분의 혼이 말씀 안에서 기뻐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먹고 있는 것은 성령입니다. 보시기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영생을 믿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으면 영원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한 성령으로 여러분은 믿는 자들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몇 분 후에 그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생명을 믿습니다.
그는...(사도행전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 윗 지방을 지나가다가 어떤 제자(침례요한)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는 믿은 이후로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은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 닻을 내리게 합니다. 그것은 지적인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믿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옳다고 말하고, 그것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
들어갔습니다. 당신은 진영(캠프장)에 있습니다. 만나가 떨어지고 있고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치 채셨나요? 이상한 것은, 같은 만나를 먹고 있는 무리가 섞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사람들, 주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도...병자를 고치는 하나님의 기적의 감동을 보고,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고, 기름부음으로 선포되는 설교에 마음을 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먹는 만나와 같은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항상 여기 성막에서 제 교리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셋으로 완전해지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만나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땅에 왔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왔다가 사라지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는데,
어떤 날은 9시만 되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서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교회 밖으로 나가서 그냥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다시 돌아서서 악수를 청하며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신성한 치유를 받아들이고 “아, 그래요, 알겠어요. 그것은 말씀 안에 있어요. 오, 주님,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잘 지내다가도 다시 작은 폭풍이 몰아치면 다시 돌아갑니다. 아시겠죠?
여러분도 그런 것을 보셨죠.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게 다 뭐 때문일까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제 주목해 봅시다. 이제 우리는 이 만나가 내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여정에서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 내려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큰 금 항아리를 만들어서 만나를 가득 채워서 지성소 안에 언약궤
옆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만나를 언약궤 옆에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낡지 않았습니다. 단맛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 그것은 항상 똑같이 좋았습니다.
혹시 그 안에 들어가서 이 만나를 맛보고 살았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흐린 날, 밝은 날, 우울한 날, 일이 잘 되든 잘못 되든, 그는 항상 달콤하고 항상
사랑으로 가득하며 말하거나 잘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배고프지 않습니다. 그는 교회에 가서 성장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으로 충만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교회에서 악수하고 웃으며 형제라고 부릅니다. 교회 밖에서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정직하지 않은 거래를 하기도 하죠. 저는 그런 사람들이 여기 성막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그들은 달라집니다. 사소한 일에도 예전의 성질이나
이기심이 다시 돌아오고, 소문을 듣기 위해 귀를 열거나 그런 종류의 행동을 합니다.
그 사람은 여기 지성소의 항아리 안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밖에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같은 종류의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영으로 들어왔고, 들판의 진영에는 사람들이
만나를 얻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는 만나가 이 사람이 여기서
(지성소) 먹는 만나와 같은 만나입니다. 둘 다 같은 목사가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성경을 읽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늘 진실하고 겸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복이 심해서 이렇게 들락날락합니다.
둘 다 같은 만나를 먹지만 한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밖에 있습니다.
둘 다 영생에 이르는 신자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 왕국에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밖에 있으면서 같은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여기 들어오려면 소리쳐야 한다. 여기 들어가려면 방언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추측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판단해도 안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소리치는 것을 봤는데 그들은 아무렇게나 생활합니다. 성령 안에서 춤을
추며 복도를 오르내리다가 다시 나와서 끔찍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 안에서 춤을 추고 방언을 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성질을 부리는 남자와 여자도 봤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바깥뜰에만 있습니다.
안뜰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여기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그게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오, 세상에! 제가 그곳을 미리 봤을 때, 우리의 닻이 휘장 안에서
붙들고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흰 돌과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 이름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안쪽의 휘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다르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고, 이런저런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속에 단단한 돌이 아니라 부드러운
돌이 있다는 것을 무언가가 말해 줍니다. 이 돌은 여러분의 마음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듭니다.
에스겔서에서, 성막과 언약궤 안에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갔을 때, 에스겔은 다른 시대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각자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저는 종교인이 되고 싶어요.”
