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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소백주 (61)폭풍전야(暴風前夜)
홍수개의 분부를 받은 옹기장수가 지게에 짚을 깔고 새끼줄로 옹기 짐을 단단히 묶어 짊어지고 품속에 편지를 간직하고는 한손에 작대기를 들고 대문을 향해 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요.”
대문까지 친절하게 따라가 배웅을 해주는 홍수개를 보며 옹기장수가 말했다.
“그래, 험악한 산길에 몸조심하고 날 저물면 그 집에서 자고 오거라! 옹기 값은 두둑이 달라고 했으니 잘 받아오고 편지 꼭 전해주거라!”
홍수개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요”
옹기장수가 말을 마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아참! 너 산길에 호랑이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홍수개가 떠나가는 옹기장수의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그 말을 옹기장수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대답도 없이 그냥 가는 것이었다.
홍수개는 발길을 돌려 집안으로 향했다. 남편이 옹기지게를 지고 가자 옹기장수 아내가 부엌에서 전을 지지고 있다가 옹기지게에 옹기를 묶는 것을 도와주고는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서 말도 못하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홍수개와 눈빛이 마주쳤다.
“어허! 너무 걱정 말게! 잘 다녀오겠지!”
홍수개가 옹기장수 아내를 은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예!......”
옹기장수 아내가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홍수개를 피해 얼른 발길을 돌려 부엌을 향해 갔다. 홍수개는 옹기장수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야수 같은 눈빛을 흘기며 혼잣소리를 했다.
“으음! 그새 저 솥단지가 뜨거워졌단 말인가! 허! 바야흐로 폭풍전야(暴風前夜)로다! 허! 허흠!”
밤송이의 귀찮은 가시를 따 훌렁 벗겨버린 홍수개는 이제 토실토실한 미끈한 밤알을 손에 움켜쥐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남모를 미소를 삼켜 무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진수성찬의 제사상을 차리고 자시(子時)가 되어 제사를 다 지내도록 산 너머 마을로 배달을 나간 옹기장수는 홍수개의 예상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에서 밤을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올 양이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지방(紙榜)을 써서 붙여놓고 격식에 맞춰 제사를 지냈다. 분향(焚香)을 하고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정씨 부인과 자녀들까지 대동해 정말로 극진한 효자라도 된 양 정성껏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기생 소백주 (62)연막(煙幕)
제사를 다 지낸 홍수개는 아버지 지방을 마루로 나가 불살라 태우고 가족들에게 음복(飮福)을 하라며 음식을 나누어 먹도록 했다. 그리고 홍수개 자신도 서너 잔 술을 들이켰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느라 며칠 동안 힘들었을 가족들이라 깊은 밤중에 남이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잠에 곯아 떨어져버릴 한밤중 그 시간을 홍수개는 노리고 있었다.
적을 공략할 때 팔팔하게 힘이 넘치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었다. 강한 적이 스스로 힘이 팔려 쓰러져 넘어질 때 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괴롭히는 것, 그게 바로 강적을 쓰러뜨려 이기는 최상의 전략이었다.
더구나 어여쁜 아녀자를 불시에 품에 안고 맘껏 즐기려 한다면 주변을 쥐 죽은 듯이 모조리 잠재워 버려야 했다.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제삿날이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분주함 속에서 모조리 피곤에 절어 쓰러져 버리는 그 고요함을 틈타 옹기장수 아내마저 죽은 듯이 잠들어 버리는 그 틈을 노려 자신은 너무도 손쉽게 욕망을 채워 버리는 것이었다.
강한 적이 공격해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줄행랑을 쳐라. 공격하는 적이 지쳐 쉬면 쉬지 못하도록 거짓 공격을 가장하여 방해하라. 다시 적이 공격해오면 줄행랑을 쳐라. 그러다가 적이 지쳐 쉬거들랑 한꺼번에 공격하여 섬멸하라!
어려운 손자병법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방면으로 닳고 닳아온 난봉꾼 홍수개는 연약한 여인 하나쯤 품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던 것이다. 홍수개에게 여인의 정절이나 의사 따위는 도무지 해당 밖의 사항이었다. 언제나 오직 자신의 욕망만 존재했고 그것이 항상 삶의 최우선이었다.
