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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새종교의 특성과 그 유물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背逆)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錢財)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聖物)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俗)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安息日)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겔22:23-26)
“제3의 새종교”의 특성과 그 상징물(Symbols)
개요
A.D. 313년에 내려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Roma 제국의 국가적 차원의 박해가 중지되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자 그리스도인들은 햇빛을 보게 되었다.
A.D. 321년에 반포된 “일요일 휴업령”(The Sunday Rest Law)으로 해서 “불패의 태양”인 Apollo를 섬기는 태양신교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리스도교를 통합시키기를 원하는 황제 Constantinus의 열망에 부응하여, Roma 제국 황실 점성관 Julius Firmicus Maternus와 Caesarea 교회 감독 Eusebius가 어전에서 “일요일” 곧 太陽의 날을 매체로 해서 “제3의 새종교”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제3의 새종교”라는 것은 그리스도敎 本來의 唯一神敎(monotheism)의 그 性質(nature)과 太陽을 主神으로 하는 多神敎(polytheism)의 성질이 서로 섞여져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혼합(mixture)된 종교 즉 基督敎的이면서 太陽神敎的인 敎會, 또는 태양신교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宗敎形態를 지닌 敎會를 지칭한 것이다. 환언하면,
“그리스도敎” + “태양신敎” = “제3의 새종교”이다.
그리스도敎는 창설되던 때부터 그 本質상 女神(goddess)이라고는 存在하지 않았다. 반면에, 西洋의 異敎(paganism)에서는 女神이 반드시 있어야만 宗敎라는 것이 成立된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가 모두 그들의 神話(mythology)에서부터 發生했기 때문이다.
古代 Mesopotamia로부터 시작된 “밤 하늘의 빛난 별들”에서 유래됐던 그 신화가 Egypt 신화와 함께 Hella와 Roma에서 그 꽃이 만발했었다. 이것들을 가미한 “그리이스-로마 신화”(Græco-Roman Mythology)에도 男神뿐만 아니라 女神들이 항상 등장했었고, 또한 그 남신들과 짝지어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남신보다는 오히려 여신들을 선호했기 때문에 남신전보다 女神殿들이 더 많았고 더 크고, 더 화려했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전”(the Temple of goddess Artemis)는 그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그 웅장함에 있어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명하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의 새종교”를 설립하려면, 이 모든 것들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제3의 새종교”의 基本要素는 다음과 같은 3가지로 구성되었다.
① 崇拜의 대상은 太陽神이지만 기독교적인 것이어야 하므로 그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로,
② 숭배의 대상의 명칭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실체가 太陽이므로 그 숭배의 주기적 예배일은 “태양의 날”(dies solis) 곧 일요일(Sun-day)이나 역시 기독교적인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 명칭만은 “주일”(the Lord's Day)로,
③ 이 종교의 명칭은 그리스도敎이지만 실질적으로 숭배의 대상은 Apollo 太陽神이므로 그 배우 여신이 있어야만 그 골격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 여신의 명칭은 “Maria”로 하여 “聖 마리아”(Santa Maria)라 개명키로 했다.
그리고 교리(敎理, dogma-doctrine)는 교부신학(敎父神學, patriarch-patristic philosophy ‧‧‧ 聖經을 Hella 哲學 특히 Platon과 Pythagoras 사상 그리고 Ptolemaios의 占星學으로 논증 또는 설명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다가 이교 사상과 神話를 가미했다.
위에 열거한 그 “제3의 새종교” 설립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者 중에서 그 누가 감히 선뜻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그 아무도 없었다. 이 “제3의 새종교”를 설립하는 實體였던 “흑암의 권세자” 사단(Satan)은 매우 지혜스럽게 간계를 꾸며냈다. 그는 우선 Roma를 중심한 유럽인들로 하여금 “제2차 유대전쟁”(132-135 A.D.)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 곧 “반-유대주의”(Anti-Judaism) 감정을 일으켜서 안식일(the Sabbath)에 대한 혐오증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Mesopotamia에서 발생한 점성술을 통해 일요일(sunday) 신성설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 계략이 적중하여 “니케아 총회”와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안식일을 배척하고 일요일을 “주의 부활일”로 준수할 것을 결의하게 했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자들을 “이단”으로 의결하고 추방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에 A.D. 430년에 개최되었던 에베소 총회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즉 “하나님을 낳으신 이”라는 명목으로 “신의 모” 즉 “성모 마리아”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또 성공했다. 그 다음은 태양신의 탄신일인 양력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로, “태양신 부활절”을 “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명칭만 고쳤다.
이처럼 아주 천천히, 매우 서서히 해내었다. 참으로 놀라운 솜씨다. Roma를 중심으로 하는 Italia 곳곳에 기독교적인 女神殿인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이 Roma 이교의 여신전을 대신했고, Paris를 중심으로 한 France 여러 곳에 “노트르 담”(Notre Dame-Our Lady)들이 세워졌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여러 세대를 교체하면서 교계에서 투쟁과 격돌,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대살륙과 암투가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그 完成 단계가 바로 중세기의 유럽 “암흑시대”(the Dark Ages)를 개막했던 때였다.
이 무렵이 스콜라 神學(Scholasticism ‧‧‧ 聖經을 Aristoteles 哲學으로 논증하는 학문으로서 Thomas Aquinas가 1225/7-1247 A.D.에 完成했다)의 절정기로 “제3의 새종교”의 꽃이 최고로 만발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제자인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A.D.)는 “신곡”(Divana Commedia)을 저술하여 그의 스승의 신학 사상을 잘 대변하였다. 그리고 화가들이 “신곡”에 나타난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작품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도미니코 디 미켈리노(Dominico di Michelin)의 “단테와 그의 시”(Dante and His Poem)이다.
