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마음을 모읍니다♱
[찬 송] 70장(피난처 있으니)
[공동체 고백] 사도신경
[성시 교독] 교독문 5번(시편 8편)
[찬 송] 89장(샤론의 꽃 예수)
[강 론]
“의(義)를 행하며 삽시다(마6:33)”
거울 앞에서 자신을 찬찬히 드려다 봅시다. 빛과 어둠, 그동안의 삶이 스쳐 지나갈 갑니다. 그 모든 순간이 자신에게 거름이 되고 씨앗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 어떤 열매를 맺으셨습니까?
또, 앞으로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6장과 7장을 읽자는 제안에 여러분은 이미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핵심장이어서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산상 수훈으로 알려진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핵심 구절은 어디일까요? 저는 6장 33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었습니다. 왜일까요? 말씀처럼, 여러분이 그토록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뒤따르는 것들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비웃을지 몰라도 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저의 마음과 삶, 그리고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죠.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가정의 행복입니까? 가족의 건강입니까? 꿈입니까?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그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도 말이죠.
우리가 먼저 구하는 “그의 나라”는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가정 그리고 삶을 다스리시도록 그 주권을 이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흑암에 앉은 백성”같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같은 이유는 ‘하나님나라’라는 빛이 우리에게 비치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빛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통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니라(마4:16,17)” 빛이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천국(하나님의 나라)으로 인도합니다. 그 분께서 우리에게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의 의”는 무엇입니까? 공동번역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 즉, “그의 의”를 생각해 보고 그 의(義)대로 살기로 다시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회는 늘 구제와 기도, 금욕적인 삶과 하늘에 시선을 두며 살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 구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영광이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에 돌아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구제를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 앞에서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4).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중언부언하며 길게 기도하는 경우가 한국교회에는 태반인 것 같은데, 이는 옳은 기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기도도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 해야 한다고, 그것이 의(義)라고 교훈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
금식은 곡기를 끊는 것입니다. 교회는 금식을 통해서 절제를 실천하고, 그 여력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와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절제의 삶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예수께서 지적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16).”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도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18).
세상을 살다보니 보물이 생겼습니다. 그 보물이 무엇일까요?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보물은 재물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어떤 것 혹은 사람이겠죠. 그 보물을 어디에 쌓느냐가 중요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재물을 은행이나 은밀한 곳에 두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도둑맞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19). 따라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권면해 주십니다(20). 보물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 두는 이유가, 하늘에 계신 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라는 사실에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그 보물이 필요하거나 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은 우리의 보물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한 최선을 말씀해 주시고 계신 것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자녀는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입니다. 그 자녀를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꿈도 땅에 쌓는 사람과 하늘에 쌓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소중한 보물을 어디다 쌓고 계십니까? 비유가 어렵나요? 현실적일 것 같아서 해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쉬운 비유를 하셨죠. 재물입니다. 재물을 땅에 쌓는 사람과 하늘에 쌓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그 재물을 하나님나라를 위해 허비(?)하는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과 흘려보낸 값비싼 향유가 보물을 하늘에 쌓기 위해 허비했던 좋은 예일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행위는 시선을 하늘에 두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일입니다, 시선이 땅에 있는 사람은 결코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습니다, 도둑맞기 쉬운 땅에만 쌓을 뿐이죠(21-24).
이제, 마태복음 7장으로 넘어와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시기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비판(비난)하지 않는 삶입니다(7:1).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입니다(7).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13).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17).
말씀 마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요 의(義)를 구하시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시기에 그의 뜻도 의롭습니다. 그분의 뜻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제를 하는 것, 기도 하는 것, 금식하는 것 등이 막연히 하나님의 뜻이고, 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제를 하되, 기도를 하되, 금식을 하되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정의입니다. 정의로운 삶은 어떤 삶입니까? 보물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삶입니다, 이웃을 비난하지 않는 삶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삶을 부지런히 추구함으로 부수적인 “이 모든 것”을 얻는 풍성한 인생을 저와 여러분이 살아내기를 축복합니다.
[찬 송] 325장(예수가 함께 계시니)
[광 고]
[공동체 기도] 주기도(찬송가 63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