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감기에 걸리면 오한, 발열, 근육통과 같은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같은 증상을 모두 감기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감기와 초기 증상이 비슷해 오인했다가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평생을 괴롭히는 후유증이 남는 질병이 있다.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통증의 왕’이라고 부르는 대상포진이다. 대상포진은 감기와 다르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몸의 한쪽으로 수포와 발진을 동반하다가 길게는 수년까지 지속되는 신경통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남긴다.
대상포진은 어렸을 적 수두를 앓고 난 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몸 속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성인이 되어 신체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병한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이전 출생한 사람은 대부분 가볍게라도 수두를 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성인 대부분은 잠재적인 대상포진 위험군이다. 85세까지 산 인구의 절반가량은 일생 중 대상포진을 겪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대상포진은 흔한 질환이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포진 연도별 진료인원 추이(2008~2013).
국내 대상포진 환자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08~2013년) 대상포진 진료 인원은 약 41만 명에서 약 62만 명으로 약 51% 증가했다. 특히 면역력이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하는 50대 이후 인구에서 대상포진 발병률은 급증한다. 2012년 대상포진 환자 분석결과 50대 환자가 25.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이 60대(17.8%), 40대(16.2%) 순이었다.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CDC)는 대상포진 발생 사례 중 70%가 50세 이상 성인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별 환자 분포를 보면 50대 여성에서 대상포진 발병률이 남성에서보다 현저히 높은데 과로, 스트레스, 다이어트와 폐경기 이후 급격히 떨어지는 면역력이 원인으로 꼽힌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포진' 연령/성별 분포(2012년 기준).
‘대상(띠 모양)’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상포진은 몸의 한쪽에서 띠를 두르는 듯한 모양으로 피부 물집을 이루며 생긴다. 물집 때문에 단순한 피부 질환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경절을 타고 생기는 질환이기 때문에 수십 개의 바늘로 쑤시거나 칼로 베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통증의 정도는 주관적이지만 한 통증 척도에 따르면 대상포진의 통증은 출산 시 분만통이나 만성암환자의 통증보다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장년층에서 대상포진을 위험 질환으로 인식하고 예방해야 하는 이유는 발병 시 동반되는 통증뿐만 아니라 다양한 합병증 위험 때문이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대개 발진 시작 후 혹은 피부병변이 치유된 이후 1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을 말하는데, 대상포진 환자의 9~15%에서 발생하는 가장 흔한 합병증이다. 길게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지속되며 환자를 괴롭힌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느끼는 이 통증은 환자가 옷을 입거나 외출을 하는 일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고 수면 장애, 만성 피로 등을 유발해 황혼의 삶의 질을 훼손한다.
대상포진은 신경절이 있는 신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데, 발생 부위에 따라 합병증 위험도 달라진다. 많게는 대상포진을 겪는 사람 4명 중 1명이 안면 대상포진을 겪는데 이 경우 각막염이나 만성 재발성 안질환이 생길 수 있고 심하면 시각을 잃을 수 있다. 바이러스가 안면 신경을 타고 발생하면 안면마비가 오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안면마비의 경우보다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논문에 따르면 대상포진은 뇌졸중의 위험도 4배까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상포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면역력 관리가 중요하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과 영양가 있는 식습관으로 신체 면역 기능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한 면역력 유지에는 한계가 있다. 확실한 대상포진 예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현재 국내 접종 중인 대상포진 백신은 세계 최초의 유일한 대상포진 예방 백신으로 50세 이상에서 평생 한 번 접종으로 대상포진을 예방한다.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대상포진 예방 효과가 70~51%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대상포진에 걸리더라도 덜 아프게 지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