그리스도교 복음의 순결성을 보전하고, 각종 이설과 오류의 유입을 막아주는 진리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제칠일 안식일”(The Seventh Day Sabbath)이 폐하여지고, 그 예배일을 이교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the Sun-Day)로 변경하게 되자, 이교의 신화와 점성술, 영혼불멸설 등등 Hella의 철학과 미신이 그리스도교 내에 범람하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제 예술가들도 여기에 걸맞는 작품 창작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그리이스-로마의 신화”를 소재로 하면서도 이제는 다만 그것에 “기독교적인 옷”을 입히기만 하면 되었다. 즉 알맹이는 이교적인 것이고 껍질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다.
여러 곳에서 교회당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제3의 새종교”의 특색있는 이미지를 백성들에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 교회당 건축 양식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예배의 대상이 “태양신”(太陽神)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도 명칭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므로 “태양 원반”(Solar Disk)과 “십자가”를 그 교회당 정면에 뚜렷하게 보여야만 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전들처럼 백성들이 태양을 향하여 경배하도록 신전 제단을 동쪽에 두었고, 성당 출입구가 있는 파사드는 서쪽에 두었다. 이것이 소위 카톨릭교의 대성당들(Cathedral)이다. 그리고 이교의 각종 신전들(Temple)이 성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聖體發現 顯示臺(The Processional Monstrance)
종교 통일을 통해서, 분렬된 동서 Roma 제국을 자신의 통치하에서 통일해보려는 대야심가 Constantinus는 “일요일 휴업령”(Sunday Rest Law)이라는 칙령으로 “일요일”(dies solis)을 매체로 하여 “불패의 태양-아폴로”(Apollo-Sol Invictis)와 “義의 太陽-그리스도”(Chritvs-Sol Ivstitiae)를 결합시켜서 하나로 묶어 “제3의 새종교”를 창설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이 “제3의 새종교”를 창설하기까지 두 종파의 유력한 대표자들이 협상을 통해 어전에서 심혈을 기울여 공을 세웠던 황실 점성관 Julius Firmicus Maternus와 교회사의 비조 Eusebius 등등의 후예들은 이제 그 새종교의 主神의 본질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 太陽의 Symbol인 “太陽圓盤”(solar disk)에다가 그리스도교의 Symbol인 “†”(the Cross)를 결합 또는 덧붙여서 “제3의 새종교”가 섬기는 神(god)의 상징물을 하나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현재 Roman Catholic교가 자랑하는 소위 “聖體發現顯示臺”(the Processional Monstrance)이다. 이 현시대에 새종교가 섬긴다는 神의 聖體가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顯示臺가 성당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기본 틀은 동일했다. 즉 기본은 태양 원반과 “†”를 결합내지 겹쳐 있게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미사 드리는 제단에 설치해 두는 것이 상례인데, 우리가 제10장 5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어떤 성당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가 지금 사진으로 보고있는 현시대는 프랑스의 Editions Assouline 출판사에서 발행한 “카톨릭의 상징들”(LES SYMBOLES CATHOLIQUES, 123)이라는 책에서 따온 것이다. 초창기의 현시대는 대체적으로 “†”에다가 광채가 빛나는 태양 원반“☼”을 합쳐서 이렇게 만들어 세워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일반 개신교인들은 “제3의 새종교”의 主神의 상징물인 이러한 가시적인 현시대는 비록 전혀 없을지라도 “일요일 준수”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그리스도를 태양신으로 섬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맹점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의 일요일 신성론 신학자 Paul K. Jewett는 역설하기를 기독교의 “일요일 성수”의 기원을 태양 숭배의 관습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다고 논증하는 안식일교회의 “낙인은 가장 몰인정한 처사다”고 몰아부쳤다. 왜 하필이면 치명적인 급소를 찌르는가!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제3의 새종교”의 그 유물들-Ⅰ
포르투나 비릴레 신전이 聖 마리아 에기지아카 성당으로
“포르투나 비릴레 신전”(The Temple of Fortuna Virile)은 매우 유별나고도 잘 보전된 Roma의 고대 기념물 중 하나다. 이 신전은 Roma 공화정 시대인 B.C. 100-80년 사이에 준공된 것으로 본래는 Roma의 女神 마테르 마투타(Mater Matuta)에게 봉헌되었던 것이다. 이 신전의 특색은 그리이스-이탈리아식(Græco-Italian style) 양식이다. 이 神殿이 A.D. 872년에 교회당으로 둔갑되어 “산타 마리아 에기지아카”(Santa Maria Egiziaca)에 봉헌되었다.
파우스티나 신전이 미란다의 성 로렌쪼 성당으로
유적지 공회장(Forum Romanum)에는 여러 개의 유적들이 있는데, 그 중에 “불의 여신” 베스타(Vesta) 신전과 그 여신을 섬기고 봉사하는 6명의 처녀 여사제들(the six vestal priestesses)이 살고 있었던 집(the house of Vestal)이 있다.
이들 처녀 여사제들은 최고 대사제장-“폰티펙스-막시무스”(Pontifex Maximus-supreme religious head)에 의해 20명으로 구성된 지원자들 중에서 아무렇게나 피택된 자들인데, 이들을 “베스탈”(vestal)이라고 불렀으며, 30년간 봉사해야 하고, 이 기간 동안에 순결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만약 그 순결의 서약을 파계했을 때는 한 조각의 빵과 초롱불 하나만 지닌 채 생매장 되어야 했다. 그 이유는 이들 “베스탈”들의 피흘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스탈”들이 그 임무를 훌륭히 준수하는 이들은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석상을 세웠다. 그들의 임무란 처녀성의 순정을 지키면서 로마인들의 가정과 건강 그리고 국가의 존속을 지속하는 상징인 “거룩한 불”을 꺼지지 않게 보존하는 것인데 그 불의 여신이 바로 베스타(Vesta)였다.
