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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복음(2) 김상래교수
오늘 하루도 편안하셨습니까? 예.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든 누가 되었든지 간에 성경책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창세기 1장부터 읽어나가다 보면 첫 장부터 걸리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나보고 믿으라고 이거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라고 그런 여러 문제 중에 하나가 이 문제지요.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래 동안 이래 되는 날에 쉬셨다.
그것부터 이상하지. 하나님이 시간을 초월하게 계신 하나님이 뭘 한꺼번에 다 만들지 뭘 첫날에 뭘 만들고 둘째 날에 뭘 만들고 우리 인간처럼 그렇게 시간의 제약을 받아가면서 천지를 창조하셨나 그것도 당장 떠오르는 질문이지 그것도 받아들인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서를 보니 하나님이 이르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는 첫이라 첫날에 빛을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쭉 읽어나가다 보니 같은 창세기 1장에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더 쉬운 말로 발광채라고 그러죠.
빛을 내 발광체들이 있어 혹은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아니 온 세상이 생명이 있고 존재가 가능한 것은 그 첫 번째 에너지가 태양인데 태양이 있어야 빛이 있는데, 성경 맨 첫 내용부터 빛이 먼저 있고, 첫째 날에 넷째 날이 태양이 있었다고 하니 광명체 광명이 있었다고 하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거냐 성경을 해석하려는 학자들도 이건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 읽어보면 보세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여러분 한 시간이 저녁이 되려면 태양 밭은 있어야 합니다.
지구의 자전과 태양의 지구의 공존과 지구의 공존과 태양의 자전이
지구가 지구와 태양과 달이 함께 있어야 전역에 있고 침이 있죠.
여하튼 전역에 있으면 태양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려면 태양이 있어야 저녁과 아침이 있고 낮과 밤의 구분이 가능한데, 아니 첫날에 빛이 창조되고 넷째 날에 나중에 태양이 창조되었다고 하니 첫날의 빛이 뭐지 이거 뭐 태양이 이미 있었는데 쫙 흩어져서 왔나 아니면 이거는 하나님의 보좌에 있던 빛이 이때 이렇게 드러났나 별가지 별별 해석이 다 있습니다.
만약에 이게 이미 있던 빛이 나타났다면 빛이 있어라 하심에 있었고가 아니고 빛이 나타나라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있었거라는 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이미 있던 빛이 나타난 건 아니지 창세기 기록은 분명합니다.
태양보다 빛을 먼저 창조하셨다고 성경이 그렇게 말해요.
같은 3절로 5절에 보면 빛이 있으라 하고 첫째 날이고 16절로 19절에 보면 더 큰 광명체를 넷째 날에 만들었다 분명해요.
하나님은 자연 질서를 어기는 분은 아닙니다만 창조주가 자연 질서에 속 제한도 안으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여기 창세기 1장에 보면 그 본문 안에 답이 있어요.
왜 우리는 태양보다 빛이 먼저 있으면 태양 없는 빛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가 하면 태양이 있어야 낮과 밤이 구성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스포 성경을 잘 보세요. 성경 잘 보면 첫째 날에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여러분 성경에서 빛과 어둠 표현한 게 성경 전권에서 네 번밖에 안 나오는데, 그중에 두 번이 창세기 1장에 나옵니다.
1장 16절을 보면 큰 광명철을 만드사. 빛과 옷 것들이 나눈이 이렇게 돼 있지 않고 뭐라고 돼 있는가 하면 나 니 개하시니 이렇게 돼 있어요.
빛과 어둠을 나누는 거를 하나님께서 뭔가 시키셨다 이런 뜻이에요.
3절을 보면 빛과 어둠을 누가 나눠요?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요.
이건 우리들에게 뭘 말해주는 거죠. 빛이 빛과 어둠을 나눈다는 생각을 해 가지고, 태양이 빛과 어둠을 나눈다고 생각해서
반드시 빛과 어둠을 나누려면 태양이 있어야 돼라는 생각하지 마.
빛과 어둠을 나누는 것은 태양이 아니고 난데, 넷째 날에 가서 태양 없이도 빛과 어둠을 내가 나누었는데, 넷째 날에 가서 태양이 있게 함으로 빛과 어둠을 나누는 기능을 태양에게 넘겨줬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여러분 저는 교회 나온 다음부터 평생 자유롭게 사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이사 가는 날이든 결혼하는 날이든 무슨 뭐 하는 날이든 날 정하는 것에서부터 자유롭습니다.