홍수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각,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헤아리며 날카로운 신경 줄을 놓지 않은 주도면밀함을 나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제삿날이 아닌 평상시라면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것이기에 정씨 부인이나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 더더욱 저 토실토실한 먹잇감인 옹기장수 아내의 눈을 속여 방심시키기 어려웠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어지럽고 분주하고 피곤하다는 것이 곧 깊은 안개 속 연막(煙幕)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홍진사의 제사가 끝나고 모두 다 잠든 깊은 한밤중, 그 암흑의 시간 홍수개는 일어났다. 드디어 행동 개시의 시간이었다.
홍수개는 정씨 부인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두운 방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 뒤 옹기장수 아내가 잠들어 있을 오두막으로 향했다. 이미 그 집에서 사는 할머니에게는 밤에 제사 음식을 싸가지고 나가 마을 친척 집으로 가서 먹고 자고 오라고 은밀히 지시를 내렸던 것이었다. 물론 홍수개는 그 방의 문고리도 걸어 잠글 수 없도록 낮에 미리 용의주도하게 슬그머니 고장을 내 놓았던 것이다. 홍수개는 정말로 발정한 수캐가 되어 이 밤에 남의 집 담장 아래 뚫린 개구멍을 아무도 몰래 기어들어가 암캐와 달콤하게 흘레붙는 그런 수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기생 소백주 (63)천하일품(天下一品)
홍수개는 싸늘한 밤공기를 뚫고 어둠을 능숙하게 헤쳐 집 뒤 오두막으로 향했다. 달도 없는 겨울 밤 칠흑 어둠 속에서 홍수개는 한 마리 수캐가 되어 오두막집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젖혔다. 너무도 쉽게 문이 열렸다, 따뜻한 방안 공기와 함께 가느다란 여인의 분 내음이 홍수개의 코끝에 스쳤다. 홍수개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랫목 쪽으로 이불깃에 푹 덮인 채 잠이 깊이든 여인의 따뜻한 숨결을 홍수개는 느끼며 그 이불 속으로 몸을 스스로 밀어 넣었다. 따뜻한 열기가 홍수개의 몸으로 훅 끼쳐왔다. 살진 암사슴처럼 보드라운 털을 뽐내며 순한 눈망울을 굴리던 옹기장수 아내를 이렇게 이 깊은 밤 옆에 끌어안을 수 있다니 이미 늑대에 날카로운 이빨에 걸린 고깃덩어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홍수개는 흡족한 미소를 어둠 속에서 흘기며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옹기장수 아내의 가슴께로 슬그머니 돌진해 보는 것이었다.
순간의 그 손길을 느꼈을까? 옹기 짐을 따라 깊은 수캐골 까지 고단하게 걸어 온데다가 연일 부엌일을 도우며 피곤했을 터인데 사내의 손길에 이리 불쑥 반응을 하다니 아마도 젊은 여인네의 본능이란 게 참으로 민감하고 민감한 것이로구나 하고 홍수개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하는 도중 흘깃흘깃 홍수개는 옹기장수 아내를 몰래 살펴보며 온갖 상상을 했던 것이다. 호리병처럼 입구는 작으나 속은 넓은 최고의 보옥(寶玉)부터 터진 밤송이처럼 야무진 보옥, 그리고 삶은 호박처럼 흐물흐물 물러터진 보옥에 넓은 웅덩이처럼 물에 발이 빠지던 보옥까지 홍수개는 갖은 상상을 다하며 옹기장수 아내는 아마도 깊은 옹기를 닮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 물건이 자근자근 꽉꽉 깨물어주며 흡입하는 옹기만 닮았다면야 천하일품(天下一品)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징그럽게 삼켜 물기도 했던 것이다.
홍수개는 그 생각을 하며 다시 손을 움직여 이불 속으로 옹기장수 아내의 풍만한 가슴께를 다시 더듬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사납게 몸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홍수개는 그 몸을 흔들어대는 옹기장수 아내의 몸짓이 아마도 제 남편 옹기장수의 손길에 길들여져 있어 깊은 잠이든 중에도 사내의 손길에 젊은 여인으로서 본능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제는 보드라운 엉덩이께로 대담하게 손을 깊숙이 들이밀어 보는 것이었다,
“어!.. 응!...”