그런데 A.D. 141년에 로마 원로원(the Senate)의 지령에 따라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처 파우스티나(Faustina)에게 경의를 표식하기 위해 그녀가 사망한 후 그녀를 신격화하여 그녀의 신전을 바로 이 베스탈의 집 근처에다가 세우고 파우스티나의 신전(The Temple of Faustina)라 했다. 나중에 황제도 신격화 해서 이 신전에 모시고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이라고 불렀다. 그후 11세기에 와서 이 신전을 미란다의 성 로렌쪼(San Lorenzo del Miranda) 성당으로 바꾸었다.
지금 보이는 건축물은 17세기에 와서 개조한 것인데, 옛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외곽에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과 화려하게 조각된 주춧돌들 뿐이다. 그리고 베스탈의 임무를 훌륭하게 준행했던 처녀 사제들의 공적을 기리는 석상들이 몇 개 보이는데 그 중에 파손되지 않은 것은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성당에 대해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거의 모든 성당들이 한결같이 서쪽 파사드(Façáde)에 태양의 상징인 태양 원반이 모자이크 되었거나 장미 창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그 팀파넘(tympanum) 위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이 통례인데 반하여 이 성당은 그 파사드에 태양 원반이 없고 그 대신에 “聖體發現顯示臺”(the Processional Monstrance)처럼 십자가에다가 태양 원반을 겹친 것을 세웠다. 이것은 이 성당이 제3의 새종교 즉, 기독교적인 태양신교라는 것을 명백히 공표하고 있다.
베스타 신전이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로마의 보아리오 광장에 위치한 이 “베스타 신전”(The Temple of Vesta at the Boario Forum)은 본래 로마의 불의 女神 베스타와 전혀 상관없는 신전이었으나 현재 유적지로만 남아있는 로마 공회장에 있었던 女神 Vesta의 神殿과 흡사한 원형 건축물이라서 로마인들이 Vesta 여신을 흠모하는 열정이 컸기 때문에 이 신전을 그렇게 불렀왔다고 한다.
이 신전에 대해 몇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승리자 헤르쿨레스 신에게 봉헌된 것이라 한다. 이 신전은 현재 로마에서는 가장 오랜 대리석 잔존 신전(the oldest surviving marble Temple)으로서 로마 공화정기인 주전 2세기에 건축된 것이다. 이 신전이 성 스테파노(Santa Stefano) 성당으로 봉헌되었다가 그후 A.D. 1560년에 성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ll Sole)으로 바뀌어졌다.
판테온이 순교자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Roma의 미네르바 광장(Piazza di Minerva) 북쪽에 거대한 원통형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古代 Roma의 영광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판테온(Pantheon)이다.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유일한 고대 로마의 신전이다.
“판테온”이란 “모든 신들을 한 자리에 모시는 신전”이라는 뜻인데, B.C. 27-25년에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이자 양자인 아그립파(Marcus Vipsanius Agrippa, Augustus'son-in-law, c. 63-12 B.C.)가 율리아 가문(the Giulia Julia)의 守護神들인 일곱 혹성신들을 경배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판테온의 기본 형태를 이룬 半球는 우주를 상징하며, 거대한 눈 즉 돔의 정상에 뚫린 구멍은 혹성들의 중심인 太陽을 상징한 것이다.
이 판테온이 A.D. 609년 3월 16일 포카 황제의 승인 하에 교황 보니피치오 4세에 의해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i Martiri)으로 바뀌었다.
이 판테온 천정은 원래 청동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o Ⅷ, A.D. 1623-1644)는 베르니니(Bernini)로 하여금 그 청동을 뜯어내어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천개 발다키노(baldacchino)를 만드는 자재로 사용케 했다.
“제3의 새종교”의 그 유물들-Ⅱ
벡키오 궁전
Italia 중부인 토스카나(Toscana)에서 문예부흥기의 꽃을 피웠던 도시 피렌체(Firenze 일명 Florence라고도 함)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북쪽에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하고 1298년에 착공하여 1314년에 완공된 벡키오 궁전(Plaza Vecchio)이 우뚝 서 있다. 탑의 높이는 94m로서 궁전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이 궁전의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이 건물 파사드(Façáde-건축물의 正面)에 부착된 팀파넘(tympanum-박공-건물의 主出入口 상단부에 있는 삼각면)에 매우 특이한 “태양 원반”(Solar disk)으로 된 메달리온(medallion)이다.
이 태양 원반의 독특한 점은 불꽃이 뻗어 나가는 듯 한 태양의 광휘(brilliant saw of the Sun)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monogram-이름의 첫부분의 글자, 또는 약자)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사자들이 흰 대리석 파풍( )에 얹혀있는 듯한 이 메달리온을 호위하고 있다. 그 메달리온 중심부에는 “†”와 “YHS”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 “YHS”는 Greek語의 모노그램 “IHS”의 Latin語 변형체로서 “Iésous”(Jesus-예수)의 약칭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그리고 메달리온 밑에는 대리석으로 된 파풍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파풍에 Latin語로 “Rex Regum et Dominus Domiantium” 즉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왕의 왕 주의 주)라고 새겨져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그 의미는 이렇다. 太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 건물에 이런 식의 팀파넘을 설치한 사람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두 날개가 활짝 펴진 태양 원반”(Winged Solar Disk with Cobra)이 양각된 神殿門을 通해 出入했던 Egypt人들이 그랬듯이, 이 문을 출입하는 者는 하인을 막론하고 太陽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으로 섬기고 인정하는 자임을 스스로 시인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이 문을 통해 내전의 객실 홀(the Audience Hall)에 들어서면 우측에 다시 프리오르주랑 예배당(the chapel in the quarter of the Priors)에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다. 이 문 역시 이 궁전 파사드의 팀파넘에서 보였던 태양 원반의 메달리온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Latin語 모노그램 “YHS” 대신에 Greek語 모노그램인 “IHS”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그 太陽圓盤 밑의 파풍에는 Latin語 문자가 세줄로 음각되어 있다.