어느 날에 손이 있니 손이 없니 저는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연월일시가 왜 중요해요? 나의 운명과 연월일시가 왜 중요합니까?
그게 태양이 태양이 낮과 밤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한 생명도 주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어느 연 월 일시에 내가 태어났느냐 여부가 태양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근데 성경은 뭐라고 말했냐면
빛과 어둠을 나누는 이가 하나님이시고 그걸 넷째 날에 가서 빛과 어둠을 나뉘게 했다고 말하는 거지.
빛과 어둠을 나누는 기능마저도 태양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기능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첫째 날에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직접 빛과 음을 나누시다가 넷째 날에 가서야 태양을 만드시고 그 빛과 어둠을 나누는 기능을 태양에게 넘겨주었다는 이 사실은 태양이 빛을 비춘다는 이유로 태양을 숭배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종교는 위에 올라가 보면 태양을 섬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태양이 빛을 비춘다는 이유만으로 태양을 숭배할 이유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거지.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온 다음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때 이런 걸 이렇게 염려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니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잘 보세요.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 해달별마저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만드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달별을 섬길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지, 태양보다 빛이 먼저 창조되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모든 종류의 태양숭배를 공개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고 참 가난하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이후로 부모님 아버지에게 학기라고는 단돈 1천 원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고등학교를 등교 정지를 학교 나가는 날보다 못 나가는 날이 더 많도록 등교정지를 받아가면서 억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요일날 옆집에 형님이 자전거 하이킹 가자고 하는 그 말에 따라갔다가 교회를 나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고 대학을 갔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뭐 등록금을 못 내고 등교 정지를 밥 먹듯이 받았던 입장이라
대학에 가서도 제가 등록금과 관련해서는 한 푼도 아버지한테 받아보지를 못했습니다.
늘 뭔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학생들의 알바는 뭐 저는 수학은 이렇게 가르칠 만한 할 만큼 잘하지 못했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조금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학년 아래 학생들에게 늘 영어를 가르치면서 이제 과외를 해서 돈을 학비를 벌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때로는 식비도 모자라고 뭐 모자라요.
대학교 2학년 때 기숙사에서 열심히 생활을 하는데 학생들에게 뭐 이렇게 과외도 하고 방학 동안에 과외도 하고 해서 학비를 벌었는데 식비를 다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관장님이 저를 불러서 김군 자네는 오늘부터 내 비서를 좀 하게 그래요.
그게 무슨 일입니까? 다른 게 아니고 여기 이렇게 가스통이 하나 매달려 있는데 그 종을 예배 볼 때 종치고 밥 먹을 때 종치고 이렇게 종을 치면 그 식비를 면제해줘요.
내 심부름도 좀 하면서 그거 하라고 저는 친구들에게 나는 관장 비서다 이렇게
관장 비서실장이다 이렇게 하는데 친구들은 니가 무슨 비서실장이냐 종돌이지 근데 그 종을 치는데 이 종을 치는 타법이 있어요.
다 이렇게 해놓고 가스통이 이렇게 나무에 매달려 있어 종을 돌멩이를 들고 이렇게 퉁퉁 치는데 아침에 예배 시간을 총 칠 때는 좀 빨리 좀 쳐줘야 모여라 모여라 모여라 이렇게 세 번 칩니다.
빨리 밥 먹어라 할 때는 좀 천천히 쳐야 됩니다. 밥 먹어라 밥 먹어라 밥 먹어라 이렇게 하시면 그다음에 어디서 불 났거나 그러면 당당당당당당당당 차야 합니다.
어느 날 저녁에 종을 치러 갔습니다. 저 저녁 식사 종 치러 이렇게 식당 앞에 가서 종을 치려고 이렇게 들었는데 맞은편에서 여학생들이 막 자글자글 떠들면서 웃으면서 이렇게 오는데 딱 쳐다보니까 그중에 제가 좀 이렇게 신경 쓰는 여학생도 있어요.
순간적으로 아주 아주 순간적으로 애들 앞에서 내가 종을 쳐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자존심이 상했어요.