아주 좋은 일이죠. 그것은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교회에 가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무언가가 여러분을 위해 하는 것이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안뜰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풍족하게 먹으며, 항상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에스겔은 “내가 내 율법을 새로 써서 그들의 마음에 새기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법은 언약궤 안의 돌에 새겨져 있었고 궤는 마음을 상징하는데,
“내가 나의 새 법을 그들의 마음, 즉 궤 안에 넣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궤위에 그분의 영광으로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궤입니다. 하나님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신학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신적 개념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옛 방식, 성화되고 거듭난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정신적 개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짜 숨어 있는 곳은 그리스도와 함께 숨어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령이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 안에 오시면, 그분은 여러분의 기질과 함께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을 통해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의 삶을 살아가십니다. 할렐루야! 끔찍하게 들리지만 옳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당신이 그렇게 굴복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이 하실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통해 그분이 생각하실 종류의 생각을 생각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통해 그분께서 하실 일을 하십니다.
당신은 굴복하고 안식하고 있습니다. 헌신되고, 성별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는 그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바울은 말하길,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리스도는 그렇게 굴복한 개인 안에 살아계시며, 개인 안에 살아
계시고, 그리스도는 입술로 말하고, 생각으로 생각하고, 눈으로 보고, 기질로 행동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세상의 것은 다 지나간 것입니다. 어떻게 항상 달콤하고 유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십니다. 아멘. 아시겠죠? 그게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그리스도!
여러분은 말하길, “그래요, 알겠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것이 진리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여기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기까지 왔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의 태도, 욕망, 식욕,
당신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이고, 굴복하고, 안식하고,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아무리 어리석어 보이고, 검게,
보여도 여전히 똑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안에서 죄인에게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실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안에서 매춘부에게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생각을 통해 생각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바로 그 생각으로,
그분이 이 땅에 계셨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고 오직 당신은 드려진 것입니다.
아론은 일 년에 한 번씩 이 성소로 들어갔습니다. 회중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올바르게 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올바르게 기름 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르게 걸어야 했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르게 옷을 입고, 바르게 걷고, 바르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의 옷에는
종과 석류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걸으실 때 사람들은 “주께 거룩, 거룩, 거룩”하고 외쳤습니다.
그는 자신 앞에 어린 양의 피, 속죄의 피를 담은 피 주머니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샤론의 장미로 기름을 부어, 수염에서 기름이 흘러 치마 자락까지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안뜰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뒤로 갔을 때 휘장이
그의 뒤로 내려졌고 그는 차단되었습니다. 그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숨겨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걸으며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숨을 수 있는 은신처, 거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방음이 되니까요. 할렐루야! 방음이 됐습니다. 세상은 바깥에서 숨을
헐떡이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안쪽에 영원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수년, 수백 년 동안 지속될 이 만나를 먹으며 오염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한 번 하나님 앞으로 걸어 들어가면, 휘장이 그 뒤로 내려와 세상의 것들을 차단하고,
그는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습니다.
12시든, 9시든, 그 이후든, 그 무엇이든, 그는 확실하게 왕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멘.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괜찮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는 비밀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는 베일 뒤로 갔습니다. 문들은 그의 뒤에 닫혀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어떤 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 문들은 양가죽과 염소 가죽으로 방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사람을 숨기는 성령의
침례로 방음 장치가 되어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식으로 매일 그분 앞에서 걸어갑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신자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요? 그러면 만물이 그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부어졌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교회 안에 부어졌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오, 신자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신자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하길, “브래넘 형제, 당신은 염두해 두신 이상형의 그림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그림에 도달할
수 있나요?”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질문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그들이 들어오는 방식이 있습니다. “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바깥뜰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복이 있고, 걱정도 있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합니다. 저는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십시오. 그럼 당신은 그 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신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자, 첫 번째는 무엇이었나요?
그 뜰은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바깥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오는 곳이 있었습니다.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 외에는 그 뜰에 들어올 수 없었고, 그들은 그곳을 더럽혔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성전에 데려올 때, “이방인을 데려와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뜰에서 그들은 절대적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 하나님을 영접하고 영생이 그들 안에 거하는 중생한 남녀여야
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뜰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첫 번째 제단으로 나옵니다. 첫 번째 제단은 희생물을 태우는 곳이며,
주님은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번제 단, 놋 제단에서는 짐승과 짐승의 피를 불태웠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째 뜰인 성화를 떠난 후 이 성별된 삶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이 모든 영광스러운 것들을 가졌던 곳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모형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죽은 어떤 것이든 들어와서 다시 살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그들은 아론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이 성소의 임재 앞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아몬드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아래 놓여 있던 이 죽은 지팡이가 하룻밤 사이에 싹이 트고 꽃을
피우고 아몬드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종류의 지팡이였을까요?