첫 줄에 “SOL IVSTITAE”(正義의 太陽)
둘째 줄에 “CHRISTUS DEVS NOSTER”(우리 하나님 그리스도)
셋째 줄에 “REGNAT IN AETERNVM”(영원하신 왕)
그래서 이 글들의 전체적인 의미는:
“正義의 太陽은 우리 하나님 그리스도시오, 영원한 왕이시다”
그런데 그 주랑 예배당에 들어서면 제단 백그란드에 상부는 성 마리아에게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하는 천사와 Maria의 그림이 있고 그 밑에 로마의 太陽神 Apollo상이 황금 판에 양각되어 있어 경배받는 모습으로 서 있지 않는가! 이것은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Roma의 태양신 아폴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3의 새종교”의 성격을 가장 명확히 표현한 것이다.
푸블리코 궁전(Palazza Pubblico)
Toscana에서 Firenze와 필적하는 중부 Toscana의 아름다운 중세 도시가 그 근처에 있는데 토스카나(Toscana)의 진주라 불리우는 Siena이다. 이 Siena를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한 것은 캄포 광장(Piazza del Camp)이다.
Italia에는 각 시대마다 이 나라를 대표할 만한 도시가 3개 있었다고 한다. 바로크(Baroque) 시대는 Roma가 대표했다면 르네상스(Renaissance) 때는 Firenze가, 그리고 중세기에는 Siena가 Italia의 문화와 종교를 대변했다.
이 캄포 광장에는 숙적 Firenze와 대항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건축한 궁전이 유명하다. 이 궁전은 A.D. 1298년에 착공하여 1310년에 준공했고, 그 후 1681년에 증축했다.
Firenze의 Vecchio 궁전과 달리 이 Pubblico 궁전의 파사드 윗면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인 “†”과 “YHS”가 표기된 매우 커다란 “태양 원반”(Solar saw Disk)이 건물 크기에 균형지게 장식되어 있어 이 광장 어느 방향에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이 건물의 존재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즉 Siena의 통치자와 시민은 모두 태양신 Apollo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시인한다는 뜻이다.
시에나 대성당(Siena Cathedral)
이 성당은 A.D. 1284-5년에 착공하여 1382년에 준공한 것이다. Italia의 고딕식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서, 중앙에 육각 평면의 넓은 돔(Dome)을 얹은 것이 특색이며, 진녹색의 대리석을 자재로 건축하여 미적으로 매우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이 건축의 서쪽 파사드(West façáde)는 죠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1376년에 완성된 것이다. 그 특징은 파사드 중앙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 원반을 커다란 “격자 창”(lattice Windows)으로 만들고, 또 그 밑에 바로크 양식의 팀파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monogram of Jesus Christ)인 “†”와 “YHS”를 표기한 “태양 원반”(Solar saw disk)을 청동으로 주조하여 입체감을 느끼게 부착하였다. 이 시에나 대성당의 파사드가 서쪽으로 나있는 것은 Egypt의 太陽神殿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제단을 동쪽에 안치하여 백성들이 떠 오르는 태양을 경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산 스피리토 성당(Chiesa di San Spirito)
피렌체(Firenze)의 올트라르노(Oltrarno)의 산토 스피리토 광장(Piazza di s. Spirito)에 위치한 이 산 스피리토 성당은 1444년에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건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1423년에 그가 먼저 건축했던 산 로렌쪼 성당(San Lorenzo)과 쌍벽을 이룬다. 그리고 이 산 스피리토 성당은 그가 죽던 해에 완공되었다.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이 두 성당들의 특징은 그 건축물의 파사드(façáde)가 매우 원시적인 것으로 아주 단순한 것에 있다. 즉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와 太陽(the Sun)을 상징하는 태양 원반(Solar disk)이 “격자 창”(lattice window)으로만 장식되어있어 오히려 산뜻하면서도 뚜렷하다. 그러나 이런 것의 상징적 의미를 알지 못하므로 혹자는 평하기를 이 건축물은 그 파사드가 미완성체로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성당들이야 말로 “제3의 새종교”로서 유럽에 탄생했을 때의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오늘 날까지 남아있는 의미 깊은 유물이다.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당
이 성당은 프로렌스의 고딕식 건축물(Florentine Gothic Architecture)로서 Firenze에서는 대성당(Cathedral)를 제외하고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그리고 Italia에 있는 모든 프란체스코(Francisco) 성당들 중에서도 최대의 것으로 가장 유명한 성당이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에 의해 1294년에 건축되기 시작한 것인데, 그 후 1443년까지 계속되었으나 그때까지도 봉헌되지 못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이 성당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묘(Tomb of Michelangelo)를 위시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마키아벨리(Nicolavs Machiavelli) 그리고 단테(Danti Allgherio)의 묘가 안장되고 있다.
이 성당 역시 그 제단이 東쪽에 설치되어 있으며 몇몇 성당들처럼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원반이 맑은 유리창으로 밝은 빛을 마치 태양 모양으로 성당 내에 찬란하게 비쳐주고 있다.