애들 말로 못 팔린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제가 종일 밥 먹어라 밥 먹어라 밥 먹어라 해야 되는데 그렇게 안 치고 당당당당당당당 이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줄에 서서 저도 식판을 받고 밥을 뜨려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관장님이 막 뛰어오시더니 김상래 불러요.
아 예 교수님 무슨 일이야 아무 일 없었는데요. 그러니까 야 이 사람아 지금 처장님도 전화가 오고 학장님도 전화고 어디 불났냐고 다 전화 오잖아 그래 불 안 났는데요.
그랬더니 저 저 불러가지고 너 끔찍한 자에 끝나고 내 방에 와 갔지 갔더니 이 사람은 그때 그 가스통 치는 소리가 저기 우리 태릉에서 묵동까지 들렸습니다.
막 화를 내시면서 정도 하나 그렇게 치려면 그만두라고 말이 여러분 제가 파이를 불종을 잘못 쳐가지고 파이를 당했습니다.
해고당했어. 그렇게 하고 한 학기를 마치니까 그 당시 돈으로 한 학기를 다 식비를 못 내고 밥을 먹고 뭐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3만 원을 빚을 줬어요.
그래서 왜 오봉 기도 동선에 학기가 끝났는데 교수님이 저를 부르더니 학기 끝나기 전에 이런 거 다 해결하고 내려가게
동산에 가서 기도했죠. 하나님 저 이렇게 어쩌다 보니 종 잘 못 쳐가지고 돈이 문제가 좀 생겼는데 3만 원이 모자랍니다.
기도하고 이거 참 어떻게 해야 되나 어디서 일을 가서 해야 되나 이거 당장은 빌려가지고 갚고 내려가서 돈을 벌어야 되고 뭐 이런데 어디 가서 돈을 빌리나 뭐 이렇게 하면서 이제 기도하고 내려오면서 이렇게 오약본가 그게 옛날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희 대학 쉐프린 교회 앞을 이렇게 지나가는데 막 그 교회앞을 지나가는데 누가 문을 열고 탁 나와요 그게 딱 보니까 어느 여자 교수님이세요?
김미배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문 열고 이렇게 탁 나오다가 저 딱 보더니 반색을 하면서 김군 어디 갔다 오느냐 하고 얘기 좀 하자고 그러니까 절 데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더니 뒷자리에 이렇게 저 앉으라고 그랬더니 공부하느라고 힘들지 않느냐고 그렇게 물으시더니 그 우리 교회에 대학 삼육대학교회에 남들을 이렇게 학생들을 도와주고 하는 도르가회라고 하는 모임이 있는데
우리 삼육대학교의 교회 도루가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 도와주기 위해 도로가 장학금을 주는데 이번 학기에 장학금 주기로 결정이 됐다고 아 그래요?
그래요 그러면서 아주 힘들게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렇게 하면서 봉투를 이렇게 주시는 거예요.
제가 그때 교수님 더 어려운 학생 도와주세요. 뭐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조신 얼른 받아줘야 받아가지고 막 기숙사 위로 이제 뛰어 올라가서 봉투를 이제 이렇게 꺼내는 거예요.
그전에 보니까 3만 원이 들었어요. 지금도 제가 읽지를 못해요.
그래서 3만 원을 확인하는 순간 그제서야 내가 지금 기도하고 내려온다는 생각이 나고 기도 내가 좀 전에 기도한 거 다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금방 기도했는데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고 다 잊어버려요.
기도하고 내일 오는 길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동시에 이제 내가 기도했다는 게 금방 생각이 나면서 동시에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면 아이고 전부터 한 5만 원 모자라다고 기도하고 참 인간이 그렇게 감사해요.
저에게 사촌 동생이 한 명 있는데 이 친구가 아무리 예수님 이야기하고 신앙 이야기해도 안 받아들여 무슨 얘기를 해도 안 받아들여 얼마나 고집이 센지 그래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도대체 신앙을 안 받아들이길래 어느 날 제가 이 친구를 앉혀놓고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와 참 신기하네요. 그다음에 했어요. 여러분 제가 그 사촌 동생에게 했던 그 두 번째 이야기 제가 여러분에게도 들려드립니다.
2학년 때 그렇게 2학년 1학기를 마무리하고 3학년 2학기가 됐어요.