분명 가느다랗게 ‘어응!’ 하는 무슨 소리가 난 것이 옹기장수 아내가 잠이 깬 모양이라고 홍수개는 생각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어 모기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쉬잇! 나니라! 조용히 하거라!”
홍수개는 여인이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자 다시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이제 너는 힘들게 옹기장수를 따라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를 일생동안 편히 살도록 보살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게 몸을 맡기거라!”
기생 소백주 (64)본성(本性)
이불 속의 옹기장수 아내는 깨어있는 듯 했는데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홍수개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번에는 조금 더 또릿한 음성으로 말했다.
“세상사 남녀관계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 한눈에 반해 버려 이렇게까지 너를 차지하려 한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음양(陰陽)의 본성(本性) 탓이지 절대로 내 탓이 아니다. 이게 죄(罪)라면 사람을 이리 만든 저 자연이 죄이니라! 너는 그리 알라!음!.. 그리고 이 집은 그대로 두고 먼 산골에 집과 땅을 장만할 것이니 너와 그곳에서 일하는 할미를 부리며 편히 살자꾸나! 너도 잘 알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은 편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최고니라! 평생 저 가난뱅이 옹기장수 따라다녀 보아야 고생만 하고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비루하게 버러지같이 살다 죽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 하지 않더냐!”
홍수개가 제법 크게 그렇게 터진 입으로 갖은 변설을 하며 그리 말했는데도 옹기장수 아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홍수개는 ‘어흠!’ 하고 낮게 기침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남편일랑은 전혀 걱정 하지 말거라! 내 다 후한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느니라! 너는 나 하는 대로만 지켜보면 되니라!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가지고 싶은 여자는 다 가지는 성미다! 그것도 저 자연이 내게 준 성미(性味)니라!”
홍수개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깃에 묻혀있는 여인의 가슴 깨로 손을 쑥 밀어 넣고는 슬그머니 주물러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부드럽고 풍만한 탄력 있는 여인의 가슴이 손가락 끝에 탱탱하게 물씬 잡힐 것으로만 알았는데 딱딱하고 단단한 가슴이 매만져지는 것이었다.
‘엉? 어라! 이게 무엇인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버린 의외의 감촉에 깜짝 놀란 홍수개는 자신이 낮에 보아온 옹기장수 아내의 몸매를 확연히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가슴이 봉긋 솟아올라 풍만하게 보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곳에 무엇인가를 넣고 억지로 부풀어 올렸던 것인가? ‘구태여 그럴 리가? 절대로 그건 아니겠지!’ 홍수개는 의심이 되어 다시 손을 놀려 좌우로 슬그머니 확인하듯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단단한 사내의 딱딱한 근육질의 가슴이 매만져지는 것이었다.
“에잉!”
홍수개는 실망의 낮은 비명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토해내고 말았다.
분명 옹기장수 아내는 젊고 예쁜 탐스러운 풍만한 여인네였는데 혹여 사내가 거짓 분장을 하고 여인네 흉내를 냈더란 말인가? 도대체 이렇게 딱딱하게 매만져지는 가슴은 분명 사내의 것이 아닌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란 말인가? 홍수개는 가슴을 그렇게 매만지는데도 죽은 듯이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이 과연 여자인가? 하고 의심이 들어 가슴을 매만지던 손을 얼른 빼내어 이제는 은밀한 아래쪽을 향해 살금살금 더듬어 가는 것이었다.
기생 소백주 (65)유령(幽靈)
홍수개는 숙달된 동작으로 재빠르게 속치마 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넣고는 그 가운데를 손으로 쓱 쓸어보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그 손끝에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이 느껴져야 하는데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볼록 솟은 사내의 큰 물건이 물큰 잡혀지는 것이었다. 홍수개가 실망도 하기 전인 그 순간, 홍수개의 손이 그곳을 닿고 스친 찰나 덮인 이불깃을 사납게 열어젖히며 웬 시커먼 사내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홍수개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칠흑 어둠 속 방안에서 그 사내를 기겁(氣怯)을 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허! 허억! 저저 저 저자는 누구인가? 피피피 필시 아 아아! 아버지! 아아 아! 아버지가 아닌가!’
홍수개의 눈 속에 들어온 어둠 속 그 사내의 얼굴은 바로 다름 아닌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아버지 홍진사였던 것이다.
“귀귀귀귀귀 귀! 귀신이다! 아! 아악!”