이 성당의 현재 西쪽 파사드(West façáde)는 니콜로 마타스(Niccolo Matas)가 1853-63년에 흰 대리석으로 고친 것이다. 그 파사드 상단부의 팀파넘(tympanum) 속에 부착된 태양 원반은 매우 흥미롭고 이채롭다. 그리고 그 팀파넘 꼭대기에는 천사들로 표사된 두 像들이 “†”를 받들고 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 팀파넘 전체를 거의 채우다시피 한 커다란 원반 속에 “다윗의 별”(the Star of David, the King)이 있고, 그 별 속에 다시 강렬한 휘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발산하고 있는 모습의 太陽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monogram of Jesus Christ)인 “†”와 “YHS”가 뚜렷하게 양각되어 있다. 그리고 또 그 아래에는 태양 원반인 “창미 창”(rose windows)이 설치되고 있어서 이 성당을 더욱 환히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아주 전형적인 “제3의 새종교”의 의미를 부각시키는데 있어서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성당들 중 하나다. 이렇게 제단이 설치된 東쪽 벽을 통해 햇빛이 채광되도록 성당을 건축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유명한 성당이 바티칸 시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Chiesa di S. Maria Novella)
A.D. 10세기에 Firenze의 서부 중심지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Piazza Santa Maria Novella)에 산타 마리아 델레 비네의 도미니크 회의 소 성당이 세워졌는데, A.D. 1246년에 도미니크 회의 수도사 시스토 다 피렌체(Sisto da Firenze)와 리스토로 다 캄삐(Ristoro da Cambbi)가 다시 그 자리에 이 성당을 세웠다. 본당과 측당은 A.D. 1279년에 착공하였고 이 성당의 전체는 1348년에 준공했다.
그리고 西쪽의 대리석 파사드(façáde)는 1456년부터 1470년에 걸쳐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 Alberti)에 의해 개조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성당의 파사드에는 태양 원반이 모두 4개나 있어서 유별하다. 가운데의 것은 매우 큰 “격자 창”(lattice window)으로 되어 있고, 그 파사드의 최상단부에 설치된 팀파넘 안에 있는 태양 원반은 특별히 광채가 찬란한 휘광으로 모자이크된 태양인데 그 태양의 용상(the face of the Sun)이 잘 보인다. 그리고 이 성당 광장에 태양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두 개나 세워져 있다. 이것들은 Firenze 성주인 Cosimo I가 이곳에 옮겨 세워 놓은 것이다. 이렇게 Egypt 태양 신전들처럼 성당 파사드에 장치해 놓은 태양의 용상이 오벨리스크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으로 건축된 성당들이 몇 곳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바티칸 시에 건축된 베드로 대 성당이다.
오니산티 성당(Chiesa di Ognissanti-All Saints)
이 성당은 A.D. 1256년에 기르란다이오(Cenacolo dell Ghirlandaio)가 건축한 것인데, 17세기에 와서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Baroque style façáde)로 재건축 되었다.
그런데 이 성당의 西쪽 파사드(west façáde)는 우리를 흥분하게 하고, 우리의 이목을 끌어 당길 정도로 매우 이채롭게 장식되어 있다. 그 파사드 상부를 바로크식 팀파넘으로 꾸미고, 그 안에 장식한 태양 원반(Solar disk)은 여느 성당의 것과는 달리 아주 노골적으로 직접 太陽의 容像(the face of the Sun)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식의 성당은 Firenze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위에 세워진 †는 너무 가늘고 작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성당은 태양의 얼굴을 메달리온으로 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과 똑 같은 양식으로 태양 원반 대신에 태양의 용상으로 부조하여 그 파사드의 팀파넘 속에 장식한 성당이 몇 개가 더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티칸 시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 Cathedral in Vatican)
“저 거대한 방첨탑(the huge obelisk)은 … 공식적으로 태양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is set up in public to the Sun). 그 오벨리스크에 기록된 비명(its inscription)은 그것의 기원과 애굽인들의 미신(Egyptian superstition)이 담겨져 있다....”
그리스도교라는 이름 아래서 온갖 미신과 갖가지 신화를 총 집합하여 교회를 부패케 하고 궁극적으로는 유럽 암흑시대(the Dark Ages)를 연출한 “제3의 새종교”의 총 본부인 이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은 마치 Egypt의 기독교화한 태양신전을 연상하게 한다.
세계 각국의 모든 신화들은 공히 하늘 또는 천공(Sky)은 남신으로, 땅 또는 대지는 여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Egypt의 신화만이 그 반대이다. 즉 하늘 또는 천공(Sky)은 女神 누트(Nut)로, 땅 또는 대지(Earth)는 男神 게브(Geb)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의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이 둘 사이 神들에서 시작하여 자자손손 태어났다는 것이고, “저 거대한 방첨탑” 즉 “오벨리스크”는 대지의 신 게브(Geb)의 “남성의 심벌”인 성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농경 신화에서는 이 둘을 그들에 의해 매 해 태어나고 생산되는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베드로 대성당 파사드의 팀파넘 속에 장식된 태양의 용상(the face of the Sun)이 이 바티칸 광장 중앙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를 마주 쳐다 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교회를 농락하는 놀이 치고는 매우 불쾌하고 또 괘씸하고도 슬픈 현상이다.
1506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Ⅱ, 1503-1513 A.D.)가 많은 추기경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브라만테(Bramante)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강권을 받아들여, 약 천년의 역사가 풍긴 옛 베드로 성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현재의 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는 초석을 놓았다.
브라만테가 설계하기 시작하여,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나, 그의 사망으로 델라 포르타(D. Porta)와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가 그 뒤를 차례로 이었다. 800명의 기술자들이 밤낮으로 계속해서, 22개월만에 완성한 장엄한 돔(dome)의 안 지름은 42m이며, 지면에서 돔 위에 세워진 “†”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138m이다.
