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길 6호, 2026.1.]
삶얼소리
서로의 세상이 되어주는 우리
새벽빛서현ㅣ최근 푸른이들과 함께 만든 빛알찬중학교 한해살이 문집에 저를 ‘늘 신나 보이지만 꽤 진지한 무한 밝음의 소유자’라고 소개했는데, 이곳에서도 같은 글귀로 소개하고 싶어요.
삼각산 인수봉이 환하게 보이는 인수마을에 살고 있는 새벽빛서현이에요. 이름 앞에 ‘새벽빛’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요, 가장 어두울 때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저의 삶과도 같아 이끌려 짓게 되었어요. 마을에 있는 중등 배움터에서 선생님 세 분, 푸른이들과 푸르른 일상을 보낸 지도 벌써 두 해가 되었어요. 푸른이들과 함께하며 저의 푸르렀던 시절을 새롭게 마주하고, 조금씩 저도 푸른 숲의 나무로 자라나고 있다고 느껴요. 배움터에서 지내며 날마다 노동과 쉼, 배움과 놀이가 한데 어우러진 장이라는 걸 실감해요. 한 뼘 자라날 땐 무척이나 아픈데, 푸른이들이 건네는 생기에 ‘못할 것 없지, 거뜬하지!’ 하고 훌훌 털고 일어나곤 해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운 장입니다.
노래 〈마음과 마음〉은 사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노랫말과 가락이 터져 나와 짓게 되었어요. 배움터에서 푸른이들이 노래 짓는 기운에 올라타, 제 안에 가득 차 있던 게 고백처럼 나왔어요.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하나님이 한 사람을 귀히 여기면서 그 사람 곁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내용이었어요. 그때 큰 울림이 있었어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밑바탕을 움직이시는구나, 형태 없이 갈피를 못 잡는 듯 보이는 마음 또한 그분의 운행과 살핌 속에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그 마음으로부터 이미 일은 시작되었구나’ 싶었지요. 그 후부터 내 마음이 어쩔 줄 모를 때도 곧 방향을 잡아 가리라는, 더불어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갈 때도 우리 마음은 방향을 잡아 갈 것이라는 이해와 확신이 생겼어요.
제가 걸어왔던 걸음을 돌아보면 그곳엔 언제나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살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고, 많은 것을 계산 없이 내어 주었던 선배들, 내 어떠함을 편견 없이 바라봐 주고 따라 준 동무들이 있었어요. 저의 세상을 이루어 준 그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요. 마을에서 한몸 이루었던 첫걸음은 사람을 향한 끌림이었어요. 가면 없이 환하게 웃어 보였던 웃음, 크게 팔 뻗어 건네준 인사, 진심 어리게 삶을 고민해 주고 토닥여 준 손길. 그렇게 때마다 만난 ‘너’라는 커다란 세상은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이끌림이 내어 주는 용기로 툭툭 걸음을 옮기다가도 막막함과 불안함을 만나게 될 때면 첫 마음을 떠올려요. 어떠한 조건도 없이 걸어왔던 길이기에 나를 움직였던 진실한 고백을 더듬어 찾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 첫 고백과 첫 마음 앞에 설 때면 어떤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전환이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생겨요. 몇 번을 반복해도 늘 같은 힘이 주어지는 것은 삶의 신비라 여겨져요. 그때마다 ‘아, 첫 마음 앞에 설 수만 있다면 내 삶은 계속되겠다’ 싶었지요.
‘나를 사랑하고 너를 지켜 주며 우리 그렇게 점점 하나가 되어 가자’는 노랫말은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말이에요. 어떨 때는 잘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정말이지 못할 것 같거든요. 내가 하고 싶다고 나서서 달려간다고 되는 어떠함이 아니란 걸 알기에, 오늘 지금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는 연습 앞에 섭니다. 그럼에도 ‘한 길을 가자, 끝까지 가자’라는 노랫말은 반짝여요. 그것이 무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힘 있게 저를 부르고 있다 여겨져요. 오늘 이곳에 생생하게 펼쳐진 살림길을 뒤돌아보지 말고, 밝고 맑게 걸어가고 싶어요. 가뿐히 걸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