순간 홍수개의 날선 비명이 한밤 어둠을 뚫고 송곳처럼 길게 솟아올랐다. 흉악한 흉계를 꾸미고 그것도 아버지 홍진사의 제삿날 그런 악행을 저지르려 하다니, 정말로 홍진사의 혼령이 저승에 있다가 자신의 제삿날 제삿밥을 얻어먹으려고 이승에 살던 집 구경을 왔다가 홍수개의 악행에 대노(大怒)하여 아들 홍수개의 못된 짓을 응징한 것일까? 홍수개는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서 혼절해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방안에 있던 사내는 벌써 스르륵 문을 열고나가 어디론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홍수개의 비명소리에 놀란 홍수개의 아내 정씨부인과 아이들이 잠을 깨고 달려 나와 홍수개의 온몸을 주무르고 찬물을 가져와 입에 넣어 주어 간신히 기력을 회복했다. 정신을 차린 홍수개는 아직도 눈에 초점을 잃고 아버지를 연거푸 웅얼거리고 있었다.
“아아아! 아버지! 자자자... 자 잘 잘못했습니다! 제제제... 제제 제가 주주 죽, 죽일 놈입니다! 아아아... 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홍수개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 홍진사의 귀신을 보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넋이 나가 웅얼거리는 홍수개를 아들들이 떠 매고 나가 안방으로 가서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눕혔다.
그런데 도대체 홍수개가 그 방안에서 본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제삿날 집을 찾아온 아버지 홍진사의 유령(幽靈)이었을까?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홍수개의 아버지 홍진사를 쏙 빼닮은 홍수개의 큰아들이었다. 그런데 왜 그날 밤 열여섯 살의 홍수개의 큰아들이 그 방에 누워있었던 것일까?
언제나 악한의 간악한 흉계(凶計)에는 현자(賢者)의 지략(智略)이 명약(名藥)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의 현자는 누구였을까?
기생 소백주 (66)지략(智略)
그것은 바로 홍수개가 작은 키에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평생을 구박하고 천시해온 정씨부인의 지략(智略)의 결과였던 것이다. 홍수개가 옹기장수 소달구지를 집안 마당으로 끌어들여 오자 남편 홍수개의 흉악한 속셈을 미루어 짐작한 정씨부인이 유심히 남편의 행동을 관찰했다.
옹기장수 부부를 데리고 들어온 그날 밤 홍수개가 서실(書室)에 들어가 무슨 글인가를 쓰고 있기에 정씨부인이 홍수개가 잠든 한밤중에 촛불을 켜고 들어가 그 글을 읽어 보았던 것이다. 그 글이 바로 어제 오후 홍수개가 멀리 산 고개 너머 김씨에게 옹기 심부름을 보낸 옹기장수 남편이 가지고 갈 편지였던 것이다.
그 편지 내용을 접한 정씨부인은 짐작대로 홍수개의 흉악한 흉계(凶計)를 알고는 경악(驚愕)을 했다. 정말로 이번에는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근면하고 다정한 한 부부의 가정이 파괴되고, 죄 없는 여인이 욕정에 짓밟히고, 생사람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악인의 악행을 미리 알고도 그것을 방기 한다면 알고 있는 자도 똑같은 공범일 것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할 사랑하는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일이 아닌가!
정씨부인은 그 편지를 읽으며 남편 홍수개의 너무도 무서운 파렴치한 흉계에 심장이 떨려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편지를 받고 읽거든 바로 불살라 버리기 바라네.’로 편지는 시작하고 있었다. ‘이 젊은 옹기장수에게 옹기를 짊어 보내니 자네가 그것을 보내라고 했다고 하게. 그곳에서 장을 쑤면서 사나흘 일을 시키고 붙잡아 놓게. 별의별 수를 다 써서라도 반드시 붙잡아 놓아야 하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은 이틀 뒤 한밤에 산 너머 대여섯 명 잘 아는 도둑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 있는 옹기장수의 황소와 옹기를 훔쳐가게. 그때 옹기장수 젊은 아내도 같이 붙잡아 가야하네. 붙잡아 가서 산 너머 외딴 집 방에 꽁꽁 가두어 놓게. 내가 평생 쓸 물건이니 조심히 다루어야하네. 그리고 다음날 옹기장수 남편을 우리 집으로 가라고 보내게. 그 다음일은 나에게 맡기게! 성사하면 후사하겠네!’