율리우스 2세는 완공을 보지 못한채 사망하고, 그 후임으로 교황 레오 10세(Leo Ⅹ, 1513-1521 A.D.)가 즉위하였다. 그는 이 막대한 건축기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소위 “면죄부” 판매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가, 1517년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그후 교황 파울루스 5세(Paulus Ⅴ, 1605-1621 A.D.)의 칙령에 의해 이 대성당의 정면 건축물 즉 “파사드”(Façáde)와 신랑이 1607년에 도메니코 폰타나의 조수였던 마데르노(Carlo Maderno, 1556-1629 A.D.)의 설계가 채택되어 착공한지 5년만인 1612년에 완성한 것이다.
이에 앞서 광장 중앙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본래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37-41 A.D.)가 일찍이 이집트의 고왕국 수도였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서부터 로마의 키루쿠스에 운반하여 세워두었던 것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Ⅴ, 1585-1590 A.D.)의 칙령에 의하여 도메니코 폰타나가 1586년 9월 10일에 현 위치에 다시 옮겨 세운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본 대성당은 1626년에 완공되었다.
그 후에, 4중의 도리아식 원주열 296개로 둘러싸인 타원의 광장은 거의 모든 이교도들의 “판테온”에서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 1598-1680 A.D.)가 1656년에 완성한 것으로 그의 걸작품들 중 하나다. 베르니니는 이 열주랑을 “카톨릭 신도를 모아 그 신앙을 강화하는” 교회의 어머니와 같은 팔이라고 비유하였다고 한다.
본당의 주 제단을 덮고 있는 “발다키노”(baldacchino-천개)는 높이가 29m나 되는 거창한 것으로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o Ⅷ, 1623-1644 A.D.)가 명하여 Pantheon의 천정을 내장한 청동을 뜯어다가 건축 예술가 베르니니(Bernini)에게 주어서 1624-33년에 걸쳐 만들게 한 것으로서 이는 베르니니의 대표적 청동 예술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발다키노” 역시 Egypt의 太陽神 Amun-Re 제단의 “발다키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천개를 바치고 있는 4개의 기둥은 용의 몸통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그 4개의 기둥 머리 부분에 각각 4개의 태양상으로 장식하고 있는 것 역시 Amun-Re의 천개를 본뜬 것이다.
제수 성당(El Gesú)
현재 Roma의 로톤다 광장(Piazza di Rotonda)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당은 예수회(the Jesuits)의 창설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 1491-1556 A.D.)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인데 1540년에 프란체스코 보르기아(Francesco Borgia)의 감독 아래에서 기초석(cornerstone)이 놓였고, 이 예수회의 후원자 추기경 알레산드로 파르네세(Cardinal Alessandro Farnese)의 지원으로 1568년에 착공하여 1584년에 준공한 것이다. 비뇰라(Giacomo Borozzi da Vignola)가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지만 西쪽 파사드(west façáde)와 돔(dome)은 비뇰라의 사망으로 지아코모 델라 포르타(Giacomo della Porta)에 의해 설계되고 완성된 것이다.
이 성당의 파사드 主出入門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의 상징인 태양 원반은 매우 흥미롭고 놀랍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 “†”와 “IHS”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태양 원반은 Egypt의 태양 신전 파사드에서나 볼 수 있는 Horus神인 매가 양 날개를 펴고 태양을 엎고 나르는 모습으로 장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당의 본당 주 제단 위, 즉 천개(baldacchino)의 팀파넘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노그램 “†”와 “IHS”가 담겨져 있는 “태양 원반”이 태양 광채를 휘황찬란하게 발산하고 있는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백성들의 예배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백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基督敎化 된 神話들
개요
西洋美術史(A History of the Western Art)를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考證(investigation)에 의하면, 原始農耕社會의 古代人들이 마음 속에서 念願한 것들을 그림으로 表現하기 시작할 때부터 西洋의 美術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Mesopotamia의 Sumer人들은 밤 하늘의 빛난 별들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口傳되는 과정에서 神話가 發生했고, 그 신화를 可視的인 것으로 表現 또는 묘사(delineation)해 보려는 욕망에서 “시각적 예술”(a visual art)을 탄생시켰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발생한 歷史上 알려진 最古의 信仰은 地母神 崇拜였다. 처음에는 그것을 그리거나 흙을 빚어서 女神像으로 만들어 내다가, 뼈나 상아, 목재나 석재로 풍만한 가슴과 배 그리고 둔부를 지닌 女人像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은 자녀들을 많이 생성하는 능력과 풍요 그리고 母性愛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러한 女神像 제작이 수세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예술적 공교한 기술이 향상되었고, 인간의 끊이지 않는 욕망(endless desire)이 보다 아름다움과 美的 女人像을 추구하면서 회화와 조각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오늘날의 “Venus”라는 것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고, 수세기 동안 그것을 숭배해 왔던 서양의 민속적 지모신 신앙의 전통이 基督敎 時代에 와서는 “Maria”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서구 각지에 세워졌던 女神殿들-Isis 신전, Athene 신전, Artemis 신전, Vesta 신전, Venus 신전, Aphrodite 신전, Cybele 신전, ‧‧‧ 등등-이 Italia에서는 Maria라는 이름으로 “Santa Maria” 성당들, France에서는 “Our Lady에게”라는 뜻의 “Notre Dame” 대성당들이 도처에 건축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Paris의 “Notre-Dame과 Lans의 Notre-Dame 그리고 Amiens의 Notre-Dame이다.
