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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관중과 포숙 (10)
그러나 어찌 알았겠는가.
관중(管仲)이 쏜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쇠고리에 가서 맞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소백의 쓰러짐과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피는 무엇인가.
그것은 온전히 소백의 순간적인 기지(機智)에서였다
그 역시 관중이 명궁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화살을 배에 맞았을땐 정말로 죽는줄로 알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뒤늦게 화살이 허리띠 쇠고리에 맞은 것을 알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관중(管仲)이 또다시 활을 쏠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그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수레 바닥으로 쓰러져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던 것이다.
소백(召白)의 그러한 연극에 포숙도 완전히 속았다.
그는 정말로 소백이 죽은 줄 알고 곡성을 터뜨리는 중에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대는 무엇때문에 그리 슬프게 우는가?"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소백이 눈을 찡긋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포숙(鮑叔)은 소백이 멋들어지게 관중을 속였다는 것을 깨닫고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관중을 속였으니, 언제 또 그가 쫓아올지 모릅니다. 공자께서는 속히 임치로 달려가십시오."
"알겠소. 지금 곧 출발합시다."
소백(召白)이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는데 포숙이 다시 말했다.
"적을 속이려면 끝까지 속여야 합니다. 공자께서는 기왕 죽은 연극을 하셨으니, 임치성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 죽은 체하십시오."
포숙(鮑叔)은 소백의 수레를 온량차로 꾸몄다. 온량차란 시체를 싣는 수레를 말한다. 지금의 영구차이다. 소백은 죽은 사람이 입는 베옷을 걸치고 온량차 안으로 들어가 길게 누웠다.
그때부터 수레는 지름길을 달려 임치로 향해가니, 모든 사람들은 그 수레가 소백의 수레인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그들은 임치성 밖에 다다랐다.
포숙(鮑叔)은 자신이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고혜를 비롯한 대부들을 만나보았다.
고혜와 옹름은 소백이 성밖에 와 있다는 말을 듣자 크게 기뻐했으나, 한편으로는 노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임치를 향해 오고 있는 규(糾)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지않아 규(糾) 공자도 이 곳에 당도할 터인데, 그를 어떻게 대우해야할지 난감할 뿐이오."
포숙(鮑叔)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규 공자를 맞아들여 군위에 올리면 노나라는 반드시 우리에게 많은 보답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 예는 다른 나라에서도 자주 보아온터입니다. 지난날 송나라와 정나라와의 싸움도 그 은혜갚음을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이제 우리 제(齊)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여러가지 환난을 겪은 후라, 노나라의 요구를 쉽게 들어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잇달아 두 임금이 죽음을 당했소. 만일 어질고 덕 있는분이 아니면 능히 이 어지러움을 안정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서둘러 소백공자를 모셔 군위에 올리십시오. 그것만이 제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소백 공자를 모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노(魯)나라가 문제이외다."
"우리에게 임금이 이미 계신데, 노나라가 어찌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군사로 위협하면 맞서 싸우면 됩니다. 싸움의 승패는 명분에 있는 것. 우리의 마음만 정해지면 노나라 군때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포숙(鮑叔)이 열변을 토했으나, 고혜와 옹름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대부 공손습붕과 동곽아가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외쳤다.
"포숙의 말이 옳습니다. 노나라가 군사를 몰아 쳐들어오면 우리도 군사를 내어 맞서면 됩니다. 어찌 노나라가 무서워 마음에도 없는 임금을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마침내 고혜와 옹름도 마음을 정했다.
그들은 서둘러 성밖으로 나가 그 곳에 대기하고 있던 소백(召白)을 궁중으로 모셔들였다. 그러고는 그를 전상으로 올려 임금의 자리에 앉게 하니, 이 사람이 바로 춘추시대 제일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제환공(齊桓公)이다.
이대의 일을 후세의 사가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관중(管仲)이 활을 쏘아 소백을 맞췄을 때 노장공은 기뻐하고 거나라는 근심했지만, 어찌 알았으랴. 고작 허리띠 쇠고리를 맞혔을 뿐인 것을.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순간에 소백이 죽은 체 가장한 것은 이미 그가 모든 제후를 통합할 만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