그 사이에 또 알바하고 뭐 학생들 가르치고 해서 학비도 벌고 식비도 벌고 했는데 3학년 2학기를 마치니까 오만 원이 모자라요.
그때 돈으로 제가 어떻게 할까 제가 잘 아는 어느 지방에 계시는 장로님 어른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에게 꽤 그 당시 유력한 분이셨습니다. 편지를 길게 썼습니다.
장로님 평안하십니까? 저는 제가 좀 조금 알던 분이에요.
저는 삼중대학교 신학과 이제 3학년이 됐습니다.
제가 앞으로 졸업하면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 사업할 건데 그런 다음에 뭐 골자는 이겁니다.
장로님 매 안식일마다 투자 헌금 들이시죠. 이 투자 헌금이라고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투자한다 투자 헌금 들리시죠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기에 제일 좋은 투자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해 봐도 저는 좀 투자할 만한 젊은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5만 원이 모자라게 됐는데 몇 월 며칠 내려갈 터이니 투자 헌금 드리시는 마음으로 제게 5만 원을 주시면 제가 졸업하고 열심히 하나님 일하면서 제 돈으로는 못 갚고 봉사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몇날 며칠 가겠습니다 하고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냈어요.
여러분 이런 편지 받으시면 어떠시겠어요? 지금 갔더니 장로님이 절 보시고 반갑게 웃어오라고 밥 먹자고 내가 편지 잘 읽었다고 밥 먹고 난 다음에 봉투를 주시면서 그래 젊을 때 고생은 일부러 사서도 하는 거다.
이번 달에 우리 집에 혼사가 있어서
내가 다 다 넣지는 못했고 2만 5천 원을 넣었다. 그렇게 여러분 그러는 상황에 제가 장로님 계산이 틀립니다.
뭐 그렇게 하겠어요? 나머지는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그러겠어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렇게 하고 2만 5천 원 받아가지고 오면서 기차 타고 이제 도착해가지고 나머지 2번 옷은 어떻게 해야지 걱정 많이 하고 어디 가서 또 빌려가지고 방학 동안에 또 알바해서 갚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우리 대학 정문 앞에 버스를 딱 내려서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마침 퇴근하던 학생처 여직원이 저를 보더니 반색을 하면서 김상래 씨 3일 전부터 우리 학생 저 안 교수님이 찾았는데 어디 갔다 어디 어디 어디 계셨어요?
그래 교수님이 왜 절 찾아요? 나쁜 일이에요 그러니까 아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빨리 지금 계시니까 빨리 가보세요. 그래서 뛰어가서 갔더니 교수님이 계세요 그랬더니 김군 어서 오라 이렇게 하시더니
공부하기 힘들지 않냐고 친절하게 물어보시더니 뭐라 그러시는가 하면 다름이 아니고 가로동교회 도르가 회의에서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도르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가슴이 막 뛰어요.
이미 한번 경험이 있잖아요. 가올동교회 도로가 회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라고 장학금 5만 원을 맡겼어.
교수회에서 김군에게 주기로 했어. 여러분 저는 지금 주머니에 2만 5천 원이 있으니까 박스가 들어있거든요.
지금 5만 원 필요하다고 기도하고 장로님께 전화 편지 드리고 가서 2만 5천 원 받아갖고 왔는데 지금 5만 원이 더 왔으니까 벌써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면서 계산이 되죠.
2만 5천 원 다 하면 7만 5천 원 딱 계산이 되잖아요.
그래서 김군에게 주기로 했어 이렇게 하시더니 근데 그런데 내가 어저녁에 말이야 저녁 먹고 캠퍼스를 쭉 돌다가 야경실에 들어갔어.
야경실에 들어가 봤더니 자네 그 최영만 형제 알지 그래요
여러분 그때 최영만 형님이라고 저보다 우리가 뭐 19 20 막 그럴 때 그분은 30살이 넘은 나이 많은 형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아주 힘들게 공부하는 형님이었는데 그 농가에 와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야 그 최영만군이 말이야.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야경을 하는데 한 달 동안 라면만 끓여 먹었더라고.
내가 그거 보니 너무 마음이 안 들어 자네 말이야 그 장학금을 그 최영만 형제하고 반반씩 나눠 갖도록 하게 나머지 장학금 2만 5천 원 받아가지고 나오는데요.