西洋美術史에서는 “信仰時代”(The Age of faith)라는 항목이 있다. 時代의 變遷에 따라 信仰의 價値觀도 달라지는 것일가! 그럴 때마다 그 시대의 미술 작품들도 그랬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그런 작품들을 통해서 中世 Europe인들의 신앙관 또는 종교관을 다소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시각적 미술가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신념이나 사상 또는 생각하고 있는 것을 회화나 모자이크, 그리고 조각 등을 통해 表出(presentation)해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앙시대” 前後부터 “르네쌍스 시대”(The Age of the Renaissance)를 지나기까지의 그들의 작품들은 다분히 그리이스-로마적 신화(Græco-Roman Mythology)를 주제로 했거나 알맹이로 해서 거기에다가 기독교적인 옷을 입혀 미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가 “세3의 새종교”의 성숙 또한 완숙기였다. 환언하면 유럽 문명사상 암흑기의 절정기 시대였다.
이제 그시대의 작품들을 몇가지 살펴 보기로 하자.
성 게오르게와 성 마르다 그리고 용
Greek 神話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北 Africa에 Ethiopia 王國이 있었다.
그 나라 왕은 Cepheus였고,
왕비는 절세 美人 Cassiopeia였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Andromeda 공주였다.
왕비 Cassiopeia는 허영심이 강했고, 자신의 미모를 늘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왕비는 해안을 산책하면서 무심코;
“저 바다에 사는 Nereids 요정들보다 내가 훨씬 더 아름답고 말고”라고 호언했다. 이런 외마디의 메아리는 그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속상한 바다의 요정 Nereids는 그의 아버지 Poseidon에게 하소연했다.
화가 난 바다의 神 Poseidon은 괴물 Caitos에게 명하여 Ethiopia 해안을 해일로 덮치게 했다.
곤경에 빠진 Ethiopia 王國 Cepheus는 神들에게 빌었다.
神들은 바다의 神 Poseidon의 화를 달래기 위해 Andromeda 공주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Andromeda 공주는 우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원해서 해안의 바위에 쇠사슬에 묶인 채 괴물에게 바쳐지게 되었다.
때마침 땅 끝에 있는 요괴 Medusa를 쳐죽이고 천마 Pegasus를 타고 고국에 돌아가는 중이던 그리이스의 영웅 Argos 王國의 王子 Perseus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이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이런 모습으로....”
Andromeda가 그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대노한 바다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바다가 괴음을 발하며 요동했다. 그러자 그 순간, 괴수 Caitos가 삽시간에 다가섰다. 겁에 질린 Andromeda 공주는 엉겹결에 눈을 감고 말았다.
Perseus 王子는 서슴치 않고 용감하게 단숨에 칼을 뽑아 그 괴물에 내려꽂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요괴 Medusa의 머리를 괴수 Caitos의 눈앞에 내 보였다.
그 순간 괴물은 거대한 바위로 변해 버렸다.
그 후 Andromeda를 구출한 Perseus는 청혼해서 공주와 결혼하여 아내로 맞아들여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신화다.
이들은 모두 다 별이 되어서 가을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신앙의 가치관이 변함에 따라 “聖 게오르게와 聖 마르다 그리고 용”(St. George, St. Martha and the Dragon)의 이야기로 둔갑되었다. 그래서 美術家들도 이러한 시대 사조에 걸맞는 작품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품들 소재(素材)는 여전히 Græco-Roma의 神話이지만 “제3의 새종교” 시대의 신앙을 잘 나타내는 多神敎 形態의 基督敎的인 것이었다.
성모 마리아 제관식
Greek 神話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한 때 Athene는 섬 Crete의 왕국 Knossos의 王 Minos에게 침략을 당해 속국이 되어 해마다 조공과 함께 황소 머리의 인간(bull-head man)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에게 바치는 제물용으로 7명의 소년과 7명의 소녀를 바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Athene의 王子 데세우스(Theseus)는 이런 악습의 관행을 파하려고 자진해서 그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Minos 왕 앞에 끌려갔다. 그 자리에 있던 왕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 공주는 용감하게 생긴 미남 Theseus에게 한 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괴물 Minotauros를 해치려는 Theseus를 도왔다. 그 괴물을 죽이고 소년 소녀들과 함께 그들은 Crete 섬을 빠져나왔다가 낙소스(Naxos) 섬에서 하루 밤 야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주 Ariadne가 잠든 사이에 Theseus는 소년 소녀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酒神 디오니수스(Dionysus-Roma의 酒神 Bacchus)가 슬픔에 잠긴 Ariadne의 미모에 사랑을 느끼게 되어 그녀를 위로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그래서 酒神 Dionysus는 그 결혼 선물로 아주 아름다운 왕관을 Ariadne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가 죽자, Dionysus는 Ariadne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기념하려고 그 왕관을 별들 속에 올려 둠으로써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이것이 북쪽 왕관 자리의 Ariadne 神話이다.
그리스도敎가 太陽神敎와 混合하여 安息日을 버리고 일요일을 예배일로 받아들이면서 “제3의 새종교”로 변질되어 극도로 부패하였다.
그러자 갖가지 미신들과 점성술과 영혼불멸설, 그리고 신화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그래서 “북쪽 왕관 자리의 Ariadne 신화”는 이제 “동정녀 마리아의 왕관”(The Coronation of the Virgin Mary)으로 슬쩍 바꾸었다.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Maria의 神性(deity)을 부정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오직 성경만”을 내세운 Waldenses 족속들을 박멸하기 위해 1229년에 툴루스(Toulouses) 공의회에서 성경을 금서목록에 처하고 평신도의 성경 소유를 파문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 당시 Roman-Catholic敎가 설치한 종교재판소에서 파문선고를 받으면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 “동정녀 마리아 제관식”이라는 이 주제는 미술가들에 의해 성당 벽화로, 모자이크로, 심지어는 성당 파사드에까지 장식용 주제가 되기까지 했다.
