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하여 놓은 그 때가 되면, 나는 공정하게 판결하겠다."
[시편 75:2]
하나님의 때, 그 때는 언제일까?
단순히 미래형일까?
아니면, 현재진행형일까? 과거형일까?
하나님의 때는 '항상'이므로 모든 때를 포괄한다. 그러므로,지금이 그 때요, 지금 하나님은 공정하게 판결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불의한 자들이 승승장구하는가? 사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지금 진노의 잔에 술을 붓는 중이다. 그들이 든 오만한 뿔(4)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을 따라 주시면, 모두 받아마시고, 그 찌끼까지도 핧는(8) 지경에 이르게 하는 도구가 될것이다.
하나님은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오만한 자들은 낮추시고, 겸손한 자들은 높이신다.
승승장구하것 같은 악인들을 보라.
그들이 진정 높임을 받고 있는가?
의로운 자들에게 철저하게 멸시당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에게 핍박당하는 이들을 보라.
의로운 자들은 그들을 높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서 오만한 자의 뿔을 꺽으시고, 의인의 뿔을 높이 들어올리시는 분이신 것이다(10).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깊이 살펴 알게 되면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아는 이들은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고, 감사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놓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오만한 자와 함께 하지 말라. 이것이 복이라고 시편 1편에서는 노래한다.
소인배들의 불의한 일과 결별하고, 군자답게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다.
*개인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1995년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 그렇게 살아가려고 힘썼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혹독했다.
지금도 따라붙은 꼬리표 같은 것은 '강성(?)'이라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는 내 삶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면이 없지않다.
조금 더 지혜로웠다면, '웃으면서 화를 내거나, 부드럽게' 내 의견을 표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의한 일 앞에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예와 아니오가 너무 선명했다.
너무 선명했다...
이것이 나의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일지 전개될지 알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사표와 실직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 등등은 예상되는 일이었지만,나는 그렇게 했다.
1999년 이후 그런 일은 여러차례 반복되었지만, 비굴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 혹독함을 견뎌낼 수 있도록 어머니와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을 도와주셨고,
가족이라는 든든한 후원군을 통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래서 지금껏 비굴하지 않게, 해야할 말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삶의 모범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살았기에 비굴한 삶은 살지 않는다.
그러면 되었지, 무슨 욕심을 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