와 정말 캠퍼스에 별이 이렇게 떴고 하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품어안으시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고 제가 그 사촌 동생한테 이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보통 이거 내가 직접 뭐 남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간에 나는 이게 그냥 보통 일로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러면 그런 일이 있네요. 막 이러고 진짜 기도하면 그런 일 정말 생겨요.
뭐 이렇게 할 줄 알았는데 순간 눈을 끔뻑끔뻑해요.
그러더니 가만히 있더니 형
그 장학금은 어차피 형한테 주기로 이미 다 결정돼 있던 거 아니요 그래 그렇지 나보다 먼저 결정했겠지.
아니 그러면 다 결의된 거니까 형 기도 안 했어도 어차피 형 받을 거 아니오 듣고 보니까 맞아요.
그렇죠 여러분 세상의 모든 장학금이 기도한다고 주어지는 거 아니잖아요.
아무도 기도 안 해도 다 장학금 되잖아요. 그렇죠 어차피 형한테 주기로 교수들이 다 결정한 거니까 형한테 주기로 교수들이 다 결정한 거니까 기도 안 했어도 형 받았을 거 아니오.
그러네. 여러분. 그런데 제가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났어요.
형 그거 어차피 형에게 주기로 결정되어 있었으니까 형이 기도하지 않았어도 받았을 것 아니오.
여러분 그 말에 대해 제가 했던 말을 제가 평생 스스로 잊지 못합니다.
약간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죠. 그래 니 말대로 기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장학금은 내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때 장학금이 내게 전달되기 전에
내가 기도를 드렸던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나는 단지 그 장학금을 사람이 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게 되었다.
이거 평생 잊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기도하며 살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안 믿어도 빛이 비춰요. 마태복음 5장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다 비를 똑같이 내리고,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빛 주신다고 그랬어요.
세상 나쁜 짓 하고 살아도 하나님이 그분에게 빛 가리지 않아요.
똑같이 햇빛 주시고 똑같이 빛 주세요. 그러다 보니 그 빛이 태양에서만 나오는 줄 알고 그 빛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걸 모르고 살아요.
여러분 그런데 창조 속에는 하나님이 태양보다 빛을 먼저 만드시고 태양 없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의 근원마저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창조의 순서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신 거지요.
나는 하나님 안 믿고 살아.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치지 아니하시고 제외하지 않으시고 빛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똑같이 빛을 비추세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사는 것보다 그걸 알고 살면 평생 잊지 못하고 감사한 거예요.
그냥 받았으면
사람에게만 감사하고 말죠. 태양에게만 고맙다는 생각하고 말죠.
그때 기도했기 때문에 태양을 넘어 사람을 넘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거지요.
이 창조 순서에는 이런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이지, 이걸 알고 기도하고 참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그 장면 떠오르기만 해도 평생 잊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 떨리는 삶을 감동하며 사는 삶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삶, 무엇이 주어졌어도 반응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는 삶하고는 삶의 가치가 다른 거지요.
하나님은 이 빛을 만드신 다음에 성경에 보면 뭐라고 돼 있는가 하면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이 좋았더라. 그 여러분 성경에서 창조에 대한 만족이 표현된 최초의 교우가 빛입니다.
그 빛이 빛은 물체라고 그러잖아요. 물질이잖아요.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은 모든 것의 근원이에요.
생명 아주 생명의 에너지죠. 여러분
빛은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빛깔이라고 그러죠.
여기 보세요. 빛도 삼원색이 있고 색도 사온색이 있어요.
근데 빛의 삼원색 레드 그레인, 블루 아이라고 그러죠.
레드 그레인 블루 빛은 삼원색이 합하여지면 가운데가 어떻게 됩니까?
히게 됩니다. 이걸 소위 뭐라 그래요? 가산 혼합이라 그럽니다.
근데 색은 좌홍, 청록, 노랑은 합하면 가운데가 검어져요.
색
우리는 왜 색깔을 때깔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환해지지 않고 컴컴해지는 게 다들 빛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죠.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은 모이면 반드시 갈등이 생기고 컴컴해져요.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이 다 빛깔이 분명한 사람들이면 환해져야 되는데, 거기 다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때깔이 분명한 겁니다.