피에타
“피에타”(Pietá)는 Latin語로서 그 뜻은 “비통”(悲痛-grief)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은 성모 Maria가 비통해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미술가들이 회화나 모자이크, 그리고 조각으로 작품화하고 그 작품명을 피에타(Pietá)라 했다.
그 여러 명작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Vatican의 베드로 大聖堂 안에 있는 Michelangelo의 “La Pietá”이다.
이러한 피에타의 작품 기원은 현재 터키국인 Anatolia에서 한 때 번영했던 Phrygia 王國(B.C. 1200-650)의 神話에 나오는 太陽神 Attis와 年上의 연인 Cybele 女神과의 사이에 얽힌 부활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신화는 古代人들의 農耕社會에서 기인한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초목이 고사했다가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봄비와 함께 만물의 생기가 다시 움돋아 살아난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Attis는 태양신이지만 미남 목동이었다. Cybele의 강력한 만류를 뿌리치고 들에 사냥나갔다가 괴수에게 기습당해 살해되었다. 그 사실을 감지하고 뒤따라 나섰으나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고만 것이다. 슬픔에 잠긴 Cybele 여신이 죽은 Attis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그 모습을 기독교화 한 것이 “피에타”이다.
이 신화는 아득한 옛날 동쪽 저멀리 Mesopotamia의 신화에 나타난 태양신 Dumuzu와 사랑과 미의 여신 Innana(Sem語로 Thamus와 Ishtar)에서 시작되어 가까이에는 Syria와 Phoenicia의 Adonis와 Astarte, 가나안의 Baal과 Ashera, 그리고 Egypt의 태양신 Osiris와 Isis 사이에 얽힌 부활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신화가 서방에 전해졌다.
Greek 神話에는 “사랑과 美”의 女神 아프로디테(Aphrodite, goddess of love and beauty)의 탄생 이야기가 두 가지로 전해오고 있다. 하나는 Greece 문호 Homerous가 전하고 있는 것인데, 아버지 Zeus 神과 어머니 Dione 女神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하늘의 神 Uranos와 땅의 신 Gaia 女神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데 그것도 미묘한 사연이 있었다.
Uranos는 그의 막내 아들 Cronos(Roma 神話의 Saturn)의 급습을 당해 그의 남성의 상징물인 성기가 짤리어 바다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것이 서풍에 떠밀려 다니다가 Cyprus 해안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것이 조개껍질(shell)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면서 떠오른 것이 Aphrodite인데, 그 이름의 뜻은 Greek語로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그런 사연으로 해서 Aphrodite 여신은 조개껍질(shell)과 항상 연관을 맺고 있다.
Aphrodite에게 Ares(Roma 神話의 Mars-전쟁의 신 火星)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Eros(Roma 神話의 Cupid-사랑의 神)라는 아들이 있었다. 사랑의 신 Eros는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활과 화살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사랑의 침이 달린 것이고 다른 것은 증오의 촉이 있는 것이었다. 이 Eros(Cupid)는 늘 어머니 Aphrodite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다.
하루는 아들 Eros가 잠들고 있는 사이에 Aphrodite가 무심코 사랑의 촉이 달린 화살을 만지다가 가슴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결과 그녀는 누구든지 처음 보는 남자와 사랑하지 않으면 회복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그 때에 제일 처음으로 본 남자가 美男 牧童 Adonis였다. 그들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Adonis는 太陽神이기도 했다.
Adonis는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그가 평소처럼 사냥하러 나서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Aphrodite(Roma 神話의 Venus)는 한사코 사냥가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Adonis는 그녀를 뿌리치고 사냥개들과 함께 떠나는 것이었다. 그 때 Aphrodite는 “나의 귀여운 님이여, 들의 짐승이라고 결코 얕보아서는 안돼요. 늘 몸조심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그 때 사랑을 빼앗긴 Ares 神은 증오심으로 불타고 있었는데 멧돼지로 변신하여 Adonis를 급습했다. Adonis는 피를 쏟으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비명을 듣고 Aphrodite는 재빨리 올림푸스(Olympus) 산을 단숨에 넘어왔지만 이미 아도니스는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Aphrodite는 죽은 Adonis를 끌어안고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Adonis가 숨질 때 흘린 피를 대지가 흡수했는데, 매 해 봄이 되면 그 자리에서 Adonis의 피가 꽃이 되어 피어난다고 하는데 그 꽃이 바로 “아네모네”(anémone)이다.
마돈나와 아기 예수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 또는 모자이크한 작품이 상당히 많다.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칭하여 “마돈나”(St. Madonna)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담은 조각품들은 일종의 모조품인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시기 위해 오시기 여러 세기 전에 Egypt의 女神 Isis가 자기의 아들 Horus神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조각품,
B.C. 1,000년 경의 작품으로 텔로(Telloh-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Lagash)에서 출토된 돋을새김(양각)으로 된 풍요의 여신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Hittite왕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Anatolia의 Marash에서 발굴된 돋을새김의 마돈나,
소아시아의 아스그론 유적지에서 발굴된 Isis 여신과 그의 아들 Horus가 양각된 비석,
역시 소아시아의 Arprodisias 유적지에서 발굴된 사랑의 女神 Aphrodite가 그녀의 날개 달린 사랑의 신 Eros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의 조각 등등이 인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제3의 새종교” 시대가 되니 그 여러나라의 여신들이 Maria로 통일됨에 따라 “마돈나”로 통일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