아몬드 나무, 막대였습니다. 거기서 가져온 거였습니다. 막대기는 아몬드 나무에서 잘라진 거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막대기였습니다. 언젠가. 그리고 당신의...당신은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된 아들이었던 인류의
가지에서 잘라졌습니다. 당신은 타락하고,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창조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었습니다. 당신은 여기 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존경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운 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숨어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고 소망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는 죽은 죄인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 크고 영광스러운 성막 안에 데려다 놓으면, 그는 그곳에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오래 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죽은 지팡이가 싹을 틔웠습니다.
싹이 트기 전에는 상쾌함을 얻고,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새로워진 후에는...
반드시, 향기와 향수, 꽃이 피어나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때 같은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첫째, 그는 상쾌해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사람을 붙잡으시고 그를 새롭게 하셔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성령은 상쾌함 속에 임하십니다. 성령은 조용한 시간에 오십니다.
이슬이 땅에 맺혀 있는 이른 아침에 나가 보십시오. 이슬은 대개 동트기 직전에 내리는데,
보통은 세상의 번잡함이 사라진 밤, 모든 것이 잠든 후 잠자리에 들 때 내립니다.
아침 일찍 밖에 나가 본 적이 있으시나요?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너무 상쾌하고 정말 상쾌한
이른 아침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래된 대지가 잠시 숨어 있다가 상쾌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겨왔던 남자나 여자를 만나본 적이 있나요?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상쾌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상쾌하게 합니다. 그들은 생명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 장미 정원에 가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여기 고속도로를 오르내릴 때, 정말 이른 아침, 이슬이
땅에 맺혀 있고, 인동덩굴 향기가 나고, 아카시아 꽃이 피어 있을 때 가본 적 있나요? 그런 적 있으시나요?
하나님과 함께 고요한 밤이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음날 상쾌하고, 삶의 냄새가 나고, 기분 좋은 곳,
대화하고 싶은 사람,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 확신이 있는 사람으로 나오는 그리스도인처럼 말입니다.
저기 있는 이웃,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아시겠죠? 그게 바로 신선함과 향기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곳마다 항상 하나님의 씨를 심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곳에 들어가면 또 다른 좋은 점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 오늘 아침 들것에 실려 심각한 상태로 여기 누워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이 그녀를 만지지
않으면 그녀는 죽을 것입니다. 그녀는 늙었습니다. 백발에 안경을 쓰고 아주 경건해 보이는 노모입니다.
조금 전에 제가 들어왔을 때 악수를 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그녀는 여기 누워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의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겠지만, 더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넘어져서 발목과 갈비뼈 등을 다쳤고, 여러 가지 합병증과 잘못된 점들을 저에게 말했고,
자신도 몰랐던 것들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네, 그런 상태가 되어서 그렇게 찢겨져 있는데, 이제 우리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모든 것으로 충분하시고 상쾌하게 하시는 성령의 축복된 임재 안으로 데려가서 그 낡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이곳으로 들어 올립니다.
“이제 당신은 늙으셨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브라함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백 살이 된 나이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몸을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약속하신 여호와의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여기 좌석 끝에 분명히 암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이 앉아있는데, 그 여인을 구할 수만 있다면,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아론을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론은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갈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으셔서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지성소에 들어갈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녀는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 죽어가는 여인도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 위버 부인은 몇 년 전에 암에게 먹혀서 죽어가는, 여기 어딘가에 앉아서, 작은 팔을 가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휘장 뒤로 들어올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녀를 안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휘청거릴 때 바로 여기서 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살아 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어딘가, 뒤편에 모건 씨, 아마도 모건 부인이 이 자리에 앉아 암으로 죽어가는 그녀를 안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말씀으로 인함이라.”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그 힘든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의 남편은 의사와 골프를 쳤다고 말하면서 “암이 나무뿌리처럼 창자를
감싸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녀를 임재 안으로, 상쾌함으로 데려가시고 휘장 뒤로 데려가셔서 휘장을 내렸습니다.