다 때가 묻어가지고 때깔이 그렇죠. 빛이 없어야 모일수록 더 컴컴해지고 시컴해지고 더러워지죠.
성경은 뭐라고 그럽니까? 빛색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흰색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입은 옷이 쉬라고 말합니다. 천사가 입은 옷이 쉬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보좌에 있는 사람들이 입은 옷을 흰옷이라 그러고 마침내 구원받은 사람들이 입게 될 옷도 다 흰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로 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 말하는 희라는 말은 색이 아니고 빛이기 때문에 희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건 색깔이 아니고 빛깔이에요. 그래서 부즈와 선지자라는 책에 보면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 입었던 옷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들은 천사들처럼 빛과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고, 빛의 두루마귀가 그들을 두르고 있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환해지는 거예요.
여기는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사람을 치유하려고 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빛을 드러내면서 우리가 다 연약하고 인간적인 허물이 있는 존재들이지만 그 빛을 드러내기를 흉내라도 내보기 위해 그런 의지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함께 섬기는 공동체가 여기기 때문에 다른 곳하고는 다른 곳하고는 다른 거지요.
여러분 우리가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제자가 교회를 섬기는 평창에 초청을 받아서 집회하러 갔습니다.
집회가 마친 다음에 가르친 제자가 교수님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여기 가까이에 동굴이 하나 있으니까 동굴 보러 가시죠.
거기는 시설이 없는 자연동굴입니다. 그 백룡동굴이라 그래요.
그래 거기 가봤더니 아무 시설이 없고 여기 머리에 붙은 이 등 하나 의지하고 가요.
그래서 한 안내하시는 분이 여자분인데 그 한 분 따라서 조명 나가면 안 되니까 그분이 스페라 조명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동구를 쭉 들어
들어갔습니다. 동굴 끝까지 갔어요. 가지고 마지막 동굴에 들어갔는데 불을 다 끄라고 그래요.
불을 껐습니다. 와우 저는 그날 충격적인 진리를 깨달았어요.
동굴에 들어가니 빛이 하나도 없는 절대 어둠을 만나게 되죠.
절대 어둠을 만나고 나니 눈을 아무리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절대 어둠 앞에서 여러분 눈 감고 손 이렇게 이렇게 해보세요.
다 어른어른하죠. 아무리 눈 감아도 계속 어른어른하죠.
아무리 눈 감아도 눈 꼭 감고 해도 이게 다 어른어른 왔다 갔다 합니다.
빛이 그렇죠 눈을 감아도 빛이 와 있으면 얼른얼른해요.
저는 그날 그 절대 어둠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하면 우리가 뭔가를 보는 것은 내가 눈을 뜨기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빛이 와 있기 때문에 보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지 절대 어둠 속에서는 눈을 떠도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절대 어둠 속에서는 눈마저도 퇴화되어버리고 만 말죠.
다시 말해 눈 뜨는 것보다 빛이 먼저 와 있어야 돼요.
인간의 생로 병사가 다 고통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빛이 먼저 와 있어야 이 깨닫는 게 먼저 됐는데, 빛이 없으면 깨닫고 난 다음에 갈 길은 스스로 생명을 던지는 것 외에는 답이 없겠구나.
절망의 또 다른 절망에 이르겠구나.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절대 어둠 속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힘에 빛이 쏟고 왔던 그 창조 역사가 절대 어둠에는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먼저 비추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뭔가 알게 된다 그 말입니다.
예수 없이 예수의 빛이 없는 우리 마음은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어두움과 같고 빛이 비추어야 어둠이 물러간다는 거지요.
엊저녁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이거 깨달은 다음에 빛이 없으면 또 다른 절망이에요.
그야말로 일체의 계고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빛이 와 있으면 뭐라고 말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빛이 없으면 눈을 떠도 여전히 허물라는 어두움만 남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라는 빛을 비춰주셨고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리고 우리에게 뭐라 말해요?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저는 그래서 여전히 뭐 제가 목사하고 성경 교수로 사랑받고 이렇게 하지만 여전히 제가 우리 교우님들에게 눈으로 말씀할 때 막 이렇게 사세요라기 보다.
여러분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우리 한번 예수님 흉내라도 한번 내봅시다.