남편 홍수개가 산 너머에 인연을 맺고 살아온 편지를 보낼 김씨는 깊은 산중의 산적이라는 도적 패거리들과 내통을 하며 이 일대에서 빈번히 크고 작은 악행을 일삼으며 살아온 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일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정씨부인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분명 옹기장수 남편의 신상이나 생명에 관한 일임에 분명했다.
‘저런 파렴치한 악한을 남편의 연을 맺고 살아오다니!’
그 내용에 소스라치게 놀란 정씨부인은 혹여 홍수개에게 발각되려나 싶어 얼른 그것을 제 자리에 놓고 가만가만 서실을 빠져나왔다. 무슨 지독한 업연(業緣)으로 저런 자와 부부의 연이 맺어진 것일까? 정씨부인은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다.
기생 소백주 (67)묘책(妙策)
정씨부인은 고매한 선비의 학풍(學風)이 있는 집안에서 인륜도덕과 부덕(婦德)을 익히고 실천하며 못된 남편 홍수개를 운명으로 여기고 인고(忍苦)의 날을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안 이상 그대로 가만 두어서는 절대로 아니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정씨부인은 홍수개가 옹기장수에게 산 너머 김씨 집으로 옹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고는 홍수개 모르게 재빨리 집을 나와 마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황급히 따라잡아 옹기장수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이 보시게! 나 좀 보시게!”
헐레벌떡 달려오며 부르는 정씨부인의 소리에 옹기장수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마님! 어쩐 일로 이리 급히 오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우리 집 대감이 자네가 가지고 간 편지가 다른 사람 것과 바뀌어서 보낸 대다가 보내야할 장소도 그곳이 아니라네. 그곳으로 가지 말고 저 산 아래 마을 정씨대감 집으로 가야 한다고 나를 이렇게 급히 보냈다네. 자네가 가지고 간 그 편지 일랑 나에게 주고 이 편지로 가져가 정씨대감에게 전하게. 어서 발길을 돌려 산 아래 정씨 마을로 가시게. 그리고 가거들랑 정씨대감이 시키는 대로 하시게! 잘 알았제!”
“예! 잘 알겠습니다. 마님!”
옹기장수가 정반대 길로 발길을 돌렸다. 정씨부인이 말한 정씨대감 집은 바로 정씨부인의 친정집이었고, 정씨대감은 친정 오빠였던 것이다. 정씨부인은 친정 오빠에게 옹기장수에게 옹기를 사서 보내니 잘 쓰라며 이 옹기장수를 삼일동안만 집에서 잔일을 시키며 꼭 붙잡아 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편지를 써서 홍수개의 편지대신 들려 보냈던 것이다.
홍수개의 편지를 회수하고 친정집으로 옹기장수를 보낸 정씨부인의 다음 일은 바로 남편 홍수개가 단침을 삼키며 야수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옹기장수 아내를 지켜내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씨부인은 망연히 겨울 찬바람 불어오는 먼 하늘을 응시하며 묘책(妙策)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늘은 인간에게 절대로 전부를 주지 않는 법이었다. 전부 가진 자는 언젠가는 망해 전부 잃게 되는 법이었다. 정씨부인에게 아름다운 미모를 주지 않았다면 삶의 지혜를 하늘은 주지 않았겠는가! 하늘이 여인에게 미모를 주었다면 동시에 그 미인에게는 어리석음을 주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고래로부터 현자(賢者)는 미인(美人)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지 않은가!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운 장미는 숙명(宿命)처럼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지 않은가! 옹기장수 아내가 젊고 빼어나게 예쁘지만 않았다면 홍수개는 절대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쁜 꽃에는 날 파리에 진드기가 먼저 들끓는 것처럼 내 집의 숨겨둔 보물은 도둑이 먼저 알아보고, 예쁜 딸은 거개가 난잡한 놈 차지가 되는 법이지 않은가! 정씨부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지금 정씨부인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기생 소백주 (68)악인의 최고전략
지금 당장 정씨부인은 재빠르게 저 남편 홍수개의 악행을 저지할 반격의 묘수를 짜내야 했다. 아니 다시는 그런 악행을 궁리하지 못할 묘책 중 최상의 비책(秘策)을 써야했다.