의사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휘장이 내려져 모든 불신자들을 차단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황금 항아리에 손을 뻗어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았다.”고 말하며,
그것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에도 여전히 먹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 부흥집회에서 그것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세요.”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고 영원하며 거기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같은 만나 항아리에서 먹고 있습니다.
그게 뭐였죠? 그녀를 상쾌함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세상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그녀 주위에 휘장을 내리는 것입니다.
보혈로 들어가십시오. 기름부음으로 들어가십시오. 기름부음으로! 바르게 걷고, 바르게 살고,
고개를 바르게 들고. 여러분이 이 뜰에 들어갈 때까지...저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또는 어떻게 침례를 받았는지, 어떤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주권적인 은혜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고, 그것이 그들이 사는 곳에,
성령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성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 모든 곳에서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갑니다. 무엇이 오든 가든, 강물이 차오르든,
구름이 낮게 깔리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왕의 임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죠?
“아, 당신은 치유되지 않았어요. 그것은 단지 믿는 척하게 하는 것입니다.”
휘장이 내려졌지만 그들은 그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저 안에 있고, 새싹을 내며 살아나고 있습니다.
(아멘!).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서 성도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대화는 소금으로 간이 되어 있습니다. 이웃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런 일이 저렇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화는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선함을 내어주고, 새 생명의 향기를 내어주고, 꽃을 피우고, 날마다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치유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치유된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나는 치유될
수 없나요?”라고 묻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형제님. 오직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무슨 일이죠, 브래넘 형제님?”
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으로 취하십시오. “너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나니, 이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은혜로 말미암음이라.” 정신적인 감정, 흥분, 방언으로 말하는 것, 소리 지르는 것, 그 어떤 것으로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주 하나님, 저는 오직 당신의 말씀에 근거하여 왔으며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여러분은 말하길, “브래넘 형제님, 당신은 소리 지르고 방언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네,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말 앞에 마차를 두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먼저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성령께서 당신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만나를 먹기 시작하세요. 그것은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고, 항상, 매일 좋습니다.
한 가지 더 알아두십시오.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독특한 빛 안에서 걷습니다. 그 빛의 독특함으로.
자, 세 개의 뜰들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여기 밖에서, 낮의 빛 가운데 걸어갑니다.
어느 날은 우울한 날이 있습니다. 아시겠죠? 오, 이걸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어떤 날들은 우울하죠? 어떤 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죠?
당신은 바깥뜰에서 걷고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신자입니다. 물론 영생이
있습니다. 물론 죽으면 천국에 가겠죠? 정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매일 “오, 여기서 나가”, “오! 오늘 비듬이 생겼어요. 제가 말했어요. 욕을 했어요. 어쩔 수 없었죠.
'하나님이시여,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분은 물론 그럴 겁니다. 당신은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세상에, 그런 삶이 싫지 않으세요? 위에 있다 아래로 가고, 문제가 있고, 밤낮으로 끌어당기는 삶이죠?
타락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갑니다. 타락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이 다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는 어떤 빛 속에서 걷고 있습니까?
날씨에 따라 다릅니다. 밖의 빛, 우울한 날씨, 안개 낀 날씨, 어중간 한 날씨, 그리고 밝은 날씨,
그리고 우울한 날, 안개 낀 날, 태양을 덮은 구름 낀 날이 있습니다. 그것이 거듭나고 의롭게 된 사람이
걸어가는 있는 길입니다. 맞습니다. 그가 걸어가야 할 모든 빛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교회에 가입했어요. 명부에 제 이름을 등록했어요.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네, 당신의 마음을 축복합니다, 형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믿는다면 하나님도 감사하실 겁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느니라.” 난...당신은 제 형제입니다. 사랑합니다.
“하지만, 오, 브래넘 형제여, 저는 기복이 심해요. 오, 세상에! 저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에요.
