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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 칼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가 되신 이유
장코뱅 추천 3 조회 288 23.09.14 08:43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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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9.14 09:24

    첫댓글 칼빈의 간결명료하고 정확한 설명에서 많이 배우고 깊은 공감을 합니다. 아마도 이단들은 정통교리의 수호자인 칼빈에게 빈틈이 없으므로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3.09.14 11:47

    네, 맞습니다. 칼빈의 신학에는 이단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만한 진리와 날카로움이 있습니다.

  • 23.09.15 07:21

    @장코뱅 공감합니다.

  • 작성자 23.09.14 12:11

    그리스도의 사역은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으로 구분되는데요. 칼빈이 본문에서 인용한 마1:23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낮아지심이 성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나타납니다. 아래에 칼빈 주석을 첨부합니다.

  • 23.09.14 13:10

    네, 잘 읽어 보겠습니다.

  • 작성자 23.09.14 12:00

    <칼빈주석: 공관복음>, 마1:23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어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의 도우심과 은혜를 통해서 우리 곁에 계셔서 그 손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에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교통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밖에 있을 때에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의 은총 속으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이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서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엡 2:17)이었고, 하나님과 이방인들 사이에는 “원수 된 것”(엡 2:14)이 있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당시에 택하신 백성에게 그림자들과 상징들로 자신의 임재의 표징(表徵)들을 주셨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중에 계신다”(신 7:21)거나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시 132:14)는 약속은 당시에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친밀한 교제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 작성자 23.09.14 12:03

    하나님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저 일을 여러 가지 상징들로 그림자 같이 희미하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보좌와 거처는 “그룹 사이에 놓여 있다(시 80:1). 왜냐하면, 법궤는 하나님의 영광상징이자 가시적인 보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의 그림자 같은 하나님의 임재와는 달리,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실제로 함께 하시는 그런 임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 이것이 바울이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라고 말한 이유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격 속에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연합하여 지니고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연합하게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중보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의 이름을 각종 기념물들에 새겼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가 믿는 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러한 반론은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라는 이 이름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옛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온갖 종류의 임재 간의 암묵적인 대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 작성자 23.09.14 12:05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이런 이름이 주어진 이유가 실제로 밝혀지기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이 전에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것은 단지 부분적인 것이었고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것으로부터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신 하나님"(딤전 3:16) 이시라는 또 다른 증거가 생겨난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중보자의 직임을 수행하셨지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효력은 전적으로 그가 최종적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몸소 사람의 육신을 입으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사람들 가운데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사람들의 죄를 속(鹽)하시고, 그의 핏값으로 사람들을 성부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등, 한 마디로 사람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이루셨을 때에 비로소 "임마누엘"이라 불리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다. 우리가 이 이름 속에서 깊이 숙고하여야 할 첫 번째의 것은 그리스도가 지니신 하나님으로서의 위엄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일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합당한 경외심을 가지고서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울러 하나님이 이 이름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 작성자 23.09.14 12:10

    바라시는 열매를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면 하나님을 소유한 것임을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여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르리라"(개역에서는 “하리라")는 어구 속에서는 대명사의 수(數)의 변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이미 말한 것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사실, 선지자는 오직 한 처녀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인칭 단수형을 사용해서 "네가 부르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이 공표된 때로부터, 모든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누리게 하셨다는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 23.09.14 13:54

    @장코뱅 그리스도께서 그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연합하여 지니고 계시다는 것은 이 카페에서 종종 들었던 내용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도 나오는 갓 같습니다. 잘 읽고 조금은 더 이해했습니다.

  • 23.09.15 07:23

    @장코뱅 긴 내용의 주석 설명으로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 23.09.14 16:54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셨던 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통틀어서 최고의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구약 때도 중보의 직임을 담당하셨지만 육신을 입고 오신 것 만이 완벽한 것이 될 수 있었다는 데서 구약과 전적인 차별을 이루고, 그리스도와 인간이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칼빈의 주석에서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알게 되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3.09.14 17:00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칼빈 이전에고 거론이 있었지만 본격화시킨 것은 칼빈의 신학적, 신앙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예수의 왕직과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의 왕직이 중첩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중의 왕이심을 나타낸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23.09.14 16:59

    그리스도가 인자로 오신 것은 우리를 자기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가난함을 부요함으로, 연약함을 강함으로, 필멸성을 불멸성으로, 땅에 오심으로써 하늘로 올리시기 위함이었다는 간결한 설명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 작성자 23.09.14 17:03

    네, 맞아요. 그것이 핵심인데요. 이단들은 교주 1인의 알레고리 해석이 충만한 설교로 진리를 대체하고 오리무중을 걷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초 신앙교육서를 읽으면 쉽게 성경과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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