정씨부인은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일가친척 여자들 그리고 옹기장수 아내에게 시아버지 홍진사의 제사 음식을 부엌에서 마련하도록 하며 남편 홍수개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예의주시하며 세심하게 관찰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홍수개는 옹기장수 아내를 차지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정씨부인은 그것을 너무도 쉽게 감지해낼 수 있었다. 집안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는 홍수개는 정씨부인이나 아이들에 대하여 전혀 그 눈을 의식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을 했기에 그것이 치명적인 방심(放心)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인지조차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는 대로 순종만 해온 정씨부인이나 자신의 명령에 따라 쥐 죽은 듯이 복종만 하는 아이들은 그저 도저히 방해 요소가 될 수 없다고 홍수개는 쉽게 생각하고는 오로지 제 욕망을 채울 간교한 계략만을 은밀히 궁리하며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옹기장수 남편을 멀리 산 고개 너머로 따돌렸으니 최고의 장애요소를 손쉽게 해결했다고 생각한 홍수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마당에서 일가친척 남정네들과 돼지고기를 삶고 생선과 과일들을 손질하는 것을 바라보던 홍수개는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흘리며 집안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자는 집 뒤 오두막집으로 가서 문고리를 걸어 잠그지 못하도록 긴 쇠꼬챙이를 동그란 문 쇠구멍에 끼워 돌려 살짝 비틀어 버렸다.
옹기장수 아내가 잠들어 있을 깊은 밤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침범하여 육중한 힘으로 사정없이 제압하고 강제로 욕심을 채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세상사 역사이래로 흉악한 악인의 최고전략은 무조건적인 침략과 잔인한 폭력과 살생이지 않은가! 건장한 사내가 연약한 여인을 제압할 때 구차하게 여러 달콤한 소리 엿가락 늘어지듯 추저분하게 늘어놓을 것 없이 그것이 어느 때나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홍수개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몸소 체득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개구리하고 여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니 재빨리 튀기 전에 밟아버려라!’ 하는 속된 세속의 시정잡배들의 소리를 철통같이 신조로 삼고 실천하며 살아온 홍수개였다.
홍수개가 집 뒤 오두막집으로 움직이자 그것을 정씨부인은 문틈으로 놓치지 않고 보았고 홍수개가 만면에 미소를 흘기며 나오자 정씨부인은 그 오두막집 방으로 들어가서 짐작대로 문고리를 걸어 채우는 쇠를 비틀어 고장 냈음을 확인하고는 홍수개의 비밀스런 흉계의 전모를 알아냈던 것이다.
정씨부인은 홍수개가 시끄러운 제삿날 밤인 오늘밤 행동 개시를 할 것을 확신했다. 세심한 관찰과 정확한 예단은 성공한 모든 지략가(智略家)의 필수요소다. 그러나 그것을 완벽하게 성공하려면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했다. 철벽같은 방어와 빈틈없는 공격이 뒤따라야했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 할 수 있는, 그것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대담하게 실행할 능력 있고 재주 있는 인재(人才)가 필요했다.
기생 소백주 (69)금상첨화(錦上添花)
일이라는 것이 특히 전쟁이 완벽하게 성공하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는 기본이요. 그 전략을 실행할 수준 높은 훌륭한 인재가 있어야 했다. 적확한 상황판단과 그것을 이겨 낼 치밀한 전략 그리고 실행해낼 능력 있는 인물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들어맞아야 지략은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었다.
상황판단과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잘 소화해 실행해낼 인재가 없다면 그것은 결국 실패할 것이었다. 국가나 사회, 회사나 가정경영을 비롯한 세상사가 모두 다 이와 같았다. 인재를 발탁할 때 욕심 많고 어리석고 자기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자는 재주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절대로 쓰면 아니 되었다.
제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용기가 출중하고 뛰어난 실행력을 가졌다할지라도 욕심 많고 간사하고 음흉한 자는 절대로 써서는 아니 되었다. 그자는 언젠가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반드시 배신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의 조조와 사마중달이 이에 해당될 것이었다. 다만 일을 성공한 연후 적당한 시기에 그를 제거해버릴 능력이 있다면 써도 좋았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재주는 좋으나 상황판단이 흐린 자는 쓰면 아니 되는 것이었다. 초한지의 한신이나 삼국지연의의 원소와 관우와 마속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혜는 없고 용기 즉 무력만 있는 무식한 자는 절대로 기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초한지의 항우 그리고 삼국지연의의 장비나 여포쯤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재주도 있고 용기도 있고 또한 인성 훈련이 잘된 인간미까지 곁들인 존재라면 그 얼마나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그러한 인재는 언제나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발탁해 쓸 지도력 있는 뛰어난 자가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천하가 늘 요지경이 아니겠는가!