매일 싸워야 해요.” 오, 그래요, 형제여, 바로 그 길을 걷고 있군요. 괜찮습니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자, 그가 뜰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제 저 안에 뭐가 있을까요? 성소 옆에 일곱 개의 금 촛대가 있고, 그것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촛대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거짓말을 끊고, 도둑질
을 끊고, 이웃을 바르게 대하고, 아내에게 잘하고, 남편에게 잘하는 사람,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신자입니다.
그는 보혈을 통해 성화와 함께 모든 비열함을 버린 자리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새로운 삶으로 부름을
받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는 저 밖의 빛으로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더 나은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올리브기름을 태우고 있는 일곱 개의 금 촛대의 빛으로 걷고 있습니다.
올리브유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불은 여러분을 침례 하는 베푸는 침례, 심지어는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침례이지만 아직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휘장 뒤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성소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일곱 금 촛대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빛, 많은 빛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이 희미해지는 날도 있습니다. 램프에서 연기가 나고 빛이 좋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불을 다시 켜야 할 때도 있고, 옆집의 촛불을 조금 빌려서 다른 촛불에 불을 붙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빛은 아닙니다. 우리는 감사하지만 여전히 올바른 빛은 아닙니다. 오, 형제여! 아시겠습니까?
여전히 올바른 빛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말하길, “형제님, 방언을 했어요. 소리를 질렀어요.”
좋습니다. 훌륭하지만 다른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는 이 빛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인공조명입니다. 태양의 빛도 달의 빛도 별의 빛도 아니죠.
의로움의 뜰(바깥뜰)에 있는 사람은 밤이 되면 아주 희미한 빛, 별과 창백한 달, 떠다니는 구름만 있을
뿐입니다. 그는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제단 위에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을 성별하며 “주님, 저는 주님 곁에서 바르게 살겠습니다.
저는 교회의 집사입니다.” 또는 다른 무언가를 말합니다. “이웃에게 선하게 살겠습니다. 주님,
더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쎄요, 그는 더 나은 빛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의 불은 거의 꺼지지 않지만 연기가 나면 다른 불에서 불을 켜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너머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은 세상이 차단되고 그룹들의 날개가 잠기고 그 아래에 매달린 위대한
쉐카이나 영광의 빛이 그 주위를 덮을 때, 그 빛은 결코 어두워지지 않았습니다.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휘장 아래에서 사는 사람은 쉐카이나(Shekinah)의 영광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구름이 끼어도, 달이 빛나지 않아도, 별이 빛나지 않아도, 촛대가 꺼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 아래 하나님의 쉐카이나 영광(Glory)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밤에 꺼지지 않았습니다.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비로운 빛, 부드럽고 은은하게 빛나는 빛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안식 가운데 휘장 안을 걸어 다닙니다. 만나 항아리가 있는 곳,
그가 매일 먹는 곳인 쉐카이나의 영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만나를 먹습니다. 오, 세상에!
그는 세상에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찬양을 들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왕이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쉐카이나의 영광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그런 식으로 시작될 때마다 그것은 그에게 다가올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듣지 않았고,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징징거림은 바깥에 있었습니다. 친구여,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세상이 죽어 있는 곳, 온통...자식이 이러든, 어머니가 이러든,
아버지가 이러든, 목사가 이런저런 말을 하든, 의사가 이런저런 말을 하든, 여러분은 그것을 듣지도 않습니다.
오직 왕의 임재 안에서 걷고 살고 쉐카이나의 영광 속에서만 살아갑니다. 당신의 혼은 매일 달콤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오, 정말 멋진 곳입니다! 오, 그 작은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는 찢어진 휘장을 넘어 그분의 이름에 “할렐루야”를 외쳤네,
나는 왕의 임재 속에 살고 있네. 살아있네! 찢어진 휘장을 넘어 영광이 끊이지 않는 곳에,
나는 왕의 임재 안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빛, 아름다운 빛 속을 걷고 있습니다,
자비의 이슬방울이 밝은 곳에 오시네;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자신을 숨기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 저를 잃고 주님 안에서 찾게 하소서.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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