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청객(老靑客)의 심지
연일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노약자들은 외출을 삼가하라는 폭염주의보도 스마트폰에 뜹니다. 저수지 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애궃은 물고기들의 떼 죽음은 신경을 쓸 겨를이 아닙니다. 일년의 벼농사와 농작물은 자식 만큼이나 애착과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북등 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름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슴에 마른 볏단을 쌓아놓고 있는 심정일테니 말입니다. 마실 물 한 모금이라도 뿌려 보지만 사막에 오줌 누기입니다. 어제 밤 부터 많은 비가 전국적으로 흩뿌려지고 있습니다. 단비라기 보다 꿀맛 같은 생명수가 내리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엄청난 비가 쏟아지며 갈 길을 주춤거리게 합니다. " 야 !, 이렇게 비가 쏟아져도 산에 갈거냐 ! 거기는 비가 안 오냐, " " 비가 오늘 계속 내린다니 산행은 접습니다 " 전화로 카톡으로 지기들의 생각을 보내오곤 합니다. " 비 올 때 너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숨도 안 쉬냐 " 튕겨져 나가곤 하는 언제나 똑 같은 대답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갈 뿐 입니다. 위짜추 씨모우 서류바 까토나 네명이 당고개역을 빠져 나와 수락산을 향합니다. 알콜은 하산 후에야 편안한 마음으로 완샷의 기쁨을 만끽 하곤 합니다. 수년간 계속 지켜온 변함이 없는 불문율과 같습니다. 수퍼에서 막걸리 두병을 배낭에 챙겨 넣었습니다. 좀처럼 안 하던 행동을 오늘만은 웬지 모르게 일탈을 하고 싶습니다. 의아한 눈빛이지만 노객들의 표정은 싫치 않은 기색입니다. 비는 그쳤으나 하늘에는 짙은 비구름이 낮게 깔려 있습니다. 약국을 삼년여 동안 접었던 오십대 후반 한 때에는 거의 매일 수락산을 헤매곤 했습니다. 마당바위 안꼬바위 기차바위(홈통바위) 피아노바위 배낭바위 여성바위 탱크바위 웨딩바위 코끼리바위 치마바위 곰바위 철모바위 등의 수 많은 바위들을 오르내리기를 평지를 걷듯이 했습니다. 화강암으로 뒤덮힌 수락산(水落山 640m)은 바위들의 전시장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겠습니다. 바로 지하철역에서 산행을 할 수 있는 매력으로 더욱 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년여 만에 찾은 수락산은 애정과 추억과 낭만이 듬쁙들은 산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수락산에 들어서면 첫 사랑 연인을 만난듯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풀잎은 바람에 속삭이며, 야생화는 환한 웃음으로, 나무잎새들은 거수경례로, 숲속에 산새들은 합창 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천만년을 버텨온 바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장 박동 소리가 묵직하게 가슴을 휘집어 들고 있습니다. 바위 밑으로 늘어져 있는 밧줄에 매달리며 올라서면 바로 곰바위가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쓰다듬는 손바닥으로 무언불변(無言不變)의 암기(岩氣)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온 몸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불암산이 우무(雨霧)에 휩싸여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상계동과 당고개역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왼쪽 아래에는 남양주 별내면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락산을 관통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덕릉교을 거쳐서 불암산을 꿰뚫고 있습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저기압으로 땀샘은 수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흠씬하게 땀으로 젖어버린 노객들의 육신(老肉身)은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입니다. 마음 속에 정해 놓은 목적지는 탱크바위 바로 밑입니다. 다람쥐 처럼 가볍게 오르내리던 바위이건만 지금은 까마득한 추억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탱크바위를 꼭 한번 걷고 싶다던 묘령의 아가씨의 간절한 눈빛이 채색되어 있는 곳입니다. 해발 약 450m 정도의 위치에 솟아 있는 커다란 화강암의 바위 봉우리 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탱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탱크바위 바로 밑에 자리를 잡습니다. 각자가 준비해 가져온 참외 콩고물 찰떡 빵 참치캔 햄캔 그리고 모처럼 막걸리를 컵에 채웁니다. 수락산에서 마시는 알콜의 맛과 향기는 산의 기(氣) 그 자체를 흡입하는 느낌입니다. 울려 퍼지는 권주가는 탱크바위를 흔들며 계곡 속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수락산역 6번 출구에서 오찬(午餐) 회식을 약속한 지기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바위 밑에 남겨두고 서둘러 하산을 합니다. 일요일이면 산객들의 대열이 끊이지 않게 오르내리는 수락산입니다. 출발하여 세시간이 흘렀으나 산객은 대여섯명이 스칠 뿐 입니다. 오늘은 백년지기 네명을 위한 수락산이 모처럼 베풀어 주는 행운의 잔치날입니다. 오른쪽의 깔딱고개로 이어지는 수락골과 정상 주위에는 짙은 비구름(雨霧)이 드리워 있습니다. 편안하고 가벼운 발걸음은 단숨에 노원골을 훓으며 내리니 바로 수락산디자인 거리입니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며 한여름엔 어린이들의 물놀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오늘의 모습은 수량(水量)도 별로이며 지저분한 모습까지 느껴지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비가 내려서 계곡을 말끔하게 청소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6번 출구에서 또파파와 합류하여 우리들만의 합창을 즐길 수 있는 맛집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갈비 사잇살인 갈매기살과 목덜미 부위의 근육살인 항정살(천겹살)에다 Fresh Distilled Liquor & Rice Wine 을 각자 한병을 책임집니다. 숯불 위에 고기가 익기도 전에 완샷의 권주가가 급발진을 합니다. 계속되는 합창소리가 노객(老客)들의 노(老)를 청(靑)의 청객(靑客)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백년지기 노객들은 노청객(老靑客)으로 남아 있기를 과욕의 심지를 땡기어 봅니다.
2017년 7월 7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