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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번(李之番)은 고매한 선비이다.
공헌 대왕(명종)때 출사하여 사평(司評)이 되었는데,
당시 윤원형(尹元衡)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비리로 송사를 판결하려고 하자,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왔다.
단양 강가에 초려(草廬)를 짓고 정신을 수양했는데,
거처하는 방에서 밝은 빛이 뻗쳐 나왔다.
여러 고을에서 음식을 제공했으나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집에 푸른 소가 한 마리 있어 두 뿔 사이가 8, 9마디나 되었는데,
항상 이 소를 타고 강가에서 마음껏 노닐었다.
하루는 눈이 온 산에 가득 쌓였는데,
푸른 소를 타고 산꼭대기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였다.
따라와 노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다만 동자 하나가 소를 몰며 따르고 있었다.
이지번은 맑은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동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 또한 이 즐거움을 알겠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소인은 추울 뿐이고,
즐거움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의 아들 이산해는 한 시대의 명류였는데,
그를 아끼는 사람이 공(이지번)을 기용하여 단양군수로 삼았다.
이지번은 단양의 양 언덕 사이에 두 봉우리가 마주하여 솟아 있는 것을 보고 날아 다니는 신선의 놀이를 하고자 하였다.
관청에 송사하러 온 백성에게 칡으로 만든 밧줄을 구해서 두 봉우리를 가로질러 걸쳐 놓았다.
그러고는 날으는 학의 모양을 만들어 사람을 그 위에 앉히고 거기에 둥근 고리를 부착하여 밧줄에 매달아 왕래하니,
마치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신선으로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돌아갔는데,
후에 최공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최씨의 아들 남수가 관청의 창고 안에 들어가 보니,
다른 물건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칡으로 만든 밧줄만 가득하였다.
나의 선친께서는 공과 매우 친하게 지냈기에 재상 이산해는 매양 나에게 세교(世交)라고 불렀다.
*사평(司評)--
조선 시대 장예원의 정6품 벼슬.
장예원은 소송과 노예의 적(籍)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