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으리
백운산(903.1m)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화천에 걸쳐 있는 산이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의 고개를 두고 북쪽으로 광덕산(1,046m)을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한시간 삼십분이면 광덕고개에서 하차를 한다. 흥룡사에서 부터 시작되는 고개길은 마치 대관령을 넘는 모습과도 같다. 광덕고개는 캬라멜 고개라고도 불리운다.한국전쟁 당시에 험하고 구불구불한 이 고개를 군용차가 수시로 넘나들던 곳이다.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이 한국군과 미군에게 서로 밀고 밀리는 전투 중일 때이다. 피로에 지친 운전병이 졸지 않게끔 상관이 캬라멜을 주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캬라멜이 무엇인지 알지도 듣도 보지도 못할 만큼 모든 것이 파괴되어 찢어지게 가난한 국가, 바로 50년대의 이 나라의 실상을 떠올리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오랜만에 백운산 들머리로 들어선다. 십오육년만에 찾은 백운산 입구는 예나 다름없이 한약재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새삼 샛노란 개나리꽃이 추위를 봄바람으로 착각하고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구나. 반갑기도 애처럽기도 생뚱맞는 몸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철계단을 올라서니 백운산의 참 모습이 첩첩이 펼쳐지고 있다. 영하의 기상예보였으나 햇살이 넘나드는 산길에는 바람도 잦아들고 있다. 산길을 오르노라면 군데 군데에는 아직도 벙커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 지역의 산행을 할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전의 잔재로 60년대에 중점적으로 설치한 벙커들이다. 지금은 미사일이 태평양을 가로 지르며 핵폭탄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거의 쓸모가 없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적인 잔유물들에 불과 할 뿐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백운산(白雲山) 상공에는 높은 흰구름이 백운산임을 알려주고 있나보다. 해발 900미터라고 하지만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는 산행의 높이는 오육백 미터 정도의 느낌이다. 산행 시작 두시간 조금 지나 정상에 다달른다. 포천시에서 세운 백운산 표지석 앞에서 몇컷 스마트폰을 누른다. 표지석 뒷면에는 양사언의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는게 아닌가. “ 강월연연강수심(江月娟娟江水沈) 강과 달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강물은 깊기만하구나 ” 그 중에 마지막 한 구절이다. 파아란 하늘에는 비행기에서 뿌려 놓은 하얀 직선이 남과 북을 가르고 있는 분계선으로 비추고 있다. 바로 저 산 아래 철원읍 북쪽으로는 북녘 땅이 아스라히 시야에 잡히고 있다. 분단선이 없이 멋대로 넘나드는 저 구름을 바라보니 노래 한소절이 스스럼 없이 목청을 울리는구나. “ 어디로 가야 하나, 구름 같은 내 인생 , 바람이 부는대로 흘러가네 , 산 위에 올라보면 , 하늘은 더 높듯이 , 갈수록 멀어지는 나의 꿈들 ” 바로 저 너머 바로 나의 고향산천 38이북 북한이 아니더냐.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토록 목메여 애타게 울부짖으며 그리워하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노객의 가슴을 옥죄고 있고나. 두분이 가신지도 벌써 50년 40년이 되었건만 그 때나 지금이나 철책이 가로 막힌 그 모습은 변함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다. 당신의 손자의 손자들이 대(代)를 잇고 있지만 통일(統一)의 그 꿈은 자꾸 더 멀어져만 가고 있는 오늘이 아니련가. “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를 마음 속으로 읊조리며 하산길로 향하고 있다. 내딛는 발걸음에는 힘이 빠지고 허전한 마음은 낙엽에 뒹굴고 있구나. 강대국들의 샌드위치 신세 누구를 원망하고 그 누구를 탓하리요. 한민족의 비극이며 한반도의 불행일랑 세찬 산바람에 날리우고 백운계곡에 파묻어 버리고 가리라. 흥룡사로 하산을 하고 보니 예전에 번창하던 이동갈비집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백운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로 빚은 이동막걸리는 오늘날도 애주가의 사랑을 듬쁙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택시기사의 안내로 이동면의 갈비촌으로 찾아든다. 1960년대에는 한우 갈비집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을 했으나, 80년대 후반 부터는 수입산 갈비로 거개가 대체된 것이다. 말 뿐인 이동갈비이며 모두가 미국산 호주산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이다. 식당 한 가운데에는 400년이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지붕을 뚫고 뻗어 나간 식당이다. 그런대로 갈비맛에 알싸한 알콜로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려 주고 있다. 곁들여 터지는 권주가가 느티나무 뿌리를 흔든다. 얼큰한 기분으로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백운산을 찾으리라 다짐을 하면서 . 그날이 오면 백운산 정상에 남북통일의 기쁨을 글로서 새겨 놓으리라.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혼(魂)이나마 다시 찾을 수 있는 그 날의 백운산이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2017년 11월 17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