여기나 저기나 아부와 뇌물과 연줄과 혈연과 학연과 지연의 배경을 통한 욕심 많고 힘센 순으로 차례차례 자리를 거래해 앉았으니 세상사가 늘 힘들고 어지러운 것이지 않겠는가! 아마도 공자(孔子)가 숭앙해마지 않았던 주공쯤 되어야 현인(賢人)을 알아볼 줄 알고 천하대사 인륜을 바로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주공은 현인이 찾아오면 머리 감기를 중단하고, 입안에 씹고 있던 음식을 뱉어내고 달려 나가 맞이했다.
인재를 알아보고 맞이하는데 있어서 예를 다하고 오만한 행동을 삼갈 줄 알았던 고매한 인품을 가진 연후에야 그 인재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고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여 쓴 후에야 비로소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 쟁탈과 지위 다툼, 밥자리 경쟁에 휘돌아가는 바람 잘날 없는 세상사 시류의 혼탁 속에서 정씨부인은 한평생 색(色)에만 미쳐 빠진 남편 홍수개를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고 가정을 평안히 지키기 위하여 혜안을 통한 지략을 실행에 옮겨 모두를 구할 비책을 써야만했다. 정씨부인에게 홍수개는 미워도 버릴 수 없는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기생 소백주 (70)활인도(活人刀)
살인도(殺人刀)를 휘둘러 범죄인을 단칼에 척결할 일이라면 아주 쉬운 일이겠지만 가족이고 이웃이기에 다 같이 서로 살아야할 활인도(活人刀)를 써야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이었다. 정씨부인은 미워도 홍수개는 남편이었기에 그 방법을 신중히 고민할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정씨부인이 옹기장수 아내만을 구할 양이면 오늘밤 그 방을 텅 비워 놓고 다른 집으로 멀리 피해 가서 잠을 자게하고 회피시키면 그만이었지만 이차지에 남편 홍수개의 흉악한 버릇을 고쳐 새사람을 만들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최고의 상책(上策)을 궁리하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것이다. 최고의 상책이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모두를 살려내는 인간을 위한인간적인 방법인 것이었다. 그러나 천하에 그런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석양 무렵 홍수개는 오두막집에서 기거를 하는, 제사에 쓸 각종 나물을 부엌에서 무치고 있는 할머니를 마당가로 불렀다. 홍수개가 그 할머니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부엌으로 들어온 할머니를 정씨부인이 구석으로 따로 불렀다,
“이 보시게 할멈! 지금 주인대감이 뭐라고 하시던가?”
정씨부인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구 마님! 주인대감께서 오늘밤은 제사가 시작되기 전에 음식을 싸가지고 마을에 나가 할멈들과 놀면서 먹고 자고 오라고 그렇게 이르시네요. 그래서 제가 일이 많은데 그리해도 되냐고 그러니 집안일은 걱정하지마라고 그러시네요. 일이 많은데 그리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마님?”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걱정이 되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이르시던가?”
“예에! 꼭 그리하라 하시네요.”
홍수개는 그 오두막집 방에 옹기장수 아내만 홀로 남아 자도록 재빠르게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물론 정씨부인의 세심한 관찰의 눈빛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할머니에게 혹여 이를 누가 묻거들랑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홍수개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홍수개는 가정에서 일방통행이었던 것이다.
“으음! 그래, 그렇다면 그리하시게! 무슨 수로 주인대감의 말씀을 어기겠는가!”
정씨부인이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아이구 마님!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내가 음식을 많이 줄 테니 싸가지고 가서 친하게 지내는 마을 할멈들과 나눠먹고 잘 자고 오시게”
정씨부인이 말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마님!”
할머니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로서 정씨부인은 남편 홍수개의 간악한 흉계를 최종 확인하게 된 셈이 되었다. 정씨부인은 골똘히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