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빛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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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
“해운대 전설, 빛으로 담다”란 주제로 펼치고 있는 ‘제8회 해운대 빛축제’는 해수욕장 한복판 백사장과 지하철역 구남로광장 그리고 해운대시장에서 해운대구청까지로 확대되었다. 재래시장과 기존도로 시가지까지 행사장을 늘인 건 탐방객들을 코로나로 힘든 골목 점포까지 유도하여 상인들을 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금년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해운대의 성탄절 저녁은 인파로 북적였다. 대부분 청춘남녀들이었고 그 중엔 동남아 등지에서 돈벌이를 위해 한국을 찾은 젊은이들도 삼삼오오 떼를 지어 얼굴을 보였다.
해운대역 승강장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칠팔 명과 승강기를 기다리는데 까만 외투를 걸친 중년여성이 승강기를 급하게 내리면서 “너희들, 백신 맞지 마라! 알았지? 백신 맞으면 죽어. 명심해라!”하곤 급하게 사라졌다. 젊은이들은 “아이씨 뭐야, 아니 싸이코 아냐? 내 참…” 모두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아니야. 너들 아직 모르고 있었나. 어느 여의사가 백신에 든 괴생명체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양심선언 한 거?. ‘괴생명체’로 검색하면 그 영상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욕장 백사장은 거대한 빛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시시각각 색깔과 모양이 바뀌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불빛 파도에 관람객이 줄지어 늘어섰기에 봤더니 백신접종 마친 사람을 가려 백사장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들인가 싶었다. 지금 주행사장 구남로광장에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괜찮고 그보다 공기가 청정하고 바람마저 불고 있는 백사장은 백신을 맞은 사람만 들여보낸다니 기가 찼다. 카톡에 떠도는 ‘대한민국 코로나 방역,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조롱이 떠올랐다.
정치인들 모임이나 콩나물시루 지하철, 민노총 집회, 밤9시 이전까지의 영업장, 관공서 구내식당, 대기업과 대형마트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겁을 내서 얼씬도 못하고 일반인 모임이나 4명 이상 식당출입과 학원, 애국시민 집회, 밤 9시 이후의 영업장, 자영업자 식당, 영세기업, 교회 집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다고 막으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백사장은 3차까지 백신 접종한 500명만 입장할 수 있다니 무슨 근거로 5백 명이냐 아무도 따지는 사람이 없는 것도 너무 신기하다.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나.
임인년 새해를 앞두고 카톡으로 연하장을 보내오는 분들에게 답장을 생각다가 뉴스에서 본 해운대 백사장 호랑이 조형물이 떠올랐다. 모두들 코로나에 갇혀 갑갑한 처지인데 호랑이해 인사에 해운대 호랑이를 붙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오늘까지 우편과 인편으로 받은 연하장은 달랑 2통. 종이 연하장에 애정과 향수까지 느끼고 있지만 옛날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사라진 종이 연하장으로 기억하지만 그 전부터 연하장은 허례허식으로 찍혀 정부에서 공직자 위주로 단속했던 기억도 난다.
달나라 여행을 오가는 시대에 아직도 사주 궁합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신기했다. 타로와 손금 관상까지 걸어놓고 손님을 맞는 업소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진로와 연애 궁합 결혼 직장 진급 사업 재물에 관한 운세를 보는 모양인데 마침 해가 바뀌는 시기라 신년 운까지도 보는 것 같았다. 성탄트리 모양의 조형물에 개인의 소망을 쪽지에 적어 매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행으로 한국을 찾아왔을 서양인 중년 부부도 소망트리에 붙어 서서 놀라는 듯했다. 행사가 끝나면 이 쪽지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에도 경제 불황으로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고단한 삶에 허덕이는 이들의 인생을 응원하고자 빛축제 현장에 네온사인으로 메시지를 만들어 붙인 걸 봤었다. 인생 쓴맛 단맛 다 본 사람 눈엔 그 내용들이 맹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MZ세대를 비롯한 오늘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자극이나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찾아서 걸 수는 없었을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나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와 같이 알기 쉬운 우리 속담을 영문과 함께 게시한다면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해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