이런 말씀 드리기를 좋아하는데 여러분 여기 여기는 정말 보면 이 신앙하는 게 저런 건가 하고 좀 감동이 오는 분들이 있죠.
평생 사시다가 뭐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데 뭔가 그래도 나누어 주겠다고 이렇게 찾아오셔서 섬기고 이렇게 하시는 분들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죠.
와우 빛 되도록 연습하는 거죠. 흉내내며 사는 거죠.
저도 좀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여기 한 시인이 있습니다.
스티븐슨이라고 하는 영국 시인인데요. 이 스티븐슨이라는 영국 시인이 아기 때 기가 막히게 말했습니다.
저녁 나절이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한꺼번에 다 이렇게 가로등을 켤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사람이 가면서 하나하나 가로등을 켜야 돼요.
근데 아이가 할머니 손을 붙잡고 창문을 이렇게 보고 스티븐슨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가면서 캄캄한 밤에 가로등 하나 뻥 이렇게 켜니까 그걸 딱 보더니 아이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할머니 저 사람 좀 보세요. 어둠 속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멋진 표현이죠. 빛 하나 내는 게 어둠 속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제가 의료 지식은 없습니다만 의료 부분은 전혀 무해 아닙니다만 제가 의료 이야기를 잠깐 좀
들어서 배운 내용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암세포죠 소위 저기 빨갛게 보이는 게 암세포입니다.
거기 모여드는 게 내추럴 킬러 소위 자연살해세포입니다.
암세포들이 있을 때 NK라고 그러잖아요. 내추럴 캐럴 그 자연살해 세포들이 모여들어 가지고 암세포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 자연살해세포인 내추럴 킬러를 포 t세포라고 그러잖아요.
내추럴 킬러를 그 자연살해세포가 암세포에게 닿는 순간에 단백질을 냅니다.
그 단백질을 프로폴린이라고 그럽니다. 그 단백질 프로폴린이라고 하는 걸 내면 그 단백질 프로폴린이라는 단백질이 암세포의 구멍을 뻥뻥 뚫습니다.
그래서 NK가 내추럴q를 이 자연살해 세포가 암세포의 구멍을 뚫어가지고 그 암세포가 자연사 없어 죽게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연적인 치유 기전입니다.
이걸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됐죠. 보시는 대로 NK 세포가 암세포를 만나서 이렇게 세포 사멸을 이렇게 뭔가 자꾸 구멍을 뚫습니다.
그러면 암세포가 괴사합니다.
어둠의 구멍을 뻥뻥 뚫는 빛의 역할인 거지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빛을 창조하셨고 태양보다 먼저 창조하셨고 우리를 가리켜 주님이 내가 세상에 빛이라고 말했고 생명의 빛을 나눠준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가리켜 세상에 빚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세상에 암세포 같은 세상에 구멍을 뻥뻥 뚫어내는 그런 빛된 삶, 어두운 가정을 회복시키는 빛된 기별 질병과 씨름하고 있는 의 이들의 그 암세포를 소망과 기쁨의 자연 세포를 증진시켜서 프로폴린을 발생시킴으로써 회복의 기회를 주는 암세포를 구멍을 뻥뻥 뚫어 회복하게 하는 그런 삶, 상실의 아픔을 회복시켜주는 파탄의 고통을 회복시켜주는 그 빛된 내추럴 킬롤 그 기능이 빛이 어둠을 구멍을 뻥뻥 뚫는 것처럼 그런 역사가 우리들의 삶의 기록이 된다면 얼마나 소망스럽겠습니까?
그런 역사가 여러분 개개인의 투명에서도 역사하시고 회복을 기대하시고 기도하시는 여러분에게도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저녁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참 놀랍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태양밖에 감사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양마저도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고 그 역할을 부여해 주었다는 이 기별 때문에 태양을 넘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음을 인해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이 속에 담겨 있는 오묘한 진리를 따라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사오니 눈을 뜨고 바른 것들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치유의 능력, 치유의 빛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라도 우리의 말과 표정과 눈빛과 언어로 빛을 나누어 주는 그런 삶 되도록 우리 심정들을 감동해 주옵소서 함께 건강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며 머물러 있는 사람들 누구에겐가 같이 도움을 주며 격려하는 그런 이곳 공동체 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의 빛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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